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아더는 생각했다.
지금의 자신은 지난 삶의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했다.
15살의 나이에 벙어리에서 벗어났으며 1서클 또한 달성했고, 몸 상태도 30살의 아더 바이에른보다 훨씬 좋았다.
허나 만족할 수 없었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놀라운 성장을 한 건 맞지만 딱 성장만 했을 뿐이었다.
이런 상태로는 머릿속에 든 계획 중 그 어떤 것도 실천할 수 없었다.
‘당장 케딜락 같은 기사가 어머니를 암살하려 들면, 꼼짝없이 당해야 하지.’
그 탓에 아더는 계획보다 일찍 혈통을 모으고자 결단을 내렸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마나와 달리, 바이에른 혈통은 좋은 피만 흡수한다는 가정하에 훨씬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피를 어떻게 구하냐 였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됐어.’
두 달 전, 어머니의 권유로 보게 된 신문에 실린 기사 한 줄에서 힌트를 얻은 아더였다.
바로 B-21 구역의 골목길 사이에서 썩은 시체가 발견됐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할렘가의 으레 많은 괴담 중 하나라 생각했는데, 요넬의 입에서 제국의 수색 경찰들까지 움직였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떠올릴 수 있었다.
‘수도 최악의 살인마라 불리던 프라킬. 그자가 수도에 처음으로 흔적을 드러냈던 게 이때쯤이었지 아마?’
그는 상당히 독특한 혈통을 지닌 살인마였는데, 할렘가의 거지들과 왈패들을 제물로 바쳐 힘을 키운 흑마법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힘이 원하던 지점에 이른 순간, B-21 구역 할렘가를 넘어 시가지로까지 진출했다.
그 후 내로라하는 귀족들을 습격하기 시작했고, 결국엔 최악의 살인마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1년 뒤. 내 오른팔에 흉측한 흉터가 새겨진 순간이지.’
이 대담한 흑마법사는 바이에른 공작가도 예외로 두지 않았다.
간만에 외출을 한 요넬과 과거의 아더를 습격했고, 기어코 어깨를 가로지르는 상처를 새겼다.
‘다행히 뒤늦게 도착한 제국의 경찰들에게 붙잡히기는 했지만···. 프라킬 덕에 나는 더욱 미쳐버려 그나마 하던 외출도 안 하게 됐고.’
그래서 프라킬이란 이름 세 글자는 아더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의 능력과 행적 또 한 말이다.
‘그 사람 혈통… 꽤나 좋았지. 전신의 피부를 파충류의 껍질처럼 변화시켜, 기사의 검기와 마법사의 마법을 튕겨냈으니깐.’
1서클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아직 완벽한 방어 수단이 없는 아더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탓에 프라킬의 혈통을 첫 타깃으로 정한 아더는 곧바로 B-21 구역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도의 그 어떤 구역보다도 넓은 할렘가에서 외형만 아는 흑마법사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거지들을 이용한 아더였다.
제국의 수도는 대륙에서 가장 많은 인구 밀집도를 자랑했고, 그에 비례해 많은 거지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부랑자와 거지들 대다수가 이 할렘가에 모여 있었다.
거지들은 이 거리에 떠도는 소문과 정보.
그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맺게 된 인연이 아둔 패거리였다.
‘돈을 뜯어내려다 맺게 된 기묘한 인연.’
그 후 아둔 패거리의 도움을 받아 프라킬을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마침내 드러난 듯했다.
“손님이 말씀하신 검은 피부에 붉은 눈동자. 외양이 거의 일치하는 남자가 하르던 패거리에 며칠 전부터 머물고 있습니다.”
아둔의 설명에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하르던 패거리는 어디에 있죠?”
“B-21 구역의 지하도에 터를 잡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많이 먼가요?”
“금방입니다. 10분이면 놈들의 아지트로 갈 수 있습니다.”
대답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수로 1골드를 더 드릴게요. 저를 [하르던 패거리]에 안내해주실 수 있나요?”
“…하르던 패거리로 말씀입니까?”
“네. 프라킬 그분에게 볼일이 있거든요.”
아둔이 눈을 굴리다 조심스레 묻는다.
“주제넘을 수 있긴 한데, 저희 아둔 패거리와 하르던 패거리는 사이가 매우 나쁩니다. 손님.”
“그래서요?”
“제가 그곳으로 갔다가는 싸움이 일어날 겁니다. 하르던 패거리는 외부인에게 매우 민감한 거지 패라서….”
아더가 손가락을 튕겼다.
“즉, 위험하다 소리군요?”
“정확합니다! 손님의 실력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하르던 패거리는 저희 패거리보다 배는 많은 숫자···.”
설명을 하던 아둔의 눈앞에 2골드가 떨어졌다.
“목숨 수당이에요. 일을 끝마치면 똑같은 금액으로 한 번 더 드릴게요.”
“….”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조건 아닌가요? 아둔?”
대답에 아둔이 고심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의 실력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거래 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미 보았으니 거부할 수 없겠군요.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거래를 받아들인 아둔이 제 부하들에게 손짓한다.
그 손짓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거지들 몇 명이 어디론가 달려 나가고, 아둔이 허리를 숙이며 말한다.
“지금 안내하면 되겠습니까?”
“예. 통금 시간이 있어서, 빨리 들어가야 하거든요.”
“…통금 시간이요?”
“정확히는 어머니랑 약속한저녁 식사 시간이요. 그러니깐 최대한 빨리 안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더의 말에 아둔이 눈을 끔뻑인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는 몹시 당황했다.
‘…통금? 높으신 분들의 유머인가? 아니면 귀족들만 은어?’
허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높으신 분들의 취향은 자신과 같은 것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독특했으니.
생각을 끝마친 그는 곧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아더가 걸음을 옮기니, 조금 전 아둔의 손짓에 먼저 움직였던 거지들 몇 명이 배수로의 뚜껑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 탓에 상당한 악취가 코끝을 찔러왔다.
아둔이 눈치를 보며 설명한다.
“지하도에 가기 위해서는 이 하수구가 가장 빠른 길입니다.”
“좋네요. 빨리 이동하죠.”
대답에 아둔이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 속에서 아더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운디네 부탁해.’
이 말에 운디네가 아더의 코끝에 걸터앉는다.
그 순간 풍겨 오던 악취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닌 운디네의 기운이 아더의 몸 전체를 감싸면서 오물 또한 신발을 제외하고는 묻지 않았다.
반면 앞장서 걷던 아둔은 하수구 특유의 악취와 오물에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 걸으니, 저 멀리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이 하르던 패거리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이 일대에서 규모로만 따지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놈들이죠.”
아둔의 설명에 아더가 몸을 일으켜 거지들에게로 다가갔다.
“소, 손님?”
당황한 아둔이 소리쳤지만, 아더는 멈추지 않았다.
그 탓에 아둔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저렇게 대놓고 간다고? 30명이나 되는 거지 패에게?’
의문과 함께 아둔이 눈을 굴릴 때였다.
30명의 거지 앞에 선 아더가 빙그레 웃는다.
“안녕하세요? 프라킬이란 분을 뵈러 왔는데 안내해주실 수 있나요?”
* * *
뒤늦은 점심을 먹던 하르던 패거리들이 눈을 끔뻑인다.
그리고 이 하수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과 생김새를 한 사내를 훑기 시작했다.
“…누구쇼? 여기 사람 같지 않은데?”
“프라킬이란 분을 찾으러 왔습니다.”
“프라킬? 프라킬이 누구요?”
“흑마법사라 설명하면 아실까요?”
아더의 질문에 거지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들은 낮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아더를 쏘아보다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마법사같이 대단한 분이 왜 이런 곳에 있겠슈?”
“그리고 그 흑마법사를 찾는 당신은 또 누구고?”
질문과 함께 조잡한 쇠꼬챙이를 집어 든 거지들이 은근슬쩍 원을 그린다.
아더를 중심으로 말이다.
허나 아더는 신경 쓰지 않고서 어깨를 으쓱였다.
“흑마법사니깐 이곳에 있지 않을까요? 흑마법사분들은 지하나 하수구 이런 곳을 좋아하시거든요.”
대답에 한 거지가 기습적으로 쇠꼬챙이를 휘둘렀다.
제법 날카로운 일격이었지만, 예측하고 있던 아더는 허리춤에 찬 운철검으로 가볍게 튕겨냈다.
챙-!
울려 퍼지는 소음과 함께 거지들이 소리친다.
“잡아-!”
“누군지 몰라도 일단 잡아 족치고 봐!”
“그분이 알면 다 죽는다! 어서 죽여!”
외침에 아더가 탄성을 내질렀다.
‘정확히 찾아왔나 보네. 저분 그분 이러는 걸 보니깐.’
생각과 함께 아더가 코끝에 앉은 운디네를 바라본다.
그 무언의 시선에 운디네가 작은 기합을 내지른다.
그 순간 거지들이 딛고 있던 발판에서 오물들이 살아 움직인다.
“어, 어?”
비명과 함께 몇몇 거지들이 넘어지고, 그 위를 아더가 덮쳤다.
운철검의 칼등으로 넘어진 한 거지의 어깨를 가볍게 부숴버린 아더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사각에서 덤벼오는 거지의 가슴팍을 발로 찼다.
그렇게 거지 두 명을 순식간에 쓰러트린 아더는 본격적으로 감각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후각 청각 시각 촉각.
미각을 제외한 네 가지의 감각을 동원해 30명의 거지들의 움직임, 방향, 숨소리.
그들이 주는 모든 정보를 종합하고 인지한 아더가 남은 거지 패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
설마 덤벼들 줄은 몰랐던 거지들이 기세를 잃고서 당황한다.
그리고 그 짧은 틈은, 아더에게 있어 칼을 휘두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으아아악!”
“아이고 내 팔!”
“내 다리야!”
비명과 함께 30명의 거지 중 10명이 눈물을 쏟아낸다.
아더가 내지른 칼등에 가격당해 전부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그 참상에 20명의 거지는 눈을 끔뻑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서 경악했다.
“저, 저게 뭐야?”
“기사 아니야? 아니면 수색 경찰?”
수군거림과 함께 아더에게 아직 당하지 않은 거지들이 눈치를 보다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운철검을 어깨에 들쳐 멘 채 바라보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따라가면 아마 프라킬, 흑마법사가 있겠지?”
그 후 달아나는 거지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텅 빈 원형 공간에 신음을 흘리는 10명의 거지만이 남았을 때였다.
숨어서 아더의 전투를 지켜본 아둔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진짜 기사 아니야 저거? 무슨 칼 솜씨가 마법…….’
말을 흐린 아둔이 고민하다 눈빛을 번뜩였다.
X발?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아둔은 스스로를 냉정히 볼 줄 알았다.
별 볼 일 없는 실력을 가졌음에도 꽤나 손꼽히는 패거리를 이룰 수 있게 된 건 남들보다 빠른 눈치와 판단 덕이었다.
그리고 그 눈치와 판단이 지금의 이 상황이 기회라 말하고 있었다.
‘저 손님께서 하르던 패거리를 전부 쓸어주시면 이곳은 우리의 영역이… 될 수도?’
생각과 함께 입꼬리를 올린 아둔이 아더를 뛰따랐다.
그렇게 시작된 미묘한 추격전은, 가장 앞장서 달리던 하르던 패거리들이 멈추어 서고야 중단되었다.
커다란 광장에 모인 30명의 거지와 합류한 20명의 거지가 황급히 말을 전한다.
“멀뚱히 보지 말고 그분을 불러와! 침입자가 있다! 이곳 사람이 아닌 침입자야!”
상황을 모르던 30명의 거지 패들이 눈을 치켜뜬다.
그리고 몇몇이 몸을 돌려, 지하도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오두막을 향해 뛰쳐 들어간다.
그 사이 하르던 패거리들이 모인 광장에 도착한 아더가 중얼거렸다.
“오···. 정확히 찾아왔나 보네.”
하수구에 저런 오두막을 짓는 취미는 아마 흑마법사를 제외하고는 드물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아더는 앞을 가로막은 거지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런데 더럽게 많네. 쓰러트리지 못할 건 아니지만, 흑마법사 프라킬. 그 사람을 생각하면 힘을 아껴야 하는데….’
1년 뒤의 프라킬은 5서클 기사도 이길 정도로 성장한다.
하지만 지금의 프라킬은 꽤나 독특한 혈통을 지닌 흑마법사에 불과했다.
‘그래도 방심하지는 않는 게 좋은데 말이지. 마법이라는 게···. 특히 흑마법은 상식이 통용되지 않으니.’
생각과 함께 아더가 50명의 거지 패들과 프라킬을 어떻게 상대할까 고민할 때였다.
오두막의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걸어 나온다.
“이게 뭔 소란이지?”
눈 밑의 다크서클과, 어깨에 두른 망토가 누가 보더라도 흑마법사의 외형이었다.
그리고 아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남자와도 그 생김새가 똑같았다.
허나 틀릴 수도 있기에, 아더는 소리쳐 물었다.
“혹시 프라킬 씨 맞나요?”
“이름이 프라킬이 맞기는 하지. 그런데 칼 든 신사님께서는 이곳에 왜 찾아온 거지? 이런 하수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분 같은데?’
“…아. 당신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당신? 나 말하는 건가?”
“에. 흑마법사 프라킬 씨. 당신에게 볼일이 있습니다.”
흑마법사란 단어에 프라킬이 움찔 놀란다.
그 후 낮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아더를 쏘아보며 중얼거린다.
“교회의 개인가?”
“신을 존중하지만 신은 믿지 않습니다.”
“그럼 누구지? 설마 다른 학파에서 날 죽이라고 보낸 암살자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프라킬이 버럭 소리친다.
“말 돌리지 말고말해! 네 놈 정체가 뭐냐!”
외침에 놀란 거지들이 자신도 모르게 물러선다.
그 사이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한데 정체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프라킬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는다.
“하긴… 얼굴을 숨기려고 가면까지 쓰고 온 놈이 정체를 밝힐 리가 없지. 그럼 목적은 뭐냐?”
아더가 방긋 웃는다.
“그건 대답하기 쉽네요. 당신의 목입니다.”
“뭐…?”
“정확히는 당신의 능력과 피를 원합니다. 그래서 죽어 주셔야 되겠습니다. 프라킬 씨.”
프라킬이 눈을 끔뻑인다.
그리고 헛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미친놈인가?”
“종종 그런 소릴 듣고는 했죠.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말을 흐린 아더가 운철검을 뽑아 든다.
“그럼 시작할까요? 식사 시간에 늦으면 어머니한테 혼나거든요. 저는 아직 어머니한테 혼날 생각이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