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2)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네비게이션에서 들리는 밝은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월이는 축 늘어졌다. 목적지 근처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 둔 월이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그 자리에 엎드렸다.
“운전 지겨워….”
운전대를 거의 끌어안는 모양새다. 몇 시간을 연속으로 쉬지 않고 운전하는 건 아직 좀 피곤한 모양이다. 월이는 푸념했다.
“태주랑 언니는 이딴 걸 대체 어떻게 몇 시간씩 한 거지?”
월이는 말끝에 하품을 덧붙였다. 설이는 미안한 듯 조금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생했어. 나도 면허를 땄으면 번갈아 가면서 운전하면 됐을텐데.”
“으하암… 뭐라고?”
월이는 고개를 빙글 돌려서는 설이 쪽을 쳐다봤다.
“무슨 소리야? 애초에 네가 면허를 땄으면 여기까지 안 왔지.”
두 사람이 여기에 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무소가 지금 꽤 한가하다는 점이고, 둘째는 지금 운전 연습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소라는 보영이의 꾀임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월이는 다시 한번 하품을 크게 하면서 말했다.
“뭐, 너도 분명히 곧 딸 거야. 그러고 나면 다음에는 하기 싫다 그래도 내가 시킬 거거든? 그때 하기 싫다고나 하지 마.”
설이는 살짝 미소지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분명한 배려가 들어 있는 말이다.
“고마워.”
“됐어. 너랑 나 사이에 무슨.”
월이는 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길게 기지개를 켠 뒤 내렸다. 무심코 보면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연한 모습이다.
설이는 그 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문을 쾅 하고 닫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아직 자신이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하게 따라 내렸다. 그게 무슨 단점이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월이는 멍하니 볼 수밖에 없는 친구다. 동작이 하나하나 눈길을 끄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그건 그렇고… 근게 여기 신기하긴 진짜 신기하다.”
월이는 눈앞에 입구를 보고는 감탄했다. 설이는 물었다.
“뭐가 신기한데?”
월이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대문이 안 무너진 게! 봐봐!”
월이는 손가락으로 아직 들어가지 않은 입구 쪽을 가리켰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대문 느낌의 구조물이다.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면 그랬을 거라는 이야기지만.
“쇠랑 콘크리트는 이 정도까지 망가져도 멀쩡하게 서 있는 건가 봐!”
대문의 상태는 단순히 낡았다고 표현할 만한 상태가 아니다. 금이 간 시멘트와 다 녹슬어서 군데군데 구멍이 난 철제 간판, 간신히 페인트 칠만 몇 번 덧칠해 글씨 정도는 읽을 수 있지만 그뿐이다.
“귀신의 집 같다. 그치?!”
월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설이는 조금 웃었다. 즐거워서가 아니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터져 나온 웃음이다.
“솔직히 보영이가 그렇게 말할 때까지만 해도 과장인 줄 알았는데….”
‘주소 찍고 가 보면 아마 다 무너지기 직전의 이상한 대문이 하나 있을 건데, 그럼 뭔가 잘못된 게 아니고 잘 찾아간 게 맞아!’
그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아마 두 사람은 잘못 찾아온 거라 생각하고 주변을 열심히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그 정도로 이 대문의 상태가 심각하다.
“와, 말로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거 진짜 뭐 나오는 게 안 이상하겠다. 그치?”
월이는 대놓고 말했다. 늘 그렇듯, 솔직한 표현이다. 과장이야 조금 있지만.
“저기 위에 녹슨 부분 내가 톡 치면 부러지지 않을까?”
월이는 진심으로 궁금한 듯 갸웃거렸다. 설이는 설마 하면서도 말했다.
“…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진짜로 그러면 안 된다? 부러지면 위험해!”
“야, 나도 알아. 아무리 나라도 설마 진짜 그러겠어?”
월이는 뭐 그런 걱정을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설이를 한번 본 뒤 앞으로 걸어갔다.
“확실히 이 정도로 낡은 곳이면 리모델링 좀 해야 할 필요는 있겠다.”
월이는 벽을 한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 세게 문지른 게 아닌데도 콘크리트 가루가 후두둑 떨어진다.
“나야 이런 폐허 상태로도 좋지만.”
“폐허라니.”
설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가 들으면 실례잖아?”
“뭐 어때. 너도 어차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 아냐.”
월이는 느긋하게 말했다.
“거기다 이 근처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상관 없는 걸.”
월이는 손가락으로 벽을 문지르다가, 얇게 가 있는 금을 만났다. 월이는 손가락을 그 금을 천천히 훑으면서 안으로 걸었다. 월이는 뭔가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다.
설이에게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 대체 그게 어디가 재미있는 거야?”
“재미라고 해야 하나? 뭐랄까 조금 만족스러운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이거 기분이 꽤 좋다구. 너도 해봐?”
월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꽤 큰 구멍에는 손가락을 한번 쑥 집어넣어 보기도 하면서, 신나서 걸어 다닌다. 설이는 쓴웃음을 짓고는 따라 들어갔다. 별로 본 적 없지만 어린 남자애들이 딱 이런 식으로 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어디가 재미있는 걸까?”
전혀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월이는 이미 꽤 멀리 안쪽까지 들어갔다. 설이는 황급히 말했다.
“야! 혼자 가지 마!”
설이는 천천히 월이를 따라갔다. 하지만, 가다 보면 점점 월이가 왜 저런 반응인지 알 것도 같다. 어떤 의미로는 이곳은 테마파크처럼 느껴진다.
“… 근데 좀 심하긴 하다 이거. 으스스할 정도야.”
사무소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퇴치할 수 있는 대상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도 빈 공터나, 아무도 없는 폐허 같은 곳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은 똑같이 느낀다.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 똑같이 무섭다.
이 장소는 그런 의미에서 꽤 위험한 것처럼 보이는 장소다. 전혀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
대문이 유난히 심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구조물이 상태가 썩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구석구석에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있는 타이어들은 이미 색이 다 바랜 채인 데다 일부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온갖 철제 구조물들의 페인트는 군데군데 다 벗겨져 있고, 일부는 녹슬어 있다.
온갖 완충재들이 별로 믿음직해 보이지 않는다. 있어야 할 곳에 다 있기는 하지만, 저게 내 몸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폐허는 월이가 보기에 간만에 보는 스릴 넘치는 장소인 것이다.
하지만 어떨까, 과연 이곳에 손님은 있었을까. 설이는 의심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운영을 한 달 반 정도 쉬었다고 했던가. 한 달 전이라고 해서 이곳이 그렇게 막 멀쩡했을 것 같은 느낌은 아닌데.”
설이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보영이 말에 따르면, 그래도 이곳은 한 달 반 정도 전까지 운영을 하고 있던 곳이다. 그리고 그 정도 기간에 이렇게 되었을 리 없다.
지금은 고객 입장으로 온 게 아니니 별생각 없이 왔지만, 사실 이곳에 돈을 내고 운전 연습을 하러 왔다면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나마 차는 낡긴 했어도 나름 깔끔해 보이긴 하지만….”
설이는 으음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이곳에 손님으로 찾아온 것이었다면 이미 입구 쪽에서부터 끝이다. 돈을 냈다면, 어떻게든 환불을 받고 싶었을 것이고, 돈을 아직 안 냈다면 그냥 돌아갔을 것이다.
설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 울상이 된 모습이다.
“솔직히 이런 곳에서 연습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월이는 엄청 흥미로운 듯 말했다.
“그래? 난 여기서 운전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설이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서 운전하는 게 재미있을 거 같다고?”
“응! 왜, 그 롤러코스터 타는 느낌일 거 같아서.”
“롤, 롤러코스터라고?”
설이는 당황해 말했다. 하지만 월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생각해봐, 그것도 그냥 롤러코스터가 아니야. 겉에 엄청 녹슬고 끼긱거리는 소리가 나는 롤러코스터라고. 한 번쯤 타 보고 싶지 않아? 스릴 있잖아!”
설이는 말문이 막혔다. 동의해서가 아니라,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다.
“대체 세상에 그런 걸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들 무서운 롤러코스터 좋아하잖아?”
“그건 분명히 그런 식으로 무서운 롤러코스터가 아닐 거야.”
설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이해는 조금 간다. 아마 월이에게는 일반적인 롤러코스터가 스릴이 부족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롤러코스터의 높낮이와 속도를 자기 몸으로 안전장치 없이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정도로 시설이 부실한 롤러코스터쯤 되지 않으면 월이에게는 긴장감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게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점이지만. 설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그런 거 안 타고 싶다고!”
“뭐어, 시설에 문제가 없다니까 하는 말이야. 내가 언뜻 봐도 큰 사고가 날 만한 구간까지는 없어 보이고.”
설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난 싫어. 이런 곳에서 솔직히 연습하고 싶지는 않아. 위험하기도 해 보이구, 거기다 이런 곳에서 연습하다가 사고나면 새 걸로 고쳐줘야 할 만큼 뜯기고, 뭐 그런 거 아냐?”
“이런 곳이라 죄송하게 됐네요.”
“어라?”
설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두 사람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러니까 태주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한 젊은 남자가 있었다.
“보영씨가 미리 연락은 했습니다. 한설씨랑, 월이 씨 맞으시죠?”
“어어….”
설이가 어리둥절하는 사이, 조금 피곤한 표정의 젊은 남자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제 이름은 김명종입니다. 보영씨가 절 뭐라고 소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사장 아들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명종은 한쪽 손을 내밀었다.
“이런 곳을 운영하는, 실질적인 사장 대리입니다.”
“어어….”
설이는 순간적으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곧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지금, 설이는 사장 앞에서 그 영업장을 신나게 까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앗!”
설이는 곧바로 고개를 박았다.
* * *
명종씨는, 굳이 자기 소개를 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두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보영 씨가 두 분에 대해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저쪽이 월이씨고, 이쪽이 한설씨죠?”
정확하다. 설이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사과했다.
“네, 맞아요, 죄송합니다!”
사장 대리, 그러니까 명종씨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여기가 낡은 건 사실이니까요. 애초에 그러니까 공사를 하려고 한 것 아니겠어요?”
“그, 그래도.”
“오히려 좋죠. 방금 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곳을 고쳐야 한다는 확신이 더더욱 들었어요.”
명종은 주변을 슥 둘러봤다.
“매일 봐서 나름 익숙한 제가 봐도 시설이 영 믿음직하지 않아 보이는데, 손님들은 어떻겠어요?”
명종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설이씨 반응이 특이한 게 아니라 다른 젊은 여성분들도 이곳에 들어오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남자 손님들은 시설이 이 모양이라도 어느 정도 넘어가는 면이 있습니다만, 특히 갓 전역한 분들이요.”
남자란 대체 뭘까. 설이는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런 분들만 받을 수는 없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버지를 설득해서 공사를 하자고 한 거에요. 지금도 뭐, 사실 기능은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 시설 그대로 언제까지나 이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명종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대학생 방학 시즌이 막 끝난 지금 공사에 들어가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겸 보수 공사를 하려고 했습니다만….”
명종은 처음으로 눈을 찡그렸다.
“아직도 공사에 못 들어갔습니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지금부터가 본론이 될 거다.
“그러고 보면 뭐가 나왔다고 말씀하셨죠? 그런 이야기는 들었는데요.”
“네.”
명종은 본인 스스로도 전혀 믿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호랑이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호랑이?!”
월이가 저 멀리서 큰 소리로 말했다.
“진짜야?! 한국에 호랑이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