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47화 (247/269)

외전- 1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우당탕탕 운전면허 대소동 (1)

설이는 심호흡을 한번 했다.

긴장할 필요는 없다. 조심스럽게, 배운 대로 시작하면 될 뿐이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설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처음 도전할 때보다 오히려 지금 더 긴장이 된다.

“준비되셨으면 시작하시죠.”

옆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설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한 대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열쇠를 돌려 엔진을 켠다. 시동이 걸린 것을 확인한 뒤 스틱을 옮긴다. 이미 몇 번이고 연습한 행동이다. 배운 대로 천천히, 연습할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도록. 아직까지는 괜찮다. 설이는 살짝 미소지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설이는 곧바로 표정이 굳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설이는 짐작하고 있다.

“또?”

설이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옆자리에 있는 사람도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음, 시동이 꺼졌네요.”

엔진이 꺼졌다. 분명히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을 텐데.

“대체 왜 또 이러는 거야!!”

설이는 울상이 된 채 외쳤다. 운전면허 실기에 또 떨어졌다.

* * *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손바닥을 책상 위에 세게 내리치는 소리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사람이 많은 장소였다면 꽤 주의를 끌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다.

설이는 자신이 그렇게 큰 소리를 냈다는 자각도 없이 말했다. 그만큼 흥분한 것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혹시나 싶어서 차량 구조도 좀 검색해 봤는데! 내가 잘못한 건 전혀! 전혀 없었다고!”

설이의 푸념을 들은 보영이는 조금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 지내?’라는, 오랜만에 만났을 때 흔히 하는 인사말 겸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이런 길고 긴 푸념이 돌아올 줄 몰랐다.

결국 보영이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곤 말했다.

“나야 모르지.”

“너무 무심한 거 아니야?”

설이는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보영이 입장에서는 정말로 당황스러운 이야기일 뿐이다.

“당연한 거 아냐? 갑자기 이런 소리 들어봐야 당황스럽기만 하거든? 어쨌든, 뭐 좋아. 재미있는 이야기긴 하네. 운전면허를 못 따고 있다는 말이지? 그것도 1종 같은 거 말고 2종 보통을?”

보영이의 말을 들은 설이는 윽 하는 표정을 지은 뒤 곧이어 말했다.

“야,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난 재미 없거든! 나 잘못한 거 없다니까? 전혀!”

하지만 보영이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넘겼다.

“에이, 설마. 기계는 거짓말 안해. 네가 뭔가 실수한 거겠지.”

하지만, 설이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난 실수 같은 거 안 했어! 만약 그랬으면 옆에 계신 분이 뭐라도 알려줬겠지, 근데 그 사람들도 왜 꺼졌는지 잘 몰랐단 말이야!”

설이는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나는 듯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보영이는 눈 주위를 살짝 긁적이곤 말했다.

“으음, 확실히 시동만 계속 반복적으로 꺼지는 건 좀 이상하긴 한데….”

“그치?”

설이는 밝은 목소리로 반응했다. 하지만, 보영이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할 말은 해야 한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시동이 계속 꺼지면 넌 도로에 나가면 안 돼. 그럼 잘못하면 대참사가 나니까.”

보영이는 냉정하게 말했다.

“사실 면허의 역할이라는 게 운전을 해도 되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게 아니라 면허를 따면 안 되는 사람을 절대 도로에 나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잖아?”

“야!! 너까지 그럴래!! 오빠랑 언니들도 막 그러고 놀렸는데! 내가 잘못한 거라면 모를까 나는 실수한 게 없다니까?”

보영이는 깔깔 웃었다. 설이가 이렇게 큰 소리로 짜증 내는 건 처음 있는 일 같다. 설이는 계속 이어 말했다.

“이게 지금 한두 번이 아니야. 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설이는 처음에 한 말을 다시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듣게 생겼다. 보영이는 웃던 표정을 잠깐 지운 뒤 말했다.

“뭐, 억울할 만 해 보이긴 해. 차라리 운전을 실수해서 떨어진 거라면 너도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겠지.”

보영이는 위로하듯 말했다. 이게 아예 마음에도 없는 말은 아니다.

아직 이야기로만 들은 거라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만 아는데도 이상한 부분이 있긴 하다.

보영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엔진이 왜 꺼지는 걸까?”

“몰라. 차 문제는 아닌가 봐. 내가 만지는 차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거든. 다른 사람이 같은 차를 만지면 그런 일이 안 일어나는 거 보면….”

설이는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문제가 있는 건 차 보다는 나한테 있는 거겠지.”

보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보영이가 아는 설이는 자기가 실수한 걸 인지도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잠시 생각하던 보영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라?”

보영이는 눈을 조금 찌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러고 보면 너희 차 끌고 오지 않았어? 어떻게 왔어?”

지금 세 사람이 모인 장소는 차 없이는 오기 어려운 장소다. 보영이는 의심스런 눈으로 물었다.

“너희 설마 무면허 운전은 아니지?”

“야, 무슨 말이 그래?”

옆에 가만히 있던 월이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내가 운전했지.”

“뭐야, 너 면허 땄어?”

보영이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뭐? 이건 대체 무슨 소리야? 당연히 따 놨지! 사람을 뭘로 보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월이를 본 보영이는 조금 못미더운 표정이 되었다.

“… 진짜로?”

“진짜지! 자! 보라구!”

월이는 자랑스럽게 운전면허증을 지갑에서 꺼냈다. 면허를 자세히 보던 보영이는 의심스런 눈으로 월이를 쳐다봤다.

“뭐? 1종? 이거 가짜 같은 거 아니지? 위조나 뭐 그런….”

“야! 이게 진짜겠지 그럼 가짜겠냐!”

월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말했다.

“내가 이걸 어떻게 땄는데! 애초에 나는 이런 거 위조하는 법도 모른다고.”

보영이는 머리를 긁적이고 난 뒤 변명하듯 말했다.

“아, 아니. 설마 1종을 따 왔을 줄은 몰라서. 거기다 그리 진지한 의심은 아니었어.”

월이는 서슬 퍼런 눈으로 보영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 설마 내가 면허를 못 딸 거라고 생각한 거야?!”

“… 아니, 면허를 못 딸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만약 둘 중 하나가 못 딴다면 네가 못 딸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러니까, 꼭 못 딴다면 말이야.”

무례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보영이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네가 필기에서 막힐 줄 알았어. 심지어 1종이면 점수가 더 높아야 하잖아. 그래서 의외라는 말이지.”

“윽.”

월이는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시선을 피했다. 보영이는 역시 그랬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몇 번이나?”

“… 세 번.”

“그러니까, 세 번 떨어진 거야? 아니면 세 번째에 붙었다는 거야?”

좀 더 자세히 물어보는 말을 들은 설이는 눈을 조금 더 찡그리곤 말했다. 조금 부끄러운지 목소리가 크다.

“떨어진 횟수가!”

월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큰소리로 다시 말했다.

“아, 아무렴 어때! 결국 땄으면 된 거 아냐! 실기는 한 번에 붙었다고!”

“한 번에? 그래도 그건 대단하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은 실기에서 많이 떨어질텐데.”

보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납득이 간 듯 말했다.

“하긴, 또 네가 실기 떨어지는 장면은 또 상상이 잘 안 가긴 하네. 수상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이면 운전을 잘 못 할 이유가 없기도 하니까.”

단순히 신체 능력이 뛰어난 게 아니다. 가끔씩 다른 사람은 아예 듣거나 느끼지도 못하는 걸 느끼곤 하는 게 월이다.

오히려 월이야말로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운전에 최적화된 인재일지도 모른다.

“주요 교통 법규만 어떻게 머릿속에 집어 넣었으면 너야말로 운전에 최적화된 사람일지도 모르겠네.”

“히히, 역시 그렇지? 나 운전에는 재능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구.”

월이는 다시 잘난 척 웃었다.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이다. 참 알기 쉬운 친구다. 보영이는 피식 웃었다.

“아, 맞다.”

월이는 보영이를 쳐다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왜 보자고 한 거야? 지금 이 이야기 하러 온 건 아니잖아? 단순히 안부나 전하려고 하는 것도 아닐 거고.”

보영이는 눈을 깜빡였다. 갑작스러운 말을 들은 탓이다.

“… 뭐라고?”

“아니, 그렇잖아. 오랜만에 봐서 반갑기는 한데, 네가 아무 이유 없이 이쪽에 연락했을 리가 없으니까.”

월이는 내 말 맞지? 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지?”

“으음….”

보영이는 뭔가 내키지 않는 표정이 되었다.

“아니, 그 뭐냐. 꼭 그런 것만은 아니긴 한데.”

보영이는 머리를 긁적거리곤 말했다.

“마음에 안 드네. 이럼 진짜로 무슨 이유가 있을 때만 너희들한테 연락을 하는 것 같잖아. 이번에 연락한 건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는데.”

불만스러운 표정. 하지만, 실제로 그냥 안부 인사나 하러 온 건 아니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이미 다른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이 될 뿐이니 문제다. 보영이는 한숨을 한 번 푹 쉬었다.

“대체 어떻게 알았어? 뭔가 다른 용건이 있는 거 말이야.”

월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알았냐니? 당연히 누구한테 들었지. 내가 알아냈겠어? 너한테 오랜만에 연락 왔다고 하니까 분명 그럴 거라고 알려주던데.”

보영이는 혀를 살짝 씹은 표정이 되었다. 보영이가 아는 한 그 ‘누구’는 한 사람밖에 없다.

“아아, 그때 그 남자분인가. 숨길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상관은 없는데, 그렇게 행동이 다 읽히는 것도 기분 좋지는 않아. 여전하네, 그 사람”

제대로 엮여 본 건 한 번뿐이지만. 보영이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뒤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굳이 뒤로 용건을 더 미루는 것도 서로 신경 쓰일 테니까. 일단 전하기로 한 이야기부터 전해볼까.”

보영이는 본론을 말했다.

“너희한테 부탁할 일은… 뭐, 마침 너희한테도 잘된 일일지도 몰라. 일이 생긴 곳이 좀 운전 연습하기 좋은 곳이거든.”

“운전 연습하기 좋은 곳?!”

잠시 침울한 모습으로 있었던 설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게 뭐 하는 곳인데?”

“운전 연습하기 좋은 곳이 뭐가 있겠어. 운전 연습장이지. 좀 많이 낡았지만.”

보영이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월이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그런 곳에서 뭐가 나타나기라도 했대?”

“응. 뭐가 나타났어.”

고개를 끄덕이는 보영이를 본 설이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뭐가 나타났다고? 대체 뭐가 나타났는데?”

“야, 그걸 모르니까 내가 너희한테 물어보는 거지.”

보영이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확실한 건,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뿐이야.”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이미 알아볼 것은 다 알아본 채로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월이는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는 대답했다.

“분명히 복잡한 일이겠는데.”

경험상, 저 애가 이렇게 말하면 늘 그랬다. 보영이는 발뺌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치? 복잡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그렇게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거야. 일을 해결하는 동안, 너희 두 사람이 그곳을 마음대로 쓸 수 있거든. 전에는 운전 연습장 맘대로 써서 뭐 어쩔건가 했는데, 아직 면허를 못 딴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보영이는 설이를 보며 말했다. 설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그런 걸 마음대로 정해도 되는 거야?”

“응. 나한테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말한 건 낡은 운전면허 연습장 사장… 아니지, 사장 대리거든.”

“사장 대리?”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사장이면 사장이지 대리는 뭐야? 사장 아들이라도 돼?”

보영이는 어라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 사장 아들이야. 어떻게 알았냐?”

“이게 진짜네.”

“뭐, 어쨌든 그 사장 대리가 사장님을 설득해서 공사를 하려고 했는데, 문제가 조금 생겨서 공사를 못 하고 있거든. 그래서 너희를 부른 거야. 자세한 이야기는… 하려면 못 할 건 없지만 아무래도 의뢰를 요구한 본인에게 부탁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고.”

보영이는 설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뭐,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운전 연습 같은 건 맘대로 해도 될걸? 한가한 곳이라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