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4화 (4/265)

제4화

바이에른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아더는 제 무릎을 베개 삼아 잠든 아이린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쁜 아이네요 아더!]

어깨 위에 앉아있던 운디네가 방긋 미소 지었다.

아더 또한 미소지으며 중얼거렸다.

‘응. 이쁜 아이지.’

대답과 함께 아더가 손가락을 내민다.

쪼로롱 날갯짓한 운디네가 그 손가락 위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이런저런 잡담을 시작했다.

처음 본 순간 갑자기 계약하자고 해서 무례한 사람인 줄 알았다느니.

그래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느니.

생각 이상으로 수다스러운 물의 정령이었다.

‘흠… 뭐 계약은 했으니깐 이 정도 수다쯤이야.’

예상대로 계약이 되지 않았던 건 장소의 문제였던 모양이었다.

하이넨 호수까지 나와서야 운디네하고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계약은 꽤나 많은 걸 시사했다.

‘운디네 능력이라면 독에 중독된 몸을 치료할 수 있어.’

그렇게 되면 무려 과거보다 몇 년이나 앞서 몸을 치료하는 것이다.

‘검만 10년을 휘둘러도 차이가 나는데, 몸을 치료한 게 십수 년이나 먼저면 어마어마한 차이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오늘의 이룬 성과에 미소를 지었을 때, 내달리던 리무진이 점차 그 속도를 늦추었다.

동시에 바이에른 가문의 장엄한 저택이 시선에 들어왔다.

잠든 아이린을 깨워 저택 안으로 들어선 아더는 요넬과 즐거운 저녁 식사를 가졌다.

“다음에는 다 같이 가보자꾸나. 맛있는 음식과 돗자리를 들고서 말이지.”

그렇게 하루 일정을 마친 아더는 방안으로 들어와 기지개를 켰다.

과거로 돌아온 날부터 오늘까지, 가장 긴 일정을 소화한 것 같았다.

그 감상과 함께 방 안을 기웃거리는 운디네를 향해 질문했다.

“운디네. 혹시 내 몸 상태가 어때 보여?”

운디네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잠시 시선을 좁히며 아더를 바라보다, 놀라 소리쳤다.

[…아니 아더. 도대체 뭘 했길래 몸이 이런 거예요?]

“상당히 나쁘지?”

[네! 나쁜 편이 아니라…. 완전히 망가져 있어요!]

“그래서 치료하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 운디네의 능력이면 치료할 수 있다 들었거든.”

운디네가 망설이다 대답했다.

[…아직 아더와 저와의 유대감이 깊지 않아서, 완벽한 치유는 힘들어요.]

“그럼?”

[대신 꾸준히 치료는 할 수 있어요!]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청량감이 몸 전체를 훑고 지나간다.

‘흐음…. 사제들의 신성력하고는 뭔가 다른 기운이네.’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입꼬리를 올린다.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제 몸 상태를 느낀 것이다.

그 속에서 아더는 작은 탄성을 터트렸다.

‘빌 도르문트… 그 사람이 이런 도움을 다 주고, 참 별일이야.’

생각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든다.

어느 사이엔가 치료를 끝내 운디네가 속삭였다.

[아더. 저기 땅의 정령 노움이 보이는데요?]

“어디?”

[저기 화분에요. 안 보여요?]

이 말에 아더가 고개를 돌린다.

며칠 전 빌을 두들겨 팼을 때 보았던, 정령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운디네가 쪼로롱 날아가, 그 정령의 손을 잡는다.

[노움! 왜 거기 숨어 있어? 이리로 와!]

[…!]

[…싫다고? 왜? 아더 때문이야?]

[…!]

[아더는 착한 사람이야! 괜찮아!]

노움이 고개를 젓는다.

그 완강한 거부 의사에 운디네가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끄럼이 많은 땅의 정령이라 할지라도, 이상하리만치 완강한 거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더는 상황 파악을 하고서 씩 미소지었다.

‘인제 보니 알겠네. 왜 저 정령님과는 계약하지 못했는지.’

정령들은 대부분 매우 온화하고 평화를 지향했다.

그중에서도 땅의 정령은 이런 성격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러나 며칠 전 빌을 두들겨 패던 자신의 모습은, 그 평화와 온화함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그래서 곤란하네. 운디네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할 수 있으니깐.’

몸을 치료할 때까지 운디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던 아더는 고민하다 손짓했다.

“노움 씨. 여기로 와 볼래요?”

[…!]

“가지 않으면 제가 갈게요.”

노움이 깜짝 놀라며, 아더의 앞으로 후다닥 다가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운디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움이 왜 이렇게 겁을 먹었죠? 이상하네….]

그 사이 노움과 시선을 마주친 아더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날의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에요. 알았죠?”

[…!]

“운디네가 절 싫어하면 안 되니깐 말이에요. 지켜 줄 수 있죠?”

웃으며 제안하는 아더의 얼굴에 노움이 날개를 떨었다.

지금 미소 짓는 얼굴이 꼭, 그날 한 인간을 두들겨 패며 짓던 미소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대, 대답 안 하면 나도 때릴지 몰라….’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건 아더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런데 노움 씨는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

“땅의 정령은 부끄럼이 많아서 계약하신 분들은 많이 못 봤거든요. 괜찮다면 말해 줄 수 있어요?”

어느 사이엔가 날아온 운디네가 대신 대답했다.

[노움은 많은 걸 구별할 수 있어요!]

“어떤 걸?”

[먹어도 되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냄새도 잘 맡아요!]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로 쓸모가 없는 능력이네?”

[….]

“그것 말고 다른 능력은 없어?”

운디네가, 당황하며 중얼거린다.

[그, 글쎄요? 노움 뭔가 다른 걸 할 줄 알아요?]

운디네의 물음에 노움이 대답하지 못하고, 날개를 퍼덕일 때였다.

방문 너머로 세비스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약 드실 시간입니다.”

아더가 입가에 걸린 미소를 거두며 대답했다.

“들어오세요오!”

아더의 허락에 세비스찬이 평소와 같이 약으로 위장한 독약을 들고 왔다.

“오늘 나들이는 어떠셨습니까?”

“좋았어요오!”

아더의 대답에 세비스찬이 방문을 나서려다 멈칫했다.

도련님, 약 꼭 드셔야 합니다.”

당부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오!”

대답을 들은 세비스찬이 천천히 방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더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진짜 꾸준하네. 매일 독약을 들고 오고.’

생각과 함께 세비스찬이 들고 온 약을 부수기 위해 집어 들었을 때였다.

침묵하던 노움이 갑작스레 소리쳤다.

[…!]

아더의 옆에 있던 운디네도 놀라 소리쳤다.

[아더! 그거 먹으면 안 된대요!]

“왜?”

[노움이 그건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되는 거래요!]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독약을 알아볼 수 있는 거야?”

[…제가 말했잖아요! 노움은 어떤 냄새든 맡을 수 있다구!]

운디네의 대답에 아더가 시선을 돌려 노움을 바라보았다.

낮게 가라앉은 그 시선에 노움이 놀라 몸을 떨 때였다.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불쑥 제안했다.

“저기요 노움 씨? 혹시 저랑 계약하실래요?”

* * *

정령들의 능력은 뛰어났다.

아더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쓸모가 많아 아주 여러모로.’

물의 정령 운디네는 몸을 치료할 뿐만이 아니라, 물과 관련된 간단한 마법도 구사할 수 있었다.

전문적인 마법사만큼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아더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능력이었다.

허나 운디네의 능력만이 쓸모있는 건 아니었다.

어젯밤 계약한 노움의 능력 또한,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독을 구분해 낸다는 건…. 꽤나 탁월한 능력이지.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현재 제 상태는 굉장히 불안정했다.

정령과 계약을 했다지만, 허약한 몸 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도르문트 백작이 작정하고 손을 쓴다면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도르문트 백작의 성격상, 일을 급하게 서두를 것 같지는 않지만 또 모를 일이지.’

케인 도르문트 백작은 평판을 굉장히 중요시하게 여기는 남자였다.

출세를 위해 가문을 버리고 도르문트 백작가로 들어갔을 때 생긴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말이다.

그 탓에 눈에 띄는 수작질은 부리지 않을 테지만, 반대로 눈에 띄지 않는 수작질은 얼마든지 부릴 남자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독약이었다.

지금도 꾸준히 약으로 위장해 아더 자신에게 먹이고 있었지만, 저번 일로 인해 언제 이보다 강한 독약을 음식에 탈지는 몰랐다.

‘그런 와중에 독을 알아차리는 노움의 능력까지…갑자기 운이 너무 좋아진 거 아니야?’

생각과 함께 아더가 노움을 칭찬했다.

“노움 씨 계약해줘서 고마워요.”

[….]

“더불어 비밀도 지켜줘서 고맙고요.”

노움의 작은 두 눈동자가 쉼 없이 떨린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운디네가 의아해할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약 드실 시간입니다.”

아더의 집사이자 배신자.

세비스찬이었다.

“들어오세요오!”

대답에 세비스찬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평소처럼 약을 책상에 내려두고, 허리를 폈다.

“오늘 기분은 어떻습니까?”

“좋아요오!”

“…다행이군요. 그럼 오늘도 약을 먹어볼까요?”

세비스찬이 방을 나서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평소와 다른 그 모습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 같았으면 약만 남겨두고 나가야 하는데 왜 이러지?’

그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도련님. 오늘 가져온 약은 특별한 약입니다.”

“…?”

“그러니 절대 남기시거나, 흘리면 안 됩니다.”

이 말에 아더가 세비스찬을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 슬그머니 손을 빼내어, 노움을 불렀다.

‘약을 좀 살펴봐 주시겠어요?’

아더의 어깨 위에 앉아있던 노움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약으로 향한다.

그리고 놀라 날개를 파닥거렸다.

[…!]

노움이 운디네에게 말을 전하고, 운디네가 경악하며 아더에게 말을 전했다.

[절대로 먹어서는 안 돼요, 아더! 엄청나게 나쁜 독이래요!]

경고에 아더가 씩 미소 짓는다.

동시에 알 수 있었다.

마침내 케인 도르문트의 보복이 마침내 시작되었다는 것을.

‘언젠가 움직일 줄은 알았지만……. 빠르네. 그래서 더 좋기도 하고.’

판단을 끝마친 아더가 고개를 든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비스찬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웬일로 남아계시네요? 그전까지는 확인도 안 하고 나가시더니.”

“그전에는 도련님을 믿고…. 도련님?”

세비스찬의 눈이 커진다.

그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노움에게 부탁한다.

“노움 씨 문 좀 닫아줄래요?”

노움이 쪼로롱 날아가 열린 방문을 닫았다.

그걸 확인한 아더가 천천히 뒤돌아선다.

충격에 휩싸인 세비스찬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더가 방긋 미소 짓는다.

“왜 그런 표정이세요, 세비스찬? 머저리가 제대로 말을 하니 신기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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