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50화 (250/269)

외전- 2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4)

동네에서 가장 높은 산, 그리고 그 산에서 가장 높은 나무. 그 나무 위에서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기분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멀리 내다보기 위한 것이다.

“없네.”

월이는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주의 깊게 봐도 멧돼지 이상으로 큰 동물은 보이지 않는다. 월이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이번에는 기분이 나빠서 한 행동이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물론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뭔가 나올 확률이 아주 낮으리라는 사실 정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월이가 이곳까지 와서 대충이나마 훑어본 이유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확인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그런 장인의 마음가짐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호랑이를 한 번쯤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호랑이는 두 사람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월이는 말할 것도 없고, 설이조차 호랑이 한 마리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두 사람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걱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두 사람에게 호랑이는 전혀 무섭지 않다.

월이에게 호랑이를 보고 싶다는 건, 그러니까 근처에 사는 아주 멋있는 고양이를 보러 가는 감각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월이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

“겁먹은 사람들한테는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어.”

다른 사람들에게 호랑이가 위험하다는 건 당연히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야생에서 살아가는 호랑이를 보고 싶었다.

만약 커다란 공룡이 아직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위험성과는 별개로 한 번쯤 직접 보고 싶은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하지만, 역시 없는 건 없는 법이다.

“뭐, 됐어!”

월이는 한숨 한 번으로 아쉬움을 깔끔하게 털어내고는 말했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다.

월이는 그대로 나무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래도 저쪽은 뭐라도 찾았겠지!”

느긋한 마음으로, 월이는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 * *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월이는 말했다.

“호랑이는 없었어.”

“전혀? 아예 흔적조차?”

설이는 의아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애초에 멧돼지조차 없는 산이야. 호랑이가 살기에는 먹을 것도 없고, 좁아. 굳이 대학원생처럼 학술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옆에 있는 산에는 호랑이가 없다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을걸?”

“그래?”

월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이 영 석연찮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으음, 너를 의심하거나 하는 건 아닌데 말이야.”

설이는 월이를 전적으로 믿는다. 월이마저 뭔가를 놓칠 정도라면, 그건 월이를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누가 와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상해서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 된다.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고? 대체 뭐가?”

“사실 방금 전까지 호랑이나 그 비슷한 게 혹시라도 그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거든.”

“우리 호랑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 아니었어? 처음 갈 때부터 별 기대 없었잖아?”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호랑이는 없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월이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설이는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로 없었단 말이지?”

진지한 표정의 질문이다. 월이는 대체 왜 그딴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없었어! 애초에 처음부터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으니 진짜 호랑이가 있을 확률은 아주 낮을 것 같다고!”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지만, 사실 신체능력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호랑이는커녕, 건장한 성인 남성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몸무게의 개 정도만 나타나도 대부분의 사람은 도망가야 한다. 한 사십 킬로그램 정도 하는 정도의 짐승도 사람에게 큰 부상을 입히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비가 있거나, 훈련이 된 사람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하다못해 개도 그런데 호랑이라면? 아니면 최소한 호랑이랑 착각할 정도의 크기를 가진 동물이라면? 그럼 보는 사람이 겁을 먹어서 조금 오차가 있다 쳐도 최소한 백킬로그램 중반, 만약 보는 사람들이 정확히 봐서 정말로 호랑이만 하다면 이백에서 삼백 킬로그램이 넘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하잖아!”

게다가 이런 지역 공사일을 하는 사람이면 큰 멧돼지 정도와 만나 본 적은 있을 테니 그것보다는 훨씬 크다고 생각해야 할 거다.

그런 의미에서, 사장의 판단은 안전한 선택이다. 사람 많은 공사 현장에 갑자기 그런 게 나타난다면 한두 사람이 죽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이곳에서 할 만한 공사라는 건 대부분 평지 위주의 작업이니 더 그렇다.

“그리고 그런 게 아니더라도 내가 보고 왔어. 진짜 호랑이는 확실히 없어!”

월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호랑이가 없는 것은 월이 입장에서는 약간 아쉬운 정도에 그치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실수했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심지어 나 혼자만 그런 결론을 내린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미 대학원생들, 그리고 보영이가 낸 결론이다. 거기에 월이까지 확실히 결론을 냈다. 셋이나 조사를 하고 셋 다 같은 말을 했다면 신빙성이 꽤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

설이는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렇다구!”

월이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는 반대로 흐린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이곳에서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거야.”

설이가 세운 가설은 그런 거였다.

실제 호랑이가 이런 곳에 있을 리 없다. 그리고 다친 사람도 없다. 하지만 명확하게 같은 것을 목격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하필이면 공사 견적을 내는 등의 일을 할 때만 이곳에 나타난다. 아무리 그래도 호랑이가 나타나서 이런 일을 한다고 보긴 이상하다.

그렇다면, 그 일관된 모습의 호랑이 환상을 보여주는 어떤 장치 같은 것이 이 주변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게 설이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그런 건 없었어. 특별히 뭔가 이상한 장치 같은 게 숨어 있지는 않았단 말이야.”

열심히 찾았지만 역시 그런 건 없었다. 그게 결론이다. 그 말을 들은 월이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어라? 네가 못 찾았다고?”

“못 찾았는지 아니면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럴듯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어. 그래서 방금 전에 그렇게 말했던 거야.”

월이는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네가 못 찾았으면 없는 거잖아. 정말로 아무 흔적도 없다는 말이지?”

“엄청나게 미미한 흔적들은 있어. 마치, 그냥 별거 없이 이 주변을 지나가기만 한 정도로 미묘한 흔적들 말이야.”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그런 아주 작은 종류의 흔적이다. 이곳에 뭔가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고 볼 수 없는, 그냥 정말로 뭔가 지나가다가 흘린 수준의 사소한 흔적이다.

“그래서 생각했지. 내가 세운 가설이 틀렸고, 이 주변에 호랑이 같은 게 있는 거 아닐까? 하고.”

문제는 월이도 비슷한 결론을 가진 채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데 있다. 두 사람 다 상대편이 뭔가 증거가 될 만한 걸 찾아왔겠지, 하는 결론을 냈다는 말이다.

“… 그럼 확실히 이상한 일인데.”

월이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할 일은 똑같지.”

그놈의 호랑이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없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있는 법이다.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월이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엄청 지루하겠네.”

* * *

아마도 명종에게 이 사건은 아마 세기의 난제일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이다. 위험한지 아닌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지금 이 사건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저 조금 귀찮은 정도의 사건에 불과한 것이다. 설령 지금처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도 그렇다.

만약 실제로 호랑이가 있다면, 걱정할 것 없다. 월이는커녕 설이만 해도 호랑이 정도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호랑이가 아니라 그저 고려하지 않았던 다른 이상한 것이 있는 상황이라면, 역시 걱정할 것 없다. 아직 제대로 된 흔적은 찾지 못했지만 실물을 보고 나서 그게 뭔지도 모를 정도의 초보 시절은 두 사람 다 지났다. 일이 어떻게 풀리든, 한번 실물을 본다면, 그다음부터는 다시 막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두 사람에게 있어 호랑이보다 무서운 건 다른 부분이다. 예를 들면, 면허 시험에 또 떨어진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더 이상 떨어질 수는 없어!”

그래서 설이는 그 말 한마디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눈앞에 없는 호랑이보다는, 그쪽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월이는 혼자 남았다.

“심심해.”

처음에는 아직 둘러보지 않은 곳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이곳에 방치되어있는 여러 물건들 중 그럭저럭 쓸만해 보이는 책상과 의자 등등을 꺼내와서 나만의 침대처럼 활용하는 것까지도 좋았다. 하지만, 그게 좋았던 것도 한 십 분 정도까지의 일이다.

“질렸어.”

월이는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옆에 설이라도 있으면 농담따먹기라도 하고 놀 수 있겠지만 설이는 지금 열심히 운전 연습 중이다. 그나마 구경 정도는 해도 되겠지만, 문제는 설이의 운전은 빈말로라도 재미있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초보 운전이니 당연히 거북이처럼 느리고, 정해진 코스만 빙빙 돈다. 아직 도로 주행도 가 보지 못한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뭐, 생각보다는 잘 한다. 월이는 그런 평가를 내렸다.

“잘 못 하기는 해도 떨어질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쟤는 대체 뭘 잘못해서 떨어진 거야?”

차라리 아주 못하면, 예를 들어 여기저기 긁고 다니면 좀 재미있을 것도 같지만 또 그 정도로 못 하는 건 아니다. 결국 그 광경에 질린 월이는 크게 하품을 한 뒤 다시 뒤로 벌렁 누웠다.

월이는 지금 이 상황이 호랑이보다 훨씬 더 무섭다. 월이는 그대로 잠이나 잘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월이는 뭔가 들었다.

“어라.”

아주 작은 발소리.

고양이과 동물들이나 낼 수 있는 그런 아주 작은 소리다. 사람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발소리다. 근처에 고양이 같은 것들이 살지 않는 것은 진작에 확인했으니, 이런 발소리를 낼 수 있는 동물은 이곳에 단 하나뿐이다.

“… 차라리 잘됐네. 역시, 뭐가 있었던 거야.”

긴장감도 없고, 지루하던 차에 차라리 잘 됐다. 월이는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발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거대한 네발 짐승이 있다. 사람들이 호랑이라고 생각하는게 오히려 당연할 정도로, 동물원에서도 보기 힘들 만한 크기의 동물이다.

다만, 아무리 월이라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그 동물은 월이와 눈이 마주친 바로 그 순간 도망을 치고 말았다. 정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뭐야? 바로 튄다고?”

월이는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놓칠 수는 없다. 월이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열심히 만든 침대가 망가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월이는 곧바로 뛰기 시작했다.

“너, 너 뭐야?! 거기 안 서?! 야! 잡히면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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