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16)
“안 가시나요? 다른 분들은 먼저 저쪽으로 가신 것 같은데요.”
명종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설이를 보고는 물었다.
“아니면, 뭔가 더 할 이야기가 남아 있으신가요?”
설이는 배시시 웃었다.
“티가 많이 나나요?”
“티가 많이 난다기보다는, 그냥 여기 혼자 남아 있으실 만한 다른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미 다른 분들은 다 가셨는데 혼자 뒤쪽에 남아계시는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겠죠.”
월이나 시아, 거기에 더해 주열까지도 이미 저쪽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갔는데 혼자만 남아 있을 이유는 따로 없다. 명종은 설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나요?”
“뭐, 그렇죠.”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남아 있어요.”
명종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지간한 이야기는 방금 다 끝났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남은 게 중요한 이야기인가요?”
“아하하… 중요하다면 중요하죠. 방금 전에 제가 깜빡하고 말씀 안 드린 거랑 비슷한 내용이거든요.”
거기까지 들은 명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문제 해결을 위한 내용은 아닌 거군요.”
“네, 당연히 그렇죠. 앞뒤 사정도 전부 들으셨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어느 정도 정해진 것 같으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게만 끝내면 조금 모자라다. 설이는 머리를 살짝 긁적이고는 말했다.
“하지만 궁금하신 게 분명 남아 있을 것 같아서요.”
설이는 명종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런 게 없을 리 없어요. 그렇죠?”
“궁금한 것 말이죠.”
명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건 당연히 있다. 명종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큰 불만이라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의문은 좀 있네요.”
“어떤 건가요?”
“이걸 제가 해야 했던 이유가 뭔가요?”
“이거라뇨?”
“그러니까, 제가 저 녀석을 유인까지 했어야 했던 건가 싶어서 말이에요.”
자신이 이렇게 했기 때문에 저 장산범을 쉽게 유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납득했다.
하지만 정말로 꼭 필요한 일이었는지 혼자 생각해 보면 꼭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믿기 힘든 광경이기는 하지만, 장산범은 확실히 월이보다 약했다. 일부러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때려눕혀서 손쉽게 잡기는 했지만 아무리 봐도 그렇지 않더라도 잡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런 생각도 든다.
‘이번 일에 나까지 끼어야 할 필요가 있었나?’
게다가 설이는 꼭 그런 것처럼 말했다. 자신이 끼지 않으면 어떤 사실은 결코 알아내지 못할 것처럼.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제가 없었어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이쪽을 고르도록 유도하셨죠.”
물론 처음부터 거짓말은 아니었다. 설이는 분명 굳이 자신이 끼어들지 않더라도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속임수가 없었던 건 아니다. 자신은 분명 이쪽 선택지를 고르도록 유도당했다.
“지금 이건 저보다는 저쪽 분에게 더 도움이 되는 일 같기도 하고요. 제 입장에서는, 전에 말씀하신 첫 번째 선택지를 골랐어도 별로 다를 것도 없었던 것 같단 말이죠.”
명종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물론 그게 뭔가 불만스러운 건 아니에요. 어쨌든, 방금 말씀하신 게 그대로 되기만 하더라도 저한테는 여러모로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정말로, 좋은 의미로 냉정하시네요. 속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설이는 그렇게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명종은 피식 웃었다. 조금 여유가 생긴 모습이다.
어쨌든 좋은 게 좋은 법이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다시는 저 장산범인지 아닌지 애매한 뭔가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답도 받을 수 있었으니 말 그대로 큰 문제는 없다.
“뭐, 속았다 쳐도 이거야말로 큰 손해는 아니니까요. 어쨌든, 저는 속은 걸까요? 저한테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되는 방법 고르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그게 양쪽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은 게 맞아요. 그건 죄송해요.”
설이는 조금 미안한 투로 말했다.
“하지만 전에 말씀드린 것도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만약 명종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것이 분명히 있다. 설이는 천천히 말했다.
“지금 이 일이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을 들은 명종은 눈을 깜빡였다. 장산범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어떻게 이곳에 와서 이 짓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끝난 것 아니었던가.
“그건… 말씀하셨잖아요? 장산범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요. 어떻게 그게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왜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었나요?”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설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그 이유에요. 음, 사실 이렇게 잘난 척 설명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뭐, 궁금해하셨으니까요.”
설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본인이 궁금하다는데 이 정도 설명도 안 해 준다면 그게 더 문제다.
“어떤 것의 발생 원인을 설명할 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왜 일어났는지, 그 사실관계만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방법이랑, 그게 왜 일어나야 했는지 의도를 찾아내는 방법이에요.”
간단하게 예를 들 수 있다.
만약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를 단순하게 목이 길지 않은 녀석이 죽고, 목이 긴 녀석만 살아남았다고 설명한다면 그건 사건의 원인만을 담백하게 기술한 것이다.
반대로,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는 높은 곳에 있는 풀을 먹을 수 있는 기린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기린은 점점 목이 길어졌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일종의 이유를 분석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둘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죠. 지금도 그래요. 장산범이 나타났고, 그 장산범이 명령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그 장산범이 적극적인 방해 행각을 했다고 말한다면 그건 틀린 이해가 아니에요. 정확한 이해죠.”
그렇게만 이해해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만 이해한다면 장산범의, 그리고 사실은 주열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왜 장산범은 왜 명령을 잘못 이해했고 그 명령을 한 치의 의심 없이 이곳에서 그렇게 지독할 정도로 영업 방해를 했던 걸까요?”
명종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신음을 흘렸다.
“하긴.”
장산범은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혔지만, 거기까지였다.
“저를 단순히 괴롭히는 것보다는 좀 더 직접적인 방법이 있었을텐데요.”
“네. 그렇죠. 이유가 있어요. 그리고 사실 의도적으로 아직 거기까진 설명을 안 드렸어요. 저희는 지금까지 왜 장산범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 정도만 설명드렸고 그 이상으로는 말씀드리지 않았으니까요. 왜냐하면… 음, 뭐랄까.”
설이는 어색하게, 하지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전에 이런 상황을 보여드리지 않으면 이 말을 오해하기가 너무 좋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마지막까지 설명을 드리지 않다가 지금 나타나서 이렇게 설명을 드리고 있는 거고요.”
“뭘 말씀하려고 하시는 거죠?”
명종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이는 방금 그 난처한 표정을 크게 바꾸지 않고는 말했다.
“그거 아세요?”
“뭐를요?”
“명종씨는 뭐랄까, 좀 재수 없어요.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게 이유인 거에요.”
설이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말했다.
“… 네?”
명종은 표정이 그대로 멈췄다. 갑작스럽게 면전에 웃으면서 욕을 들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재수 없다뇨?”
“아하하… 사실은 그래서 이걸 저 혼자 와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설이는 이걸 어떻게 하면 적당히 기분 나쁘지 않게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나쁜 의도로 말하는 건 아니에요. 명종씨가 그런 사람이라는 이야기일 뿐이죠. 그런 거 있잖아요? 나쁜 사람은 아닌데, 자기가 잘난 티 팍팍 내고, 뭐 실제로 잘났고 그런 사람 말이에요. 뭔가 좀 잘난 척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잘난… 뭐 그런 거요.”
명종은 여전히 조금 충격받은 듯 표정이 굳어 있다. 그 모습을 본 설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쨌든, 사람의 태도라는 것이 늘 한 끗 차이다. 자신감 있어 보이는 태도와 오만해 보이는 태도, 확신에 찬 태도와 거만해 보이는 태도 같은 것은 구분하기 어려운 편이다. 능력도 있고 자신도 있는 젊은 사업가라면 특히나 더 그래 보일 거다.
“제가 그래 보이나요?”
“오해하기 쉬울 정도는 되죠. 특히나 그런 건 멀리서 보면 더 구분하기 힘들죠. 아니면 실제로 둘 다 맞을 때도 있고요. 어쨌든! 제가 말씀드린 건 그런 의미로 재수 없다는 말이에요.”
어쨌든, 오만함과 자신감은 종이 한 장 차이 수준의 말이다. 명종은 그래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간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이 보기에 그렇게 보일 거라는 말인가요.”
명종은 그제야 쓴웃음을 지었다.
“아, 이래서 말 안 하려고도 했던 건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명종씨가 뭐 잘못을 했다거나 그런 건 절대로 아니에요.”
자신 있게 사업을 추진하는 실제로 잘난 젊은 사업가. 당연히 그게 잘못일 리 없다.
“그걸 무슨 잘못이라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게 이유에요. 그저 남들이 보기에 조금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말이죠. 서울 말을 쓰는 밖에서 공부하고 온 애송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거에요. 그런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실 분이라는 건 알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죠.”
주변을 신경 쓰면 쓰는 대로, 신경을 안 쓰면 안 쓰는 대로 재수 없어 보인다. 그 사람이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
“주열씨도 마찬가지였을 거에요. 다른 점은 기르던 장산범이 있었다는 점 하나 정도죠.”
주열은 태도만 딱딱할 뿐 좋은 사람이다. 전형적인 속정 깊은 스타일의 이 동네 사람이다.
하지만, 또 평범한 동네 토박이 어른이기도 하다. 당연히 굴러온 젊은 돌이 잘난 척 하면서 이것저것 뒤집어 엎는 게 그리 좋게 보였을 리 없다.
“그 뒷담은… 진심이라고 해서 역시 큰 잘못은 아니겠지만 꽤 진심이 묻어나는 말이었을 거라는 말이에요.”
주열이 착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게 진짜 이유인가요?”
명종은 황당한 표정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네요.”
설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를 칼 때문이라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이유라고 할 수는 없죠. 마찬가지에요. 장산범이 이렇게 행동한 제대로 된 이유는 이런 거에요. 아주 보잘것없는 감정적인 이유죠.”
설이는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했어요.”
“이렇게라뇨?”
“감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연히 감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니까요.”
설이는 씩 웃었다.
“어떻게 하면 명종씨를 그렇게 보지 않게 될까요? 쉽지는 않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설이가 일부러 이런 식으로 돌아간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그냥 다시 보게 만들면 되는 거에요. 어쩌면, 저건 그냥 오만한 애송이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나머지는 알아서 고쳐지죠.”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만 제대로 알게 되어도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배타성을 거둔다.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번에 일부러 명종씨 속을 좀 캐냈어요. 그리고 이해하게 만든 거죠. 명종씨는 그냥 자신감 있는 사업가가 아니라, 본인과 마찬가지로 지킬 게 있는 사람이라고요.”
“… 어떤 의미로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군요.”
“뭐, 저희가 한 건 아니니까요. 그건 명종씨가 하셨죠.”
설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 녀석, 생각보다는 괜찮은 녀석 아니야?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 건 저희가 아니에요. 명종씨가 진심으로 한 말 때문이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더 이상은 필요 없다.
“앞으로 특별히 바뀌는 게 없더라도, 여전히 명종씨는 재수 없는 서울말 쓰는 어린 녀석이라도 괜찮아요. 이제는 그냥 거기서 이해가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여전히 욕설에 가까운 말이지만, 이제는 그렇게 기분 나쁘게만 들리지 않는다. 명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의미가 있긴 한 행동이었군요.”
“당연하죠!”
설이는 씩 웃었다.
“자, 그럼 이야기도 대충 끝났으니 한 번 저쪽으로 가 볼….”
하지만 설이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순간,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월이가 문을 반 정도 박살내면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깜짝이야!”
설이는 소리쳤다.
“갑자기 나타나서 뭐 하는 거야?”
“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거든?”
월이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 안 본 사이에 그대로 튀었어!”
뭐가? 라는 질문은 두 사람 중 아무도 하지 않았다. 뭐가 튀었는지는 뻔하다.
“… 어쩌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