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43화 (243/269)

외전- 1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15)

한 시간 뒤 악마와 만나러 간다.

적다면 적은 시간이지만, 동시에 아직 시간이 되기까지는 조금 남았다. 태주는 생각에 잠겼다.

남자가 말한 내용은 꽤 많았다. 전부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역시 핵심을 요약하면 하나뿐이다.

“악마는 손해를 보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

태주는 중얼거렸다.

이미 그 이야기가 끝난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단순히 거래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거래가 잘못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도록 고려하는 수준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악마라는 건 태주의 예상보다도 더 용의주도한 녀석이었다는 말이다.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했지만…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긴 한가 봐요.”

“그래. 악마도 그렇게 이야기했지.”

아저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의 말에 간신히 반응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물어보마.”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혼자서 괜찮겠니?”

걱정이 느껴지는 말투다. 태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혼자서도 괜찮은 게 아니에요. 저 혼자 해야만 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가능성이 없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말끝을 흐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일 것이 분명하다. 태주는 천천히 말했다.

“괜찮아요.”

“뭐?”

태주는 다시 한번 말했다.

“괜찮다고요. 저는 사라지지 않을 거에요. 유정이도 되찾아 올 거고요. 위험하기야 하겠지만, 우리가 유정이를 되찾으려면 이미 그 방법밖에 없어요.”

패턴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대화다.

지금까지 이 말을 할 때마다 아저씨는 결국 물러섰다. 유정이를 되찾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아저씨에게 없기 때문이다. 태주 역시 마찬가지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 그래, 안다. 너라면, 그래도 너라면 나보다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고. 너는 어릴 때부터 머리가 나보다 좋으니까.”

아저씨는 이번에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말로 대화가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보마.”

아저씨는 마침내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태주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뭘요?”

“네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고 있는지 말이다.”

아저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나는, 내 딸을 잃어버렸다. 나 때문에.”

“그렇죠.”

태주는 담백하게 긍정했다. 여기서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 봐야 그저 기만에 불과하다. 그 정도 사실은 서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아저씨는 씁쓸하게 말했다.

“내가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차라리 네 말대로 병원에 가야 했던 건데, 악마의 말에 귀 기울이기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말릴 수 없다.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내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니까.”

유정이가 돌아오고, 엄마가 그대로 남는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결과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너는 그때부터 계속 후회할거다. 어쩌면 자기 잘못이라는 생각을 할지도….”

아저씨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서로 알고 있다. 굳이 입 바깥으로 꺼낼 필요는 없다.

“알고 있어요.”

태주는 말했다.

“설령 성공하더라도 엄마는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에요. 그것도 알아요.”

아저씨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 태주가 겪을 부담감이나, 실패했을 때 생길 자책 같은 것을 포함해서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걸려 있는 것도 잃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이니 더 그렇다.

하지만, 아니다. 태주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제가 해야 하는 거에요.”

지금까지 이런 부담은 오로지 아저씨가 졌다. 유일한 어른이니까. 스스로도, 그리고 자신도 서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건 당연하지 않다.

“아저씨는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했어요. 네, 저도 알아요. 그건 제가 불쌍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아저씨가 말도 안 되게 좋은 사람이라서 한 고생이에요.”

좋은 사람이라서 지쳤다.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차라리 본인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래서 악마가 보기에 딱 좋은 타겟이었던 거겠죠.”

여러 가지 의미로, 아저씨에게 더 이상 이 일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이번 일은, 명분상으로도 실리상으로도 자신이 하는 편이 맞다.

“제가 해야 해요. 제 차례에요. 운명이라는 걸 믿지는 않지만 그런 게 있다면 이번에는 제가 하도록 정해져 있는 거겠죠.”

자신뿐이다. 지금 유정이에 대해서 알 수밖에 없는 아저씨를 제외하면 세상에서 유정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오직 태주 자신뿐이다.

“아저씨는 지금 한 잘못을 감안해도, 저한테는 그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에요. 그러니, 이번에는 제 차례인 거에요.”

태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오늘 안에 모든 게 끝난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 * *

악마를 부른다는 행위를 생각하면, 보통은 그런 광경을 생각한다. 오망성을 그리고 주문을 외우거나, 아니면 뭐 염소의 피를 바친다거나.

하지만 이번에 그런 건 필요 없었다. 주문을 외우거나, 제물을 바칠 필요도 없다. 그냥 아저씨가 악마를 부르는데 쓴 책을 만진 순간 악마는 나타났다.

“으음….”

태주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유황 냄새가 강렬하다. 이 냄새를 계속 맡는다면 분명히 건강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건 참, 의외로군.”

악마는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진구 녀석이 부른 거라고 생각했는데.”

태주는 악마의 모습을 살폈다. 아저씨에게 들은 대로 커다랗지 않다. 어린 아이 정도의 크기고, 크기에서는 별다른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명백히 사람이 아니다. 붉은 피부에, 뿔과 꼬리. 그리고 날개까지. 태주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자신은 악마의 앞에 선 거다.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군. 실수는 아닌 모양인데.”

악마는 노란 눈으로 태주를 쳐다봤다. 어딘가 날카로운, 위압감을 주는 그런 눈치다.

태주는 조금 손을 떨었다. 태주가 악마를 살피는 동안, 악마 역시 태주를 살폈다.

“네 얼굴을 안다. 네가 나를 부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대체 나를 왜 불렀지?”

악마는 차갑게 말했다. 진구 아저씨에게 들었던 것처럼 친근한 척하는 태도는 전혀 아니다. 차라리 좋다. 서로 이렇게 냉정한 태도로 대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 태주가 지금 대하는 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주는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명할 필요는 없어서 좋네요. 바로 용건부터 말할게요.”

태주는 말했다.

“아저씨 대신 쿨링 오프 하러 왔어요.”

“계약 철회 보증이라.”

악마는 피식 웃었다.

“이제는 자기가 말하기 어려우니 자식한테 말을 시키는 건가?”

태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자기가 가진 가장 큰 패를 깠다.

“계약이 잘못되었다는 증명은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유정이를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뭐라고?”

악마는 눈을 부릅떴다. 자신은 유정이를 기억하고 있다. 그 말은 아무리 악마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다시 말해 봐.”

악마는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뭐라고 했지?”

“저는 유정이를 기억하고 있다고요.”

악마는 태주를 똑바로 노려봤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무섭다. 단순히 혐오감이 있는 모습인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근본적인 부분에서 거부감이 드는 그런 형태다.

다행인 건, 이 공포를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악마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사람이 그리 이상하게 보일 리는 없다.

태주는 천천히 침을 한 번 삼켰다.

“이상한 일이군.”

악마는 태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진구가 시켰나? 그렇게 말하라고?”

“아뇨.”

태주는 아주 잠깐의 틈만 둔 채 말했다.

“저는 엄마가 없었던 사실을 알고 있어요. 십 년 전의 사고도 당연히 알고 있죠. 제가 어느 병원에 입원했고, 몇 살부터 이 집에 살기 시작했는지 같은 사실도 당연히 기억하죠. 더 말해야 증명할 수 있을까요?”

“… 단순히 외워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군.”

악마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어떻게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지?”

“몰라요.”

태주는 즉답했다. 사실, 정말 모른다.

“왜 그런 지는 저도 모르죠. 제가 왜 기억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지금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 건지도 어제가 되어서야 간신히 알았는데. 그런데 제가 왜 이 사실을 아는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안 그래요?”

태주 역시 악마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하나 있어요. 당신은 유정이를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만들지 못했어요. 제가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악마는 딱딱한 표정이 되었다. 계약 사기를 칠 정도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네. 제 존재 자체가 당신이 거래를 완벽하게 이행하지 못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는 말이에요.”

“… 그렇군.”

태주의 설명을 들은 악마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상황이 이해는 갔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알겠다. 네 말대로라면, 내가 확실히 계약대로 뭔가 이행하지는 못했나 보군. 젠장, 예상하지 못한 일인데.”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는데. 그런 말을 중얼거리던 악마는 계속해서 혀를 쯧쯧 차고 발을 동동 굴렀다. 정말로 분한 듯한 그런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본 태주는 재촉했다.

“그러니까, 되돌려줘요. 모든 걸 원래대로.”

태주는 악마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대로 만약 악마가 모든 것을 원상복구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일이다.

하지만, 사실 태주가 바라는 일은 아니다. 태주는 악마가 분명히 순순히 모든 것을 돌려놓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한 거다.

예상대로 악마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네가 기억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이는구나. 하지만 한 가지는 물어봐야겠다.”

“뭐죠?”

“내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건, 그래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계약의 당사자와 함께 오지 않았지? 왜 너만 온 거야?”

“그건….”

태주는 말끝을 흐렸다.

“아니, 잠깐만.”

악마는 뭔가 건수를 잡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태주에게 질문했다.

“혹시나, 아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악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구는 어디에 있지?”

태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봐, 말해야지. 계약이 정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들면, 물러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내가 손해를 보겠지만, 결국 그래도 해 줄 수는 있다는 말이지.“

악마는 말했다.

“하지만 계약을 무르기 위해서는 원래 계약 당사자가 와야 하는 법이야. 귀책사유가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멋대로 계약을 파기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 조금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제삼자가 무효니 뭐니 할 상황이 아니라고.”

“… 아저씨는 지금 이 상황을 몰라요. 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해주기는 했지만요.”

태주는 말했다.

“지금 이건 그러니까 제가 아저씨 몰래 하고 있는 짓이에요.”

“아하.”

악마는 안심한 듯, 재미있다는 듯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너 혼자 왔다는 말이군?”

태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 참, 재미있군. 네가 계약에 끼어들 여지는 없을 텐데.”

네가 무슨 권리로 이 이야기에 끼어드는가. 악마는 여유를 되찾고는 말했다.

“안 돼. 네 말을 들어줄 생각 없어. 그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라도 들고 오던가, 아니면 본인을 대동해서 와.”

“그건 안 돼요.”

태주는 눈을 치켜뜨고는 말했다.

“사정이 있어요.”

“관심 없어.”

악마는 잘라 말했다. 하지만, 태주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신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일 거에요.”

“흥미로운 이야기?”

악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좋아. 들어나 보지. 대신 재미 없는 이야기라면, 앞으로는 네 부름에 절대로 답하지 않을 거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게요. 대신 밖에 이야기가 들리지 않도록 해 주세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들어보고. 재미도 있고 가치도 있는 이야기라면.”

거드름을 피우는 악마에게, 태주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유정이는, 제 여자친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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