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51화 (251/269)

외전- 2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5)

“와, 씨 이걸 놓쳤네.”

월이는 허탈하게 말했다. 저렇게 덩치는 산만 해 가지고 그런 식으로 곧바로 튈 줄은 몰랐다.

“바로 쫓아가면 잡을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월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최대 속력을 기준으로 하면 자신이 조금 더 빠르겠지만, 상대방 역시 충분히 빨랐다.

심지어 뭐라 소리를 친 순간 도망치는 속도는 더 빨라졌으니, 출발이 늦은 순간 이미 붙잡을 길은 없었던 셈이다.

“잡히면 뒤진다는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나….”

월이는 잠깐 반성했다. 물론, 진지한 반성은 아니다. 월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다음에는 잡히면 뒤지지는 않는다고 말해야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월이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망가진 자신의 침대 비슷한 것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야. 다음에 잡으면 최소한 이 침대처럼은 만들어 놔야겠어.”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침대를 그 호랑이 같은게 망가트린 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침대도 아니다.

월이는 완벽하게 쓸데없는 복수심을 불태우며 침대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월이가 씩씩대며 침대 비슷한 것과 씨름하는 사이, 설이가 나타나서는 물었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는 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뭐 별 건 아니고… 호랑이 같은 녀석이 나왔어.”

월이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

“그래? 별거 아닌… 뭐라고?”

고개를 끄덕이던 설이는 황당한 표정이 되어서는 말했다.

“그게 어떻게 별게 아니야?”

“별거 아니지 않아? 어차피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잖아. 오늘 안에 일어나기로 예정된 일이 오늘 일어났으니까 사실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닌 거 아냐?”

월이는 천연덕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설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해 보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 그런가?”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가 그런 거랑 만나는 게 그닥 위험한 일도 아니고.”

월이 입장에서는 지루한 그 상황이 더 무섭다. 앞으로 몇 시간 더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등에 소름이 돋을 정도니, 사실상 그게 호랑이보다 무섭다.

“예상하지 못한 건 그거야. 경차만 한 녀석이 내 눈만 보고 바로 도망가는 그 상황 말이야. 에잇! 호랑이답지 못한 녀석!”

월이는 투덜거렸다. 이번에 잡지 못했으니 다음에 또 이 짓을 반복해야 한다는 점이 특히 짜증이 난다.

“잡으면 정신머리를 고쳐 주겠어!”

“어어… 호랑이답다는 게 대체 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대체 그게 어떤 동물이었어? 호랑이 같은 모습이야? 아니, 동물이긴 한 거야?”

설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 월이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으음, 일단은 동물이지. 당연히 호랑이를 닮았고. 하지만 당연히 평범한 동물은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너희 할아버지 같은 느낌의 동물이겠네. 여러모로 훨씬 약해 보이지만.”

어떤 종류의 괴담인지는 아직 자세히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그건 분명히 그런 종류의 동물이다.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아예 상상 속의 동물은 아니야. 용 수준으로 창작된 동물은 아니고, 그냥 실제 동물을 바탕으로 해서 조금 변형된 수준의 괴물인 것 같아.”

어쨌든, 가장 비슷한 동물을 꼽자면 그건 확실히 호랑이가 맞다.

“지금까지 나온 증언이랑도 일치하는 것 같고 말이야.”

“잘됐네!”

설이는 방긋 웃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종류의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지만, 실물을 목격했으니 남은 건 시간문제다.

“이제 그럼 그게 정확히 뭔지만 알면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설이는 의아한 듯 물었다.

“나머지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 아냐?”

“일단 지금까지 나온 것만 보면 그렇긴 하지.”

무언가가 실제로 있었다. 호랑이로 착각할 만한 어떤 것이 이 근처에 실제로 살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고 놀란 것이다. 그런 결론을 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그 녀석을 찾아서 다시는 공사를 방해할 수 없도록 만들면 명종의 부탁은 훌륭하게 해결할 수 있고, 설이는 공사가 다시 시작되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계속 운전 연습을 할 수 있고, 자신은 근처에서 심심풀이하면서 놀다가 돌아가면 되는, 그런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될지도 모른다.

“으음, 이게 결과적으로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닐 수도 있긴 할 텐데 말이야.”

월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하나 남았다.

“대체 그만한 게 어디에 숨어 있을 수 있었던 걸까?”

산을 뒤져 봤다. 하지만 산속에서 그런 커다란 동물이 살고 있는 흔적 같은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직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다.

“어어, 음….”

설이는 말문이 막힌 듯 멈췄다. 월이는 계속 말했다.

“내가 공부는 잘 안 했어도, 동물들은 나름 잘 알아. 나도 나름 전문분야 같은 거 한둘은 있어야 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그런 동물은 서식지가 필요해. 생각해 봐, 거의 원래 동물의 형태가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무기조차 작은 연못 하나 정도는 필요로 했어. 동물을 기반으로 한 괴담은 그런 식으로 원래 동물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이지.”

그런 관점에서, 이 산에 호랑이의 흔적이 없다면 그 동물이 살아갈 만한 거주지는 없다고 봐야 한다.

“만약 그 동물이 신이랑 거의 같은 수준으로 격이 올라간 거라면! 이 산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으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월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물론 날 보자마자 그렇게 바로 도망간 녀석이 그런 대단한 녀석일 리가 없지.”

대체 어디에 사는 어떤 녀석인가. 마주치고도 이 의문이 풀리지 않을 줄은 몰랐다.

“대체 뭐 하는 녀석이야? 그건?”

월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철저하게 파헤쳐 주겠어!”

사실은 혼자 외롭고 심심해서 그런 거라는 말은 하지 않은 채, 월이는 큰 소리로 말했다.

* * *

몇 년 정도 지났어도 사무소는 크게 변한 게 없다. 물론 변하지 않아서 좋은 곳이긴 하지만. 시아는 느긋하게 의자 쪽에 앉아서 햇볕을 쬐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두 사람을 못 본 것 같은데… 그 둘은 어디로 갔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어라, 걔네 누나한테 말 안 했어요?”

태주는 시아 쪽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걔네 공짜로 운전연습할 만한 곳을 찾았다고 부산까지 내려갔잖아요. 못 들었어요?”

“못 들었는데. 그런데, 뭐? 부산까지 운전 연습을 하러 간다고?”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는 눈을 조금 굴리다가 되물었다.

“내가 잘 들은 게 맞나? 운전 연습을 하러 부산까지 갔다고?”

“네.”

태주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누나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아요.”

시아는 잠시 다채롭게 표정이 변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 걔네 바보냐? 하필이면 운전 연습을 하러 부산까지 간다고?”

“글쎄요.”

태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한 명은 아는 대로고, 한 명은 지금 시야가 꽤 좁아진 상태일 거라서 말이에요. 어쨌든, 면허 시험도 아예 거기서 보고 오겠다던데요.”

“대체 왜 그런 짓을….”

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어쩌겠어요. 본인들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태주도 처음에는 지금 시아가 한 것과 거의 비슷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자기들이 좋다는데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말을 하기도 그렇다.

“아침부터 유난히 조용하다 싶었더니.”

시아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공짜 운전연습장이라고? 그게 정말 이유 없이 공짜일 리는 없으니, 분명 뭔가 일을 해결해 주는 대가로 거기까지 내려간 거겠지.”

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부산까지 출장가서 일하는데 대체 그게 어떻게 공짜란 말이냐.”

“정확히 제 생각이랑 똑같네요.”

태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거기에 조금 더하면, 친구가 알아봐 준 일이라 더 그럴 거에요. 아무래도 친한 친구랄까, 학교에서 만난 사정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니까요.”

“하긴, 그런 애가 부탁하면 쉽게 거절할 수 없긴 하겠지.”

시아는 그래도 여전히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다. 태주는 대신 변명하듯 말했다.

“뭐, 그래도 간 김에 부산 관광까지 한다 치면 나름대로 괜찮은 딜 아닐까요?”

“그래서, 친구가 관광비는 내 준대냐?”

“글쎄요.”

태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까지는 들은 게 없는데요.”

“그럼 못 받겠군. 하긴, 두 사람이 나름 그 녀석에게 빚진 게 있을 테니 그런 딜을 받아들인 거겠지. 그럼 그 정도는 해 줘도 될까.”

시아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벌써 일어나요? 평소 같으면 거기서 한참 더 앉아 있었을 텐데요?”

태주가 하는 말을 들은 시아는 살짝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둘 다 부산에 가 본 적은 없을 테니, 한 명 정도는 경험자가 있는 편이 좋겠지 싶어서 말이다.”

“뭐 그렇긴 하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부산 놀러가고 싶다는 말을 굉장히 돌려서 하시는데요.”

“돌려서 말했다면 너도 돌려서 말하는 게 예의 아니냐?”

시아는 살짝 얼굴이 붉어진 채 말했다.

“거, 거기다 그 두 사람이 걱정되는 것도 거짓말은 아니야. 아무래도 부산은 이곳에서 꽤 먼 장소니까 말이야. 제주도를 제외하면 가장 먼 도시 아니겠냐.”

“누가 누굴 걱정해요?”

태주는 월이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걔가 우릴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 그건 그렇지.”

태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식으로 변명할 필요 없어요. 가끔 그런 식으로 놀러 가는 거 가지고 제가 뭐 인사고과 반영이라도 할 거 같아요? 애초에 누나가 저한테 잠깐 어디 가는거 허락받을 이유도 없다고요.”

바쁠 때 그러면 좀 서운하기야 하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널널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바쁠 때 바쁘고, 한가할 때 한가한 게 이런 일의 매력 아니겠는가.

“느긋하게 다녀오세요. 정 급하면 그때 따로 연락 드릴 테니까 그때 비행기라도 타고 돌아오면 되지 않겠어요?”

“너랑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죄다 읽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단 말이지.”

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살짝 미소지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다녀오마.”

“아아, 맞다. 한 가지만요.”

태주는 씩 웃고는 말했다.

“혹시 가면 설이한테 한 마디만 전해 주시겠어요?”

태주는 입을 열었다. 전부 들은 뒤 시아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 그게 한 마디냐? 너무 길지 않아?”

“아니, 그게 말하다 보니 좀 길어져서… 하지만 슬슬 들려줘야 할 말 아닐까요? 부산까지 내려갔는데도 눈치 못 채면 밖에서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네가 한 말은 너무 길단 말이지… 그래도 의도는 이해하고 있으니 적당히 전해 주마. 뜻만 통하면 되는 문장이니.”

“어라, 그럼 문자로 똑같이 적어 드릴까요?”

“하지 마.”

시아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태주 나름의 농담이라는 건 알겠지만, 영 재미가 없다.

“잘 다녀와요.”

태주는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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