제13화
프라킬의 죽음을 확인한 아더는 곧바로 그의 혈통 능력을 일으켰다.
그 순간 전신이 검은 껍질로 뒤덮이고 지쳐 있던 육체에 다시 활기가 돌았다.
그 기이한 느낌을 즐기던 아더는 가볍게 자리에서 뛰어 보았다.
마나를 사용해 몸을 강화했을 때랑 비슷한 감각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오… 단순히 피부만 딱딱해진 게 아니라, 육체 능력도 같이 상승시켜 주는 건가?”
이 정도면 예상보다 훨씬 쓸 만한 혈통이었다.
그래서 아쉽기도 했다.
미래 프라킬은 이 혈통 능력으로 기사들의 검기와 마법사들의 마법을 매우 손쉽게 막아냈다.
허나 지금 프라킬의 혈통 능력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내 검에 가슴팍이 뚫린 게 그 증거. 혈통 능력이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모양이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아더였지만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이번 일은 여러 행운이 따른 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
프라킬의 방심.
끝까지 숨겨 놓았던 운디네의 능력.
그 외 여러 가지 변수.
이 중 하나라도 없었더라면, 전투는 꽤 치열해졌을 것이고 그 결말은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이쯤에서 만족하는 게 맞겠지.’
생각을 끝마친 아더는 프라킬의 시체를 뒤로한 채 그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귀를 긁는 경첩 소리가 들렸다.
그 속에서 아더는 긴장을 일깨웠다.
혹시 모를 ‘트랩’.
소위 함정 마법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집 안의 풍경은 예상과 달리 꽤 평범했다.
타오르는 모닥불.
그 모닥불 근처에 있는 침대와 책상.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이 전부였다.
아더는 그것들을 휘적휘적 치우며 주변을 살피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흑마법사의 던전에는 재미난 것들이 많다 들었는데, 별것 없네?”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조금 더 세밀히 주변을 살필 때였다.
예민한 감각에 무언가 덜컥 걸렸다.
그 감각에 따라 허리를 숙인 아더는 오두막의 외벽을 가볍게 두들겼다.
그 순간 드르륵 걸리는 소리와 함께 외벽이 갈라지며 숨겨져 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나선형 계단이었다.
“역시 흑마법사.”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계단을 타고 지하로 향했다.
어떻게 이 작은 오두막에 이런 공간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마법사란 존재는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나가니 갑작스레 시야가 넓어졌다.
그리고 그 넓은 시야로 들어온 것은 거대한 제단과 머리와 팔이 각기 잘린 시체들이었다.
“여기서 의식을 치렀나 보구나.”
피가 완전히 빨려 미라가 되어버린 시체들을 바라보던 아더는 운철검을 뽑아 들었다.
사악-!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매달려 있던 시체들이 떨어져 내렸다.
아더는 그들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뉜 뒤 두 손을 모았다.
“다들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기도가 끝마친 아더는 다시 몸을 일으켜, 흑마법사의 던전을 이리저리 쏘다녔다.
허나 오두막보다 큰 제단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 탓에 아더의 걸음은 이 공간하고는 어울리지 않은 책상 곁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여러 장의 서류와 한 권의 책.
그리고 몇 가지 잡동사니들이 있었다.
그 탓에 기대가 실망감으로 바뀔 때쯤, 갑작스레 마력이 느껴졌다.
“어? 이건?”
아더가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손길에 따라 반응이라도 하듯, 반지가 옅은 진동을 했다.
“설마 아티팩트인가?”
아더가 잠깐 고민하다,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 순간 반지의 진동이 조금 더 강해지더니 옅은 마력이 뿜어져 나와 아더의 몸 전체를 감쌌다.
변화를 느낀 아더는 책상 위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 이거 투명 마법이잖아?”
감탄과 함께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옅은 지식에 의하면 투명 마법은 꽤나 고난이도 마법이었다.
그래서 이런 아티팩트의 경우,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횡재했네. 이런 걸 얻을 줄이야.’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미래 프라킬이 어떻게 해서 최악의 살인마가 되었는지 말이다.
‘이 반지로 몸을 숨겨서 습격했구나. 나와 전투할 때 쓰지 않아서 다행이네.’
생각과 함께 씩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다시 책상을 뒤적였다.
허나 반지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그 탓에 몸을 돌려, 제단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서류들 사이에 놓인 책 한 권이 아더의 시선을 끌었다.
“….”
고민하던 아더는 그 책을 집어 들어 첫 장을 펼쳤다.
정갈한 필체로 시작된 첫 단어는 X발’이라는 욕설이었다.
“일기장인가?”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프라킬의 심정, 계획, 일상.
그 밖의 여러 신변잡기가 문자가 되어 아더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스승님에게서 도망쳤다. 어차피 이대로면, 평생 노예로 살다 죽을 게 뻔했으니깐.]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다. 스승님의 물건도 훔쳐 나왔다. 투명화 마법이 걸린 반지였다.]
[분명 추격을 해 올 것이다. 스승님은 배신자들을 절대 살려 두지 않으니깐.]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 했다.]
[힘을 키우는 가장 빠른 방법은 대가를 바치는 것이다. 모든 마법은 등가교환이니깐.]
[거지들을 노렸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들이라면 들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정갈한 피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매우 독특한 피. 혈통이라 불리는 피 말이다.]
책의 내용을 살핀 아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프라킬이 이곳 수도로 숨어들었는지, 왜 거지들을 납치했는지 이제야 대충 감이 왔다.
“이분도 사연이 많네.”
중얼거림과 함께 일기를 덮은 아더는 오두막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타오르는 모닥불을 이용해 오두막과 던전.
프라킬의 시체까지 태워 버렸다.
화르륵-!
올라오는 매캐한 매연을 잠시 바라보던 아더는 몸을 돌렸다.
할렘가에서의 볼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돌아온 아더는 한동안 외출하지 않고 바이에른 저택에만 머물렀다.
이전에야 새로운 혈통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외출을 했다지만, 이제는 밖으로 나갈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남는 시간을 통해, 더욱 수련에 매진했다.
조금 더 마나를 빨리 쌓기 위해, 쉼 없이 훈련하고 육체의 근력을 키웠다.
‘생각해 보니 운이 좋았네. 하필 돌아온 시점이 15살···. 17살이면 한참성장기에 접어들 때니깐.’
미래 아더 바이에른의 체격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허나 꾸준한 독의 복용으로 망가진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17살이란 나이에 독을 완전히 치료하고, 매일 같이 체계적인 훈련을 하니 그 성장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조금 과장 되게 말해 매일 아침마다 키가 커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체급은 중요하지. 특히 마나를 사용한 싸움에서는.’
그러한 작은 변화들 사이에서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여름이 다가왔는지 평소보다 습기가 가득 찬 어느 날.
아더는 평소와 같이 새벽 훈련을 끝마치고, 아침 식사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매일 같이 마주치는 시종들이 그런 아더를 향해 인사해 왔다.
그런 시종들에게 아더도 똑같이 인사하며 식당 안에 들어섰다.
먼저와 기다리던 아이린과 요넬이 꼭 붙어 속닥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기척을 내지 않고 들어왔던 아더는 평소와 다른 둘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린과 요넬이 뒤늦게 아더를 발견하고서 몹시 당황했다.
“어… 아들?”
“오, 오빠?”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동시에 약간의 호기심이 가슴 곳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허나 굳이 입을 열어 묻지 않았다.
수다스러운 제 여동생이 알아서 그 이유를 말해 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예측은 정확했다.
식사를 하던 아이린이 맥락 없는 질문을 던졌다.
“오빠 뭐 받고 싶은 거 있어?”
“받고 싶은 거?”
“응응! 뭐 가지고 싶은 거 있어!?”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조금 전 요넬과 아이린 대화하던 주제가 이것인 모양이었다.
그 사이 요넬이 한숨을 내어 쉬며 아이린을 타박했다.
“아이린···. 비밀로 하자고 금방 약속했는데,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있니?”
“네, 네? 하지만 엄마···. 전 아무것도 말 안 했는데요···.”
“조금 전 질문으로 다 밝힌 것이나 다름없지 않니?”
아이린이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더는 그런 여동생이 너무 귀여워,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수저를 내려놓은 요넬이 아더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뭐 이렇게 된 거 직접 물어보는 게 더 나을지 모르겠구나. 아더. 혹시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니?”
“선물이요, 어머니?”
“그래. 이제 조금 있으면···. 네 17살 번째 생일이잖니?”
요넬의 말에 아더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 생일이라고?’
철이 든 뒤로 생일이란 걸 챙겨 본 적 없어서, 그런 날이 다가오는지도 까맣게 잊고 지낸 아더였다.
그 탓에 대답하지 못하니 요넬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네가 원하는 어떤 것이든 이 어미가 구해다 주마. 이번 생일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매우 뜻깊은 날이니깐.”
요넬의 말에 아더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선물이라···. 어렵네.’
사전적 의미로 남에게 어떤 물건 따위를 선사함. 또는 그 물건.
아더, 자신의 인생하고는 가장 관련 없었던 단어였다.
그래서 어려웠다.
‘원하는 게 딱히 없는데···. 뭘 요구해야 할까?’
생각나는 게 없지는 않지만, 말하기가 조금 곤란했다.
2황자의 목이나, 아주 좋은 재능 혹은 혈통을 지닌 자의 피.
이런 걸 말했다가는 요넬이 졸도할지도 몰랐다.
‘음… 그래 이건 아니야. 이건 참아야 해.’
그래서 아더의 침묵이 길어졌고, 요넬은 그 침묵을 이해해주었다.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거라. 이 어머가 무엇이든 해줄 테니.”
요넬의 선언과 함께 아침 식사는 끝이 났다.
그렇게 각자의 일상을 보내기 위해 세 가족은 잠시 헤어졌고, 안나와 동행해 제 방으로 걸어가던 아더는 불쑥 질문했다.
“안나. 어떤 선물을 말해야, 어머니가 좋아할까?”
“…예?”
“어떤 선물을 말해야 어머니가 실망하지 않을까?”
안나가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몹시 당황하며 대답했다.
“어… 공자님? 보통 선물이란 건, 주는 사람의 기분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기분이 중요하 않나요?”
“받는 사람이 원하는 게 없으면?”
“…공자님은 원하는 게 없으신가요?”
아더가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탓에 안나는 또 한 번 당황했다.
무려 제국의 단 하나뿐인 공작가의 주인이, 선물을 준다는 데 원하는 게 없다니?
하지만 숙련된 집사답게 당황스러움을티 내지 않았다.
대신 아더의 입장에서 생각해 최대한 그럴싸한 답을 내놓았다.
“그럼 반대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반대로?”
“공자님이 공작 각하에게 선물을 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사이도착한 방 안에 들어선 아더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어머니한테 뭘 해드리면 기뻐할까? 그걸 선물로 말하면 될 듯싶은데.’
고민과 함께 다음 날이 되었을 때였다.
바이에른 저택이 매우 소란스러웠다.
그 탓에 평소보다 훨씬 일찍 수련을 끝낸 아더는 집사인 안나를 통해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 순간 안나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게···. 그분이 돌아오셨답니다.”
“누가?”
“그분… 도르문트 백작.”
아더의 눈이 치켜떠진다.
“케인 도르문트 백작. 그분이 수도로 복귀하셨답니다. 그리고 내일 오후 3시 공작가로 직접 방문하신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