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귀족이자, 제국 남부를 책임지는 도르문트 백작.
그의 망나니 아들이 애꾸가 되었다는 소문에 제국의 수도가 들썩였다.
“도르문트 백작가의 빌 공자가 두들겨 맞았다지?”
“뭐? 그 도르문트 백작가의 공자가 두들겨 맞았다고?”
“누가 그 도르문트의 백작가의 공자를 건든단 말이오?”
이목이 쏠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망나니 아들 빌 도르문트의 기행은 수많은 귀족가의 자제 중에서도 악명이 자자했으니.
그 탓에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기자들과 귀족들이 다급히 소문의 진원지를 파헤칠 때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소문에 등장했다.
“바이에른 공작가의 소공자가 그랬다는데?”
“바이에른 공작가의 소공자가?”
“아니… 바이에른 공자는, 장애가 있지 않으셨던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이에른의 공자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사건의 원인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벙어리 공자가, 어떻게 빌 도르문트를 애꾸로 만든단 말인가?
그래서 왜곡된 추측들이 난무할 때였다.
요넬이 히죽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제 아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들 덕에 내가 풍문으로나마 그 도르문트 백작을 이겨보는구나.”
“응? 오빠가 뭘 했길래 엄마가 그 무서운 사람을 이겨요!”
“씁. 아이린.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니!”
“이잉…. 하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건데요.”
그런 둘의 대화에 끼어든 아더의 여동생.
아이린 바이에른의 말에 요넬이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 있던 아더도 똑같이 미소지었다.
‘여전히 귀엽네, 아이린은.’
과거로 돌아와 유일하게 좋은 점이 있다면 바로 가족들과 다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가장 바라 왔던 소중한 시간…하지만 이대로 오래 가지 못하겠지.’
과거로 돌아왔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바이에른 가문은 여전히 무너져 가고 있었고, 집 안팎을 가리지 않고 배신자들이 들끓었다.
‘가만히 두었다가는, 가문은 또다시 멸문할 거야.’
그리고 가문을 잃어버린 귀족의 최후는 죽음, 혹은 죽음에 가까운 치욕뿐이다.
당연하게도 아더는 그 일을 지켜만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 미래를 막는 것은 물론이고, 가능하다면 그 일의 원인이었던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후환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싹을 잘라놓는 거지.’
그리고 그 후환 중, 가장 위협적인 인물은 역시나 제 옆에 있는 집사.
세비스찬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입을 열어 소리쳤다.
“스테이크 더 주세요오, 집사니임!”
상념에 빠져있던 세비스찬이 움찔 놀란다.
허나 곧 정신을 차리고 한 박자 늦게 아더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런 세비스찬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케인 도르문트… 바이에른 가문을 멸망시킨 장본인 중 한 명. 그 인간이 이번 일의 보복을 해 온다면 분명 세비스찬을 통해 걸어올 텐데….’
문제는 이 인간을 어떻게 쳐내냐는 것이다.
고민과 함께 세비스찬이 가져온, 스테이크를 잘라 먹으려 할 때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요넬이 아더의 옆으로 다가온다.
“우리 아들. 엄마가 잘라줄게.”
“네에!”
“잘 먹어야 없던 병도 나을 수 있지. 우리 아들 싸움 실력을 보니 이 병만 나으면 대단한 기사가 될 수 있을 거야.”
요넬의 농담에 식당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세비스찬만 빼고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더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소리쳤다.
“엄마아!”
“응?”
“저 소원이 있어요오!”
“소원?”
요넬의 두 눈이 크게 치켜 떠진다.
그 사이 아더가 눈빛을 반짝이며 부탁한다.
“하이넨 호수에 가고 싶어요오!”
* * *
아더가 외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보인 뒤 2주가 흘렀다.
“외출이라….”
공작으로서의 업무를 쳐내며, 이 사안에 관해 고민하던 요넬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평범한 아이였다면, 외출 정도로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15살의 소년이 집 안보다는 밖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
허나 제 아들 아더 바이에른은, 장애가 있었다.
말을 더듬고, 또래 소년보다 지능이 떨어졌다.
그 탓에 외출 하나로도 크게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애가 있다 하여 집 안에만 있는 게 옳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갑갑할 테지…. 종일 집 안에만 있으니. 거기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도 했고.’
아더는 순한 아이였다.
그게 장애 때문인지, 지능이 낮아서인지는 몰라도 천성적으로 착했고 누구에게나 웃음을 보였다.
그래서 보통 아이들과 달리,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항상 남들의 기분을 살피는 탓에 상대방에 최대한 맞춰 주려고 배려한 것이다.
그런 아이가 장애가 생겨난 뒤로 처음으로 무언가를 요구했다.
항상 ‘네’라는 대답만 하던 아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 소리친 것이다.
어미의 입장에서 이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다는 건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다.
“그래. 외출 정도야…. 거기다 하이넨 호수라면 바로 근처니.”
요넬이 결심하고서 아더의 외출을 허락했다.
준비는 곧바로 됐다.
“우리 아들. 조심히 갔다 오렴.”
“엄마…는요?”
“엄마는 할 일이 많아서 같이 못 가겠구나. 대신 네 여동생, 아이린이랑 같이 갔다 오렴.”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갔다 올게요, 엄마아!”
“그래…. 가서 오랜만에 즐겁게 놀다 오려무나. 필요한 거 있으면 세비스찬에게 말하고.”
요넬이 눈짓한다.
대기하고 있던 바이에른의 기사들이 아이린과 아더의 곁으로 다가갔다.
기다렸다는 듯, 고급 리무진에 시동이 걸렸다.
휘이이잉-!
마력 엔진이 가동되는 소리에 아이린이 좋아라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입가에 미소를 건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드디어 정령과 계약하는구나.’
며칠 전 빌 도르문트의 혈통 능력을 흡수한 아더는 전에는 보이지 않던 정령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허나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계약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원인을 아더는 장소 때문이라 짐작했다.
‘정령들과의 계약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가까이에 있는 게 정석이지.’
그래서 어머니에게 부탁해 하이넨 호수로 나들이를 나온 것이었다.
제국의 수도 인근 호수 중, 가장 큰 하이넨 호수라면 아마 충분히 정령과 계약할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 나들이의 목적을 떠올린 아더가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하이넨 호수에 도착했는지, 리무진이 멈추고 문이 열렸다.
“오빠!! 어서 가자!”
신이 난 여동생의 외침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따라온 가신들과 기사들은 재빠르게 하이넨 호수 주변을 점검했다.
수도 근처 외각에 위치한 호수라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도심이 아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 탓에 경계 태세가 완성되고서야 바이에른 가문 남매의 나들이가 시작됐다.
“오빠 꽃이야-! 이 꽃의 이름은 뭘까?”
“글세… 하지만 이쁜 꽃이네에.”
“그래? 이거 오빠 머리에 달아 줄까?”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이 기다렸다는 듯 아더의 귓가에 머리를 꽂아준다.
꽃을 꽂은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이린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오빠 이쁘다!”
기분 좋은 웃음에 아더도 방긋 웃었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린이 아더를 잡아 이끈다.
“저기 가 보자!! 하이넨 호수!”
아더는 거부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이 저 호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린의 뒤를 졸졸 따라 호숫가로 다가갔다.
“와아…. 진짜 맑다 이 호수.”
“응 맑아 보이네에.”
“그래서 오자 한 거지 오빠? 이 호수가 이뻐서!”
“응. 맞아아.”
아이린과 대화하며 아더가 은근슬쩍 물에 손을 담갔다.
눈치 빠른 아이린이 다급히 소리쳤다.
“들어가면 안 돼 오빠! 위험해!”
아직 어린 아이린이었지만 제 오빠가 장애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더가 호수에 빠질까 제지하려 했지만 아더가 먼저 움직였다.
“괜찮아. 아이리이인.”
아이린이 눈을 치켜뜨며 제 머리 위에 얹어진 아더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 틈을 타 아더는 중얼거렸다.
‘물의 정령님 계신가요?’
나직한 부름.
허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아더는 제 몸속에 각인된 혈통의 힘을 일깨웠다.
그 순간 묘한 떨림과 함께 도르문트 혈통을 잡아먹은 바이에른의 혈통이 깨어났다.
그 속에서 아더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물의 정령님 계신가요? 계시면 대답 좀 해주실래요?’
아더의 물음에 호숫가에 옅은 진동이 일어난다.
그 이변에 아더가 눈빛을 빛낼 때, 작은 요정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절 부른 건가요?]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정령이 나타난 걸로 모자라 대답까지 한 걸 보니 역시 장소가 문제였던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물의 정령을 향해 물었다.
‘네. 혹시 저랑 계약해 줄 수 있나요 운디네?’
운디네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계약이요? 전 아직 당신 이름도 모르는데요?]
‘앗! 마음이 급한 나머지 실수했네요. 사과할게요. 운디네.’
아더가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사과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운디네의 새초롬한 눈가가 풀어진다.
숙였던 고개를 든 아더가 다시 질문했다.
‘제 이름은 아더 바이에른이에요. 이제 계약할 수 있나요?’
[…?]
운디네가 눈을 끔뻑였다.
뭐지 이 인간?
* * *
세비스찬은 물장구를 치는 바이에른 가의 남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애매하게 됐군… 애매하게 됐어.’
그는 오래전 도르문트의 현 가주인 케인 도르문트에게 거두어진 농노였다.
그러나 바이에른 가를 살펴보라는 도르문트의 명 아래 바이에른 가의 집사로 임명받으며 인생 역전을 일궈냈다.
하지만 며칠 전 있었던 일로, 이 성공한 삶이 부서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벙어리인 아더 바이에른이 빌 도르문트를 무참히 두들겨 패는 바람에 현 가주의 부인, 카나 도르문트가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해 온 것이다.
‘그 반병신을 아예 병신으로 만들어 버리죠.’
‘예? 하지만 마님…….’
‘그 벙어리 덕에 제 아들이 애꾸가 됐어요! 가만히 있으면 수도에 있는 귀족들이 저희 가문을 뭐라 보겠어요? 반드시 보복해야 해요!’
화가 난 카나 부인을 말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는 자신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을 시, 압박을 가할 것이라 협박까지 했다.
그리고 이 협박은 세비스찬에게 있어서 치명적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두 가문 사이에서 하는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항상 그의 마음을 옥좨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카나 부인의 협박은 심기를 어지럽히기에 충분했다.
‘어차피 케인 도르문트. 내 주인님께서는 일이 틀어질 경우, 날 바로 잘라 낼 거야.’
제아무리 아끼는 자라도, 실수했을 때면 가차 없이 버려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
그런 남자가 정체가 발각되었음에도 자신을 두둔해 주리라는 건, 지나친 희망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세비스찬은 물장구를 끝내고 일어나는 아더 바이에른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병신처럼 쭉 살지, 왜 사고를 치셨습니까. 병신이면 병신답게…. 그렇게 살았으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텐데.’
품속의 독약을 매만지며 어린 주인의 어리석음을 탓한 그는 결심을 굳혔다.
일주일 뒤.
아더 바이에른은 반병신이 아니라 진짜 병신이 될 것이다.
자신의 손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