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67화 (267/269)

외전- 3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21)

그 시각, 월이는 발소리를 내지 않고 뛰고 있었다.

태주가 아니었다면 이 단순한 사실을 아주 늦게 알거나, 끝까지 몰랐을 수도 있겠다. 물론, 모른다고 해도 어떻게든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을 수야 있었겠지만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일이 굴러갔을 거라는 정도는 알 수 있다.

“정말, 연락을 해 봐서 다행이지.”

그냥 단순히 사라진 사람을 찾는 건 그래도 해볼만한 일이다.

평범한 실종사건이 일어났거나, 아니면 그냥 옛날에 연락이 끊긴 어떤 사람을 한참 뒤 뒤늦게 찾거나 하는 일은 물론 어렵지만 어쨌든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CCTV를 돌려본다거나, 작정하고 사람의 흔적을 찾아 쫓다 보면 말 그대로 어찌저찌 찾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런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조차 꽤 많은 노고를 요구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가능은 하다는 말이다.

반면 작정하고 도망친 사람을 찾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도망쳤다는 말은 보통 사람이 남길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으려 들었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그런 추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긴 아주 작은 흔적 정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쯤 되면 재능이 좀 있더라도 평범한 수준의 사람은 찾을 수 없다.

국가기관이나, 방송국 정도 되는 수준의 인력을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처음에 범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월이는 사색이 되었다. 심지어 범은 꽤 빠르다. 아무리 처음 만났을 때는 방심하고 있었다 해도 월이조차 순간적으로 모습을 놓칠 정도로 날랜 녀석이다.

만약 작정하고 멀리 도망가기까지 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로 멀리 도망갈 수 있을까.

“어우,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월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이가 자신감있게 달려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그래도 왜 튀었는지 알았으니까.”

태주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일이지만, 그렇다.

범은 도망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잡히지 않기 위해 멀리 도망간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자리만을 피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럼 찾을 수 있지. 당연히.”

월이는 씩 웃었다. 아예 작정하고 멀리 도망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남은 것은 시간문제다.

“이 주변에 있을 테니까.”

심지어 지금 범이 도망칠 만한 장소를 뒤져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 주변에 그만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 숨을 곳은 한정적이다. 아니,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 한 손으로 꼽을 만한 장소를 직접 추려낸 것은 다름 아닌 월이 본인이다. 하필 이번에는 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우연히도 말이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해?”

이 주변 지리를 한번 샅샅이 뒤졌다. 그것도 그냥 특별한 목적 없이 훑어본 것이 아니라 적당한 크기의 맹수가 머무를 수 있을 법한 장소를 찾아볼 목적으로 전부 둘러봤다.

아예 눌러앉아 살 수 있을 법한 장소뿐만 아니라 임시로 몸을 숨길 수 있을 수준의 작은 은신처에 불과한 곳까지, 월이는 이미 전부 찾아봤다.

“뭐, 당시에는 이런 곳에 살았던 흔적이나, 살고 있는 녀석은 없다는 결론이 나오긴 했지만.”

당시에는 헛고생한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때 의미 없이 한 줄 알았던 고생이 꽤 의미가 있었던 셈이니 새옹지마인 셈이다.

“세상에 그렇게 막 쓸모없는 노력은 없는 건가?”

마침, 월이는 한 가지를 찾았다. 발자국은 없지만, 아무리 봐도 주변이 난잡하다.

“발자국을 지우려고 한 건가… 오히려 이럼 더 눈에 띄는데.”

월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이런 점에서 저 녀석이 아직 어린 녀석이라는 게 티가 난다. 이제야 깨달은 거긴 하지만.

“늘 그렇지, 뭐.”

알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아주 단순한 말이지만, 일종의 진리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이야기가 그 전형이다. 조금 화가 나는 건, 와서 이 장면을 보지도 않은 태주 녀석이 그걸 가장 먼저 깨달았다는 점이지만, 또 멀리서 봐야 보이는 거였던 건가 하는 생각이 이제 와서는 든다.

“덩치도 산만 한 녀석이 아직 다 큰 게 아니라니.”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조금 더 발소리를 줄여서는 저 난잡한 흔적을 따라갔다. 그리고, 월이는 바보 같을 정도로 손쉽게 그 녀석을 발견했다. 사실, 이쯤 되면 뻔한 일이다.

일단 언제든 저 녀석을 노릴 수 있을 만한 위치로 움직인 뒤, 월이는 찬찬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할까.’

사실 따지고 보면 굳이 모습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하러 온 건 대화고, 자신의 역할은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한 뒤 또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정도의 일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모습을 드러내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또 굳이 물리적으로 붙잡지 않을 이유도 없다. 만에 하나라도 놓치게 된다면 꼴이 말이 아니다. 월이는 결정을 내렸다. 지금 이건 결코 자신을 고생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야.”

크게 말할 필요도 없다. 소리가 들리는 것 자체로, 저 녀석은 충분히 놀랐을 거다. 실제로 그렇게 나지막한 목소리만 가지고도, 범은 깜짝 놀라서는 그 자리에 순간 멈췄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월이는 그대로 범을 붙잡았다. 뒷덜미를 잡으면 대부분의 짐승은 꼼짝 못 하는 법이다.

“야야, 너무 그러지 마. 지금의 나는 무적이야. 몇 시간 전의 내가 아니라구. 잡히기 싫었으면 어디 더 멀리 갔어야지.”

버둥거리는 꼴을 본 범을 본 월이는 조금은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덩치는 큰 녀석이 참, 별것도 아닌 이유 가지고.”

월이는 범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도망치고 싶다면, 그래. 대화를 하자. 나는 말로 하는 대화는 잘 못하지만, 힘으로 하는 대화는 엄청 잘 하거든.”

설득은, 말보다는 몸으로. 딱히 모토는 아니지만 평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고 싶으면 덤벼, 이 가출 청소년 녀석아. 아님 이야기를 듣던가.”

* * *

“그짓말?”

주열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찌푸렸다.

“내 말을 안 하는 거지 그짓말은 안 한다. 그기 내 자부심이다. 자부심.”

자기 말에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듯, 주열은 당당하게 말했다. 설이는 그 표정을 보고는 재차 말했다.

”네, 틀린 말은 아닐 거에요. 실제로, 꽤 정직하신 분이죠. 아니, 단순히 꽤 정직하다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네요. 아주 정직하다? 엄청 정직하다?”

오랜 시간을 지켜본 건 아니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주열은 확실히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처음 사과만 봐도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올바르게 사과하지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범이 도망친 사실 역시 그렇다. 사실 그냥 월이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도망쳤으니, 아무리 나라도 별수 없었다고 말하면 주열은 아무 책임도 안 질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은 아무도 알 수 없었을 테니 그 정도는 속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 점은 믿고 있어요. 아니, 의심조차 안 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건 그런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냥 정직하신 분이라도 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거죠.”

“내가 안 말한 게 없는데.”

주열은 여전히 당당하게, 자기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조금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음, 저희한테는 그렇죠. 명종씨한테도 그럴 거고요.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는데, 이건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저희한테 뭔가 숨기려 하셨다거나, 아니면 불리한 사실을 숨기지 말라는 뜻이 아니거든요.”

설이는 아주 약간 눈을 굴렸다. 불쾌하다기보다는, 어떻게 그 사실을 전해야 할지가 조금 난감했기 때문이다. 지금 설이가 하려는 건 추리소설 속 범죄자의 치밀한 거짓말을 잡아내려는 것이 아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한 가지만 여쭤볼까요? 결혼은 했나요? 아니면, 자식은 있으신가요?”

“머?”

주열은 별 황당한 질문을 다 듣는다는 표정이 되었다.

“질문이 한 개가 아인데… 다 했다. 자식도 있고.”

설이는 역시 그랬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렇죠? 왠지 그러실 것 같았어요.”

“갑자기 그딴 건 왜 묻는데? 뭐 우리 마누라한테 그런 거 물아볼라고?”

주열은 대놓고 물었다. 조금 불쾌한 표정이다.

“아, 아뇨. 그런 건 안 해요. 원래는 사실 이걸 여쭤보려고 했는데 그 전에 확인차 드린 질문이에요.”

설이는 황급히 다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자식이나 부인분한테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하셨나요?”

“미친….”

주열은 진짜 황당한 질문을 다 듣는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딴 걸 와 묻는데?”

“왠지 안 하셨을 것 같아서요.”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문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추측이다.

“아마 그 정도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아실 거에요. 가족분들은요. 그러니 굳이 말로 하지 않으셨겠죠. 낯부끄럽기도 하고, 말로 하면 멋이 없다고 생각하실 테니까요. 저도 완전히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요. 아마 그런 이유로 굳이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추측이지만요.”

전형적인 부산사람, 주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대답하지 않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대답이다.

“봐요, 지금도 그렇잖아요?”

“쯧.”

스스로 생각해도 할 말이 없었는지, 주열은 혀를 한 번 찼다. 설이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아저씨만 그런 건 아니에요. 사실 나쁜 일도 아니고, 잘못된 일도 아니니 고칠 필요도 없고요.”

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한다. 주열이 사랑한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한다.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세상에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고, 말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다들 자연스럽게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걸 말로 하면 좋지만, 하지 않는 것이 특별히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애매했어요. 사소한 문제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부분이 조금 문제였다고 해야 할까요.”

문제 아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마 사람에게는 일어날 리 없는 그런 문제. 그리고 기르던 것이 정말로 개였다면 역시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 설이는 조금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녀석, 특별한 이름은 없었죠. ‘개’라는 게 이름이었어요.”

이름치고는 조금 너무하지만, 이유는 짐작이 간다.

“아마 그렇게 오래 같이 지낼 생각이 아니었겠죠. 비가 그치면 갈 곳으로 가거나, 원래 주인을 찾아서 돌려보내거나 할 생각으로 그렇게 처음 불렀을 거에요.”

정이 붙으면 헤어지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니 정이 붙을 만한 이름을 주지 않으려 했다. 흔한 이유고, 납득할 만한 이유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같이 지내게 되었죠.”

갈 곳은 없고, 며칠 정도는 더 머무르는 것도 어쩔 수 없겠다 하는 생각이 한 달에서 일 년이 되고, 그동안 녀석이 점점 더 자신을 잘 따르게 되고, 덩치도 점점 커지고.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개라고 불렸겠죠.”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이름이 그렇게 되었으니, 처음에 범이라고 불렸을 때 얼마나 기뻤겠어요?”

“기쁘다?”

주열은 그 말은 생각지도 못한 것처럼 말했다.

“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처음으로 인정받은 기분이었겠죠.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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