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22)
이동하면서도, 주열은 계속해서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인정받았다, 인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 표정을 본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이제 와서 말씀드리는 것도 새삼스럽지만 그건 진짜 개는 아니에요.”
정말 새삼스런 이야기다. 주열은 말했다.
“안다.”
“네, 아시겠죠, 최소한 그게 그냥 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몇 달 전에는 아셨을 거에요. 그건 누가 뭐래도 그냥 평범한 크기의 개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부르던 이름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는 건 약간 낯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필요하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녀석은 그동안 그렇게 생각했겠죠. 아저씨는 자신을 개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스스로가 평범한 개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말이에요.”
처음에는 실제로 그랬으니, 더 착각하기 쉬웠을 것이다.
“여러 이유로 맞춰주고 있었던 거에요. 반쯤은 착각이었지만요.”
설이의 말을 들은 주열은 처음으로 알았다는 듯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기… 이 짝에 맞추고 있었나. 그랬나.”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춰준 거죠. 오히려 개보다도 개답게 굴고 있었겠죠?”
짐작이 가는 구석은 있다. 주열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평범하게 개 같은 정도로는 그 크기를 감당할 수 없다. 누가 봐도 개가 아닌 사이즈의 녀석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라고 불리는 동안, 그 녀석은 개의 역할에만 충실했어요. 아마, 본인이 개라고 불리고 있으니 개가 할 정도의 일만 그대로 따라 했겠죠. 머리가 좋은 녀석이니 따라 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거에요.”
덩치가 커서 언뜻 보면 무섭지만, 늘 웃는 상이고 사람을 잘 따르고 절대로 크게 먼저 짖지 않는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안전하고 친절한 대형견’의 이미지를 그대로 따라 한다. 난이도 자체는 높지 않다. 그걸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지만.
주열은 조금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꽤 힘들었을낀데.”
“뭐, 그랬겠죠.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에요.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었느냐 하면… 글쎄요? 완전히 억지로 하고 있었던 건 아닐 거에요. 최소한 그 짓을 자기 의사로 하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겠죠.”
회복되는 동안만 그런 연기를 하고 있었다면, 한 달, 조금 길게 잡아도 두 달만 그랬다면 정확히 알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일 년이 넘는 기간을 그렇게 살았다면 그게 아주 싫었던 것만은 아니라 생각하는 편이 옳다.
“그 행동 자체가 즐거운 건지, 아니면 아저씨의 기대를 무너트리고 싶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까요. 만약 정 싫어서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다면 그 녀석은 그냥 도망가는 방법이 있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은 개가 아니라는 어필을 하는 방법도 있었을 거에요.”
어쨌든, 그 녀석은 ‘개’라고 불리고 있었고 그 행동에 큰 불만은 없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어쨌든 그게 좀 지루하고 단순한 일인 건 사실이죠.”
압도적인 힘과 덩치를 가지고 조심조심하며 사는 것은 꽤 쉽게 질리는 종류의 일이다.
“월이만 해도 학교에서 평범한 학생인 척 굴 때는 엄청나게 심심해 했는데… 걔는 더 하지 않았을까요?”
크게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약간 지루한 정도의 삶.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저씨가 그런 소리를 했다. 너 혹시 호랑이 아니냐고.
“아마, 방송 취재랑 맞물린 장난스러운 이야기였겠죠. 아마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별 의미 없었을 거에요.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어땠을까요? 아마 스스로가 꽤 자랑스럽지 않았을까요? ‘개’라고 불리다가 ‘장산범’이라고 불린 그 순간이 말이에요.”
그게 원인이다. 아마 한번 그 소리를 들은 다음에, 제 딴에는 좀 더 대단한 것처럼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에 지금 이 일을 벌였을 거다.
“평소에는 제대로 된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끼던 녀석이, 어느 날 그런 소리를 들었을 테니까요.”
알고 보면 정말 별 것 아닌 이야기다. 아마 그 녀석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기대를 받은 자식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렇다.
“아마 그래서 그런 짓을 저질렀겠죠. 그게 아저씨가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 거에요.”
착각 때문에 시작한 일이니, 애초에 성공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다행이게도 실패했다.
문제는, 그게 본인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잘 해보려고, 능력을 한 번 자랑해 보려고 저지른 일이었다는데 있다.
“본인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최악의 결과였겠죠.”
멋대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착각한 뒤, 실패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주열은 자신보다 새파랗게 어린 사람한테 머리를 숙여야 했고, 자신은 그것 때문에 저 멀리 팔려나가게 생겼다.
“뭐, 실제로는 팔려나간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지만요. 저희도, 저 쪽의 명종씨도 꽤 사정을 봐 주고 있었으니까요.”
주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 말마따나 그건 팔려가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일이다. 애초에 그렇기 때문에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 아니었던가.
“하지만, 본인은 그 이야기를 몰랐죠.”
그 녀석은 이게 얼마나 잘 처리된 상황인지, 나쁘지 않은 상황인지를 모른다.
알아서 전달이 되겠거니 싶어 이쪽에서는 설명을 해 주지 않았고, 아저씨 역시 굳이 그런 건 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말하지 않아도 곧 알게 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아마 지금 꽤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한 거겠죠. 나름 그렇게 판단할 근거도 있었고요.”
정말 바보 같고 사소한 오해지만, 그래도 그건 그 녀석이 도망칠 이유 정도는 된다.
“만약 누구 한 명이라도 남아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거나 했다면 괜찮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죠. 그게 아니더라도 조금 더 어른스러운 녀석이거나, 조금 더 멍청한 녀석이었다면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만요.”
똑똑하지만 어리다. 아직 몸만 커다란 어린애 수준의 녀석이다.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이쪽은 이쪽대로 몰랐고,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말을 잘 안 해준다. 보통 이 정도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그게 치명적이었다.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해준 거에요. 별 것 아닌 문제지만… 진짜로 별 것 아닌 문제지만 말이에요.”
그보다 더 별 것 아닌 말 몇 마디를 안 해서 생긴 문제다.
“사소한 의사소통의 부재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그 수준의 일이다. 이 녀석은 치밀하게 생각해서 도망을 치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무서운 상황을 맞이해서 앞 뒤 모르고 도망친 고뇌하는 가출 청소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여러모로 한심한 일이다. 설이는 그런 감정을 숨기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리고 반대로 말하면, 아직 더 큰 사고를 치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하면 해결될 문제에요.”
그러니, 지금 만나러 간다.
“그 설득은 아마 저희가 하는 것보다는 직접 하시는 편이 좋겠죠?”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도, 억지로 자신을 붙잡아 갈 거라고 생각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아무리 그래도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기분도 덜 상하고 설득하기도 쉬울 것이다.
주열은 이제야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짓말 하지 말라고 했나.”
“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지금 만큼은, 굳이 말로 해 주셔야 해요.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한 거라 생각하지 마시고요.”
* * *
약속한 장소, 약속한 시간. 당연하게도 월이는 시간에 맞췄다.
사실, 월이가 그 자리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으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두 사람이 시간에 맞췄다고 보는 편이 사실 더 적당할 것이다.
“하이고.”
주열은 ‘개’의 모습을 보자마자 한소리를 했다. 지금까지 보면서 이렇게까지 의기소침하게 웅크린 모습은 처음 본다. 주열은 월이를 쳐다보고는 물었다.
“… 니 혹시 야를 때맀나?”
잡는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잡음, 예를 들면 조금 때리는 정도나 상처를 입는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쫄아 있는 모습은 조금 안타까워 보인다. 당연히 주열의 시선이 그렇게 고울 리는 없다.
월이는 머리를 살짝 긁적이고는 말했다.
“에이, 설마요.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조금 서열 정리 정도? 힘의 차이를 보여준 정도?”
주열은 의심 가득한 말투로 다시 물었다.
“진짜 때린 거 아이가? 그렇지 않고서는 야가 이리될 리 읎는데.”
이건 주열도 처음 보는 모습이다. 엄청나게 의기소침하게 구는, 그런 모습은 처음 본다.
“정말 때리지는 않았다니까요. 자기 잘난 줄 알았던 녀석이 조금 더 잘난 저를 보고 조금 침울해졌다? 그런 느낌?”
“지입으로 그딴 소리 하는 아는 첨이네.”
주열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이도 조금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유는 약간 달랐지만.
“근데 조금 의기소침한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 안 했다니까! 그냥, 자기보다 쎈 놈을 처음 만나서 이러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아니, 그냥 쎈 게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못 하는 수준으로 눌려서 그런가? 어쨌든 잘못은 아니잖아!”
월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아마 몸을 다친 곳도 없을 거야. 다치지 않을 곳만 적당히 괴롭혔거든. 사실, 조금 다치는 정도는 금방 나을 것 같은 녀석이니까 그냥 그렇게 할까도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저씨 앞에서 다치게 할 수는 없잖아? 거기까지 했으면 나도 할 만큼 한 거 아냐? 정말 다치지는 않았다구.”
“안 다쳤는데 저렇게까지… 될 수도 있긴 하겠지만….”
동물에 대해 공부하는 이유가 안 다치는 선에서 가장 아프게 할 방법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라는, 심히 괴상한 이유였으니 다치지는 않았다는 말은 신빙성이 있다.
“으음….”
하지만, 이해가 가기는 한다. 그렇긴 하다. 어설프게 봐주다 또 놓치면 그거야말로 진짜 큰일이긴 하다.
결국 설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앞으로 다시 볼 사이가 아니라면 모를까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를 사이에서 계속 그런 식으로 사정 봐 줄 수는 없다.
“뭐 어쨌든, 판은 다 깔렸네요. 두 분… 한 분과 한 마리?”
설이는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건 매번 말할 때마다 헷갈리는 편이다.
“이야기 충분히 나누시고, 끝나면 연락 주세요. 설명을 좀 잘 해주시고, 듣는 쪽은 도망치지 말고요. 또 도망칠 생각은 설마 하지 않겠지만.”
설이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월이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뭐야? 우리는 안 들어? 원래 자리 지켜야 되는 거 아니야?”
“그걸 우리가 들으면 안 되지.”
설이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들어도 될 리가 없잖아! 바보야!”
“나, 나 저분이 무슨 말 할지 궁금한데!”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 설이는 그대로 월이 목 뒤의 옷깃을 잡아끌면서 내려갔다.
“당연히 안 돼! 너까지 그렇게 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