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8)
설이는 눈을 의심했다.
한 시간 전, 설이는 월이가 벌벌 떠는 장면이 상상 속의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상상 속에서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장면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 설마 세상에 저런 광경이 실존할 줄이야.”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확실하다. 월이는 지금 눈치를 계속 보고 있다. 뭔가 큰 잘못을 했을 때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설이는 그 옆에 있는 시아 언니를 보고는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설이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별 것 아니다.”
시아는 월이 쪽은 쳐다도 보지 않으면서 말했다.
“그냥 내가 조금 잘못 살았을 뿐이야. 친하다고 생각한 동생한테 대뜸 의심부터 받을 정도라면 내가 잘못 산 게 분명하다.”
“아, 아니 내가 잘못했다니까?”
월이는 황급히 말했다. 하지만 시아는 그 사과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과를 들어줄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인다.
“미안하다구….”
거기까지 본 설이는 결론을 내렸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드리지 말자. 아무래도 월이가 뭔가 크게 잘못을 한 모양이다.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설이는 상황을 더 깊게 파고드는 건 그만뒀다. 그리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일단 만나서 반가워요!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요!”
“그래?”
시아는 부산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웃었다. 단순히 미소짓는 수준이 아니라 활짝 웃었다. 원래 월이에게 기대했던 반응을 이제야 봤다.
“나도 반갑다. 응, ‘누군가’와는 정말로 다른 반응이구나. 정말로.”
그 ‘누군가’는 뒤에서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본 설이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건드리면 안 되는 종류의 주제구나!’
대체 무슨 바보짓을 한 건지, 나중에 월이랑 둘만 남았을 때 물어보던가 해야겠다. 설이는 곧바로 주제를 돌렸다.
“반갑기는 한데, 여기까지 대체 무슨 일로 오신 거에요?”
“무슨 일이라.”
시아는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말해야 두 사람만 부산까지 내려갔는데 자신도 껴서 놀 수 있을까 싶어서 내려왔다고 조금 있어 보이게 전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전해 줄 말도 있고, 사무소 쪽도 당장 급한 일이 생길 기미는 없어 보이니 그냥 내려왔다. 너희들 일을 조금 도와주기도 할 겸 해서 왔지. 너희가… 아니, 네가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거든.”
“놓치고 있는 거요?”
설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게 있었나 싶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놓치고 있는 게 있다면 당연히 본인이 알고 있을 리 없다.
“그런 게 있나 보네요.”
“그래.”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지금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 그걸 벌써 알았어요? 어떻게요?”
월이는 조금 놀라서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누군가 덕분에.”
월이는 뒤에서 윽 하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너희를 가르친 건 이쪽이야. 파악하는데 오래 걸릴 일도 아니지. 그래서,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맞는 거지?”
“네. 실제로 아직 정확히 몰라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주일 안에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정확하게 봤구나. 아마 남은 건 시간문제일 거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희 정도면 정석으로 해도 언젠가 알아내겠지. 이제 믿고 맡겨도 될 정도니까. 하지만, 또 다른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이제는 슬슬 전해줘야 할 타이밍 같군.”
태주가 전해 달라는 말도 그런 종류의 말이다. 아무래도 정확한 문장으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용 자체는 엇비슷하다.
“사실 원래 이 조언은 다른 데 써먹으라고 해 주려 했던 조언이지만, 지금 상황에도 쓸 만하겠지.”
월이야 어쨌든, 원래 설이에게는 슬슬 해줄 필요가 있는 조언이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면, 거기에는 누군가의 의도가 있다.”
설이는 눈을 깜빡였다.
“의도요?”
“그래.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리고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면 누가 뭔가를 하고 있거나, 이미 해 뒀다는 말이지.”
예를 들어, 한 번 정도는 길가에 천원이 떨어져 있을 수 있다. 우연히 줍는 일도 일어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매일 같은 장소에 천원이 떨어져 있고, 그걸 매번 자신이 발견한다면 그런 건 우연일 리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을 게 분명하다.”
“그거야 그렇겠죠.”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걸 알아내려고 했는데요.”
그래서 장산범을 조사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하지만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너희 방식이 틀렸다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 차분히 증거를 모으고, 증거를 모은 다음 정답을 찾아내는 건 정석이라면 정석이거든.”
어떤 의미로는 좋은 방법이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확실한 증거가 나왔을 때 합리적인 의심만 한다면 어떤 의미로는 꽤 도덕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동시에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큰 시간과 비용이 드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도 증거 없이 의심하지 않는다면 정답을 찾는데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간이 든다.
“그러니, 이럴 때 사용하는 방법을 하나 알려주마.”
“어, 어떤 방법인가요?”
설이는 긴장한 채 말했다. 뭔가 엄청난 비법이라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사실 이전에 충분히 보여준 적 있는 방법이긴 하다만.”
시아는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정말로 한 마디다.”
누가 이득을 봤는지 확인해라.
그 말을 들은 설이는 엥 하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누가 이득을 봤냐고요?”
설이는 눈을 깜빡였다.
“어, 왜요?”
“왜냐고? 그놈의 범행동기라는 걸 가질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분하지 않은 증거로 의심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추려낼 수 있는 방법이거든.”
물론, 항상 성공하는 방법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고, 그 결과 본인도 예상치 못하게 일이 잘 굴러가서 이득을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관련 정도는 있을 확률이 아주 높겠지. 이번 경우도 생각해 보자. 누가 이득을 봤지?”
“이득이요?”
“그래.”
설이는 생각에 잠겼다.
“이득 본 사람은… 딱히 없지 않나요? 공사가 지연되면 누가 이득을 본단 말이에요?”
공사업체도, 명종도, 대학원생도 다들 손해만 봤다. 심지어 범인인 장산범조차 뭔가 딱히 이득을 챙긴 것 같지는 않다.
잠시 생각하던 설이는 눈을 찌푸린 채 말했다.
“결국 모두가 손해 아닐까요?”
“모두가 손해라.”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두’가 누구지?”
“으음, 공사업체나, 이곳 사장님이나, 이곳 직원이나… 여기 등록하려는 사람? 뭐 기타 등등이요?”
“그래, 뭐 그렇겠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생각하는 범위 안에서는 확실히 손해를 본 사람들밖에 없겠구나. 그렇다면 확실히 그 안에는 범인이 없다고 봐야겠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 밖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렇다면, 이곳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것 자체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어어….”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설이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시아는 슬쩍 웃었다. 설이는 처음부터 이런 의심을 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순하다.
“이곳에서 계속해서 손실이 나면 누가 이득을 볼까? 공사가 지연되고, 시설이 계속해서 낙후되어있는 상황이면 누가 이득을 보느냐는 말이야.”
생각보다 훨씬 더 간단한 결론이 나온다.
“어떤 운전연습장이 장사를 못 한다면, 어느 쪽이 이득을 볼까?”
답은 뻔하다.
“언니는 설마….”
설이는 눈을 크게 떴다.
“밖에서 지금 일부러 영업 방해라도 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운전면허 연습장에서요?”
“확실하게 그렇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다. 그렇게 단언하는 건 당연하게도 불가능하거든.”
시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 확실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소한, 아직은 증거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심증이 조금 가는 건 사실이거든.”
시아는 월이와 만나기 전, 택시기사님에게 그렇게 부탁드렸다. 이 장소에서 가장 외진 곳에 있는 운전면허 연습장에 데려다 달라고.
“분명히 그건 실수다. 그냥 잘못 말한 거지. 순간적으로 가장 낡은 장소가 곧 가장 외진 곳일 거라고 착각했거든.”
그 둘이 다르다는 건 물론 안다. 그저 순간적인 착각에 불과하다. 보통 외진 장소는 낡기도 했으니 나온 말실수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곳에 도착해 버렸지.”
기사님은 실수하지 않았다. 확인을 한번 해 줬다면 어땠을까 싶긴 하지만 어쨌든 잘못을 따지자면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그런데, 애초에 나는 왜 그곳에 도착했을까?”
시아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운전면허 연습장이 여러 개 있기 때문이지. 물론 내 바보 같은 실수 때문이지만, 이 근방에 있는 이런 장소가 하나뿐이었다면 기사님이 잘못 데려다줄 리 없었겠지.”
심지어 그 두 연습장의 거리는 꽤 가깝다. 두 사람이 차 없이 걸어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만큼 말이다.
“이쪽과 저쪽은 서로 경쟁자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고 나서 생각하면 말이 되는 부분이 꽤 생기지. 그렇지 않니?”
왜 산에 존재하지도 않는 호랑이가 이곳에 나타나는가. 대체 왜 이곳 근처에서만, 그리고 굳이 공사를 하려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 호랑이 같은 것이 나타나는가.
“그건… 그건 좀 너무한데요.”
설이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월이야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 설이는 나름대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그렇게 행동했다는 말인가요? 말도 안 돼요!”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한 일인지,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 고려해 보기 전에, 그런 일 자체를 상상도 해 본 적 없다.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이런 짓을 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한 것이다.
설이의 반응을 본 시아는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 안 되지? 안 될 이유라도 있나? 공사가 하루 지연될 때마다, 잃어버리는 손님들이 꽤 많이 있을 거다. 그게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몰라도, 원래대로라면 이쪽에서 받아야 했던 손님을 저쪽에서 많이 데려갈 수 있었을 거야. 이 근방에서 이 운전면허 연습장이 오래 영업을 못 할수록 이득을 보는 건 그 집뿐이라는 말이다.”
“그, 그건….”
설이는 눈이 흔들렸다. 일단 부정하고 봤지만, 그렇지 않다는 근거는 별로 없다. 시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말했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의심해야지. 그게 누구라도 말이야.”
“그러니까 언니는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누군가가 일부러 공사를 방해하기 위해서 장산범을 보낸 거라고?”
설이는 눈을 찌푸렸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은, 사실 꽤 기분이 나쁜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했을 거라는 확신은 아직 없다. 그저 심증에 불과해. 하지만, 명백한 의도가 있는 행동이 계속 벌어지 있는 상황인데, 어느 한쪽이 이득을 계속 보고 있다면 최소한 그쪽에서도 짐작이 가는 구석이 한두 가지는 있겠지. 그렇지 않겠어? 심지어 월이가 장산범이 도망친 방향으로 향해 보니 그 운전면허 연습장이 있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아예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야.”
마지막까지 시아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쪽 사람들 중 누군가가 관련이 있을 거다. 아주아주 높은 확률로. 마음 같아서는 오늘 당장 물어보러 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밤이 늦었어. 그러니 내일 낮에 한번 가서 물어보는 편이 좋겠지.”
시아는 월이 쪽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네가 내일 나랑 같이 갔다 오자.”
“엑?”
시아는 한없이 차가운 눈으로 월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뭐냐, 나처럼 의심스러운 사람이랑은 함께 가기 싫다는 거냐?”
“아, 아니, 당연히 가야지.”
월이는 황급히 말했다.
“내가 앞으로는 잘할게! …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