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이상한 인생이었다.
처음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어디로 되돌려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이상한 인생.
공작 가의 하나뿐인 아들로 태어났는데 밑의 놈들에게 모든 걸 빼앗긴 것도 모자라 추방당했다.
가문에서 내쫓긴 귀족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중 가장 나은 선택지는 역시나 자결.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허나 머저리였던 나는 이마저도 하지 못한 채 대륙을 떠돌았다.
그러다 우연히 공작가의 혈통 능력을 각성할 수 있었다.
타인의 재능을 흡수할 수 있는 기괴한 능력.
덕분에 오랜 방랑에 지친 몸을 회복시킬 수 있었지만, 부작용으로 남들과는 다른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미쳐버렸단 소리다.
혼잣말을 중얼거리게 되고, 말투가 이상해졌으니 미친 게 분명했다.
오랫동안 시달리던 불치병은 나았지만 미치광이 상태로 가문에 돌아갈 순 없었다.
고민하던 나는 결국 방랑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대륙을 하염없이 떠돌 때였다.
우연히 들려온 소문 하나가 이 결심을 뒤흔들었다.
내 가문.
바이에른 공작가가 멸문했다는 소문이었다.
다급히 공작가로 돌아간 나는 소문이 진짜인지 확인하려 했다.
하나 확인할 거리도 없었다.
여동생은 보이지 않았고 어머니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닌 가문의 모든 것들이 어머니를 죽인 놈들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그 참혹한 현실에 더욱 미쳐버린 나는 복수의 칼날을 들었다.
다행히 공작가의 혈통 능력 덕에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공작가를 이렇게 만든 놈들 몇 명의 목을 잘라낸 것이다.
하지만 날 추방하고 가문을 박살 낸 장본인들은 죽이지 못했다.
되려 놈들의 칼에 죽어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구차하게 가네….”
중얼거림과 함께 나는 웃었다.
정신이 돌아버린 뒤로, 가끔 웃음이 제어되지 않았다.
“죽더라도 어머니와 여동생을 그런 꼴로 만든 놈들은 꼭 죽이고 싶었는데….”
입맛을 다신 나는 고개를 들었다.
비가 내리는 하늘이 보였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향해 나는 물었다.
차라리 이렇게 죽을 거였다면, 가족들이랑 같이 죽이지 그랬어요, 신님?
기도 비슷한 질문에 대답 대신 가슴팍에서 피가 쏟아졌다.
“…아.”
그 순간 엄습해 온 또 한 번의 고통.
나는 점점 감겨 오는 무거운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결국 정신을 놓고 말았다.
이렇게, 죽은 줄로만 알았다.
“……!”
일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 * *
아더는 제 몸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과거로 돌아왔네?’
일주일 전, 30살의 아더 바이에른은 15살의 아더 바이에른이 되어버렸다.
그 증거로 상처투성이인 30살 아더의 몸이 아닌, 성장기가 끝나지 않은 얇은 소년의 몸이 보였다.
허나 단순히 몸만 어려진 건 아니었다.
“와아… 제정신으로 돌아왔어?”
미쳐버린 뒤로 줄곧 붉게 물들어 있던 세상이 다시 색감을 되찾았다.
이 사실에 아더는 순수히 놀라 중얼거렸다.
“내 정신병이… 나아졌다고?”
그 어떤 명의도 치료하지 못한 정신병이?
그래서 아더는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실감 할 수 있었다.
‘미친놈이 정상인이 되는 방법은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으니깐.’
문제는 어떻게 과거로 돌아왔냐는 것이다.
생각과 함께 다시 고민에 빠져들 때였다.
방문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집사 세비스찬이었다.
“약 드실 시간입니다.”
아더가 정신을 차리고 바보처럼 말을 더듬었다.
이때의 자신은 말더듬이였기 때문이었다.
“네… 에.”
“…그래요.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떻습니까? 도련님?”
늘어진 발음을 용케 알아들은 세비스찬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질문한다.
아더는 조금 전과 같이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기분 좋아요오….”
“다행이군요. 약은 지금 드실 겁니까?”
“나중에 먹고 검사 받을게요오….”
세비스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드셔야 합니다. 도련님의…. 병을 위해 어렵게 구한 약이니.”
아더가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대답을 들은 세비스찬이 방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이 멀어진 것을 확인한 아더는 시선을 돌려 세비스찬이 가져온 약을 바라보았다.
“흠….”
과거에도 그랬지만, 겉보기에는 참으로 평범한 약이었다.
‘원인 모를 병으로 말더듬이가 된 내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지.’
하지만 미래의 경험 덕에 이 약의 진짜 정체를 지금은 알고 있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먹던 이 약이 사실은 제 병을 키우던 독약이었다는 걸.
그래서 아더는 약을 집어 들어 발로 으깨버렸다.
콰직-!
가루가 된 약이 방 안에 휘날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는 턱을 쓰다듬었다.
“세비스찬, 저 인간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네. 또 똑같이 독약을 들고 오는 걸 보면….”
하긴, 그의 진짜 정체를 생각하면 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미래 바이에른 공작 가문을 멸문시키는 데 가장 앞장선 가문.
도르문트의 세작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도르문트는 바이에른의 멸문을 지시한 2황자, 칸 마드리드의 가장 충직한 심복이었지.’
이 사실을 모르던 과거의 자신은 배신자가 건네준 약을 매일 같이 받아먹어 말을 더듬는 병신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 약을 먹지 않아 말은 더듬지 않았지만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세비스찬은 여전히 독약을 주었고, 제 상태를 매일 체크했다.
독약을 먹지 않는다는 게 언제 들통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다.
‘즉, 그 일이 일어나기 전 집사 세비스찬을 쳐내야 한다는 건데… 어떻게 쳐내야 할까?
지금 당장 가서 죽여버릴까?
고민하던 아더는 흠칫 놀랬다.
“아니지. 더 이상 과거처럼 행동하면 안 돼.”
그때야 미쳐 있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바이에른을 멸문시킨 원수들을 죽여도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제정신으로 돌아왔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눈에 띄어 가면서 세비스찬을 죽일 필요가 없다.
아주 조용히 목을 그어버리거나, 머리를 써 그를 쳐내는 게 가장 좋았다.
‘난 이제 미친놈이 아니니깐, 정상인처럼 복수를 해야지. 예전처럼 무식하게 칼만 휘두를 필요가 없어.’
그때 세비스찬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도련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도르문트 백작의 셋째 아드님입니다.”
상념에 빠져있던 아더가 움찔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빌 도르문트가 찾아왔다고?”
* * *
도르문트 백작의 셋째 아들인 빌 도르문트.
그는 지난 삶에서 죽이지 못했던 원수 중 한 명이었다.
‘가장 먼저 죽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지.’
빌 도르문트는 다른 백작가의 아들보다 능력이 뒤떨어졌지만 교활하고 눈치가 빠른 자였다.
바이에른 가문을 멸망시킨 자들에게 복수하러 다닌다는 소문이 돈 순간 가장 먼저 자취를 감춘 것도 빌이었다.
‘죽을 때쯤 나타나서 날 조롱했지. 그때 어찌나 약 오르던지.’
그의 첫째 형과 둘째 형의 뒤에서 비웃음을 날리던 빌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아더였다.
그런데 이놈이 제 발로 앞에 나타났다.
“야 벙어리.”
자신이 기억하는 그 얼굴과 표정으로.
그 탓에 아더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기회? 아니면 함정?’
그토록 찾아 헤매던 원수가 제 발로 등장했지만 죽이기가 참 애매했다.
불과 조금 전까지, 이제는 더 이상 생각 없이 행동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그를 죽여버리면 과거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 죽일 수도 없고.’
고민에 빠진 아더가 턱을 쓰다듬을 때였다.
빌이 이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 여동생은 어딨냐? 개 보려고 왔는데 어디에도 없네? 설마 네가 숨긴 거냐, 벙어리?”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저 벙어리란 말, 참 오랜만에 듣네?’
말을 더듬는 것이 벙어리는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자신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붙인 별칭.
하나 아더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빌 뿐만이 아니라 과거, 자신을 얕잡아 보는 사람들 모두 자신을 벙어리라 불렀기 때문이다.
‘말더듬이 공자는 어감이 안 산다고 벙어리 공자라 불렀지.’
그래서 이런 놀림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지만, 빌이 언급한 아이린.
제 여동생은 달랐다.
‘굳이 아이린을 언급하네?’
자신이 빌 도르문트를 죽이려던 이유는 제 여동생 때문이었다.
빌 도르문트는 가문이 멸문당하기 전부 항상 제 여동생인 아이린을 탐했고 결국 바이에른 가문이 멸문당하는 날.
제 여동생과 강제로 혼약을 맺었다.
그 후 5년이란 시간이 흘러 아이린은 자살을 했다.
‘그게 자살인지, 아니면 녀석의 손찌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흘러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거리에 내쫓기면서 맞았다고 하니깐….’
그래서 아더는 빌을 죽이려 했다.
‘미친놈인 나도 원수의 가족은 안 건드리는데 이 자식은 그 선을 넘었어.’
그런데 그 빌 도르문트가 과거로 돌아온 지금, 또다시 아이린을 언급했다.
안 그래도 죽일 이유가 차고 넘치는 녀석인데, 그 와중에 또다시 선을 넘은 것이다.
‘…역시 죽여야 하나?’
고민과 함께 아더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였다.
한 가지 좋은 방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오… 맞아.”
“…?”
“죽이는 게 안 된다면, 죽지 않을 정도의 부상은 된다는 거잖아? 그럼 뒷수습도 쉬워질 거고.”
아더의 중얼거림에 앞에 있던 빌이 흠칫 놀랬다.
“너? 어떻게 말을 안 더듬…!?”
이 말에 아더가 기습적으로 빌의 발을 세게 걷어찼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빌이 철퍼덕 엎어졌다.
“…!?”
어안이 벙벙해진 빌이 뒤늦게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위에 올라탄 아더가 그 움직임을 봉쇄했기 때문이었다.
“무, 뭐?”
놀란 빌이 경악해 소리친 순간, 아더가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가 빌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지금부터 오른쪽 눈알을 뽑아낼 건데요 빌. 부디 잘 참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