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59화 (259/269)

외전- 3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13)

명종이 시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멀리서 명종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명종에게는 지금 이 장소가 두 사람만 있는 장소처럼 느껴지고 있겠지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그저 나머지 사람들이 명종의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뿐이다.

언제 어느 때 장산범이 나타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그런 위치다. 설이가 속삭이며 물었다.

“근데 그게 언제 나타날까? 예상한 대로 나타나 줄까?”

“글쎄?”

월이는 재주 좋게도 누워서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다른 때라면 지금 당장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겠지만, 문제는 날 만났잖아?”

바보가 아닌 이상 월이를 보고 그 격차를 느끼지 못할 수는 없고, 격차를 느꼈다면 그렇게 선뜻 나타날 수 있을 리 없다.

당연하게도 장산범은 바보가 아니다. 장산범은 나쁘게 말하면 겁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좋게 표현하면 위험한 다리는 최대한 건너지 않으려고 하는 안전제일주의자다. 지금까지 자신을 붙잡을 수 있을 리 없는 사람에게도 모습을 보이자마자 곧바로 도망다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이곳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 없으니, 나타난다면 무조건 마지막 순간이야. 그 이전에는 안 나타나. 무조건 말이야. 나는 오히려 그게 걱정인데.”

월이는 하품을 한 번 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하게 준비했는데 안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나타난다면 그때뿐이고, 아니라면 나타나지 않을 거다.

월이는 그대로 엎드린 모습으로 돌아누웠다. 심심한 사람의 모습을 그리면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를 법한 그런 자세로, 월이는 말했다.

“내가 걔라면 안 올거라. 좋은 꼴은 못 볼 게 확실하거든.”

“아하하….”

설이는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좋은 꼴’이 어떤 꼴일지 조금 짐작이 간다.

“너무 심하게 그러진 마. 걔도 누가 키우던 애라고. 거기다 어쨌든 사람을 다치게 하는 최후의 선은 넘지 않았고.”

“에이, 그래도 그게 한 짓을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봐줄 수도 없잖아?”

월이는 드물게도 반박할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렇긴 한데…. 막 봐줄 필요는 없지만 너무 괴롭힐 필요까진 없지 않겠어?”

“어허, 괴롭히다니. 제압하는 거야.”

월이는 나름대로 엄근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한 덩치의 녀석이 날뛰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다고. 느린 것도 아니고.”

“으음….”

설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런 식으로 말하면 너무 심하게 때리지는 말라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애초에 월이도 죽일 생각으로 패는 건 아닐 거고, 저쪽도 나름대로 튼튼할 것 같으니 아무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이는 적당히 화제를 돌렸다.

“제압하는 방식이야 맡기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어쨌든, 안 나타날 걱정은 안 해도 될거야. 그러려고 지금까지 준비했으니까!”

상대가 조심스러운 태도라는 건 처음부터 계산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도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건 그런 함정인걸. 안 나타날 수는 없어.”

잡는 것은 이쪽이, 그리고 그 밖의 대부분의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저쪽이 할 일이다. 저렇게 확신에 찼다면 월이 쪽에서 더 캐물을 이유는 없다.

“뭐, 그럼 문제는 없겠네.”

설이가 보기에 문제없는 계획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월이는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두 사람이 걸어 다니는 쪽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막바지 단계로 보인다.

“어디, 기다려 볼까?”

느긋한 마음이 된 월이는 살짝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혼자는 외로운 법이다. 아무리 잠복근무 형사 흉내를 내더라도 혼자 하면 재미없다.

“그래도 두 사람이 같이 이야기라도 하니까 좀 좋네.”

* * *

멀리서 두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것은 꿈에도 모르는 채, 명종은 받은 요청을 그대로 따랐다.

“그래서, 여기가 마지막인데요.”

명종은 처음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진 태도로 말했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많이 자연스러워지셨군요.”

“그런가요?”

명종은 살짝 웃었다.

“벌써 꽤 익숙해진 건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낯선 사람 앞에서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호랑이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꽤 두려웠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일도 한 시간 넘도록 하다 보니 좀 익숙해진 것 같다. 낯선 사람도 삼십분 대화하다 보면 나름대로 익숙해지고, 처음 해 보는 일도 몇번 반복하다 보면 손에 익는 법이다.

결정적으로 시아가 꽤 좋은 청자라는 점도 한몫했다. 명종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실 처음엔 그냥 시간 버리는 짓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공사 관계자도 아닌 사람에게 뭐 이런 거 설명해 봐야 뭐 어쩌나 싶기도 했고요.”

심지어 처음에는 본인도 내일이면 다 잊어버릴 거라 말했으니 더 그랬다.

하지만, 전혀 흥미가 없다는 본인의 주장과는 반대로 시아는 적재적소에 좋은 질문들을 던지곤 했다. 그것도 핵심적인 질문들을 말이다.

아무래도 파는 쪽은 사는 쪽의 입장과 완벽하게 같을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 사는 쪽의 시선에서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꽤 좋은 참고가 되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보다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말이다.

“들어보니 좋은 의견이나, 아니면 검토해 볼 만한 질문이 좀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같이 치명적이지 않은 부분이지만, 그래도 공사에 들어가고 나서 수정하려 들면 비용이 꽤 클 뻔했어요.”

물론 저 몇 가지 수정사항은 중대한 부분이 아니다. 지금처럼 공사를 미룬 피해를 복구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늦은 김에 그 정도를 고친다면 손해가 조금 줄어드는 셈이다.

“의외의 소득이네요.”

명종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다행이로군요. 어쨌든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제 기분도 좋군요.”

시아는 마주보며 미소짓고는 말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은 곳은 이쪽 같은데요.”

시아는 주변을 한번 슥 살피곤 말했다.

“주차장이로군요. 이곳도 공사를 하십니까?”

명종은 고개를 저었다. 주차장 같은 걸 고쳐서 좋을 건 기분뿐이다.

“아뇨. 아마 안 하겠죠. 하더라도 아마 최후에나 고려할 겁니다.”

“그런가요?”

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차장이 깔끔한 것도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에 괜찮은 수 아닐까 했는데요.”

“아아,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네요.”

명종은 처음으로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역설적… 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차를 몰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애초에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아하.”

간단한 설명이지만, 시아는 곧바로 그게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차를 몰 수 있는 자격을 따기 위해 차를 몰고 오는 건 넌센스다.

“가끔씩 원동기 면허나, 특수 면허 따러 오시는 분 정도는 사용하시겠지만, 그분들이 이런 주차장에 차 세워놓는데 크게 거부감이 있으실 리는 없죠.”

좋은 주차장이면 좋지만, 아니어도 별 상관은 없다. 듣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부분이지만, 듣고 보니 당연한 소리다. 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네. 그래서 이쪽은 공사를 할 이유가 딱히 없습니다.”

“흐음.”

시아는 짧게 소리를 냈다.

“그래도 이쪽을 한 번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이쪽을요? 볼 건 없으실 텐데요?”

“압니다. 그래 보이는군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흙먼지 날리는 쪽도 나름 정취가 있으니까요.”

그런가? 잘 모르겠다. 명종은 고개를 갸웃했다. 명종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전체를 돌아보는 김에 이곳까지 보는 게 안 될 이유는 없다.

“뭐, 보고 싶으시다면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시아는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주차장의 한가운데까지 도착할 때까지도 그랬다. 시아는 말이 없다.

“그런데, 왜 이곳으로 오신 건가요?”

명종은 별생각 없이 물었다. 계속해서 조용하다면 뭔가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명종도 그랬다.

“이쪽은 전혀 볼 게 없는데요.”

“네 그럴 겁니다. 그래서 온 거니까요.”

시아는 명종 쪽을 돌아보고는 살짝 웃었다.

“주변은 거의 쓸만한 게 없고, 중앙 쪽에서는 꽤 멀어진 외곽 쪽이고, 바깥에서 접근하기에도 용이한 장소죠. 그렇지 않나요?”

뭐가요? 하고 질문하려던 명종은 곧 입을 다물었다. 알고 있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목적이 자신이 미끼가 되는 것 아니었던가.

각오는 했다. 언제든 좋지 못할 꼴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말은 들었던 상태다. 하지만 정말로 그때가 닥치니 마음이 좀 어지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 그건.”

명종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죠.”

정말로 다칠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보장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저도 드디어 실물을 보게 되겠네요.”

정말로 보기 싫다는 표정을 짓는 명종을 보면서 시아는 살짝 웃었다.

“그래도 안 하겠다는 말씀은 안 하시는군요.”

“네, 뭐 하기로 했으니까요.”

억지로 끌려왔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자신의 동의가 있었던 상황이다. 당연히, 이전까지의 모습과는 달라야 한다.

“흐음.”

시아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물었다.

“하기로 했으니, 한다. 나름 괜찮은 대답이기는 하지만, 또 부족한 대답이군요.”

“네?”

명종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요?”

“왜 하기로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요.”

처음에는 그냥 그게 좋다니까 그렇게 듣고 그냥 따라했을 뿐인 것 아닐까 생각했다. 말 몇 마디에 홀려서 이런 선택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 이상한 일입니다.”

명종은 꽤 합리적인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공사 계획도 꽤 합리적으로 설명하셨죠. 단순히 좋을 것 같아서 그렇다는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명확한 이득이 있는 부분이 있어야 시도를 하고, 그런 부분이 없다면 시도를 하지 않았죠. 그렇다면, 지금 이 선택에도 그런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설이가 이쪽으로 선택을 유도했다고 하지만, 명종이 단순히 말 몇 마디에 홀려서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없다.

“분명히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이유로 들긴 했지만,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어쨌든 공사가 끝날 때까지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확답은 들으신 채고요.”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은, 명종이 이 선택을 하기에는 사실 부족한 말이다.

“그런데도 왜, 이쪽을 선택하기로 하신 겁니까?”

“왜 그랬냐고요?”

명종은 무슨 당연한 말을 하느냐는 듯 대답했다.

“저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라서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

이 공사가 잘못된다면,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다.

“제 결정은 저 한 사람만 바꾸는 게 아닙니다. 당장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죠.”

지금은 없다. 아무도 없는 장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정말로 아무도 없었던 장소일 리는 없다. 수많은 직원들이 있었을 것이고,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다.

누군가는 가장이고, 누군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돈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용돈 벌러 나오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 돈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다. 명종은 그 사정을 알고 있다.

“물론, 그 사정을 제가 일일이 봐줘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가능한 최선의 판단을 했으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죠.”

제한된 합리성이라고는 해도 그 자리에서 가능했던 최대한 올바른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은 후회 없다. 결과론적으로 잘못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최선의 판단을 하지 않았다면, 그건 제 잘못이죠.”

자신만 잘못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질 수 있다. 명종은 그렇기에 이쪽을 골랐다.

“괜찮은 대답이군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그 정도 생각도 안 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왜 하신 건가요?”

명종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답하고 나서 보니 지금 상황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중요한 건 장산범이 언제 나타나는지 아닌가요?”

“아아, 그거요.”

시아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건 이미 나타났습니다. 사냥감에게 소리를 들려주는 맹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명종은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