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6)
비행기는 참 좋다. 시아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점심 넘어 소식을 듣고 나서 급히 준비해서 출발했지만, 해가 지기 전에 내릴 수 있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아마 몇 시간 안에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다.
내심 들뜬 마음을 감춘 채, 시아는 그대로 쭉 걸었다. 기억대로라면, 이 앞에서 택시를 탈 수 있을 거다.
“역시.”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글바글하다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골라서 탈 수 있을 정도의 수는 된다. 시아는 적당히 앞쪽 택시 중 하나를 골라 탔다.
“관광객이가?”
택시기사는 대뜸 물었다. 퉁명스럽게도 들리는 말투지만, 사실 이 정도 말투만 되어도 꽤 친절한 편이다.
“비슷합니다. 마냥 관광만 하러 온 건 아니긴 합니다만.”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목적지가 어데고?”
“정확한 이름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그걸 정확히 듣지 못했다. 시아는 살짝 생각하다 말했다.
“OO지역에서 가장 외진 운전 연습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외진 곳?”
기사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아니 스울 아가씨가 와 그런 곳에 가나? 관광으로 왔으면 볼 곳이 천지삐까린데.”
“뭐, 그럴 일이 있습니다. 관광도 관광이지만 해야 할 일은 하고 관광하러 놀러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아는 적당히 받아넘기고는 말했다.
“바보 두 녀석을 만나러 가야 하거든요.”
* * *
명종은 연락이 닿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헐레벌떡 나타났다.
“벌써 호랑이를 만나셨다고요?”
“어라? 오셨어요? 직접 오시는 건 내일쯤일 줄 알았는데요.”
설이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명종은 역으로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내일이요? 제가 그렇게 말했던가요?”
“어라?”
설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해 보니 내일 온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저 자세한 건 나중에 직접 가서 듣겠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해가 곧 떨어질 것 같긴 하지만 또 그렇게까지 늦은 시간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이런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기도 하고요.”
“그건 그렇죠.”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종은 주변을 살짝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원래 다른 한 분이 더 계시지 않았나요?”
“걔는 지금 조금 다른 곳에 가 있어요. 다른 할 일이 있거든요.”
명종은 조금 의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놀라서 도망갔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아무래도 호랑이를 만난 사람이 다들 그랬다 보니….”
“… 뭐라고요? 걔가요? 호랑이를 보고 도망을 간다고요?”
설이는 잠시 상상해 봤다. 월이가 호랑이를 보고 다치거나 겁먹는 광경이라.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런 장면이 상상 자체가 안 간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거기다 도망칠 거면 저도 같이 도망쳤겠죠. 그렇지 않나요?”
설이는 명종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고작 호랑이 비슷한 거 하나 정도에 도망칠 정도의 사람이 여기 남아 있었을 리가 없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 역시 그렇겠죠.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명종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설이는 살짝 뾰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어요.”
명종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 갑자기요? 그거 제가 뭐부터 들을지 골라야 합니까?”
“어, 아뇨. 그런 의미는 아니고 단순히 진행 상황 보고하려고 한 거였는데요.”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상황이 조금 웃기다. 설이는 풋 하고 웃고는 말했다.
“음, 하지만 직접 고르셔도 상관없겠네요. 그럼 한 번 골라 보실래요?”
명종은 잠깐 고민했다. 사실, 뭐부터 들어도 크게 상관이 없긴 하다. 명종은 적당히 골랐다.
“그럼 나쁜 소식부터 들을까요? 아무래도 긍정적인 점을 나중에 들어야 기분이 좀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역시 그렇죠? 저도 듣는다면 나쁜 소식부터 듣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설이는 살짝 웃고는 말했다.
“나쁜 소식부터 말씀드리자면, 아직 그게 어디에 사는지, 그리고 왜 이곳에 나타나는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네요.”
명종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 전혀요? 짐작이 가는 곳도 없어요?”
“당장은요.”
설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사실 저희 이전에 나왔던 결론도 그런 거였잖아요? 저희도 같은 결론을 내렸어요. 산속에 호랑이 같은 건 없어요. 그리고 산을 제외하면 호랑이가 살 만한 장소는 없어 보이고요. 아, 생각난 김에 지금 여쭤보는 건데, 혹시 그럴 만한 장소가 생각나는 곳이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주변 지리 같은 건 저희보다 더 잘 아실 거라.”
명종은 눈을 조금 찡그린 채 말했다.
“아뇨. 전혀 없는데요. 있다면 처음부터 말씀드렸겠죠.”
“역시 그렇죠? 저희도 비슷해요. 대체 어디에 그런 게 숨어있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설이는 어렵다는 듯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리고,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어요. 다치거나 죽거나 실종된 사람이 없는 걸 보면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한 게 아닌 건 분명해 보이는데 말이에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은 아니라는 건 그나마 낫지만, 그렇다고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을 잡아먹을 것도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인데, 그 이유는 전혀 짐작이 가는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 사는 녀석이고 뭘 하고 싶은 녀석인지를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건의 해결은 아직 멀었다.
“그런가요. 진전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네요.”
명종은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도 않고 말했다. 처음부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불렀으니, 처음부터 아주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지만 역시 이 사람들도 실패인가 싶다.
그나마 이 두 사람이 지금까지 부른 사람들 중 가장 저렴한 가격에 써먹을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다. 명종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설이가 말했다.
“네? 아닌데요?”
“뭐가요?”
“진전은 있었어요. 당연히 말이에요.”
설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사는지, 뭐 하려고 나타난 건지 모른다고 말씀드린 거지 그게 뭔지 모른다는 말씀은 안 드렸잖아요?”
명종은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소식도 있다고 말씀하셨죠.”
“네, 당연하죠.”
설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장소에 나타난 ‘호랑이’가 정확히 뭔지 알 수 있었거든요!”
“뭐라고요?”
명종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사실이라면…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걸 알아낸 것 아닌가요?”
설이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렇죠? 꽤 기분 좋은 시작이죠? 그게 좋은 소식이에요!”
명종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그것부터 말씀하지 않으신 겁니까?”
“네? 왜 이것부터 말하지 않았냐고요? 그야, 안 좋은 소식부터 말씀해 달라고 하셔서요?”
설이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진심으로 그 이상의 이유는 없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 표정을 본 명종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 제가 이런저런 조언을 할 만한 그런 입장이 아니기는 합니다만.”
만약 명종이 이전까지 한 실패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그냥 당연히 알아내야 하는 걸 알아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자신들이 얼마나 일을 잘 해냈는지에 대해서 충분한 티를 내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명종은 살짝 혀를 찼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한 것 치고는 태도가 너무 천진난만하다. 좋게 말하면 순진하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태도가 아직 너무 어리다.
“네?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닌데요?”
여전히 그렇게 잘난 척할 일인지 의문인 듯한 표정이다. 명종은 스스로가 조금 바보 같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말씀드리죠. 다른 사람들은 그게 뭔지 짐작도 못 했습니다. 그나마 여러분을 추천해 주신 그 한 분만 ‘뭔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또 절대로 평범한 동물 같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뿐이에요. 이번에 처음으로 진전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명종은 이 분야에 대해 아는게 없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태도가 조금 프로답지 못할 뿐이다. 실력은 충분하다.
소위 말하는 ‘진짜’다.
“본인들이 한 일이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라는 건 알아주세요.”
명종은 거의 한숨을 쉬듯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그 정체에 대한 이야기를 못 들었네요. 혹시 그 ‘호랑이’의 정체가 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애초에 진짜 호랑이는 아닌 거죠?”
“네.”
설이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애매하긴 하지만 진짜 호랑이는 아닐 거에요.”
“애매하다고요?”
명종은 고개를 갸웃했다. 호랑이면 호랑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애매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그게 애매할 수 있는 문제인가요?”
“그게, 들으시면 애매하다고 생각하실 거에요. 지역이 지역이니까요. 다른 것일 리가 없으니 말씀드리는 건데요,”
설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근처에, 장산이라는 지역이 있죠?”
“네.”
명종은 그렇게 대답한 뒤 눈을 잔뜩 찌푸렸다. 설이가 꺼낼 말이 뭔지 조금 짐작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마요? 그게 말이 되나요?”
설이는 씩 웃었다. 흔한 반응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꺼낼 수 있는 마법의 레퍼토리가 하나 있다.
“어, 이제 와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애초에 호랑이도 말이 전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다들 할 말이 없어 한다. 명종 역시 순간적으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설이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심지어 이름에 범 자도 들어가요. 한번 떠올리고 나면 너무 그럴듯하게 보이지 않나요?”
명종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 장산범.”
* * *
“좋아, 이쪽으로 사라졌었지?”
월이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앞으로 향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이는 장산범의 진짜 굴을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이미 월이는 시동이 걸렸다.
“내가 그 녀석 꼭 잡고 말거다. 사람 얼굴만 보고 튀어?”
게다가, 이번에는 산 같은 걸 뒤져 볼 필요도 없다. 애초에 장산범은 이름이 장산범이기는 하지만, 진짜 산에서 발견된 녀석이 아니다. 그러니 월이는 한번 속는 셈 치고 그냥 길을 따라 쭉 뛰었다. 녀석이 중간에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면 무의미한 행위가 되겠지만, 어차피 이런 건 끈기 싸움이다. 일일이 실망할 것도 없다.
하지만 월이는 곧 눈을 찌푸렸다.
“이거 뭔가 장난 같은 건가?”
앞으로 쭉 달린 끝에 나온 것은 운전 연습장이다. 그래도 이곳은 꽤 시설이 깔끔해 보이고, 무엇보다 실제로 영업 중인 장소다. 월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여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 있을 리는 없어 보인다. 그 장산범 녀석은 중간에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월이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
“어라?”
그리고 상대편 역시 월이를 발견했다.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니, 내가 할 말이거든?”
월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니가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잠시 생각하던 월이는 곧 큰 소리로 말했다.
“설마! 언니가 범인이었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