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66화 (266/269)

외전- 3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20)

“나 그럼 먼저 가 볼게!”

월이는 그 말 한마디만을 남기고 쌩하니 달려나갔다.

“흐음….”

문이 닫히기도 전에 사라지는 모습을 본 두 사람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빨리 뛰쳐나갔다는 사실이 황당한 건 아니다.

아무리 월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바로 뛰어나간 건 아니기 때문이다. 왜 나갔는지, 어떤 일을 하러 갔는지도 이미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당한 표정인 이유는, 월이가 말만 하고 대답은 안 듣고 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된다고 했으면 어쩌려고….”

두 사람이 그대로 하겠다, 혹은 하지 않겠다는 어떤 의견을 말하기도 전에, 월이는 그냥 그대로 나가버렸다.

여전히 황당하긴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시아는 살짝 이마를 긁적이고는 말했다. 어쨌든, 저 주장대로라면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저 말대로라면 최대한 빨리 가 보는 편이 좋기는 하겠지.”

“의외로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긴 하네요. 신기하게요.”

무례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안 나쁘다. 시아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본인의 캐릭터가 독보적이니 가능한 일이겠지.”

아마 월이가 저렇게 행동한 건 ‘내 말을 따라라!’ 와 같은 어떤 독선적인 생각이라기보다 그저 ‘움직이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렇다면 당장 나간다!’라는 단순한 생각일 거다.

그러니 좀 바보같아 보이긴 하지만, 화가 나지는 않는다.

“황당한 기분 자체는 사라지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죠? 역시 제가 이상한 건 아니죠?”

설이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월이가 낸 의견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야기라.”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이야기는 해야지. 아무리 저 애가 저렇게 뛰어나갔다고 해도 말이다. 참, 우리를 너무 믿는다고 해야 할지.”

월이가 저렇게 검토 없이 재빨리 움직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아마도 두 사람이 어떻게든 말려 줄 거라는 점 때문일 거다.

시아는 곧바로 물었다.

“일단, 너는 어떻게 보지? 나는 저 의견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보는데.”

“그건 저도 그래요. 나쁜 의견처럼 들리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설이는 빠르게 말했다. 월이가 낸 의견은 정말 본인답게 단순무식하고 간단한 방법이지만, 사실 그렇기에 적당하다.

“아마 혼자 생각해낸 건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결론만 놓고 보면 저 판단이 엄청 정확해 보인단 말이죠.”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 상당히 단순한 방법이기에, 판단도 빨랐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아마도 월이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을 바로 그 부분이다.

“문제는, 우리가 시간에 맞출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인데.”

월이는 한시가 급하다는 듯 뛰쳐나갔다. 실제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이겠지만, 문제는 본인만 빨라서는 의미가 별로 없다.

“우리가 저 속도를 따라오지 못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야.”

시아는 조금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의미로는 아주 신뢰받는 기분이 들지만, 그만큼 이쪽에도 부담이 크게 걸리는 방법이라는 점이 문제다.

“심지어 그건 내가 도울 방법도 별로 없고. 나는 아무래도 그런 류의 설득은 잘 못 하거든. 하려면 못 할 건 없다만, 널 두고 내가 하는 것도 비효율적이지. 여러모로.”

시아는 설이 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러니 너한테 물으마. 괜찮겠니?”

“으음, 글쎄요.”

설이 스스로도 잘은 모르겠다. 아마 자신이 먼저 떠올릴 법한 종류의 방법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저게 맞는 것 같은데요.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저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최소한 오늘 저녁에서 내일 낮까지는 상황을 끝내려면요.”

설이는 몇 번 정도 생각을 검토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볼수록 저 방법이 맞는 것 같아 보인다.

“저게 정확한 방법이에요. 둘 다 성공만 한다면요.”

“성공만 한다면, 인가.”

“그래도 실패할 것 같지는 않네요.”

설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시아가 할 만한 질문을 하기도 전에 선수를 쳐 대답한 셈이다.

“그런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있나 보구나.”

“그렇죠!”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월이가 저렇게 할 정도면 당연히 저도 거기 맞춰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설이는 자신 있는 눈빛으로 말했다.

처음 겪어보는 일 때문에 발생한 실수가 한 번 있기는 했지만, 그런 사소한 방심을 하지 않는 지금은 일이 잘못될 리가 없다는 확신에 찬 모습이다.

“네가 그렇다면.”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어쨌든, 두 사람이 좋다는데 자신이 더 끼어들어서 할 일은 없다.

“다만, 그렇게 되면 내가 할 일이 좀 줄어드는데 말이다.”

사실, 조금 줄어드는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일은 남지 않는다. 남은 시간 동안, 시아는 그냥 놀고 있어도 별로 달라질 게 없는 상황이다.

“원래는 나도 뭔가 더 끼어들어서 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뭐, 어때요.”

설이는 살짝 미소지었다.

“애초에, 여기까지 언니가 내려올 일은 없었잖아요? 그냥 놀러 온 김에 여기까지 도와준 것도 충분히 고마운데요.”

정곡을 찔린 시아는 머리를 살짝 긁적였다.

“… 언제부터 알았지?”

“어, 음 글쎄요? 사실상 처음부터요?”

설이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고는 말했다.

“혹시 그거 티 안 난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 * *

경상도 남자들에 대한 흔한 이미지대로, 주열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무표정하다. 지금도 그렇다. 주열의 그 표정은 사람들이 부산, 혹은 경상도의 중년 남자들에 대해 가지는 편견에 대한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 해서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다. 그저 나타내는 것을 약간 서툴어할 뿐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주열은 말을 툭 뱉었다.

“망할 놈.”

당연한 사실이지만, 주열은 기분이 매우 나쁘다. 기분이 나쁜 이유는 물론 그 녀석이 도망갔기 때문이지만, 단순히 그 녀석이 도망갔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화가 났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애초에, 지금 이건 머리끝까지 화가 난다거나 하는 감정이랑은 또 다르다.

그럼 배신당한 기분이냐 묻는다면, 아주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 그런 것 같기는 하다.

사실, 지금까지 그 녀석이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도 조금은 걱정했지만,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사람을 해칠 것 같은 녀석은 아니고, 그래도 밥은 꼬박꼬박 몰래 챙겨 먹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보관하고 있었던 사료 일부가 사라진다거나, 안 먹은 척 하고 있는 어떤 물건들이 사라지거나.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건 괘씸하지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느낌이 또 다르다. 자기 얼굴을 보고 나서도 도망친 것이다.

“쯧….”

주열은 혀를 찼다. 기분이 나쁘지만, 역시 이 기분은 평소에 본인이 느끼던 분노와는 다르다.

화보다는 걱정이 먼저 된다. 어디서 뭘 하는지, 배는 안 고픈지. 그런 것들을 알 수 없다. 혹시 누군가를 위험하게 하고 있거나, 반대로 본인이 위험한 상황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데를 쳐 돌아 댕기는지….”

주열은 또다시 중얼거렸다. 숨길 수 없는 걱정이 조금 묻어나온다.

그리고, 지금 이 기분을 표현하는 아주 간단한 말이 있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상황이 바로 그 말에 딱 들어맞는다.

‘서운한 건가, 난.’

늘 삐지는 건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본인의 감정은 그런 감정과 아주 흡사하다. 주열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바로 그 부분이다.

게다가 괜히 짜증나는 부분은, 그런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별로 남자답지는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에이 씨….”

주열은 괜히 옆에 굴러다니는 돌을 한번 뻥 차고는 인정했다.

자신은 지금 꽤 삐진 상태다.

주열이 그렇게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는 바로 그 타이밍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설이다. 타이밍이 좋다 할지, 좋지 않다 해야 할지. 주열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머고? 말할 건 다 했는데.”

분명 또 별것도 아닌 일을 물어보러 온 거겠지. 그렇게 지레짐작한 주열은 인상을 조금 쓰고는 말했다.

“더 아는 기 없다.”

“아, 아뇨.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일이에요. 뭐 물어보러 온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요.”

설이는 살짝 머리를 긁적이고는 말했다.

“방금 전처럼 걔가 어디에 있는지, 왜 갔는지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는지 물어보거나 하려는 게 아니에요. 질문할 건 다른 부분이죠.”

설이는 당연하다는 듯 질문했다.

“걔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 뭐라카노?”

“걔를 어떻게 생각하시냐구요.”

“개 말하는 기가.”

주열은 별 황당한 말을 다 듣는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부분이다.

“네. 그 개요.”

설이는 마치 방금 전까지 하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물었다.

“그 녀석이, 혹시 지금 걱정되시나요?”

* * *

“….”

주열은 대답하지 않았다.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정곡을 찔렸기 때문에 멈춘 것이다.

설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월이가 저렇게 달려나간 뒤의 일이니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다린다고 해서 솔직하게 말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는 걱정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주열은 여전히 눈을 찌푸린 채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사실, 뻔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설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별로 안 그런 티 내려고 하긴 하시지만요. 아무도 자기가 하는 걱정이나, 뭐 그런 잡스런 것들을 눈치 못 채도록 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요. 그 녀석 이름부터가 그렇죠. 그냥 ‘개’잖아요?”

‘개’. 단순하기 그지없는 바보 같은 이름이다. 아마 다른 동네 사람이 동물 이름을 그따위로 지었다면 분명 개한테 관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되게 단순한 이름이에요. 이름 짓기 귀찮았다던가, 아님 어차피 오래 볼 사이 아니니까 그 정도로 부르면 되겠지 싶었다던가. 아마 처음엔 그 정도였겠죠. 저는 모르겠네요. 어느 쪽인가요?”

“머 그딴 걸 묻노?”

주열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표정에 대조되도록, 설이는 싱글벙글 웃었다.

“네, 사실 그딴 게 맞죠. 어느 쪽이든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정말로 묻고 싶은 건 사실 이쪽이네요.”

설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조금 있다가, 만나러 가실래요?”

지금 상황에서 만나러 갈 거라고 해 봐야 하나뿐이다. 주열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카노?”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는 녀석을 어떻게 만나러 간다는 말인가. 주열은 상당히 못 미더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만나러 가자구요.”

설이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 있다가 연락이 올 것 같아요. 그럼 그리로 가면 되겠죠. 대신… 몇 가지 솔직하게 대답해 주셔야 해요, 거기 가면요.”

“솔직하게”

“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 이제 뭐, 저도 나이는 어른이지만 어른들은 꼭 그러더라고요. 꼭 거짓말을 해요. 남한테도, 자신한테도 말이에요.”

항상 그렇다. 어떤 분야의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거짓말을 한다. 설이는 그래서 미리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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