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17)
일이 잘못됐다.
당연하게도, 월이는 장산범을 절대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한 팔 한 다리를 못 쓰는 상태라도, 이미 잡혀 있는 장산범을 놓칠 리는 없었다.
평소대로의 상태였다면 말이다.
그 순간의 월이는 세상에서 가장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었다.
“… 큰일났네.”
어떤 의미로는 이곳에 내려온 월이가 지금까지 겪은 중 가장 중대하고 긴급한 문제다. 월이는 지금 그런 상황에 처했다.
일단,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식은땀이 나고, 다리가 덜덜 떨린다. 월이는 반쯤 죽은 눈으로 그 자리에 서서는 말했다.
“설마… 설마 이게 이렇게 될 줄이야.”
사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럴 기미는 있었다. 하지만 무시했다. 내심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몇 십분 정도일 거라 생각했고, 그러니 당연히 굳이 말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설마 몇 시간이 걸릴 줄이야.”
슬슬 등이 축축하니 차갑다. 이미 월이는 지금 이 정도면 문제없다, 괜찮다, 아직 견딜만하다를 넘어서 슬슬 위험한 거 아닌가 싶은 단계에 왔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은 피할 수 없는 위기의 상황이 코앞에 닥쳤다.
월이는 계속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는 움직이는 그 순간이 바로 위기다.
“크르릉….”
장산범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은 월이는 혀를 한번 차면서도 장산범과 눈을 마주쳤다.
사람이 아닌 동물의 표정을 읽는 건 늘 어려운 법이지만, 지금 저 표정 정도는 알 수 있다. 마치 기회라도 잡았다는 듯 반짝이는 눈이다.
월이는 곧바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저 개새… 가….”
하지만 진지하게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월이는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말했다.
“너… 지금 이걸 혹시라도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하는 말인데.”
월이는 장산범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혹시라도 도망치려고 하면 진짜 죽는다? 지금 그렇게 튀면 이번엔 방금 전처럼 못 봐준다고.”
조금 식은땀이 나는 정도로 힘의 우위는 변하지 않는다. 월이가 자리를 지키기만 한다면 장산범은 절대 도망칠 수 없다. 아무리 상태가 안 좋아도 그 한 가지 만큼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지금 가면 너 죽고 나 죽는거야. 진짜로.”
이미 월이 목소리는 협박이라기보다는 애원에 가깝다. 제발 움직이지 말아 달라는, 그런 수준의 말에 불과하다. 장산범이 도망치려 한다면 월이는 선택해야만 한다. 인간의 존엄성 같은 것과, 주어진 역할 사이에서 고민해야만 한다.
그걸 본능적으로 파악한 것인지, 범은 느긋하게 월이를 쳐다봤다.
“저, 저걸 진짜….”
차라리 적대감을 내비치는 편이 좀 덜 화날 것 같다. 하지만 저대로 있어주는 편이 좋다는 것 자체는 명백한 사실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 역대급 위기일지도…?’
월이는 손을 끊임없이 꼼지락거리며 생각했다. 비유나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이 순간보다 큰 위기가 없었던 것 같다. 최소한 최근 2년 정도. 아니, 3년에서 4년 정도까지 생각해 봐도 그렇다.
“…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월이는 한탄했다. 하지만 푸념한다고 변하는 건 없다.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월이는 이제 다리를 넘어 손까지 떨기 시작했다. 앞으로 오래 버틸 수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순간 저 멀리서 달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이제야!”
누구라도 좋다. 잠시만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기만 하면 누구라도 좋다.
월이는 큰 소리로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을 불렀다.
“아저씨!!”
나온 건 주열이다. 시아나 설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주열이라도 가능할 거다. 월이는 상황을 더 깊게는 고려하지 못하고 외쳤다.
“이 애 좀 대신 봐줘요!”
상대방이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월이는 일방적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 대신! 봐줘요!”
“머고?”
주열은 눈을 크게 떴다. 월이는 장산범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쟤 말이에요! 쟤! 주인 같은 거라면서!”
평소의 주열이라면 젊은 애가 버릇이 없다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라도 어떻게든 짜증을 낼 만한 상황이지만, 주열은 제대로 뭐라 하지 못했다.
이미 월이의 표정은 아무리 봐도 다급해 보이는 표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머, 먼데?”
주열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월이는 그대로 막무가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 해!”
월이는 거기까지만 말한 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점점 발을 빨리 움직였다. 주열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는 이미 사람이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가 되었다.
더는 참을 수 없다. 월이는 화장실로 재빨리 달려나갔다.
“난 이제 한계야!”
순식간에 사라진 월이의 모습을 본 주열이 눈을 깜빡였다.
* * *
자리를 비운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미 결과가 나왔다. 시아는 한탄하듯 말했다.
“… 그래서 자리를 비운 거였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장산범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참….”
설이도 황당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게 그렇게 급했어? 앞뒤 안 따지고 달려갈 만큼? 잠깐 우리한테 미리 이야기도 못 할 정도로?”
“큭….”
월이는 본인이 생각해도 상당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하지만 정말 더는 참을 수 없었다구. 너도 알잖아. 사람이 급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론 상황은 이해한다. 애초에 설이가 아니라 누가 와도 상황 자체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말 그대로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른 깊은 부분까지 생각이 닿지 않는다. 그건 그런 상황이다. 하필이면 그 순간이 지금 찾아왔을 뿐이다.
“알긴 알지만….”
설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얼마나 급했으면 저랬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결과가 좀 치명적이다.
시아 역시 한숨을 쉬듯 말했다.
“이건 참… 여러모로 프로답지 못하군. 화장실 이슈 때문에 대상을 놓치다니 말이다.”
“큭….”
월이는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비우지 말았어야지… 같은 억지를 부릴 생각은 없다만. 최소한 미리 대비할 수는 있었겠지.”
실제로 ‘뭐, 그래봐야 얼마나 걸리겠어?’ 하는 안일한 마음 때문에 이번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말하지 않을 거라면 최소한 미리미리 비워… 뒀어야 했는데….”
월이도 그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렇다. 처음에 그런 기미가 있었을 때,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냥 미리 이야기하고 미리 갔다 왔어야 했다.
뭐, 이제 와서는 다 늦은 이야기다. 시아는 한숨을 쉬었다.
“후… 원인은 이제 알겠다만… 최악이구나.”
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에 손을 짚고는 말했다.
“… 돌겠군.”
기본적인 전제가 무너졌다.
월이가 장산범을 놓칠 리 없다. 그걸 전제로 행동을 한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바보 같은 이유로 상황이 달라졌다. 시아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허탈한 목소리다.
“정말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시아 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다 끝났구나, 하고 말이다. 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시아와 명종, 심지어는 주열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했고, 또 전원이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었던 합의안도 마련할 수 있었으니 남은 것은 세부사항에 대한 적당한 조정뿐이라 생각했다. 그게 당연한 결론이다.
“으으….”
월이는 시선을 피했다.
“네 잘못만은 아니다. 너 혼자 있어도 괜찮겠지, 하고 방심하고 있었던 우리들 탓도 분명 있으니까 말이야.”
시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한번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 와서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져봐야 별 의미는 없는 행동일 뿐이다. 차라리 건설적인 논의는 앞으로 뭘 어떻게 할지 따져보는 쪽이다.
“다시 시작인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는군.”
시아는 약간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봐도 상황은 최악에 가깝다.
“그, 그래도 뭐가 어떻게 도망쳤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는 괜찮은 것 아닐까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고는 해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잖아요?”
설이는 억지로라도 한 번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 말했다.
“어쨌든, 조사에 들일 시간은 많이 줄었잖아요.”
“그렇지.”
시아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쪽도 우리를 안다는 점이다. 아마 이번에 잡은 것보다 좀 더 수를 쓰지 않으면 쉽게 잡혀주진 않을테지.”
“윽.”
맞는 말이다. 월이는 조금 더 불편한 표정이 되었다.
“그, 그럼 내가 뭐 할 일이라도 있을까?”
“글쎄.”
시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지.”
어쨌든, 손 쓸 방법이 없을 정도는 아직 아니다.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의문점 몇 가지가 분명히 있다.
“너는 일단, 그분께 이야기 정도는 드렸다고 했지?”
“그, 그렇지. 인수인계는 했어!”
“… 상황을 고객한테 맡기고 달려나가는 걸 인수인계라 하지는 않는데. 아무 말 없이 중간에 자리를 비운 것보다는 조금 낫기는 하다만….”
월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 미안해….”
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다.
“탓하려는 건 아니다.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그다음 부분이지.”
월이는 어쨌든, 주열을 보고 나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분명 일방적인 떠넘기기라고는 해도 월이는 나름대로 판단을 했던 것이다.
저 사람이 있다면, 설마 장산범이 도망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 말이다.
“명종씨라면 모를까, 주열씨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너는 자리를 비웠을 거다. 결과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저 호랑이를 키운 사람은 주열이다. 분명, 그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대놓고 탈주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은 그렇게 이상한 생각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이해가 잘 안 가네요.”
설이는 눈을 찌푸렸다.
“생각해보면 이제는 상황을 다 알았잖아요?”
양쪽이 상황을 서로 이해했다. 이제는 서로에게 오해가 있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고, 적절한 중재안도 나름대로 마련해 놓은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도망치고, 붙잡는 짓을 할 이유가 없다.
“뭐, 대체 왜 도망쳤는지는 다시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시아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젠장, 부산 관광은 물 건너갔군.”
일이 이렇게 되어서야 빨리 일 다 끝내고 놀다 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글쎄요….”
설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몇 번 정도 꼼지락거리면서 계산했다.
“그래도 여유 가지고 올라가려면 내일까지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일까지, 라.”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어려운 일이지만, 또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빨리 해치운다 치면 반나절 정도 여유는 얻을 수 있겠지.”
그런 막연한 기대와 함께, 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