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6화 (6/265)

제6화

이안이 의문을 제기했다.

“너무 비약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역시 그래 보이느냐?”

“벙어리가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벙어리는 벙어리입니다.”

“막내가 두들겨 맞은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벙어리라 하지만…. 막내는 그 벙어리에게 옛날에도 한 번 두들겨 맞았지 않습니까?”

케인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안의 말대로 막내인 빌은 5년 전 벙어리 공자에게 한 번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다.

‘소공자… 그 아이의 병세가 심해지기 전에.’

이러한 정황을 고려하면, 제 추측은 지나친 비약이 맞았다.

‘그럼…. 제삼자가 있다는 건가?’

새로운 가정에 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로서 가장 타당한 의견일 듯싶었다.

자신의 예상을 벗어난 제삼자.

그자가 세비스찬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이번 사태를 막았다는 게 가장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물론 이것 또한 무수한 가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아직까진 모든 게 베일에 싸여있으니 짐작만 해두는 게 좋을 듯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케인은 이안에게 명했다.

“이 시간부로 바이에른에게 허튼짓을 하지 말아라.”

“…아버지?”

“왜 그러느냐?”

“고작 이런 일로 바이에른을 포기하실 겁니까?”

케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바이에른이 우리의 목표더냐?”

“…?”

“우리의 목표는 조금 더 위에 있지 않으냐?”

“죄송합니다.”

“그 위를 노리려면 지금보다 더 철저히 해야지. 모든 변수를 없애고 대업이 성공할 수 있게.”

그의 대답에 이안이 허리를 숙이며 물러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케인은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황제궁이 그의 시야에 담겼다.

“어차피 끝내 웃는 자는 우리가 될 텐데 서두를 필요 없지. 천천히 확실하게… 모든 변수를 없애며 가는 게 더 나을 터.”

이 말과 함께 케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을 불러 명령했다.

아더 바이에른.

그 아이에게 일어난 변화를 관찰하라는 명령이었다.

* * *

세비스찬이 병신이 되고 난 후,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아더는 그 변화를 매우 만족스럽게 보았다.

‘전에 알던 과거와는 너무 많이 달라졌는걸?’

가장 눈에 띄는 건 어머니.

요넬 바이에른이 이전과 달리 각오를 다지고 공작으로서의 업무를 쳐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전 삶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공작이라는 자리를 매우 버거워했다.

애초에 권력과는 먼 삶을 살았던 그녀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독약 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 그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여전히 공작이라는 자리를 버거워 하기는 하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흔들리던 바이에른 가문을 다잡는 효과를 보여주었다.

‘어머니를 무시하는 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

허나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비스찬이 병신이 되고, 아더는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몸의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고, 그 결과는 엄청났다.

원래라면 27이란 나이에 치료한 몸을 불과 15살의 나이에 완벽히 치료한 것이다.

[아더 드디어…!]

[…!!!]

정령들의 축하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이전하고 전혀 다른 상쾌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법사들에겐 마력.

기사들에게 마나라 불리는 신비한 기운들이었다.

망가진 몸 상태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었던 기운에 아더는 미소를 지었다.

‘이 기운이 느껴진다는 건…. 드디어 서클을 만들 수 있다는 거네.’

칼잡이들의 경지를 나타내는 서클.

이 서클이 만들어지면, 다시 한번 검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다.

‘가문에 자리 잡고 있는 배신자들. 그들을 슬슬 쳐낼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거지.’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눈빛을 빛낼 때였다.

새로 부임한 집사.

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어머니가요오?”

“네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하십니다.”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방문을 빠져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 아들!”

일주일 만에 만난 요넬이 미소 짓는다.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에 보았을 때보다 마른 듯한 얼굴이었다.

“어머니 어디 아파요오?”

“응? 내가 아프다니?”

“얼굴이 핼쓱해요오!”

요넬이 크게 감동한 얼굴로 아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야. 요즘 일이 바빠서 그렇단다.”

“쉬면서 하세요오!”

“그래. 우리 아들 때문이라도 쉬면서 해야겠구나. 그런데….”

말을 흐린 그녀가 아더를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또 키가 컸구나. 이제 이 어미가 아예 올려다봐야겠는데?”

옆에 있던 아이린이 반응했다.

“오빠 또 키 컸어?”

“응? 키 컸나아?”

“또!? 아이린은 안 크는데!”

그녀의 외침에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속에서 요넬이 수저를 들었다.

“요즘 들어 좋은 일들만 일어나는구나. 앞으로 계속 이런 일만 일어나면 좋으련만.”

그렇게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은 세 가족은, 자리를 옮겨 티타임까지 가졌다.

아이린의 재롱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릴 때, 바이에른의 의원이 나타나 허리를 숙였다.

“각하. 부르셨다 하여 왔습니다.”

아더의 시선이 요넬에게로 돌아갔다.

공작의 가족끼리 가지는 티타임에 의원이 등장할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내 몸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겠지.’

이 예측은 정확했다.

“아들아. 2주 전에 진료를 받았지만, 한 번만 더 받아 보자꾸나.”

“네 어머니이!”

아더가 걸음을 옮겨 의원 앞에 앉았다.

그런 아더의 몸 이곳저곳을 진찰하던 의원이 이내 감탄을 터트렸다.

“맥박의 흐름이나 상태가, 이제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놀란 요넬이 황급히 물었다.

“확실한 겐가?”

“그렇습니다. 각하. 사실 이전에도 빠른 차도를 보이셨는데, 최근 몇 달간 보여 주신 이 상태는…. 가히 신이 하사한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의원이 말에 요넬이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깜짝 놀란 아더가 반사적으로 다가가니, 요넬이 와락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고맙구나, 아들아….”

지켜보던 의원도 미소 지으며 조언했다.

“이제 슬슬, 적당한 운동을 해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한창 성장기인 이 시기에 몸을 움직여 주지 않으면 근육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으니.”

“운동이라….”

의사의 충고에 요넬이 고민하다, 아더에게 물었다.

“아들. 혹시 어미랑 같이 연습할래?”

“어떤 거요오?”

요넬이 웃는다.

“사격 연습이란다. 힘들지 않고, 편하기도 한… 사격 연습.”

* * *

요넬 바이에른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 아들은… 잘 모르겠지만, 바이에른은 전통적으로 매번 사냥 대회를 여는데 며칠 뒤면 그날이겠구나.”

“…….”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이 대회를 열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전통도 지켜나가야지. 우리 아들과 딸을 위해서라면.”

요넬의 설명에 아더가 속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와…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이 변한 게 우리 어머니 아닐까?’

그녀가 변할 거라는 건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가문의 일에 끼어드는 건 솔직히 말해 놀라운 일이었다.

항상 제 어깨에 놓인 책임을 무거워하던 어머니 아니던가?

그 탓에 아더의 입장에서는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15살의 아더 바이에른의 몸에도 적응해야 했다.

적당한 운동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렇게 요넬과의 사격 연습을 기다릴 때였다.

마침내 약속한 날이 다가왔고, 아더와 요넬은 바이에른의 가신들과 함께 뒤뜰로 향했다.

넓은 뒤뜰에는 미리 준비해놓은 것인지 표지판과 여러 총이 정렬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아더는 시선을 돌렸다.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입가에 인자한 미소를 걸고 있었다.

“공작 각하. 자세를 낮추셔야 합니다.”

케딜락 라이넌.

세비스찬이 말해 준 배신자 중 한 명이자, 바이에른의 기사였다.

“총이란 모름지기, 정돈된 자세를 갖춘 상태에서 쏘아야만 제대로 된 포물을 그립니다. 그런데 공작 마마의 자세는 지금 매우 틀어져 있지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더는 턱을 쓰다듬었다.

‘흠… 배신자가 선생님이라.’

사실을 모르고 보았다면, 참 뛰어난 기사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직한 기사를 연기하며, 요넬을 지도하는 모습은 충신이 따로 없었으니.

‘그래서 까다롭네… 차라리 뭔 짓을 저지르면, 그걸 꼬투리 잡아 쳐냈을 텐데.’

사실 케딜락뿐만이 아니라, 모든 배신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겉으로는 바이에른의 충신인 척 연기하며 이 집안의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슬슬 이들을 쳐내야 하는 데 그래서 쉽지가 않아.’

배신자라는 건 알았지만 증거가 없었다.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이들을 쳐낼 힘이 현재의 자신에게는 없었다.

그 탓에 고민하던 아더는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몸도 나았으니 확 암살해 버려?’

진지하게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케딜락은 5서클 기사다.

서클조차 맺지 않은 지금의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더가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며칠간 상황을 지켜볼 때였다.

시간이 흘러 주말 아침.

가족과의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은 아더가 예상치 못한 모습에 놀라 눈을 치켜떴다.

“…?”

식당 안에 아이린과 요넬 외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얼굴이 매우 익숙했다.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소드 마스터가 왜 여기 있는 거지?’

* * *

바이에른 가의 혈족들만 들어올 수 있는 식당의 한 자리를 차지한 노신사가 입을 연다.

“오호…. 못 본 사이에 많이 바뀌었구나. 네가 정말로 아더 바이에른이냐?”

이 말에 옆에 있던 요넬이 환히 웃는다.

하늘이 도운 건지, 상태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래 보이는군요. 공작 각하. 근심 하나를 덜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대답을 한 노신사가 다시 시선을 돌려 아더를 바라본다.

그 집요한 시선을 아더는 모른 척하며 제 자리로 찾아가 앉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홀란 레버쿠젠 후작. 제국의 북부를 담당하는 총사령관이자 소드 마스터가…. 왜 찾아온 거지?’

미래.

제국에는 총 7명의 소드 마스터가 존재한다.

그중 한 명이 홀란 레버쿠젠 후작.

북부 설원 너머, 잔인한 야만인들로부터 제국을 보호하는 방패이자 검인 그는 쉰 살을 넘겼음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군인이었다

그래서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이 왜 이른 아침부터 바이에른 가에 있는 걸까?

의문과 함께 아더가 수저를 들었을 때였다.

요넬이 입을 연다.

“아이린 아더. 인사드리거라. 홀란 레버쿠젠 후작은 오래전부터 우리 바이에른 공작가와 긴밀한 사이를 유지해 온 분이시란다.”

아더가 눈을 치켜뜬다.

이건 미래의 정보를 아는 아더로서도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그사이 멋들어진 콧수염을 자랑하는 노신사.

홀란 레버쿠젠 후작이 입을 연다.

“정확히는 돌아가신 네 아버지와 인연이 더 깊지. 너희들의 입장에서는…. 그래. 대부라고도 볼 수 있겠군.”

선을 그으면서도, 선을 긋지 않는미묘한 발언.

그 탓에 요넬이 애매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허나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고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했다.

다행히 홀란 레버쿠젠도 분위기를 깨지 않고서 요넬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린은 그 대화에 흥미가 없다는 듯, 아더에게 칭얼거리며 안겼다.

아더는 여전히 홀란을 주시하며, 그런 아이린을 다독였다.

“…어찌 되었건, 고맙습니다 홀란 경. 저희 공작가의 사냥 대회를 위해 친히 방문도 해주시고.”

“공작 각하께서 선 결심에, 도움을 드리지 못할망정 발걸음 옮기는 게 무엇 어렵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걸음을 해주시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저도 이제는 알 것 같으니.”

요넬의 말에 홀란이 대답하는 대신 차를 들이켰다.

그 모습에 요넬이 손뼉을 짝 쳤다.

“그럼 뒤뜰로 나가서 차나 한잔 더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가벼운 사담이나 하시다 가시지요.”

요넬의 제안에 홀란이 제 턱수염을 매만지다, 힐끔 아더를 돌아봤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 부탁했다.

“그 전에 잠시, 아더 이 아이와 대화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아더랑요?”

“오랜만에 보는 친구 놈의 아들이기도 하고, 몸 상태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요넬이 환히 웃는다.

“저야 좋은 일이지요. 그럼 잠시 제 아들과 같이 식당에 있어 주십시오. 가벼운 다과와 차를 가져오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요넬이 아이린을 대리고 식당을 빠져나간다.

그녀의 손짓에 대기하던 요리사들도 우루루 빠져나갔다.

덕분에 홀란과 독대를 하게 된 아더가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홀란 레버쿠젠 각하아!”

홀란의 시선이 가늘어진다.

“각하아? 연기가 아주 일품이구나.”

“…?”

“속일 생각은 말거라. 이미 눈치채고 있으니.”

홀라 레버쿠젠.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기사의 형형한 눈빛이 아더를 훑는다.

“네 몸에 있는 독이 전부 없어져 말을 더듬지 않게 되었다는 걸 말이야.”

대답과 함께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 속에서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

그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홀란이 다시 한번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먼저 침묵을 깼다.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연기하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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