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44화 (244/269)

외전- 1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16)

악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악마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나쁜 짓이라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아저씨는 딱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평소 아저씨는 절대로 나쁜 짓을 하지 않을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의 신뢰도 두텁고 능력도 인정받는다. 만약 실수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 보려 노력할 만큼 말이다.

하지만, 태주도 이제야 안 사실이지만, 아저씨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약점이 하나 있었다. 악마가 노리기에 딱 좋은.

‘거기에 더해서, 아마도 우울증도 있었던 거겠지.’

물론 추측이다. 확신할 수는 없다. 태주는 전문적인 심리 상담가 같은 것은 아니다. 확실한 것은, 아저씨는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악마의 입장에서 꽤 매력적인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고작 딱 한 번의 거래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그런 먹잇감.

‘악마의 계약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아저씨는 이득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야.’

이미 아저씨는 악마의 덫에 걸렸다. 지금 이 시점에서 아저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미 악마에게는 손해 볼 것이 없다.

유정이를 볼모로 잡고 아저씨에게 평소에는 절대로 하지 않을 선택을 강요하거나, 아니면 계속해서 자기 잘못으로 인해서 딸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을 가지게 하거나. 그도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켜서라도 새로운 계약을 하도록 만들거나. 어느 쪽이든 악마는 웃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태주는 아저씨가 다시 거래를 하도록 만들 수 없다. 무슨 짓을 하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차마 그 꼴을 두고 볼 수는 없다.

아마 아저씨 역시 그걸 무의식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악마와 바로 다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겠지.

‘하지만 문제가 있지. 악마가 아저씨를 두고 다른 사람과 다시 거래를 해줄 이유도 없다는 점.’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악마의 입장에서는 그저 진구가 포기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급한 일도 아니니 괜히 변수를 넣을 필요 없다. 이미 공들여서 만든 절대로 손해 보지 않을 상황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반적인 방법이나, 논리적인 방법으로는 상황을 뒤집을 수 없다.

그러니 충격적인 막장 스토리를 던져야만 한다. 악마조차 혹할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를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방법은 이것뿐이다. 그 결과가 마음에 드는 소리냐면 그렇지는 않았지만.

* * *

“유정이는, 제 여자친구였어요.”

그 한마디를 던졌다고 태주는 스스로 등에 닭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만약 태주가 이딴 소리를 하는 걸 유정이 본인이 들었다면 분명히 무자비한 폭력이 태주를 덮쳤을 것이다. 미친 소리 아니냐고 하면서, 분명 멱살을 잡겠지.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을 자기 입으로 했다는 사실이 이미 태주에게는 믿기지 않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 방법뿐이다. 머리에서 연기가 나지 않을까 하는 정도까지 고민을 해 봐도 다른 더 좋은 방법 같은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태주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엄마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보다 충격적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왜 그런 말을 해서….’

정말 그렇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싫은 일이다. 하지만 또 그런 이유로 하지 않기에는 너무 좋은 아이디어다. 태주가 몸서리쳐질 정도로 끔찍하다고 느껴진다는 건, 악마 입장에선 매력적인 소리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무시하기에는 너무 유혹적인, 그런 배덕적인 상황.

“뭐라고?”

다행히 악마에게도 이건 충분히 충격적인, 혹은 재미있는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악마는 실제로 놀라운 말을 들었다는 듯 뚜렷하게 반응했다. 눈을 껌뻑거리는, 마치 인간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태주는 천천히 다시 한번 말했다. 이건 통한다.

“다시 말하기 부끄럽긴 한데요. 유정이는 제 여자친구라고요.”

말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이것조차 나쁘지는 않다. 사랑에 빠진 소년 연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역겹기는 하지만.

“믿을 수 없군. 진구의 딸이, 네 여자친구였다고?”

악마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 의심하는 표정이지만, 동시에 흥미로워하는 표정이다.

“그게 정말이냐?”

“네. 제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어요?”

태주는 강경하게 말했다. 악마는 잠시 생각했다.

“설명은 되는데. 설명은 돼.”

악마는 중얼거렸다. 당연히 설명은 될 거다. 흥미로우면서도, 태주 홀로 여기까지 와서 악마와 독대하는 상황을 설명하려면, 그리고 태주가 악마와 새로 거래해야 할 이유까지 말이 되도록 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바로 그 말이었다. 태주가 괜히 다른 더 좋은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 아니다.

물론 며칠씩이나 그 거짓말을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한 시간 정도만 속이면 된다. 긴장한 채, 태주는 악마를 쳐다봤다. 악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물었다.

“지금 네가 한 말을 진구도 알고 있나?”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모르죠. 그런 걸 어떻게 말하겠어요? 물론, 말한다고 해서 아저씨가 저한테 특별히 악감정을 가지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태주는 몸서리치며 말했다. 상상만 해도 싫은 것 같은 태도로 말했다. 실제로, 이건 연기가 아니다. 악마는 그것까지도 알 수 있었는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흥미롭군, 흥미로워.”

악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표정이 된 악마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혈연은 아니니 그 자체로 금기인 사랑은 아니겠지만… 진구 녀석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거래를 한 셈이 되었군.”

태주는 일부러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좋아.”

곧 악마는 인정했다. 그리고는 손뼉을 한 번 쳤다.

“네 이야기는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계속 들을 가치도 있겠어. 그러니 약속한 대로 앞으로의 소리는 바깥에 들리지 않도록 처리했다. 앞으로는 들리지 않을 거야.”

“정말인가요?”

“그래.”

악마는 한번 예고 없이 휘파람을 크게 불었다. 태주의 고막에 순간적으로 이명이 들릴 정도로 큰 소리다. 황급히 귀를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악마는 낄낄대고는 말했다.

“그래, 미리 말을 안 했지. 나는 악마니까 말이야. 어쨌든, 이거면 증명은 되겠지. 네가 여기서 아무리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도 이제는 바깥에 들리지 않아. 안심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이지.”

악마는 제멋대로 벽에 기댄 뒤 말했다.

“자, 조금 길게 이야기를 할 텐데, 불만 있나?”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바라던 바다. 진짜로 협상이라 할 만한 것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자, 네가 했던 말을 요약해서 한번 해 보겠는데.”

악마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그러니까, 네 엄마가 다시 죽은 상태로 돌아가고, 네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람이 한 일을 무효로 만들고, 배신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여자친구를 되찾겠다 이 말인가?”

악마는 적나라하게 말했다. 태주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라도 해야겠어요.”

태주는 악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악마의 입장에서 이건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안 받아주는 것이 손해다. 사람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싸운다.

계산대로, 악마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재미있겠군.”

악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태주는 시계를 한번 슬쩍 살폈다.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태주는 곧바로 말했다.

“이야기를 듣겠다는 건 그런 뜻이죠? 앞으로 이야기하기에 따라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말이죠?”

악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불가능하지. 네가 왜 유정이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태주는 악마의 말을 중간에 끊고는 들어갔다.

“아마 운명 같은 거 아닐까요?”

악마는 질색하는 척 말했다.

“… 그런 미친 닭살 돋는 소리를 잘도 하는군. 뭐, 좋아. 일단 내가 말하는 것 정도는 끝까지 듣고 말하라고.”

악마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너는 계약 자체를 무효로 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그건 불가능해. 왜냐하면 너는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니까.”

“그 자식 같은 것인데도요?”

“하지만 친자식은 아니지. 너는 자식 같은 것이지만, 진짜 자식이 아니야. 계약을 무효로 하는 건 대신할 권리가 있는 친족이거나, 본인이 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악마는 대놓고 말했다. 태주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 그게 그렇게 되는 걸까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게도 그래. 그러니까, 너는 새로운 계약을 해야 해. 어쩔 수 없지. 절차가 그래.”

악마는 아쉽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이야말로 악마가 쳐 놓은 덫이다. 태주는 최대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척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계약이라고요?”

“그래. 계약. 양심상 공평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네가 동의하지 않은 계약은 하지 않도록 하지.”

악마는 느긋한 모습으로 말했다. 어차피 걸리지 않을 수 없는 함정이라면, 급할 필요가 없는 법이다. 태주는 그걸 알기에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평하지 않겠죠.”

태주는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상관없어요. 공평하거나, 공정하거나,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저는 제가 얻을 수 있는 것만 얻을 수 있으면 돼요.”

“뭐?”

악마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이미 알고 있어요. 당신은 분명히 제가 모르는 조항을 계약에 숨길 거에요. 아니면, 말로 하지는 않은 부분을 이용해서 다른 부분을 속이거나, 뭐 그렇게 하겠죠. 제가 아무리 신경 써도 계약으로 이길 수는 없을 거에요. 저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이미 듣고 왔잖아요? 그러니까, 알고 있어요. 알면서 온 거에요.”

태주는 악마를 똑바로 쳐다봤다. 나는 네 속내를 안다. 하지만 그걸 알고도 당해 주겠다.

태주는 대놓고 말했다.

“이런, 그건 권장할 수 없는 태도인데.”

악마는 걱정하는 척 말했다.

“네 말이 맞아. 결국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야. 계약상 손해를 볼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양심적인 거래는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러니까 최소한 시작하기 전에 물어는 보는 거야. 괜찮겠냐고.”

악마는 걱정하는 척 되물었다. 하지만, 이미 악마가 어떤 것인지 아는 태주가 보기에는 지금 그 말이 가장 가증스럽다.

악마는, 지금 자신이 절대로 그 계약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냥 죄책감을 더하는 정도의 일밖에는 되지 않는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좋아. 속이지 않도록 하지. 대신 원하는 것은 확실히 주도록 하겠어.”

악마는 선심 쓴다는 듯 말했다.

“너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유정인지 뭔지를 되찾을 생각인 거지?”

악마는 태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가 승부수다. 태주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자포자기인 미친놈으로 보이면 더 좋다.

“네. 무슨 수를 쓰더라도요. 제가 이 세상에서 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요.”

“흐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거야?”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한술 더 떠서 말했다.

“저는 손해를 보더라도, 당신이 아무리 큰 이득을 챙겨가더라도 신경 쓰지 않을 거에요.”

일종의 백지수표 선언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던 듯 악마는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지? 왜 그렇게까지 하지?”

악마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도저히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큰 건이 되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수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 이야기를 하나 더 얹어야 한다.

“왜 그렇게 하냐고요? 아저씨도 그렇게 했는데 제가 그러면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요?”

태주는 말했다. 막장 스토리에 막장 전개를 조금 더 얹는다. 아무리 악마라도 듣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제가 아저씨가 우리 엄마한테 호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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