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3)
“웃기지도 않는 소리죠. 호랑이 때문에 공사를 못 한다니, 조선 시대도 아니고 말이에요.”
명종은 눈을 조금 찌푸리고는 말했다. 어느새 가까이 온 월이는 거의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자세히 말해봐. 진짜 호랑이가 나타난 거야?”
“음, 순서대로 설명드리려고 했는데….”
명종은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근처에 호랑이는 살고 있지 않습니다. 당연한 결론이긴 하지만요.”
“뭐야, 호랑이를 본 사람이 있다며? 호랑이가 없다는 결론은 어떻게 나와? 조사라도 해 본 거야?”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명종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네, 말씀하신 대로 조사를 해 봤습니다. 호랑이가 있는지 없는지 한번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설마 이미 조사를 해 봤다는 답변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설이는 기가 막힌 듯 물었다.
“… 그런 걸 벌써 조사를 했다고? 산에 호랑이가 사는지 안 사는지를?”
명종은 쓴웃음을 지었다.
“네, 바보같이 들릴 건 압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21세기 한국에서 호랑이라니, 사실 다른 곳에서 말하면 비웃음이나 안 사면 다행이죠.”
운전면허 시험장에 호랑이가 나타나다니, 솔직히 진지하게 들어줄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 호랑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저도 그런 반응이었죠. 당연히 무시하고 공사를 하려고 하기도 했고요.”
한 두 번이라면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가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반복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호랑이를 만났으니 무서워서 일을 못 하겠다고 도망가는 관계자가 세 명 이상 나왔습니다. 이쯤 되면 도저히 무시할 수 없죠.”
게다가 각 이야기에는 나름의 일관성이 있었다. 각자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래도 정말 같은 호랑이를 만난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 마주치는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다들 비슷한 증언을 합니다. 무엇을 했고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각자가 비슷한 말을 합니다. 그러니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조사를 해 보지 않을 수 없었죠.”
일이 이렇게 되면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정말로 호랑이가 있거나, 호랑이에 준하는 위험한 뭔가가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닐까? 혹시 정말로 공사를 그냥 진행하면 사고가 터지는 것 아닐까?
“그래서 근처 대학교에 조사를 좀 부탁드렸습니다.”
“대학교요?”
“네. 아무래도 동물 전문가가, 그것도 호랑이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은 그런 쪽 학과 사람밖에는 생각이 안 나서요.”
명종은 덧붙이듯 말했다.
“근처 대학교에 문의하니 대학원생들이 오더군요. 박사과정 중이라고 하시던데… 돈은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설이는 잠시 하늘을 쳐다봤다. 대체 대학원생들이란 뭘까.
설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월이가 재촉하듯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조사해 본 결과 호랑이가 없었다는 말이야?”
“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호랑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산을 샅샅이 조사해 봐도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죠.”
찾아온 대학원생들의 말에 따르면, 호랑이만큼 거대한 맹수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산에 숨어 있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심지어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한 다른 맹수의 흔적 역시 없다.
“그나마 큰 동물이라 하면 멧돼지나 고라니 정도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결국 그 사람들은 생태학적으로 이 주변에 호랑이는커녕 그 비슷한 것도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월이는 실망한 듯 말했다.
“뭐야, 그럼 역시 착각한 거잖아?”
호랑이는 실존하지 않는다. 그저 처음에 호랑이를 봤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착각한 것이다.
“그냥 단체로 뭔가 잘못 보고 착각한 거 아냐?”
거기까지 말한 월이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그랬다면 보영이가 몰랐을 리가 없다.
명종 역시 씁쓸하게 웃었다.
“네, 그렇게 생각하시겠죠.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저도 똑같이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조사가 끝난 뒤, 바로 다음 날에 다시 공사 견적을 확인하는 작업부터 재개하려 했습니다만.”
문제는, 다음 날 아침 호랑이를 목격했다는 사람이 또 나타났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호랑이 이야기를 한 번도 들려주지 않은 새 업체에서 호랑이 목격담이 나와버렸죠.”
심지어 마지막 증언이 가장 상세했다. 이전에 목격했다고 말한 사람이 놓친 부분까지 놓치지 않은 것이다.
“이쯤 되면 호랑이는 없지만, 그 사람들이 호랑이를 봤다는 건 사실이라고 생각해야겠죠.”
모순적이지만 그렇다.
“가장 말이 되는 결론은 이 주변에 사람들이 호랑이로 착각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이 될 것 같습니다만.”
문제는 착실한 대학원생들은 이 근처에 호랑이와 착각할 수 있을 만한 생물도 없다는 결론까지 함께 내놓고 갔다는 점이다.
“사실 애초에 말이 산이지,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바로 동네입니다. 그런 게 목격된다면 굳이 공사를 하지 않더라도 이전부터 그런 목격담이 나왔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결론다운 결론은 하나도 낼 수 없다.
“진짜 어려운 일이네요.”
설이는 팔짱을 꼈다. 솔직히, 아직 감이 잘 안 온다. 하긴, 애초에 이 정도로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쪽으로 일이 넘어왔을 리 없다. 운전 연습 무제한이라는 조건에 낚여서 내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살짝 후회하던 설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그냥 공사를 진행할 수는 없었던 걸까요? 하루 지연될 때마다 그게 다 손해실 텐데.”
“정확합니다.”
명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 이렇게 상황을 말씀드리고 있고, 저 역시 그 사람들이 대체 뭘 어떻게 본 건지 궁금하긴 합니다만, 그뿐입니다. 그렇게 도망칠 정도로 무서운 일인지도 모르겠고요.”
명종 입장에서는 호랑이보다 공사 지연으로 나는 손실이 훨씬 더 무섭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다치거나 죽은 사람도 없습니다. 별로 위험한 것도 아닌 것 같으니 억지로라도 공사를 밀어붙일까 하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명종은 대놓고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하지만, 그 호랑이를 목격하신 분 중 하나가 저희 아버지라서요.”
설이는 엇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라면….”
명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짜 사장님이죠.”
명종은 물론 사장 아들이고, 실제로 사업의 방향성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다. 그럴 수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 자체는 아버지에게 있다.
“사장이 직접 위험할 수 있으니 공사를 미루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같은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제가 뭐라 더 말할 수는 없죠.”
아버지가 손해를 감수하고 공사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면, 이야기는 끝이다.
“아버지는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사람이 죽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건 정론이기도 하죠. 그러니 제가 억지로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에요.”
명종은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서둘러서 영업부터 중지하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명종은 말 끝에 한숨을 덧붙였다.
만약 공사가 제때 계획대로 시작했다면 이런 식으로 미리 준비하는 건 올바른 판단이었겠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오판이 되어버렸다.
설이는 조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이곳이 왜 이 지경으로 텅텅 빈 상황인지, 그리고 왜 폐허처럼 느껴졌는지 알 것 같다.
새로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것들을 치워야 하는 법이다.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는 물건은 미리 치웠을 테니 상태가 영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아무래도 대문 쪽은 그거랑 상관없이 망가져 있었던 것 같지만. 설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 얼마나 버티실 수 있나요? 금전적으로 말이에요.”
명종은 씁쓸하게 말했다.
“일단 당장 버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땅을 빌린 게 아니고, 당장 큰 유지비가 드는 상황도 아니니까요. 정리를 미리 하는 바람에 영업은 중단한 상태지만, 또 실질적으로 공사를 진행하다 멈춘 건 아니다 보니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은 아니긴 합니다. 지금 상황이 너무 길어지지만 않는다면요.”
문제는 ‘그 너무 길어지지 않는다면’에 있다.
“문제는 아직도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종적으로 얼마나 걸리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거든요.”
만약 호랑이 같은 건 없고, 지금까지 나온 증언이 모두 다 착각이라면, 공사를 그냥 하면 된다. 사실 그게 가장 좋다.
반대로 만약 호랑이, 혹은 착각할 만한 무언가가 정말로 있어서 이대로 공사를 할 수 없다면 그대로 공사를 포기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손해는 크지만, 어쨌든 빠르게 만회하기 위한 수를 둘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빼도박도 못한다. 상황 파악이 애매하게 되었으니 행동도 애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명종은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정체야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혹은 위험하지 않은지를 알고 싶은 것뿐이거든요.”
이대로는 공사를 진행할 수도, 중단할 수도 없다. 지금 상황을 바꾸려면 뭔가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게 명종의 결론인 것이다.
“어렵네요.”
설이는 보영이 얼굴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하긴, 일이 그렇게 쉬웠으면 우리한테 넘어왔을 리가 없지…. 어쨌든 결론을 내 달라는 부분이 중요한 거죠?”
“정확합니다.”
명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아버지에게 그런 건 없다고 설득을 해주시든, 아니면 제게 정말로 위험한 것이 있다고 납득을 시켜 주시든 상관없습니다. 확실한 결론만 있으면 그다음 결정은 저희가 할 수 있으니까요.”
명종은 설이 쪽을 똑바로 보고는 물었다.
“그게 가능할까요?”
“으음….”
설이는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설이는 입을 열었다.
“가능이야 할 텐데….”
“가능이야 하다면… 혹시 어려운 일인가요?”
명종은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혹시 시간과 비용이 너무 커진다면, 크게 곤란해진다. 하지만 설이가 고민하는 건 전혀 다른 점이다.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단순히 결론을 내고, 그다음에 상황을 맞춰 가는 게 목표라면 제대로 소개받으신 거에요. 그런 게 저희 전문이거든요. 아마 일주일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명중은 확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훌륭하네요! 확실히 그 안에 끝나기만 한다면 충분한 속도입니다. 대체 뭐가 고민이신 건가요?”
설이는 조금 어렵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호랑이를 봤다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확인을 해야 하잖아요?”
“그렇죠.”
“그럼 그동안 이곳에서 계속 대기해야 한다는 말이죠?”
“네. 아, 그게 고민이신 건가요? 하긴 여자분 두 분이 이곳에 계속 계시는 것도….”
설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별문제가 안 돼요. 위험할 것도 없고요. 그냥 시간 비는 김에 운전 연습을 해도 되나 싶어서요.”
명종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죠. 사실 저 그것 때문에 여기 왔거든요.”
설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비는 시간마다 여기 코스 마음대로 돌아봐도 되나요?”
명종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야 마음대로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