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빌이 당황해 소리쳤다.
“너, 너?”
아더가 말을 더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착각인 듯했다.
“…왜요오?”
벙어리 공자는 다시 말을 더듬었다.
이에 빌의 표정이 분노와 당황.
그 외 감정들로 일그러졌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괴롭히러 온 ‘벙어리’한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
그래서 화가 나 손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벙어리’ 공자가 웃으며 무언가를 들어 올린다.
“…?”
눈을 끔뻑이던 빌이 숨을 참는다.
벙어리 공자의 손에 들린 것이 인간의 ‘눈알’이었기 때문이다.
“어…?”
말을 흐린 빌이 제 오른쪽 눈을 더듬었다.
하나, 당연히 있어야 할 눈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경악한 빌이 입을 벌린다.
‘서, 설마?’
빌이 뒤늦은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아더가 먼저 움직였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젖힌 아더는 소리를 지르려는 빌의 입속에 그 옷을 박아 넣었다.
“으으으읍!”
말문이 막힌 빌이 반항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몰라도 아더의 몸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3살이나 많은 자신이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그 사이 아더는 주먹을 말아 쥐고 있는 힘껏, 빌의 오른쪽 뺨을 때렸다.
퍽!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힘이 약해서, 타점이 정확하지 않네.’
아무래도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탓인 것 같았다.
그래서 빌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억지로 뜯어내 오른쪽 손으로 말아 쥐었다.
‘구심점이 있으면 부족한 악력이 어느 정도 채워지겠지.’
생각과 함께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조금 전보다 명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퍽!
퍽!
퍽!
빌이 발버둥 쳤지만 여전히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 속에서 공포를 느낀 빌이 눈물을 머금었다.
허나 이 눈물은 아더의 폭력성을 더욱 자극했다.
퍽! 퍽! 퍽!
주먹질이 더욱 거세진다.
그 덕에 콧등이 내려앉고 두 앞니가 빠져 바닥을 뒹굴었다.
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으으으으읍!”
결국 눈치 빠른 빌이 우는 것을 멈추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비는 꼴이 퍽 불쌍했지만,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봐달라고 비는 건가?’
과거의 자신을 괴롭힐 때는, 그렇게 애원해도 단 한 번도 주먹질을 멈춘 적이 없던 놈이?
‘에이… 사람이면 그럴 리가 없지. 적어도 양심이란 게 있다면 말이야.
그래서 착각이라 치부하며, 다시 주먹질을 시작했다.
퍽-!
결국 그 주먹질이 멈춘 것은, 빌이 기절한 직후였다.
마지막으로 기절한 빌의 뺨을 때린 아더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몸 상태가 안 좋기는 하네. 고작 이 정도로 숨이 차다니.”
이 말과 함께 땀에 전 앞머리를 쓸어 넘긴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주먹질에 의해 끔찍한 몰골이 된 빌이 보였다.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아더는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정상으로 돌아오긴 했나 보네… 죽이지 않고 눈만 뽑아낸 걸 보면.”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곧바로 빌을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얌전히 눈알만 빼내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죽였다면 뒷수습을 못 했겠지만, 죽이지 않았으니깐,뒷수습은 가능하잖아?’
지금 당장의 울분도 풀고, 실리도 챙기고.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면 이건 엄청난 발전이었다.
“제정신으로 돌아오니깐, 일이 이렇게 쉬워진다고?”
혀를 내두른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바닥에 굴러다니던 빌의 눈알이 보였다.
그 눈알을 집어 든 아더가 기절한 빌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 억지로 끼워 넣었다.
“…!”
기절한 와중에도 고통은 있었는지 빌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사이 눈알이 잘 들어갔는지 확인한 아더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 정도로 뒷수습을 하기에는 부족하겠지?”
그래서 조금 더 원만한 싸움으로 보이기 위해, 방법을 강구 할 때였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내 혈통도 돌아왔으려나?”
아더가 턱을 쓰다듬으며 떠올렸다.
바이에른의 숨겨진 혈통 능력.
다른 혈통의 능력을 강탈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능력.
과거, 절반의 복수를 이루게 해주었던 그 축복받은 능력이 돌아왔는지 이제껏 확인을 안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확인을 못 하고 있었던 거지…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혈통을 들이마시는 거니깐.’
그런데 우연인지 몰라도, 지금 쓰러진 빌이 마침 혈통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도르문트 가문은 뛰어난 정령술사들을 배출해낸 집안으로 유명했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 후 몸을 움직여 줄줄 흘러나오는 빌의 피를 손바닥에 담는다.
그 양이 한 움큼 정도 모인 순간, 제 손에 모인 고인 핏덩이를 호로록 들이마셨다.
“…!”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비릿한 맛에 현기증이 핑하고 돌았다.
하나 아더는 그것을 이겨내고서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 순간 바이에른 가의 축복받은 혈통이 깨어나, 도르문트의 피를 폭력적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오… 혈통 능력도 깨어 있었구나.’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다시 눈을 뜬다.
그러자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정령 하나가 창가의 화분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
“제 이름은 아더예요. 당신 이름은요?”
물음에 정령은 대답이 없었다.
보통 정령 보인다면, 대화가 가능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뭔가 잘못됐나?’
턱을 쓰다듬던 아더가 곧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으려나… 중요한 건 바이에른 혈통 능력이 깨어 있다는 것. 그리고 현 시점에서 빌 도르문트의 혈통 능력인 정령술을 빼앗았다는 것.’
그리고 정령술은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물의 정령의 치료술은 신관의 사제보다 더 뛰어난 치유력을 보유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현재 망가진 제 몸 상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와… 제정신으로 돌아오니깐 운도 좋아졌네. 일이 이렇게 술술 풀린다고?”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거울 맞은편에 섰다.
‘남은 건 깔끔한 뒤처리. 하지만 이것도 문제없지.’
거울에 비친 저를 잠시 바라보던 아더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리고 오른쪽 뺨을 내리쳤다.
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피가 흘렀다.
그런 제 얼굴을 쓰다듬은 아더가 중얼거렸다.
“으음… 비등한 애들 싸움처럼 보이려면, 더 때려야겠지, 아마?”
* * *
“빌!!!”
평화롭던 바이에른 가문에 난데없는 사건이 터졌다.
“도, 도련님!”
그 중심에는 바이에른 가문의 벙어리 아더 바이에른과 도르문트 가문의 셋째 아들이 있었다.
“이게 도대체….”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달려온 카나 도르트문트 부인은 방 안의 참상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온통 피바다였다.
누구의 피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새하얀 대리석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대리석 위에 제 아들이 게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었다.
“으아아아앙!”
그 옆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아더 바이에른!
이에 화가 난 카나 도르문트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공자님!!”
“으아아아앙!”
“이게 무슨 일이냐고요!!!”
하지만 빌과 마찬가지로 온몸이 피투성이인 아더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사건의 해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울음만 연신 터트릴 뿐이었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카나가 몸을 일으켜 아더에게 다가갈 때였다.
현 바이에른 공작가의 주인이 방 안에 들이닥쳤다.
“아더?”
“엄마아!”
요넬 바이에른의 등장에 카나 도르문트가 멈칫하며 물러섰다.
“우리 아들. 무슨 일이니?! 얼굴은 또 왜 이렇고?”
“그, 그게….”
요넬의 등장에 아더가 그제야 대답했다.
“혀, 형이 때렸어요오….”
물론 그 대답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늘어진 발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넬은 용케 알아듣고서 질문했다.
“빌 도르문트 공자가 때렸다고 너를?”
“네에에….”
“왜 때렸니?빌 도르문트 공자가 먼저 널 때린 거니?”
“네에에. 그러다아아… 참기가 힘들어서 같이 때렸어요오.”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기절한 빌을 바라본다.
“…우리 아들을 때렸다고?”
요넬 바이에른이 중얼거림에 카나 도르문트가 움찔 놀란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소리친다.
“공작 각하! 단순한 싸움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빌은 도르문트의 막내였고, 카나 도르문트는 그 막내를 꽤 편애하는 편이었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뒤처져 항상 구박을 받는 탓이었다.
그런데 그런 빌이 기절을 한채 피를 흘리고 있으니 그녀가 흥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 평소 온화하기 짝이 없던 요넬 바이에른의 노한 목소리에 그녀의 기세는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럼 말해 보세요. 단순한 싸움이 아니면 뭡니까?”
“그, 그건….”
“설마 제 아들과 빌 공자가 목숨을 건 결투라도 했다는 겁니까?”
“각하!”
“소리 높이지 마세요. 제 아들 놀랩니다.”
카나 도르문트가 움찔 놀라며 결국 고개를 숙인다.
망해 가는 공작가라 하지만 어찌 되었건 공작가.
그 공작가의 주인 앞에서 카나 도르문트는 일개 백작가의 부인일 뿐이었다.
“세비스찬. 빌 공자를 의원에게 데려가게.”
“알겠습니다.”
“카나 부인은… 나중에 나랑 면담 좀 하고.”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요넬 바이에른은 모든 사람이 방 안을 빠져나간 뒤에야 표정을 풀고서 고개를 돌렸다.
“내 사랑스러운 아들아. 정말로 빌과 싸운 거니?”
물음에 아더가 눈물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에.”
“왜 싸운 것이니?”
“저를 때렸어어요오….”
요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사실인 거지?”
“네에에.”
“…….”
요넬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더는 살짝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지금 시기에 요넬에게 자신은 한없이 유약한 아들에 불과했을 터.
하루아침에 남의 눈알을 뽑아버릴 정도로 성격이 변했다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잘했다. 우리 아들. 그래… 어디 가서 맞는 것보다 차라리 때리는 쪽이 낫지.”
“…?”
“이제 보니 기개가 있구나. 3살이나 많은 형과 싸워서 이기고.”
예상치 못한 요넬의 대답에 아더가 잠시 눈을 끔뻑였지만, 곧 웃음을 터트렸다.
“헤헤….”
“나중에 커서 좋은 기사가 될 것 같구나, 우리 아들은.”
그런 어미의 위로에 아더가 미소지었다.
순수한 웃음에 요넬도 방긋 미소 지었다.
“방 안에서 치료받거라. 어디 아픈 데 있으면 꼭 말하고.”
“엄마 어디 가요오?”
“빌 공자에게 갔다 오마. 다시는 우리 아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내 일러야지.”
아더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넬이 방 안에 들어온 의원들과 자리를 바꾸었다.
그 후 의원에게 스스로 낸 상처를 치료받으며 생각했다.
‘잘 마무리가 됐네. 흠… 그런데 이 편견이 도움이 되는 날도 오는구나.’
만약 아더. 자신이 이런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편견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렇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아무리 스스로의 얼굴을 때려놔 망가트렸다 하지만, 빌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으니.
하지만 빌의 상태를 저런 꼴로 만든 게 벙어리라 불리는 자신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안 그래도 말을 더듬는 탓에 공작가의 하나뿐인 후계자임에도, 연민의 시선을 받는다.
그런 자신에게 두들겨 맞았다는 건, 어떻게 보면 벙어리보다 못한 놈이 되어버린다는 소리.
체면을 신경 쓰는 귀족가의 특성상, 이 일은 크게 문제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아더는 욱신거리는 뺨의 고통에 신음을 냈다.
사건이 두 소년의 주먹 다툼 정도로 보이게 하도록 피를 냈는데, 그 과정에서 입 안이 찢어진 듯했다.
“도련님 많이 아프십니까?”
“…쪼금 아파요오오.”
“이런. 입 안까지 찢어지셨군요. 한번 봅시다.”
“아아아아.”
아더의 입 안을 진찰하던 의원이 눈치를 보다 불쑥 칭찬했다.
“그런데 우리 도련님. 진짜 대단하네요. 체구도 작은데 빌 도련님이랑 싸움해서이기고.”
아더가 웃었다.
“저 강해요오오.”
“맞습니다. 인제 보니 도련님이 빌 공자보다 훨씬 강하시군요. 다시는 빌 공자가 도련님 방에 들어올 일은 없을 겁니다!”
옆에 있던 의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다툼을……. 칭찬하기는 그렇지만, 그래도 남자가 기개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아요. 잘하셨습니다, 정말로!”
의원들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서 뽑아줬어요!! 눈알… 랄”
“…뭘 뽑았다고요?”
“눈알… 랄!!”
의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더 바이에른이 무언가 열심히 말하기는 했는데, 늘어지는 발음 탓에 그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허나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아더 바이에른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곤 했으니까.
그래서 평소처럼 적당히 맞장구만 쳐 주며 상처의 치료에 전념할 때였다.
카나 도르문트의 새된 비명이 저택 전체에 울려 퍼졌다.
“비이이일---!! 눈, 눈이 왜 눈이 빠져…!”
깜짝 놀란 의원들이 방문을 바라본다.
그러다 한 의원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헤헤!”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더가 보였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의원은 조금 전 아더의 말을 떠올렸다.
‘설마 조금 전 눈알랄이… 눈알은 아니겠지?’
고민 끝에 그는 곧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 어떤 사람이 눈알을 뽑아내고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말인가?
그런 놈이 있다면, 아마 제대로 미친놈일 것이다.
그리고 아더 바이에른은 미친놈이 아니었다.
‘바보지만 세상에서 가장 착한 귀족가 도련님.’
그게 바로 바이에른 가문의 하나뿐인 후계자.
아더 바이에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