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56화 (256/269)

외전- 2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10)

처음 그 녀석을 주운 날을 기억한다.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그 날은 날씨가 심각하게 좋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좀 심각한 날이었다.

“비가 이케 오믄 어카노? 이러다 미끄러지면 사람 디지삐겠는데.”

주열은 불만스럽게 말했다. 말로는 태풍이 아니라지만 체감으로는 비슷하다.

이쯤 되는 바람이면 주변 컨테이너 하나가 날아가서 어디 처박혔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나마 차는 근처 높은 곳에 대 놨으니 다행이다.

“에이, 텃다, 텄어.”

날씨가 이래서는 퇴근하는 게 더 고생이다. 주열은 그대로 이곳에 누웠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이곳에는 늘 적당한 이불이랑 베게 정도는 챙겨 놓는 편이다.

“쌀벌하네.”

말 그대로 비가 살벌하게 온다. 이걸 맞고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한다면 그건 집이 너무 좋아서 미쳐버린 사람이거나 아니면 지금 있는 장소가 무너질까 걱정되는 사람 둘 중 하나일 거다.

주열은 한숨을 한번 푹 쉬고는 창밖을 내다봤다. 그렇게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구경하던 중, 주열은 눈을 가늘게 떴다.

“머고.”

눈이 좀 침침하긴 하지만, 확실히 동물의 모습이다. 비바람에 비틀거리는 모습이 묘하게 안쓰럽다.

“등치 보믄 갠가?”

멀리서 봐도 작지는 않다. 그러니 아마 고양이는 아닐 거다. 주열은 혀를 크게 찼다.

“하이고, 참 이 날씨에….”

평소라면 무시했을 거다. 평생 개나 고양이가 어디가 귀여운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이 바로 주열이다. 하지만,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정심이 드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이런 날씨에 밖에 방치하는 건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소리다. 알아서 비바람을 피할 곳을 찾는다면 더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날씨가 이래서는 탐색도 쉬울 리 없다.

“이 날씨에 저러믄….”

주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와줄까 말까 고민이 엄청나게 된다. 당장 앞뒤 안 가리고 도와줄 정도로 의지가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정도로 냉혈한 사람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근처에서 비틀거리는 꼴은 마음에 걸린다. 주열은 계속해서 그 개의 모습을 지켜봤다. 지친 건지, 아니면 바람에 밀린 건지. 어느 쪽이든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모습이다. 주열은 혀를 찼다.

그러던 중, 개로 추정되는 뭔가가 옆으로 쓰러졌다. 주열은 한숨을 푹 쉬고는 문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 꼴을 보고 무시할 정도로 냉정하지는 않다.

우산은 필요 없다. 이 날씨에 우산을 펼치는 건 그냥 우산 모양 쓰레기를 하나 만드는 일에 불과하다.

십여 초 만에 개 앞쪽까지 뛰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었다. 참, 살벌하다고 생각했지만 맞아보니 더하다. 주열은 불만스럽게 말했다.

“내가 니 때매 비까지 맞아야 되긋나.”

이제는 못 뛰겠다. 몸이 나이가 좀 들었는지 생각보다 무겁다. 그 와중에 털에 물 먹어서 묵직한 녀석을 들고 오려고 하니 생각보다 힘들다. 심지어 약간 버둥거리기까지 한다.

“안 잡아묵는다!”

주열은 확 짜증을 냈다. 도와주려고 하는데 이따위로 구는 녀석이 야속하다. 그냥 놓고 가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들지만, 비까지 맞으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두고 돌아가는 건 더 억울하다. 주열은 개를 멱살 잡듯 해서 물었다.

“골라라, 끌릴래? 들릴래?”

묘하게도 그 개는 그 이후로 얌전해졌다. 무거운 건 여전하지만, 얌전해져서 그런가 들고 갈 만했다.

“첨부터 그럴 것이지.”

주열은 쯧하고 혀를 찼다. 그리 길지도 않은 거리인데, 비바람을 맞으면서 묵직한 것을 들고 오니 그새 지쳤다.

한 사람과 한 개는 서로 지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상황이 훨씬 나은 건 당연히 주열이다.

“밥 묵고, 그 담에 비 그치면 니 내킬 때 나가그라.”

알아들을 리는 없지만, 아무렴 어떤가. 주열은 그렇게 말하고는 근처에 통조림이라도 없나 뒤적거리고는 하나 던져 줬다. 뚜껑은 완전히 제거했다. 그리고는 몸도 씻을 겸 해서 대량의 수건을 좀 챙기러 갔다.

그게 처음으로 그 녀석과 만난 날이었다.

* * *

일주일이 지나서, 주열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안 나가네.”

이전에 사람 손길을 타 본 적은 없어 보이는 들개 같은 녀석이니 비가 그치면 알아서 밖으로 나갈 줄 알았다. 문제는 개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가 적당한 때 되면 알아서 가겠지 싶었던 주열은 그냥 적당히 때 되면 밥을 던져주고, 근처에 빈 땅에 알아서 놀게 내버려 뒀다. 그리고 가끔 얼굴 좀 보고 하는 정도의 생활을 며칠 반복했다.

몰래 한 일은 아니다. 주변 직원들이 지나가다 잠깐 구경하기도 하고, 직원들이 시끌시끌해지니 사장도 한마디 하려다 자초지종을 듣고는 혀만 한번 차고는 넘어갔다.

물론 손님들에게 안 보이도록 빈터 구석에서 못 나오게 하라는 말 정도는 했지만, 그 정도다. 일종의 허가까지 받은 주열은 슬슬 인정하기로 했다. 그럴 때가 됐다.

이제는 자신이 이 개를 기르는 상황이다. 이래 되면 이름이라도 지어줘야 하는 건기. 그렇게 생각하던 주열은 고개를 저었다.

“마, 뭔 똥개가 이름이고. 니는 오늘부터 개다. 개.”

지금 이것도 정말 어쩌다 보니 생긴 일이다. 앞으로 다른 개를 키울 생각은 더 없으니 이런 구분하기 어려운 이름이라도 상관없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안 나가고 쭉 여기서 버티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언제 다시 말없이 떠나도 이상할 거 없어 보인다.

큰 정을 줄 필요 없는 이름이 좋다. 그래서 개라고 부르기로 했다.

“앞으로 나는 니를 개라고 부를 거다. 불만 있나.”

말을 그렇게 잘 알아들을 리 없는데, 주열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묘하게도, 개는 고개를 젓듯 움직였다. 이 녀석이 정말로 똑똑한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의한 걸로 치면 되겠다.

“좋아, 오늘부터 너는 개다.”

싫어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또 한참 시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주열은 말했다.

“이거 개 아인 거 같은데.”

이 사실을 깨달은 건 최근 일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중간중간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털이 좀 길고 거대하다. 사람의 말을 너무 잘 알아듣는다.

심지어 자신의 모습이 위협이 되는 걸 알고 있는지 주열 외에 다른 사람 앞에서는 어지간하면 보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항상 이 근처에 숨어 있다가 주열이 근처에 올 때만 밖으로 나온다. 머리가 좋은 건 좋은 일이지만, 개 치고는 너무 심각하게 똑똑한 거 아닌가.

확실한 건 주열이 아는 동물 중에는 이런 동물은 없다는 것뿐이었다. 잘 모르는 컴퓨터를 한 번 붙잡고 열심히 검색도 해 봤지만 더 궁금증만 커질 뿐이다.

한번은 답답했던 나머지 개를 붙잡고 그런 말도 했다.

“야, 개. 니 혹시 호랑이 아이가? 봐라, 아무리 봐도 니가 어케 개냐.”

주열은 그렇게 말하면서 개의 양 볼을 꼬집었다.

“아이지, 만약 글타 쳐도 호랑이는 아이겠지. 그 머꼬? 전에 테레빈가 어서 나와가꼬 장산범인지 뭔지 하는 걸 조사하러 댕기는 거 본 거 같은데.”

말도 잘 알아듣고 날래다. 어쩌면 이게 바로 그 인간들이 찾아다니던 장산범인지 뭔지가 아닐까.

처음에는 할 짓 없는 양반들이 하등 쓸데없는 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찾던 게 이런 녀석이라면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아예 몬 했는데…. 니 혹시 장산범 아니냐?”

주열은 진지하게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이제 별생각을 다 한다.

“하이고, 니가 진짜 장산범이면 그 옆집 사장놈 아들 잘난 척하는 거 꼴배기 싫은데 좀 혼내 줬으면 좋겠네. 안 그래도 저짝 아들놈이 대학물 먹고 사업 확장인지 뭔지 어쩌고 해서 골 아픈데.”

주열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사실, 상관없는 일이다. 개든 아니든 상관없다. 이쯤 와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 날은 그렇게 말하고는 적당히 저녁때까지 놀았다.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그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 *

주열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슬슬 때가 되어서 독립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조금 쓸쓸하기는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고.

“그래서 사실 호랑이 이야기했을 때 이짝은 좀 반가웠다. 솔직히 가가 지금 으디서 뭐 하는지 궁금하긴 했거든.”

주열은 조금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근데 거서 그라고 있을 줄은 몰랐지.”

하지만 시아의 듣고 보면 그게 다른 녀석일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그게 자신이 키우던 개가 아니라면 뭐겠느냐는 말이다.

“곤란한 이야기네요.”

시아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건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길 가다 동물 주운 이야기다. 훈훈하다면 훈훈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 동물이 너무 크고 강하고 똑똑한 녀석이었다는 점이다.

“이쪽에서 그 녀석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처음에 그걸 개라고 생각한 것처럼, 이 녀석도 그게 개과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고요.”

시아는 월이 쪽을 살짝 쳐다보면서 말했다. 즉흥적인, 적당한 이미지적 판단이기는 하지만 신빙성은 꽤 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습니다만, 대체로 개과 녀석들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충성심이 높은 편입니다. 기본적으로 무리생활을 할 줄 아는 녀석이 대부분이죠.”

문제라고 할 만한 부분은 바로 거기에 있다. 주열의 마지막 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그 녀석은 그걸 일종의 명령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해하기 쉬운 목표였을 겁니다.”

여러 의미로 그렇다. 타겟이 될 만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쉬운 일이고, 이 집단에 손해를 끼칠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상대 집단을 방해하는 것도 무리생활을 하는 집단에게는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다.

“마지막 말을 일종의 명령처럼 이해한 거겠죠.”

“그라믄, 독립한 게 아이겠네.”

주열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본 시아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전부 말씀하셨으니 이쪽에서도 솔직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사실 이곳에서 고의적으로 공사를 방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처음부터요.”

“결과만 놓고 보믄 틀린 말은 아이네. 내가 고의로 막 시킨 건 아니긴 한데.”

하지만 자신 때문인 것 같기는 하다. 주열은 인정했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순순하게 인정하는 모습만 봐도 작정하고 악의적인 마음을 품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은 알겠다.

다만, 아직 걸리는 것 자체는 조금 남았다.

“혹시 더 이야기할 게 있습니까? 다른 뭔가 저희에게 말하지 않으신 거라던가, 잊어버린 거라던가, 아니면 궁금하신 거 전하는 거라도 좋습니다.”

“아, 그라믄 하나만 묻자.”

주열은 시아 쪽을 똑바로 쳐다본 채 물었다.

“그 짝은 버틸만 한가? 아무래도 좀 미안한데.”

그 표정은 꽤 진실되어 보인다. 시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잘 모르겠군요. 외부인이라서. 다른 질문은 없습니까?”

“… 가는 잘 있나?”

“뭐, 안 잡히고 도망치는 것 보면 그런 것 같군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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