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19)
“말 그대로 곤란하군.”
가능성 중 하나로 고려하기는 했지만, 설마 정말로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시아는 살짝 눈을 찌푸린 채 말했다.
“의외이기도 하고. 상황을 모두 알고 나서도 도망쳤다고?”
설이는 마찬가지로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네, 그렇다고 하네요. 상황을 모두 알고 있을 거다… 하고 말씀하셨어요.”
시아는 쯧 하고 혀를 한 번 찼다.
“오해의 여지는… 없겠군.”
“네. 그렇겠죠.”
아쉽지만 그렇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주열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오해의 여지도 없고, 착각할 만한 상황도 아니고. 말 그대로 지금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같아요.”
“좀 납득이 안 가는 걸.”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그나마 명종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니 다행이지만, 사무소 사람들이나 주열이 보기에는 여전히 상황이 곤란하다.
“다른 부분들은 대부분 알겠지만… 이것만은 모르겠군.”
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왜 도망을 친다는 거지?”
그리고 그걸 모른다면, 다시 잡아도 다시 도망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두 번의 실패는 없어야 하니, 그냥 억지로 붙잡아두고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는다는 것도 가능하다면 가능한 방법이지만….”
여러 이유로 별로 좋은 방법 같지는 않다.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묘하게 찜찜한 기분이다.
“별로 내키지 않는군.”
“그래도 다른 방법이 생각나는 건 없는데요.”
설이는 어깨를 으쓱한 뒤 말했다.
“게다가 상황을 잘 몰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당장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어쨌든, 왜 그랬는지 이야기를 듣는 건 붙잡고 나서 해도 되는 일이다.
일단 임시 결론을 내린 두 사람은, 곧 말없이 월이 쪽을 쳐다봤다. 꽤 시간이 걸린 뒤에야, 월이는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어라?”
시아는 시계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알아채는데 한 삼십 초는 더 걸렸군. 대체 뭘 하기에 대화를 안 듣고 있었던 거지? 우리가 이야기하는 내내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뭔가 계속하고 있던데.
“그, 그냥. 어차피 내가 껴도 딱히 할 말은 없으니까.”
“그야 그렇다만, 아예 이야기도 듣지 않고 이렇게 혼자 다른 일 하고 있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번에 월이는 두 사람이 돌아오기 전부터, 그리고 돌아와서 대화를 하는 내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듣는 척은 했지. 그렇지?”
평소와는 명백히 다른 태도다. 시아가 그 점을 지적하자 월이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 뭐냐…. 놀고 있던 건 아니야.”
“안다. 그야 그렇겠지.”
시아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는 말했다.
“그렇게나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데 설마 놀고 있는 건 아니겠지. 거기서 게임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설마 그랬냐는 표정을 지은 시아를 본 월이는 황급히 말했다.
“그럴 리 없잖아! 이 상황에서 게임이라니.”
“그래, 그럴 리 없지. 이 상황에서 네가 게임을 할 리가 없지. 물론, 지금 상황에서 게임을 하더라도 딱히 큰 문제는 없다만.”
어차피 상황을 파악하기 전까지, 월이 독단적으로 할 만한 일은 없다. 오히려 혼자 나가서 뭐라도 하려고 하면 그게 더 곤란하다.
“그래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그러니까, 그 뭐냐.”
월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뭔가 말하기 껄끄러운 것 같은 표정이다.
“사실 검색을 하고 있었어.”
“검색?”
시아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찾기 어려울 텐데, 대체 뭘 찾았다는 말일까. 시아는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갑자기? 대체 왜?”
“아니, 왜. 그냥 혼자 있으니까 그런 거라도 조금 해 볼까 싶었던 거지. 태주는 막 지 혼자 검색만 해서도 이것저것 잘 알아내던데. 나도 전화 같은 걸로 막 다 알아내서 한 번쯤 말해 보고 싶었다구.”
태주가 하는 것처럼, 혼자 사실을 다 밝혀내는 일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고, 월이는 그렇게 말했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 약간 뾰루퉁한 표정이지만.
“… 아하. 그냥 혼자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으니 뭐라도 하겠다는 생각이었나. 뭘 검색하고 있었지?”
혹시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쁠 건 없다. 시아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었나?
“그….”
월이는 본인이 생각해도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던 듯 주저하면서 말했다.
“…잃어버린 애완동물 찾는 법이었는데, 별로 도움은 안 되더라. 물론 진짜 개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겠지만… 우리 지금 상황이랑 비교해 보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내용이었어.”
잃어버린 장소를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동물병원과 반려견 센터에 방문해 확인해 보라는 것이 매뉴얼 상의 조언이었다.
훌륭한 조언이지만, 당장 이쪽에는 적용 불가능한 조언이기도 하다.
“그렇군.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써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놀라운 이야기겠다만.”
시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뭐, 별수 없지.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거다.”
어쨌든, 열심히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동안 특별히 날아온 경보나 주의보 같은 것이 없다는 것만 해도 어느 정도는 상황 파악에 도움이 된 셈이다.
“으음… 나 스스로도 뭐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 하나 정도는 찾았으면 했는데.”
“뭐, 전화 찬스는 실패도 하는 법이지.”
시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꼭 상대가 답을 알고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야.”
“쳇.”
월이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던 중, 월이는 문득 어떤 방법이 하나 떠오른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뭐지? 좋은 생각이라도 난 건가?”
“아니, 잠깐만. 전화 찬스?”
지금까지 왜 떠올리지 못했던 건가 싶을 정도로 바보 같은 내용이다. 월이는 눈을 크게 떴다.
“왜 그러지?”
“그냥, 갑자기 좋은 방법 하나가 생각나서. 나 혹시 잠깐만 저쪽에 가 있다가 와도 돼?”
“저쪽?”
“응, 응. 어차피 멀리 갈 건 아니야. 진짜로 요 앞?”
“뭐, 상관없겠지. 상관이야 없다만….”
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얘가 왜 이러나 싶었던 시아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뭘 하려고?”
“전화 찬스!”
월이는 씩 웃고는 말했다.
“내가 왜 전화 찬스를 안 쓰려고 했지?”
* * *
[어쩐지, 잘 놀고 있다는 연락이 안 오더니만.]
월이가 조언을 구할 사람이라 해 봐야 한 명뿐이다.
[… 근데 너 나를 너무 막 써먹는 거 아니냐?]
태주는 아주 약간 불만스럽게 말했다. 진지한 불만이라기보다 갑자기 전화해서 대뜸 질문만 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서운함 표시 정도다.
[갑자기 전화하더니 갑자기 이런 거나 물어보는 게 맞아? 최소한 뭐 나한테 잘 지냈냐는 말이라도 먼저 하는 게 맞지 않아? 퀴즈쇼도 아니고, 뭐? 전화찬스?]
“아 아니, 뭐 우리 사이에….”
월이는 능청스럽게 넘기려 했지만, 곧 실패했다. 월이는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봐주라. 이상한 데서 막혔단 말이야. 괜히 너한테 전화찬스 쓴 게 아니야.”
[이상한 데? 세 사람이 갔는데도 전혀 모르겠다는 말이야?]
“그렇다니까!”
월이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태주는 그제야 호기심이 좀 생긴 듯 물었다.
[상황이 정확히 어떤데? 잘은 모르겠지만 네가 그렇게 전화하는 걸 보니까 네가 사고쳤나 본데. 그렇지?]
태주의 짐작을 들은 월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넌 너무 예리해.”
월이는 간략하게 상황을 말했다. 이제는 몇 번씩이나 들은지라 한 번도 막히지 않고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명을 모두 들은 태주는 상황을 듣자마자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 뭐야, 별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막힐 것도 아닌 일을 세 명이나 내려갔는데 그러고 있다는 게 참….]
“별거거든? 어렵거든? 우린 모르겠거든?”
월이는 우우, 하는 야유를 보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태주는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아니, 그냥 가까이에서 너무 오래 봐서 그럴걸? 오히려 거리를 두고 보니까 좀 쉬운 일 같은데. 물론, 가까이서 본 건 아니니까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태주는 정말로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월이는 투덜거렸다.
“알면 좀 알려줘! 맨날 지 혼자 아는 척하고!”
[알겠는걸 어떡하냐? 뭐,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태주는 능글맞게 말했다.
[그게 부탁하는 사람 태도야? 갑자기 전화 걸어서 맨입으로 막 뭐라고 하는 게?]
“… 짜증나. 안 그래도 온 김에 부산 유명한 거라도 좀 사갈 생각이었는데.”
[뇌물이야?]
“그냥 기념품이야! 그거 아니라도 뭐 하나 정도는 사 가려고 했어!”
월이는 작게 소리쳤다.
[그래? 그렇다면야.]
태주는 살짝 웃었다.
[왜 이야기를 듣고 도망갔는지 물었지?]
“응.”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도망간 거라면 이해하기 쉽겠지만, 듣지도 않고 도망을 갔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뚜렷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태주는 물었다.
[개를 키우듯이 키웠다고 말했지? 그리고 실제로 너희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고.]
“응, 그랬지.”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종의 반려동물인지 뭔지처럼 취급한 거 아냐?”
[글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주는 슬쩍 말했다.
[단순히 개 키우는 것처럼 생각했어? 정말로? 그렇게 단순하게?]
“으음?”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개 키우는 것 치고는 좀 공들이기야 했겠지. 크기가 크기인데.”
[그래. 하긴, 그분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분 보고 알기는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태주는 곧 납득하고는 반대로 물었다.
[그럼 그 녀석은? 그 녀석은 그 주열이라는 분을 어떻게 생각했는데? 그냥 자기 주인으로만 생각했을까? 지금 네가 하는 말 들어보면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로 그랬어?]
“아?”
설이는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그 한 글자만 가지고도 태주가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생각 안 해 봤구나.]
태주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도망치지.]
일침 아닌 일침이다. 월이는 뭔가 머릿속에서 큰 전환이 생긴 듯 충격받은 표정이 되었다. 태주는 안 보고도 그 표정을 짐작했는지, 짧게 말했다.
[뭐, 조언이 더 필요해?]
“아니.”
월이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면 충분하다.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
“충분해. 너, 그런데 혹시 지금 상황을 다 알고 있다거나 하는 거 아냐? 그렇지 않고는 설명이 안 되는 수준인데.”
월이는 의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왜 그거 조금 듣고 저 멀리서 왜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야?”
[에이, 그럴 리가. 내가 소장도 아니고.]
태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리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