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아더의 말에 세비스찬은 극도의 공포심을 느꼈다.
‘어떻게?’
벙어리인 아더 바이에른이 말을 더듬지 않는다.
거기다 약으로 위장한 독약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이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이 일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다.
케인 도르문트, 카나 도르문트.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이 두 사람 정도뿐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정보를 흘릴 리가 없다.
공작가의 아들을 말 더듬이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봐야 좋을 게 뭐가 있겠나?
그래서 의문이었다.
이 사실을 벙어리 공자 아더 바이에른이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때 아더가 입을 열었다.
“흐음…. 생각해보니 신기하긴 하겠네요. 매일 같이 독약을 먹였는데, 말을 더듬기는커녕 그 내막도 알고 있으니깐.”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웃는다.
어딘가 기형적인 그 미소에 세비스찬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입을 열었다.
“운디네.”
부름과 함께 새하얀 대리석에 물웅덩이가 고인다.
뒷걸음질 치던 세비스찬은 그 웅덩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컥!”
신음과 함께 세비스찬이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어느 사이엔가 옆으로 다가온 아더 바이에른이 제 머리칼을 움켜잡았다.
놀란 세비스찬이 다급히 소리쳤다.
“도, 도련님…!!! 무슨 짓입니까 이게!”
아더가 갸웃거렸다.
“보면 몰라요?”
“…?”
“배신자를 죽이려고 하는 거죠.”
경악한 세비스찬이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독약이라니! 제가 무슨 이유로 그런 걸 도련님에게 먹이겠습니까!”
그의 변명에 아더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세비스찬의 머리칼을 당겨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었다.
쿵-!
묵직한 소음과 함께 세비스찬이 비명을 지른다.
그런 세비스찬 앞에 아더가 약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증명해 보세요.”
“…?”
“세비스찬이 가져온 약이 독약이 아니라는 걸 먹어서 증명해 보세요.”
세비스찬이 벌벌 떨며, 소리쳤다.
“아니 도련님!!”
“소리 지르지 마세요. 빌 도르문트와 똑같은 꼴이 되기 싫으면.”
“…!”
경고에 세비스찬이 입을 다문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이 떠오른다.
애꾸가 된 빌 도르문트였다.
‘서, 설마…. 그때부터 제정신이었다고?’
그사이 아더가 한 번 더 경고한다.
“한 번만 더 소리를 높이면혀부터 잘라내고 시작할 거예요. 저도 고문은 좋아하지 않으니깐, 조용히 있는 게 서로에게 이득일 겁니다.”
세비스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아더가 방긋 웃으며 다시 약을 내민다.
“자 이제 증명해 보세요.”
“…….”
“독약이 아니라면서요. 그럼 아주 쉽잖아요? 저 약을 먹기만 하면, 지금의 상황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거예요. 그러니깐 먹어 보세요, 세비스찬.”
아더의 제안에 세비스찬이 입술을 질끈질끈 깨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게?’
벙어리 공자가 독에 중독되지 않은 것도 놀라웠지만, 모든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침묵했다는 게 더 놀라웠다.
‘거기다 조금 전 마법 같은 현상은….’
허나 거기까지 생각하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급작스럽게 흘러갔다.
세비스찬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아더에게 납작 엎드렸다.
“도련님…. 아니 소공자님. 제발 자비를.”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세비스찬은 재차 부탁했다.
“제발 부디 자비를…. 제가 이 가문에 바친 충성을 생각하며, 이번 일을…. 이번 일을 용서해주시길.”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용서해주면 뭘 해줄 건데요?”
“제가 아는 모든 정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더가 턱을 쓰다듬다,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해보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집사 세비스찬이 재빨리 입을 연다.
자신의 과거 시절부터, 이 집안에 누가 첩자인지.
더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연락을 취하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술술 토해냈다.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아더는 탄성을 터트렸다.
“그분들도 첩자였다고요?”
“…그, 그렇습니다!”
겁에 질린 그의 대답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세비스찬의 입에서 나온 배신자들 중에는 자신이 미처 알지못했던 자들도 섞여 있었다.
그 탓에 고민하던 아더는 어깨를 으쓱였다.
세비스찬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배신자였으니 좋은 일인 듯했다.
다시 고개를 숙인 아더가 세비스찬을 향해 말했다.
“좋아요. 세비스찬. 용서해줄게요.”
“소공자!!”
“목숨은 살려 줄게요. 대신 그 약은 먹어주세요.”
세비스찬이 환호를 지르려다 멈칫한다.
그 사이 아더가 싱글 생글 웃으며 설명한다.
“원래 죽일 생각이었는데…. 기회를 줄게요. 그거 먹고 살아나면 진짜 살려 줄게요.”
“아, 아니…….”
“왜요? 설마 저 약이 정말 내 목숨을 앗아 갈 약이었던 거예요?”
“그, 그건…….”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비스찬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푹 찔렀다.
“그래도 자비롭게 3알 중 한 알만 먹게 해줄게요. 이 정도면 꽤 구미가 당기지 않아요? 혹시 모르잖아요?”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 독약이 3알을 다 먹어야 반응이 있는 독약일지. 그러니깐 얼른 먹어주세요, 세비스찬.”
* * *
“아더---!!!”
바이에른 가문에 또 한 번의 난리가 났다.
“이, 이게….”
가문의 충신.
집사 세비스찬이 병신이 되어버린 탓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소공자의 방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소공자의 약들에 의해.
“그래…. 안 먹었지? 안 먹었지, 우리 아들?”
요넬이 손을 벌벌 떨며 제 아들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독약을 먹어 침을 질질 흘리는 집사 세비스찬을 두려움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치료할 수 있습니까?”
“…송구스럽지만 각하. 이 독약은 저희도 처음 보는 독인지라 해독법을 알지 못합니다.”
의사들의 설명에 요넬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대체--!! 이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 뭘 한 겁니까 뭘!”
가신이 당황해 물러선다.
“어떻게 공작가의 저택 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이게 말이나 됩니까?”
“각하….”
“부르지 마세요! 당신들에게 매우 실망했습니다!”
요넬 바이에른의 격분에 바이에른의 가신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당장 찾아내세요. 이번 일의 범인을!”
축객령에 가신들이 다급히 허리를 숙이며 물러난다.
그렇게 방 안에 들어와 있던 자들이 모두 나가자 요넬이 입술을 질끈 깨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더는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갔다.
“…엄마 전 괜찮아요오오.”
요넬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미안하구나…. 아들. 미안해. 힘없는 어미라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하고.”
이 말에 아더는 입맛을 쩝 다셨다.
‘어머니 탓이 아니라 내 탓인데….’
하지만 굳이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당장 그녀에게 사실을 말해 줘 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을 들은 어머니가 섣불리 움직이면, 케인 도르문트도 그에맞춰 움직일 거야.’
그래서 정상으로 돌아왔음에도 아직 말을 더듬고 있던 아더였다.
적어도 몸 상태를 치료하고 주변 정리는 다 끝낸 뒤에, 제 변화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좋았으니깐.
‘제정신으로 돌아오니깐, 이런 뒷일도 다 생각하네.’
생각과 함께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몇십 년간 가문의 충신인 척 연기하며 자신을 말더듬이로 만들었던 배신자가 침을 흘리며 백치가 된 것이 보였다.
자신이 하려던 짓을, 그대로 돌려받은 것이다.
허나 아더는 입맛을 쩝 다시며 중얼거렸다.
‘분명 전보다는 깔끔하게 복수도 하고 원한도 갚은 것 같기는 한데… 역시 죽이는 게 좋기는 하네.’
결국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죽음이다.
하지만 지금의 세비스찬은 백치가 되었지만 살아 있었다.
아더는 이에 아쉬움을 느꼈지만, 참아내기로 했다.
‘더 이상 난 미친놈이 아니니깐, 이런 식의 깔끔한 복수도 할 줄 알아야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도르문트 백작가의 저택.
그곳에서 바이에른에서 일어난 상황을 뒤늦게 전해 들은 케인 도르문트는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하하.”
그 후 시선을 돌리며 질문했다.
“할 말 있나?”
제 남편의 질문에 무릎을 꿇고 있던 카나 도르문트가 부들부들 떨었다.
* * *
“여, 여보…. 그게 아니라….”
케인이 손을 올리더니 그대로 제 아내의 뺨을 내리쳤다.
“소리 내면 죽는다.”
7서클 고리를 달성한 기사의 힘은 일개 인간이 버텨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허나 카나 도르문트는 악착같이 비명을 참았다.
지금 상황에서 비명을 질렀다가는, 뺨을 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볼이 불어터질 때까지 뺨을 얻어맞던 카나가 무릎을 꿇었다.
“요, 용서를….”
케인이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이안입니다.”
도르문트 가문의 첫째.
이안 도르문트의 목소리였다.
케인이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며 대답했다.
“들어오너라.”
허락에 이안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은 제 어미를 잠깐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 버린다.
“제국의 3황자와 접촉을 마쳤습니다.”
“뭐라더냐?”
입술을 깨문 카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나갔다.
지나간 자리에 핏자국이 흥건했지만, 두 부자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조건은 안 붙이더냐?”
“차후에 직접 만나 뵙고 말씀하신다 하셨습니다.”
“뭘 얼마나 대단한 걸 내걸려고 이리 말을 아낀다는 말이냐….”
첫째의 보고에 말을 흐린 케인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제 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번 소동에 관해 들었느냐?”
“예. 세비스찬이 병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막내가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 모두 들었습니다.”
“연합 도시, 아케인에 가 있었는데 용케 들었구나.”
“대업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어찌 안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 궁금하구나. 네 생각은 어떠냐?”
이안이 고민하다 대답했다.
“흐름이 이상합니다.”
“흐름이 이상하다라?”
“이런 사고가 터질 거였으면, 징조라도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습니다.”
“계속 말해 보거라.”
“막내가 맞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세비스찬이 저희 쪽 사람이라는 건 가문 내에서도 아주 극소수만 아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 마치 세비스찬이 배신을 한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습니다.”
“내부의 배신자가 있다?”
케인의 물음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뭐…. 나쁘지 않은 의견이지만, 내 생각하고는 다르구나.”
“…?”
“내부의 배신자가 있다면, 그 배신자가 누구에게 이 정보를 건네줄까?”
“…바이에른의 가주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런데 바이에른의 가주는 세비스찬이 저러한 꼴이 된 것을 보고 격분했다 하더구나.”
“연기일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배신자인 데다, 제 아들을 독살하려는 놈이 병신이 된 꼴을 보고 웃지는 못할망정 운다? 거기다 두둑한 보상금까지 주고서?”
케인이 웃었다.
“요넬 바이에른의 그 성격을 생각하면 절대로 못 할 짓이지.”
“…….”
“제 가족만큼은 끔찍이 생각하는 년 아니더냐?”
자리에서 일어난 케인이 뒷짐을 졌다.
뒤에 선 이안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어떠냐?”
“예?”
“바이에른의 장남.”
이안의 눈이 치켜떠진다.
“아더 바이에른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면 어떻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