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64화 (264/269)

외전- 3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18)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중, 지금 상황을 가장 담담하게 받아들인 건 의외로 명종이었다.

“대범하시군요.”

시아는 살짝 감탄하듯 말했다. 명종은 별로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뭐, 처음에는 저도 엄청나게 놀라기야 했지만요.”

당연히, 설이와 함께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명종도 크게 놀랐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뿐이었다. 명종은 필요 이상으로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뭐, 공사 지연이 더 되지는 않을 거라고 하셨으니 그 정도는 상관없죠. 남은 일이라 해 봐야 별거 없으니까요.”

오히려 이렇게 말할 정도다. 시아는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그건 놀라지 않는 편이 비정상입니다. 반대로 그렇게나 빨리 평정심을 찾으신 게 놀라울 뿐이죠. 어쨌든 상황을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하하. 이해 못 할 이유는 없죠, 돌발상황 정도는 일어나긴 했지만, 원래 일하다 보면 그런 건 늘 있는 법이잖아요?”

명종은 어깨를 으쓱했다.

“반대로, 저한테 거기까지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실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인걸요.”

“아니, 그 정도는 설명을 드려야지요.”

주열만큼이나 명종도 상황을 제대로 상황을 알 권리가 있다. 어떤 의미로는 더 중요하다. 이번 일에서 가장 명백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일이 그렇게 된 거면 이제는 저보다는 다른 쪽이 더 문제일지도 모르겠는데요.”

명종은 새삼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제 입장은 사실 금전적인 손해가 더 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 시점에서 아무래도 좋다, 고 결정했습니다만…. 그보다 문제는 장산범이 밖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그렇죠.”

“…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다른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말 그대로 아예 다른 사람들이요. 호랑이가 다시 풀려나는 것 아닌가 싶어서요.”

명종은 단순히 공익적인 관점에서 질문을 던졌다.

“동물원에서 코끼리만 탈출해도 난리인데, 장산범 같은 게 탈출한다면 꽤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맹수가 도망쳤다면, 그야 위험한 일이 되는 법이다. 명종의 그런 당연한 질문을 들은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아하.”

시아는 짧게 목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뭐, 마냥 안전하다고 확신을 하기는 조금 그렇고, 또 그걸로 저희 실수를 정당화할 생각은 당연히 아닙니다만.”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그건 진짜 범은 아닙니다.”

정말로 이제 와서 이야기다. 명종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 장산범이라 하지 않으셨나요? 그걸 전제로 이것저것 설명하셨던 것 같은데요.”

“뭐, 그렇게 말했죠. 그 정도 설명이면 충분할 줄 알았으니까요. 사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부분도 아니었고요.”

시아는 쯧, 하고 혀를 차고는 말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정확한 판단은 아니었지만, 또 그렇게 판단해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장산범이라 생각하고 있고, 스스로 그렇게 행동하려 하는 어떤 것이었으니까요.”

주열은 고개를 갸웃했다.

“… 스스로가 장산범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것… 이라고요? 그게요?”

“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장산범이라면 이렇게 하겠지… 하면서도 진짜로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던 이유입니다. 성향만 따지면 본질은 맹수가 아닌 평범한 동물에 가깝겠죠.”

“... 그게요?”

명종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 커다란게요?”

“크기만 할 뿐이죠. 아시겠지만, 주열씨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호랑이 전문가 같은 건 당연히 아니고요.”

나름 정성이야 들였지만,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벗어난 수준의 일을 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런 걸 키워내는 데 지장이 없었다.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시아는 물었다.

“평범한 동네 아저씨가 어떻게 맹수를 길러낼까요?”

명종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에 손을 짚었다.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나중에 자세히 보고 나서 확신한 겁니다만.”

시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게다가, 그건 굳이 따지자면 생물학적으로 갯과입니다. 당연히 ‘범’으로 분류될 리 없죠.”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호랑이라기보다는 커다란 개나 늑대 같은 것에 가깝다.

“그럼 그게 왜 장산범 노릇을 하고 있었던 건가요?”

“그것까진 정확히 모르겠군요.”

확실한 건, ‘저건 장산범일지도 모른다’라는 기대에 부응하려 했을 뿐이고 그렇게 행동했을 뿐 진짜 장산범은 아니라는 말이다.

“허.”

명종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든 그게 진짜 범은 아니라는 말씀이신 건가요.”

“네. 그렇다고 그 녀석이 도망쳐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정도는 아니라 이해하셔도 되겠습니다.”

시아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문제는 다른 부분이다.

“다만 어떤 의미로는 단순히 호랑이보다 더 문제겠네요.”

잃어버린 동물을 찾는 전단지를 붙일 수도 없고, 경고문을 붙일 수도 없으니. 시아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찾는 건 좀 더 어렵겠군요.”

* * *

시아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당연히 설이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상황이 여러모로 난처하니 그럴 시간이 없다.

범은 이미 도망친 지 오래고, 이제 와서 쫓더라도 쉽게 찾기도 어렵다. 그냥 다시 한번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잡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여쭤보러 왔는데요.”

설이는 주열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범은 어째서 도망을 간 걸까요?”

말 그대로 대뜸 하는 질문이다. 주열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게도 밝은 표정은 아니다. 아직 정확한 의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좋은 표정은 아니다.

그 표정을 본 설이는 황급히 덧붙여 말하기 시작했다.

“아, 아뇨! 탓하려는 건 아니에요! 범을 놓친 건 아무리 근본적으로 우리 잘못이에요.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놓친 건 놓친 거고, 그 사실에 대해서는 변명할 것도 없다. 아무리 봐도 책임 소재가 명백한데 남 탓을 하는 것만큼 꼴 보기 싫은 일도 없다.

“그건 명백히 저희 잘못이에요.”

근본적으로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 떠넘긴 것이 잘못이고, 또 이 정도면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방심이 잘못이었다. 많은 문제가 그렇듯 이번에도 방심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이가 이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다. 설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 실수가 왜 나왔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거든요.”

시아나 설이가 월이를 탓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이런 게 있다.

“월이는… 화장실이 아무리 급하다고는 해도 도망쳐도 될 만한 이유가 없다면 그런 식으로 자리를 비울 애가 아니에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었다면, 월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리를 계속 지켰을 것이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지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랬을 거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도 그 범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을 만한 방법이 떠올랐죠.”

당시의 월이 입장에서는 다행이게도, 방법이 생겼다. 주열이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다른 사람, 예를 들어 명종씨가 나타났다면 계속 자리를 지켰겠지만… 어쨌든 아저씨는 그래도 범이 충성을 바친달지, 그런 관계였으니까요. 그게 뭐 딱히 상식적으로 틀린 판단은 아니었어요.”

주열의 등장은 그래도 내적 갈등의 끝에 화장실에 가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 정도의 사건이긴 했다는 말이다.

“상황이 다 정리되었고, 사람들끼리 하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됐어요. 당연히, 당신이 일부러 저 녀석에게 도망치라고 한다거나, 최소한 그냥 도망치도록 내버려 둘 리는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한 상황이었죠.“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자신을 길러준 사람인 데다, 나름대로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는 관계인 사람이다.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선택지를 고르는 건… 별로 좋은 선택지는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월이는… 이렇게 말하면 조금 위험한 표현이지만 믿었던 거에요. 지금 상황에서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고요.”

주열을 믿었다기보다는, 그 상황을 믿었다. 주열은 범이 도망치도록 방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범은 주열의 말을 들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실패했으니 틀린 판단이지만, 그렇다고 당시 기준으로 잘못된 판단이냐 물으면 조금 애매하다.

“뭐, 실패했지만요. 하지만 그게 뭔가 특별히 잘못된 판단이냐고 물으면, 사실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게 잘못된 판단인 이유를 말이에요.”

설이가 지금까지 한 설명을 들은 주열은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할 말 있음 똑띠 해라. 와 안 막았는지 묻고 싶은 거 아인가?”

말은 짧지만, 내용은 날카롭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결국 그렇죠.”

설이가 하고 싶은 질문을 요약하면 ‘왜 범이 도망쳤는지, 당신은 이유를 알고 있지 않은가?’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설이는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이쪽에서는 잘 모르겠어요. 대체 그 녀석은 왜 도망을 간 걸까요?”

여러모로 주열이 아니라면 알 수 없을 내용들이다. 짐작조차 안 간다. 게다가 그게 아니더라도 어쨌든 주열은 그 자리에 남아있었던 마지막 사람이다.

그러니 여러 가지 이유로 주열에게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범은 왜 도망간 걸까요? 본인을 직접 길러준 사람이 도망가라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처음에 한 질문과 완벽하게 같은 질문이지만, 좀 더 무례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렇기에 설이는 조심스럽게 덧붙여 말했다.

“그래도 다시 말씀드리지만 왜 안 막았냐? 같은 탓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다시 원래 하려던 대로 돌아가려면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하니까 드리는 질문인 거죠.”

이래저래, 이 질문은 해야만 한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전혀 짐작이 안 가요. 대체 왜 도망을 친 걸까요?”

설이는 주열을 쳐다보고는 물었다.

“혹시 그 녀석은 지금 상황을 잘 모르는 건가요? 예를 들어, 뭔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 보기도 전에 도망을 갔다던가 하는 상황 말이에요.”

그렇다면 그래도 이해가 간다.

상황은 사실상 끝났고, 이제는 정리하는 단계만 남아있다는 사실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말이 된다.

“그렇다면, 사실 이건 귀찮은 일이지만 그렇게 복잡한 상황은 아니죠.”

여러 가지 의미로 단순하게 해결을 할 수 있으니 좋다.

“그냥, 다시 한번 찾아서 상황을 이해하도록 만들기만 하면 돼요. 이제는 서로 알 거 다 아는 상황이니까요.”

어떤 의미로는 차라리 그러길 바라면서, 설이는 말했다.

“혹시 상황을 모른다면….”

주열은 중간에 설이가 하는 말을 끊으면서 말했다.

“아이다.”

“네?”

설이는 되물었다.

“아니라면… 그게 무슨…?”

“몰르는 게 아이라고. 가도 다 안다.”

주열은 짧게 말했다. 여전히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다 들었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그 녀석이 지금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죠?”

설이는 눈을 몇 번 정도 깜빡이고는 물었다.

“일부만 들은 건가요? 아니면 특정 부분만….”

“다.”

주열은 짧게 말했다.

“다 들었다고.”

주열은 머리에 손을 짚으면서 말했다. 설이도 눈을 크게 뜨고는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니까… 오해를 했다거나 할 가능성도 없는 건가요?”

“그러믄 그렇게 말하지.”

주열은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는 말했다. 짧은 말이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는 확실하다.

오해의 여지도 없고,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없다.

“가도 상황은 안다. 다 안다. 근데 가가 와 그라는 지는 모른다. 내도.”

주열은 조금 답답한 표정이 되었다. 설이도 약간 질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어, 그렇다면…. 걔가 그러니까, 상황을 다 알면서도 그렇게 도망을 쳤다는 말씀이신 거죠?”

주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는 그제야 지금까지 주열이 지었던 표정이 무슨 표정인지 좀 알 것 같아졌다. 저건 말을 안 들어먹는 부하 직원이나, 자식을 보는 어른의 표정이다.

설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곤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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