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17)
태주가 폭탄처럼 던진 말을 들은 악마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 그 얼굴은 미소로 바뀌었다.
미소인데도 보다 보면 불쾌하다. 보통은 웃는 얼굴을 보고 기분이 나빠지기는 쉽지 않은데, 대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 놀랍군.”
내용과는 달리 악마는 전혀 놀라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 당연하다. 악마 역시 태주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을 악마에게 말해봐야 아무 효과도 없다.
악마가 의외라 여긴 것은, 태주가 그 사실을 눈치챘다는 그 한 가지뿐이다.
“너도 알고 있었던 건가?”
“당연히,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눈치챌 만한 사람이 있다면, 원래는 아마 저뿐이겠죠. 당신도 애초부터 그렇기 때문에 아저씨에게 접근한 거 아니었어요?”
태주는 악마를 쳐다봤다.
“아저씨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환심을 산 뒤, 혹하지 않을 수 없는 권유를 했어요. 제가 보기에는 바보 같은 거래지만, 정말로 해 버린 걸 보면 아저씨에게 있어서는 정말 중요한 문제였던 거겠죠.”
악마는 대답하지 않고 씩 웃었다. 말로 하지 않았을 뿐, 충분한 대답이다.
“자신이 사라지더라도, 한 사람을 세상에 되돌려놓고 싶다. 그건 일종의 우울증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분명히 그 한 사람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일 거에요. 대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확실한 건, 어설픈 마음은 아니었을 거라는 것이다. 태주는 눈을 살짝 감았다.
그 모습을 본 악마는 웃었다.
“잘도 알아냈군. 다른 사람들 중 이 사실을 알아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아저씨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는 사람이니까요. 심지어는 본인에게도 그렇죠. 뭐랄까, 그 나이 먹고도 감정에는 둔감한 사람이에요.”
자신의 우울감 역시 조금 ‘지쳤다’고 표현할 정도의 사람이다.
“어쩌면, 아저씨 본인에게도 그 마음에 대한 완전한 자각이 없을지도 몰라요. 자기가 설마 그럴까 하는 그런 생각조차 못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이유로 우리 엄마를 되살린 것만은 확실해요.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상태든 말이에요.”
이전에는 혹시나 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어느 정도는 확신이 선다. “심지어 그건 엄마도 어렴풋이 알고 있던데요. 생전부터 알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뭐,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보이니 다행이네요.”태주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아뇨.”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 자체는 싫지 않아요. 별 감정 없어요.”
태주는 어린애가 아니다. 두 사람이 어떤 사이가 되든,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좋다. 각자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저씨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로는 잘된 일이죠. 한 가지 잃어버린 것을 제외한다면요. 그 한 가지를 절대로 본인이 원해서 잃은 건 아니겠지만….”
태주는 크게 눈을 떴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아니겠지만, 그래서요?”
태주는 악마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에게 속아서 그런 짓을 한 건 분명해요. 아저씨도 일종의 피해자라면 피해자겠죠. 하지만, 저는요?”
한 사람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쨌든 교환을 했다 치자. 그렇다면 이쪽은 어떤가.
“솔직히 말해서, 저는 엄마가 살아 돌아왔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최근 오 년 사이에는 없었어요. 이제는 엄마가 없는 상황에 익숙하기도 하고요.”
지금 상황이 싫은가 하면, 그렇지 않다. 하지만 필요했는지 물으면, 그 역시 그렇지 않다.
“너는, 그러니까….”
악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알아챈 것 같은 웃음이다.
“진구가 한 것을 완벽하게 반대로 되돌리고 싶은 거로군.”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유정이를 왜 기억하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지금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이건 의미가 있을 거에요.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요.”
“흐음, 대강 이해는 가는데. 네가 왜 그런 태도인지 대충은 알 것 같아. 일이 재미있게 되었군. 내 예상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훨씬 재미있게 되었어.”
악마는 그렇게 말한 뒤 물었다.
“과거보다 현재가 좋다, 그런 말인데… 그렇다면, 당연히 날 원망하겠군?”
“네.”
태주는 즉답했다.
“하지만, 당신이 없다면 유정이를 되찾을 방법도 없는 건 확실하죠. 아니, 세상에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방법이 있든 없든 당신은 확실히 알고 있을 거에요. 저는 이용할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뭐든 써먹을 생각이거든요.”
그러니 아무리 싫더라도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 태주는 그런 태도로 말했다.
“그러니까, 알려줘요. 유정이를 저한테 돌려주는 대가로, 내가 뭘 하길 원해요?”
태주는 질문했다. 평소에는 악마가 하는 방식의 질문이다. 어떤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무엇을 내게 줄 수 있겠는가.
이런 역전된 질문을 받은 적은 아무리 악마라도 거의 없다. 악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언가를 재 보는 듯한, 품평하는 듯한 그런 눈이다.
태주는 긴장했다. 악마의 입장에서는 이론적으로 받아주지 않을 수 없는 거래다.
동기도 확실하고, 목표도 확실한데다 태주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나면 일이 어떻게 굴러가든 큰 손해는 안 볼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너무 좋기만 한 이야기다. 악마가 경계하지 않을 리 없다.
‘역시 의심하나?’
태주는 살짝, 악마가 보지 않을 만한 쪽의 손을 꽉 쥐었다. 손이 축축하다.
‘의심하지 않을 리 없지.’
한쪽에 너무 좋은 조건의 거래다. 악마 같은 녀석, 아니 악마가 의심하지 않을 리 없다.
“대신 저도 한 가지는 받아야겠어요.”
악마가 너무 깊게 생각하려 들기 전에, 태주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한 가지?”
“별거 아니에요. 저는 이번에 먼저 돌려받겠다는 거죠. 아저씨처럼 그렇게 바보 같이 거래를 할 생각은 없다는 말이에요.”
악마가 다른 곳을 신경 쓰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친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중요한 것처럼 해서. 다행히, 악마는 그 이야기에 반응했다.
“나를 너무 못 믿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은 제가 약속을 어기려 들더라도 막을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당신이 약속을 어겼을 때 막을 방법이 없어요.”
“악마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데.”
“알아요. 하지만 기분은 어쩔 수 없죠.”
태주의 말을 들은 악마는 피식 웃었다.
“뭐, 좋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네가 원하는 건 내게 있어서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이야. 네 생각대로 말이야.”
악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약간의 손짓만으로 유정이의 모습을 보여줬다.
“자, 보다시피 간단하지.”
태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 몸은 괜찮은가요? 아니, 건강한 상태인 게 맞죠?”
“이 애는 멀쩡해. 물론, 너와 진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기억과 기록 속에서는 사라져 있겠지만.”
악마는 그대로 태주의 앞에 유정이를 내려놓았다.
“선불로 주지. 나를 못 믿는다니, 어쩔 수 없잖아?”
악마는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쉽게 돌려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
“표정이 왜 그래? 하고 묻고 싶지만 너한테 이런 비꼼은 의미가 없겠지.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악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태주는 항의했다.
“이게 어떻게 선불이에요?”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조건 아니겠어?”
악마는 냉정한 눈으로 말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양보했다고 생각하는데.”
유정이는 돌아왔지만, 사실상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태주와, 그리고 어쩌면 아저씨를 제외하면 아무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래서야 평범하게 사는 건 불가능하다.
법적으로는 학교를 졸업한 적이 없다. 아니, 태어난 적도 없다.
악마는 일종의 이중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고, 그러니 이렇게 툭 돌려줄 수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 말을 잘 들으면 조금씩 돌려줄 생각이니까.”
악마는 인자한 척 말했다.
“너, 분명히 말했지? ‘뭐든지’라고.”
“네.”
여전히 눈을 찌푸린 채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다시 유정이를 잃어버리지 않는 선에서요.”
“좋겠지. 너는 재미있는 녀석이니까, 조금 길게 보고 싶어.”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좋아요. 그럼 저는 잠시 이 애를 밖에 두고 올게요. 제가 당신에게 줘야 할 건 돌아와서 이야기하죠. 아무래도 이 애를 옆에 두고 이야기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태주는 악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좋아. 마음대로 해.”
악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는 악마가 뭔가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유정이를 어깨로 받쳐서는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는 문밖에서 중얼거렸다.
“끝.”
태주는 다시는 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 * *
문을 연 순간, 혹은 문을 열기 전에 눈치채고 말려야 했다. 악마가 태주를 말릴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태주가 방을 나선 바로 그 순간, 반투명한 막 같은 것이 방 전체에 덮였다.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이제부터 불가능하다.
“뭐지?”
악마는 당황했다.
“뭐긴? 내가 온 거지.”
당연하다는 듯한 남자의 말을 들은 악마는 갑작스럽게 멍한 표정이 되었다.
“나 알지?”
남자의 얼굴을 본 악마는 눈을 찌푸린 뒤 중얼거렸다.
“… 이런 건 반칙이야.”
악마는 태주 쪽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이전까지 보이던 여유는 어느새 사라지고 다급한 태도다.
“너! 문을 열어, 빨리!”
하지만, 태주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열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서요. 제가 저런 방법을 어떻게 알겠어요?”
빈말이라거나, 놀리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왜 문이 열리지 않는지 알 수 없다. 태주는 문을 여는 방법을 모른다.
“이이익!!”
악마는 안쪽에서 바깥쪽을 두들겼다. 하지만 소용없다. 무언가를 강하게 두들길 때 보이는 물건의 미세한 떨림조차 그 반투명 막에는 보이지 않는다.
“소리를 차단시킨 게 이것 때문이었나? 이 짓을 하려고?”
악마는 남자를 보고는 으르렁거렸다.
“아니.”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뭐, 아마 의도는 맞겠지만 내가 한 일은 아니야. 그건 저 녀석이 알아서 한 거야. 아니, 그 이전에 우리는 제대로 된 계획 공유 같은 건 안 했지.”
남자는 언제 이곳으로 찾아오겠다고 말했고, 태주가 거기에 맞춰서 알아서 악마와 이야기를 한 것뿐이다.
“물론, 내가 상황을 보고 듣고 알아낸 뒤 타이밍을 조금 맞춰주긴 했지만, 그게 다야.”
악마는 천천히 태주 쪽을 쳐다봤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그런 표정이다. 남자는 이어 말했다.
“이 애가, 내가 애초에 뭘 하러 나타났는지 알고 있었을 뿐이야.”
“거짓말.”
“거짓말일 리가?”
태주는 천천히 다시 악마의 앞에 섰다. 이제 악마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다.
“우연히 만났지만, 그렇다면 써먹지 않을 수 없잖아.”
검은 옷의 남자는 분명히 이 집을 찾아왔다.
아저씨가 불렀던 것도 아니고, 악마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연히 남자가 이곳에 온 건 분명 자신만의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원래 남자는 그날 바로 모든 것을 끝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태주라는 예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도착해서야 알았기 때문에 잠시 행동을 멈췄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하러 왔을까. 무엇을 바로 끝내고 돌아가려 했을까. 악마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남자는 뭘 하러 온 거였을까.
“뻔하지.”
남자는 악마를 잡으러 왔다.
“너를 그냥 내버려 두면 계속 안 좋은 일이 생길 테니까.”
그러니 태주가 해야 할 일 다른 일은 없다.
무엇을 내어주든, 무엇을 시키든, 달라는 것을 다 주고 원하는 것만 선불로 받아 챙긴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계약상으로는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 거래를, 네가 하지 않을 리 없겠지.”
악마는 손해를 보는 계약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도 이득만 보는 계약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리가 없어.”
평소에는 받아주지 않을 선불이라도, 안전장치를 달아서라도 미리 주고 계약 도장을 찍고 싶을 만큼, 악마에게 이 거래는 꽤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위험성을 감수할 정도로.
태주는 전혀 미안하지 않아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든, 문을 열어줄 수 없고,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했는데, 들어갈 수도 없어. 미안하게 됐네.”
“그렇군.”
악마는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생각하지 못했어.”
문의 안쪽에서, 악마는 말했다.
“속은 것은 어쩔 수 없지.”
태주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포기한 악마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악마는 저주하듯 웃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너는 최고의 거짓말쟁이가 될 거다.”
“거짓말쟁이라.”
태주는 안쪽에 갇힌 악마를 보면서 말했다.
“알 게 뭐야. 거짓말은 그냥 도구야. 칼로 사람을 찌르면 칼은 나쁜 도구일까?”
태주는 악마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거기에 대고 나쁘다 좋다 생각할 필요가 있나?”
내가 하는 거짓말이 어떤 것이든, 네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태주는 악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결국 모든 것은 하기 나름이다. 태주는 문을 닫았다. 악마가 뭐라 더 말하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제는 알 수 없다.
악마는 방안에 갇혔다.
“방 안의 분자 움직임이나 세고 있으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