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0화 (10/265)

제10화

수도에 때아닌 소란이 일었다.

바이에른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이었다.

단 한 명뿐인 후계자라 평가받는 아더 바이에른이 마침내 병을 이겨내고 말을 더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파급력이 큰 것은 아니었지만, 바이에른 가문 자체가 워낙 명문가다 보니 자연스레 이목이 쏠렸다.

그 속에서 어쩌면 이 일을 계기로 바이에른이 새롭게 위상을 다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간간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사건들로 인해 사람들의 뇌리에 이 사실이 잊혀 갈 때였다.

아더 바이에른의 새로운 집사.

안나 크레프트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세안을 하고 머리를 빗은 뒤, 어젯밤 다려 놓은 정장을 갖추어 입었다.

거울을 통해 마지막 확인까지 한 안나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바이에른의 저택을 지나, 뒤뜰로 향했다.

휘익-!

그 순간 귓가로 파고드는 기이한 소리.

안나는 고개를 들어 한 남자.

아니 소년을 바라보았다.

휘익-!

목검을 휘두르는 소년의 움직임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저 나이 때 소년이 휘두른 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예리함도 묻어나왔다.

그 탓에 안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분이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을 더듬던 소공자님이라 말하면 누가 믿을까.’

생각과 함께 안나가 아더의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릴 때였다.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아더가 우뚝 멈추어 섰다.

그리고 텅 비어 버린 가슴팍의 고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흠… 끝나버렸네. 고리가 하나라 그런가?’

칼잡이 더 나아가, 기사라 불리는 자들은 마나를 다룬다.

그 마나는 기사들과 칼잡이들의 육체를 강화하고, 일정 수준에 이르러면 검기를 방출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검기를 방출할 수 있는 서클의 기준은 5서클. 그전까지는 육체를 강화할 수 있지.‘

그래서 아더는 1서클의 고리를 완성한 뒤로, 매일 같이 육체와 마나의 교감을 높이고 있었다.

가장 빠르게 강해지는 방법은 마나를 쌓아 고리를 늘리는 거지만, 엄청난 영약을 먹지 않는 이상 단기간에 마나를 쌓을 수 없었다.

대신 아주 조금이지만 마나가 쌓이는 속도를 강제적으로 늘릴 방법이 존재했다.

몸 안에 쌓인 마나를 전부 소진하고 새로이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비효율적이고 무식한 방법…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거라도 안 하면 다른 방법이 없으니깐 어쩔 수 없네.’

입맛을 다신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아더의 옆에서 노움과 장난을 치던 운디네가 속삭였다.

[아더, 안나가 왔어요!]

‘응. 벌써 아침이 온 것 같네.’

대답에 운디네가 조심스레 조언한다.

[잠을 조금 자야 하지 않아요? 벌써 두 달째 잠을 거의 못 자고 있는데, 이러다 쓰러질까 걱정돼요.]

‘괜찮아. 그리고 쓰러지면 운디네가 치료해 주면 되지.’

함박웃음을 지은 물의 정령이 아더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그 기쁨의 몸짓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이며 안나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숙인 안나가 기다렸다는 듯 수건을 내민다.

“감사해요, 안나.”

아더의 인사에 안나가 눈치를 살폈다.

“저기 소공자님?”

“네?”

“전에도 말씀드렸던 거지만…. 저한테만큼은 말을 편히 하셔도 됩니다.”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불편한가요?”

“…아닙니다. 단지 주위의 시선이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녀의 조언에 아더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흠….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네. 집사한테 존댓말을 쓰는 귀족이라니.’

그 속에서 자연스레 떠올렸다.

자신이 왜 누구를 만나건 존댓말을 쓰게 되었는지.

이유는 아주 단순했는데, 말실수 때문이었다.

‘미쳐 있던 시절의 나는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을 하곤 했지.’

그래서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혼자만 생각해야 할 말들을 불쑥 꺼냈고, 맥락에 어긋나는 말을 해 분위기를 깨트리기도 했다.

그 탓에 자연스레 높임말을 쓰게 된 아더였다.

‘말을 높이면 적어도 무례하게는 안 보일 테니깐…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지.’

제정신으로 돌아온 지금은 굳이 높임말을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습관을 바꾸는 건 어렵겠지만 말이다.

결정을 내린 아더가 입을 연다.

“알겠어요, 안나. 이제부터 말을 편하게 해 보도록 노력해 볼게요. 이게 습관이라 잘 안 바뀌네요.”

안나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연무장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 해가 정오로 가는 시점에서, 잠들어 있던 바이에른 저택은 다시 활기를 되찾아 있었다.

그 탓에 수많은 사람이 저택을 거닐고 있었고, 그들 모두가 아더를 발견하고서 인사했다.

“소공자님을 뵙습니다.”

아더는 그럴 때마다, 멈추어서 똑같이 정중히 인사했다.

어찌나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는지 공작가에 막 들어온 하녀들은 놀라 눈을 치켜뜰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안나가 나서서 상황을 중재했고, 결국 아침 식사 약속에 10분 정도 늦고 말았다.

허나 먼저 와 기다리던 요넬과 아이린은 신경 쓰지 않고 웃었다.

“어서 오너라 아더. 아침 운동은 잘했니?”

“네, 어머니.”

대답에 요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어찌나 행복해 보이는 미소던지, 지켜보던 안나조차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기사들이 너를 연신 칭찬하더구나. 스스로 1서클을 깨우치는 건, 천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진짜요?”

“그래서 안타깝다고 하더구나. 이런 재능을 관리해 줘야 한다면서 왜 검술 선생이 없는지도 의아해하고….”

말을 흐린 요넬이 은근슬쩍 제안한다.

“아직도 검술 선생을 들일 마음은 없는 거지?”

“네. 지금은 혼자서 조금 더 연습해 보고 싶어요.”

확고한 대답에 요넬이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섰을 때 가르침을 받아야 뜻이 서는 법이지. 이 어미는 항상 기다리고 있으마.”

그 후 식사가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그 모습은 평범한 귀족가의 식탁하고는 꽤나 거리가 멀었는데 그탓에 주위에 있던 가신들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입가에 올렸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모두가 아침 식사를 즐길 때였다.

아더가 질문한다.

“어머니. 오늘도 외출해도 될까요?”

요넬이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들이켜며 말했다.

“오늘도 말이냐? 요즘 들어 외출이 잦구나.”

“바깥에 신기한 게 많더라고요. 그것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대답에 요넬이 고민한다.

허나 곧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미 아더가 외출을 나선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와서 막는 것도 옳지 않았고, 아더가 말을 더듬지 않은 것도 6개월이 지났으니 세상을 경험할 시기이기도 했다.

‘그것을 먼저 나서서 해주었으니, 믿고 밀어줘야 한다.’

생각을 끝마친 요넬이 안나를 바라본다.

“아들을 부탁하지, 안나.”

아더의 뒤를 지키던 안나가 움찔 놀라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각하.”

대답을 들은 요넬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더를 꽉 껴안는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거라. 내 사랑스러운 아들.”

* * *

요넬의 허락이 떨어지고서, 아더와 안나는 곧바로 외출 준비를 했다.

새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망토를 두른 아더는 안나가 건네준 중절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꼭 써야 해, 안나?”

“요즘 수도에서 유행하는 패션입니다. 지금 공자님이 입으신 옷과 한 세트로 말이죠.”

“써야 한다는 소리지?”

“안 써도 상관없지만, 얼굴을 가릴 것까지 고려하면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모자로 얼굴을 가릴 수 있다고?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말없이 뒤집어썼다.

지켜봐 온 바, 새로운 집사인 안나는 패션에 매우 신경을 썼다.

그것이 아더로서도 딱히 나쁘지 않았기에,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모자를 뒤집어쓰니 안나가 나직이 감탄한다.

“정말로 잘 어울려요, 공자님.”

“고마워. 그럼 슬슬 나가 볼까?”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방 안을 나섰고, 안나가 뒤따랐다.

그렇게 바이에른 저택을 나서자 안나가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도련님?”

“매일 가던 찻집으로 가자.”

대답에 안나가 앞장선다.

그 뒤를 아더가 뒤따랐다.

그 후 10분 정도 걸으니, 번화가에 들어설 수 있었다.

삐이이익!

삑삑삑!

자동차 경적 소리와 구두 굽 소리가 연신 귓가로 들려왔다.

수도에서 가장 큰 번화가였는데, 안나는 긴장감을 일깨웠다.

이런 대로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생길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제 뒤를 따라나선 사람은 무려 공작가의 소공자였다.

그 신분을 생각하면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

‘원래라면 가문의 기사들과 같이 이동해야 하는데… 도련님께서 그것만큼은 한사코 거부하니깐.’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안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린 끝에야 아더를 찻집으로 안내할 수 있었다.

“창가하고, 개인실 중 어디로 하시겠습니까, 손님?”

“개인실로 주세요.”

아더의대답에 웨이터가 둘을 개인실로 안내했다.

작은 방에는 제법 고급진 소파와 테이블이 있었다.

따라 들어온 웨이터가 다시 한번 질문한다.

“음료는 뭐로 드릴까요?”

“따뜻한 차로 두 잔 주세요.”

아더의 말에 웨이터가 고개를 숙이며 방 안을 나선다.

그사이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쉰 안나가,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칠 때였다.

아더가 질문한다.

“피곤해 보이네. 잠시 앉아서 쉬는 게 어때?”

“어찌 제가 도련님과 같은 자리에….”

“매일 같이 앉아서, 같이 차를 마셨는데 매일 똑같은 대답을 하네. 안나는.”

안나가 입을 다문다.

부끄럽게도 아더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근 한 달 동안 나온 외출에 자신은 매일 같이 아더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때아닌 여유를 부렸다.

고민하던 안나가 슬그머니 자세를 낮췄다.

“그럼 실례를….”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가져온 책을 펼쳐 들었다.

그렇게 10분, 30분, 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아더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린다.

그 순간, 무료함과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애쓰던 안나의 시선이 흐려지고 탁자 위로 풀썩 쓰러졌다.

안나가 기절을 했음을 확인한 아더가 몸을 일으켰다.

“노움 씨 부탁해요.”

안나의 머리 위에 있던 흑색 요정이 말없이 날개를 파닥였다.

그렇게 땅의 정령 노움의 도움으로 안나를 잠재운 아더가 소리 없이 찻집을 빠져나왔다.

웅성웅성-!

조금 전 보았던 번화가의 소음이 아더의 귓가를 때렸다.

아더는 그 거리를 매우 익숙하게 빠져나갔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으니 자동차의 경적 소리 대신 거지의 욕설이 들려왔다.

달라진 거리의 분위기에 아더가 몰래 챙겨 두었던, 가면 하나를 뒤집어썼다.

그 후 다시 걸어 나가자, 이내 한 거지가 다가와 조심스레 묻는다.

“오셨습니까?”

“네. 다들 모여 있나요?”

“전부 모여 있습니다. 모시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거지가 구석진 골목으로 들어선다.

아더도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돌고 돌던 거지는 이내 수도의 할렘이라 불리는 B-21구역, 그 구역에서 다섯번째로 규모가 큰 거지 패인 [아둔 패거리]에게 아더를 안내했다.

“고생하셨어요. 여기 팁이에요.”

아더가 은화 하나를 튕겨 거지에게 건넸다.

거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 길거리에 배를 내놓고 잠든 거지들 사이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아둔 패거리의 대장.

아둔이었다.

“좋은 점심입니다. 손님.”

아둔의 인사에 아더가 대답한다.

“네 좋은 점심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뭘 좀 찾으셨나요?”

* * *

아둔이 선뜻 대답하지 않고 눈을 굴린다.

그 모습에 아더가 이번에는 금화 하나를 꺼내어 아둔에게 튕겼다.

번쩍이는 금의 자태에 아둔의 입에 함박 미소가 걸렸다.

‘계산 하나는 정말로 확실하신 분이군.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만.’

중얼거림과 함께 아둔은 이 기묘한 손님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쳐들어온 거였지. 우리 패거리 중 한 명이 시비를 건 탓에.’

손님은 아직 변성기가 채 가지 않은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수십 명에 달하는 아둔 패거리들을 단 일격에 쓰러트렸다.

그 놀라운 실력에 아둔은 납작 엎드려 목숨을 빌었고, 눈앞의 손님은 기다렸다는 듯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사람 한 명 찾아주면 용서해 드릴게요, 어때요?’

그렇게 시작된 손님과의 기묘한 인연은 무려 한 달 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손님은 찾아올 때마다, 돈을 주며 사람을 찾았고 거지들은 손님을 오기를 기다리며 최대한 그 사람을 찾았다.

‘처음에는 사기를 칠까도 했지만… 그 손속을 보면 그럴 생각은 꿈에도 못 꾸지.’

아둔은 거지치고 똑똑한 자였고, 눈앞의 손님이 매우 위험한 인물인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역량을 동원해 손님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힘 있는 자가 돈을 주면서 우리를 부리려 든다면… 굳이 사기를 칠 필요가 없지.’

욕심도 역량이 되었을 때나 부리는 것이다.

생각을 끝마친 아둔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드디어 찾은 것 같습니다.”

대답에 아더의 눈이 치켜 떠진다.

“정말요? 지금 어디 있는데요?”

“저기 [하르던 패거리]에 몸을 숨기고 있는 듯합니다. 손님이 말씀하신 검은 피부에 붉은 눈동자. 외양이 정확히 일치하는 남자가 하르던 패거리에 며칠 전부터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의 설명에 아더가 입꼬리를 올린다.

‘드디어 찾았네. 흑마법사 프라킬.’

역시나 이곳 B-21 구역에서 몸을 숨기고 활동했던 모양이었다.

그 탓에 아더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서 중얼거렸다.

‘그 혈통…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할 텐데. 이제부터 내가 써먹어야 하니깐.’

과거로 돌아와 두 번째로 흡수할 혈통.

그 혈통 능력은 무려 ‘갑옷’을 피부에 두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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