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9)
찾아가는 건 내일이다. 그렇게 결정되자마자 설이는 바로 연습에 들어갔다. 어차피 남는 시간을 굳이 비워서 뭐 하느냐는 태도다. 밖에서 보기에는 좀 유난을 떤다 싶기도 하다. 엄청나게 성실한 태도라는 건 부정할 수 없겠지만.
게다가, 이번에는 묘할 정도로 운전이 잘된다고 엄청나게 좋아하고 있다. 잘되니까 재미있고, 재미있으니까 잘하게 되는 선순환의 시작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월이는 무심코 말했다.
“되게 열심이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아는 턱을 괸 채 말했다.
“그렇지. 열심이구나. 그럼, 설이는 언제쯤 눈치챌까?”
“어라, 뭐를? 뭘 눈치채… 요?”
월이는 평소처럼 말하다가 눈치를 살짝 보고는 말끝에 존댓말을 덧붙였다. 시아는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됐다, 익숙하지도 않은 짓은 그만해. 그렇게까지 조심스러워 할 필요는 없어. 그냥 멀리서 왔는데 보자마자 그런 소리 들은 게 좀 서운했을 뿐이야.”
“진짜?”
월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놓고 갑자기 또 화내는 건 아니지?”
“아니다. 애초에 내가 별로 어른스럽지 못했다는 생각도 이제는 슬슬 들고 있으니.”
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본인 스스로 생각해도 겨우 그런 걸로 며칠씩이나 꽁해 있는 것도 너무 없어 보인다. 그러니 이 짓도 하루면 됐다.
"네가 그렇게 조심스러워하는 거 보면 그래도 자기가 잘못한 줄은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럼 여기서 더 질질 끄는 것도 멍청한 짓이 되겠지.”
당연히 기분이 좋은 건 아니지만, 일단 시아는 이 정도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걸 눈치챈 월이는 휴 하고 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안심한 듯한 모습이다.
“다행이다. 나 이대로 다시 올라갈 때까지 이런 분위기면 어쩌나 걱정했다니까.”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되는데.”
시아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월이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냐. 싫어.”
월이는 한번 부르르 떨고는 말했다.
“근데 설이가 언제쯤 눈치챌까 하는 건 뭘 말하는 거야?”
“뭘 말하는 거냐고? 남이 말해주긴 좀 그렇고, 그렇다고 그냥 보고 있자니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하는 그런 일이 하나 있다.”
시아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너한테는 사실 말해줘도 상관없겠지만, 너한테 알려주면 설이한테도 직접 알려주는 거랑 크게 다른 꼴이 아니라서 말이다.”
그러니 알려주기는 조금 그렇다. 시아의 말을 들은 월이는 입술을 살짝 삐죽거리기는 했지만 곧 납득했다.
“아, 뭐 그건 그렇겠네. 내가 생각해도 나한테 알려주면 설이한테도 알려주는 꼴이 될 것 같아.”
“그래. 그러니 이번에는 방금 한 조언 정도로 그치는 편이 좋을 거 같다.”
사실 아까 그 조언도 지금 장산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조언처럼 됐지만 정확히는 지금 설이의 상황에 대고 한 조언에 가깝다. 그걸 얼마나 빨리 눈치채는지는 본인 몫이 되겠지만.
시아는 자세를 조금 바꿔서 반대쪽으로 턱을 괴고는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그놈의 장산범이 더 중요한 문제지. 그래서, 목격자한테 질문을 하고 싶은데.”
“목격자한테 질문?”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아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너 말이다 너. 여기 너 말고 직접 본 사람이 누가 있어.”
월이는 눈을 깜빡였다. 애초에, 장산범 추적 자체가 본인이 도망친 방향까지 확인했기 때문에 시작한 일 아니었던가. 월이는 거기까지 떠올리고 난 뒤에야 뭔가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맞다! 나도 목격자였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어.”
“완전히 잊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에잇!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질문이 뭐야?”
“아아, 별 건 아니고.”
시아는 천천히 물었다.
“혹시 그 녀석,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냐?”
“어어, 글쎄? 정확히는 모르겠네?”
월이는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곤 기억을 잠시 더듬으며 말했다.
“잡히면 뒤진다고 하니까 도망치는 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기도 한데, 그게 그 말을 이해해서 도망친 건지, 아니면 그냥 도망친 건지 잘 모르겠어. 어쩌면 그냥 이해하지 못하고 도망친 걸 수도 있지.”
“하긴.”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주 잠깐 만난 것 가지고 그렇게 도망치는 상황에서 그 이상으로 자세히 파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다.
“그렇다면 다른 걸 하나 묻지.”
“다른 거?”
월이는 뭐 물어볼 게 있느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뭐 다른 거 물어볼 게 있나?”
“그야 당연히 있지. 감각적으로 대답해줘. 그건, 고양이과 동물 같았나? 아니면 개과 동물 같았나?”
“엉?”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 따지고 보면 개과에 좀 더 가까운 거 같기도 하고? 정확한 건 아니지만.”
막연한 감상이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기도 하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그럼 그 이야기, 나중에 설이한테도 전해 둬.”
“엑, 귀찮은데? 직접 말하면 안….”
거기까지 말한 월이는 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되겠네. 응 역시 내가 해야지.”
* * *
“미친 사람처럼 들릴 수도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호랑이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다음날. 시아는 아침부터 바로 그런 질문을 했다. 마침 정문 앞쪽에서 한 남자와 만났기 때문이다. 아직 잠겨있는 철문 안쪽에 있던 나이든 남자분은 벙찐 표정으로 되물었다.
“호랑이?”
“예. 호랑이 말입니다. 혹시 주변에서 호랑이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남자는 이딴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표정이다. 남자가 뭐라 더 말하기 전에, 시아는 이어 말했다.
“아니면 비슷한 거라도 좋습니다. 아니, 정확히 호랑이는 아니니 호랑이 비슷한 것이라는 표현이 더 잘 맞겠죠. 만약 짐작 가시는 게 없다면, 혹시 지금 한 이야기를 다른 분들께 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전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남자는 손을 저었다 시아의 말을 끊은 것이다.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표정이다.
“그만.”
역시 거절하나. 시아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무뚝뚝한 표정의 남자는 반대로 문을 열었다.
끼이익—
갑작스럽게 열린 문에 두 사람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머하노? 퍼뜩 안 들어오나?”
남자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황급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지금 이건 기회다. 남자는 두 사람이 들어온 것을 보고는 손가락으로 구석에 있는 사무실 건물을 가리켰다.
“저 짝에 가 있음 된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철문을 닫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고는 남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월이는 남자가 보이지 않을 거리가 되자마자 말했다.
“… 이딴 소리로 여기에 들어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는데.”
너무 쉽게 풀리니 오히려 황당하다. 이 안으로 돌아오는 게 꽤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들어올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게 되는 거였어?”
“그러게 말이다. 사실, 지금 이건 나중에 다시 올 때를 위한 작업을 치려는 거였는데.”
시아 역시 반응 자체는 비슷하다. 나중의 스트레이트를 위한 잽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 잽으로 게임이 끝나버린 기분이다. 좋긴 좋지만 당황스럽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자면 당황스럽지만 좋은 일이다.
“어쨌든 문제는 없다. 나중에 하려던 일을 지금 하면 되니까 말이야.”
게다가 눈치를 보니 그렇다. 저 사람은 장산범인지 뭔지에 대해서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 발뺌을 할 생각도 없고, 얼버무릴 생각도 없어 보인다.
“저분은 뭔가 알고 있다. 그리고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사실, 상황은 아주 좋은 셈이다.”
“그리고 우리를 바보 취급할 생각도 없어 보이고.”
월이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얼마든지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쫓아내거나 무시할 수도 있었을 정도의 말인데.”
어쨌든,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특이한 반응이긴 하지만 나쁠 건 전혀 없다. 시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곧 남자가 건물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렸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자가 이곳까지 돌아오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문을 닫고만 왔을 뿐이다.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근가.”
자신을 주열이라고 밝힌 남자는 대뜸 물었다.
“두 사람 내가 본 거 같은데. 맞나? 으제 정문 앞에서 봤는데.”
“앗.”
월이는 곧바로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시아 역시 조금 떫은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고 계셨습니까.”
“그거를 어케 못 보겠노?”
주열은 껄껄 웃었다.
“이곳 사람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 둘이 싸우는 구경도, 마 좋은 구경이 아이겠나.”
그렇게 조용하게 싸운 것도 아니다. 남의 영업장 앞에서 싸운 것이니 사실 이런 식으로 웃어 넘겨준다면 이쪽이 고마워해야 할 일이긴 하다.
다만 부끄러운 것만은 어쩔 수 없다.
“… 죄송합니다.”
월이는 드물게도 먼저 사과했다. 주열은 두 사람이 곤란해하는 기색을 곧바로 눈치챈 듯 화제를 돌렸다.
“마, 괜찮다. 쨌든 이런 말 하러 온 건 아이겠지. 그래서, 호랑이 관련해서 아시는 게 있냐꼬?”
곧바로 본론이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애초부터 짐작이 가시는 게 있어서 문을 열어주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짐작가는 건 있지. 있는데….”
주열은 웃던 표정을 조금 찌푸리고는 말했다.
“근데 하나만 묻자. 여기 대체 뭐하러 왔노? 진짜 그거 하나 물어보러 온 거가?”
“자세히 설명하면 좀 길긴 합니다만.”
시아는 상황을 간략하게 말했다. 지금 두 사람이 의뢰를 받은 운전면허 연습장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대체 무엇이 나타나고 있는지 설명했다.
“공사만 할라믄 그런다…. 거서 그런 일이 있었나.”
주열은 처음 듣는다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쪽 연습장 꽤 엄청난 이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밖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몰랐네.”
시아는 차분하게 물었다.
“혹시 짐작가는 일이 있으십니까.”
주열은 아무렇지도 않게 단서가 될 말을 했다.
“당연히. 대체 요즘 어딜 가 있나 했드니만….”
주열은 조금 찌푸린 얼굴로 혀를 한 번 차고는 말했다. 오히려 이 정도로 대놓고 정보를 흘릴 줄은 몰랐던 시아는 다시 한번 당황했다.
“네? 그렇다는 건.”
시아는 물었다.
“그게 혹시 이곳에서 키우던 녀석이라도 됩니까?”
“그기 쪼매 애매하다.”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키우는 녀석이라면 그냥 키우는 녀석이면 되고, 키우는 녀석이 아니라면 그냥 아니라고 하면 되는데 그게 무슨 소린가.
“그 자슥 여서 키우는 게 아니고 그냥 내가 주워가 키우는 놈이다.”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키우는 건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본인이 기르던 녀석이라고, 남자는 말했다. 월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되었다.
“주워요? 그런걸”
“진짜다.”
주열은 당당하게 밝혔다.
“그게 진짜 개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걸 주워서 키워요?”
“개 아인 줄 몰랐다. 첨엔 작았다. 그거.”
월이는 그대로 생각이 멈췄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소리같지만, 하도 당당하다 보니 거짓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강아지 시절부터 키웠다 뭐 그런 말입니까?”
주열은 찌푸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근데 그럼 가가 거 가 있는 게 내 탓일 수도 있다.”
“탓이요?”
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직접 보내기라도 하신 겁니까?”
“아이다. 그짝 놈들 싫어하는 건 맞는데 시킨 건 아이다. 근데 그놈이 너무 똑똑해가…. 거기다 내 말을 너무 잘 듣는 게 문제지.”
주열은 한숨을 쉬었다.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겠습니까?”
시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