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14)
남자는 웃었다. 즐겁다는 듯 크게 웃었다. 어느 정도로 크게 웃었느냐 하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한 번 힐끗 쳐다볼 정도로.
솔직히 좀 쪽팔린다. 태주는 주변 눈치를 한번 보고는 말했다.
“… 그게 그렇게 웃겨요?”
하지만 남자는 계속 웃었다. 세상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한참 웃던 남자는 몇 분 뒤에야 대답했다.
“그래. 이 정도로 멍청한 소리는 오랜만에 들었어. 파는 쪽이 사는 쪽한테 가격을 묻다니.”
남자는 아직도 웃긴 듯 피식대며 말했다.
“그런데, 모순적인 부분은 그 말이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답에 가깝다는 거야. 정직하게 장사하는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질문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본인이 어디까지 뜯어낼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질문이란 말이지. 참, 지금 이 일이 일어난 원인이 되는 사람은 순진하게 굴어서 이렇게 되었는데, 그 자식 같은 사람은 이렇게 악랄하게 말하다니 이거 꽤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남자는 그 말을 마친 뒤 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 주변 사람들은 또 왜 저러나 싶은 표정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을 느낀 태주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그렇게까지 재미있지는 않을 텐데요. 그리고 그렇게 ‘악랄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진지하게 뜯어먹을 생각도 아니고요. 뭐 원래 의도가 그런 말이라는 건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와서는 그냥 일종의 농담 같은 거라고요.”
“농담이라고? 아니, 아니지. 그럴 리 없어.”
남자는 여전히 미소를 남긴 채, 하지만 눈빛은 진지하게 바꾼 채 말했다.
“너는 지금 그 말을 농담으로 한 게 아니야. 물론, 장난이 조금 섞여 있을지는 모르지. 하지만 분명 그 질문과 의도는 농담이 아니야. 그걸 속이려 들면 안 되지. 그것도 나 같은 사람한테.”
남자는 날카롭게 말했다.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이렇게 역으로 찔러 보는 것은 어지간한 배짱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나는 네가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진지하게 하는 게 웃겨서 웃은 거야.”
태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의 말은 분명 좀 적나라하긴 하지만 틀린 건 없다. 남자가 줄 수 있는 것은 명확한 반면,
태주가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상대방의 기분이 상했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뭐, 안심하도록 해. 애초에 그 말이 이 나라에서 유명하다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어. 그러니 네가 말한 ‘장난’이라는 말도 그러니 거짓말은 아니지. 종합해서 정리하면, 아마 너는 적당히 원하는 것을 챙겨가는 정도를 원했던 거야. 분위기 좋게 말이야.”
태주는 대답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나는 오히려 널 칭찬하고 있는 거야. 그 새 거기까지 생각해서, 어떻게든 나한테 뭔가 이득을 챙기려고 하는 모습은, 글쎄. 감탄스러울 정도거든.”
아마 다른 사람이 이런 짓을 했다면 남자 역시 별로 좋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태주는 나름대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조금 건방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허세를 부릴 줄 아는 녀석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어느 쪽이라도 상관은 없지.”
확실한 건, 남자에게 태주의 이런 말은 불쾌하게 들리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너는 내가 왜 악마가 나타난 곳에 찾아왔는지까지 고려한 거야. 그렇지?”
남자의 말을 들은 태주는 조심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오히려 마음에 들어. 잔뜩 쫄아있는 녀석보다는, 이렇게 나오는 쪽이 재미있지.”
남자는 태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바가지를 씌우더라도, 그 정도는 당해주지. 악마에 대해 알려줄게. 최소한 네가 지금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정말요?”
태주는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 안심했다. 하지만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조건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다음에 너는 나랑 같이 일 좀 하자.”
“일이요?”
“그래. 널 보니까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어서 말이야. 동의한다면, 악마에 대해서 알려주지.”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하든 이미 태주는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게 하죠.”
* * *
남자는 악마를 속이는 법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했다.
“무언가를 속이는 방법은 간단하지. 조건을 두 가지만 만족하면 돼. 첫째는 상대가 원할만한 미끼를 준비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미끼를 의심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
낚시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고, 남자는 말했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별로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 알아.”
남자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난 간단하다고 했지 쉽다고 하지는 않았어.”
사실, 낚시도 재미있는 일이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은 아니다. 가장 숙련된 낚시꾼이라도 가장 멍청한 물고기를 확실하게 낚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확률을 무지막지하게 높일 수야 있겠지만, 때와 장소가 맞고, 적당한 미끼를 챙긴 데다, 좋은 장비까지 챙겨서 가도 물고기가 미끼를 물어준다는 확신은 없다. 성공률이 100%일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상대가 악마라면 더 하겠지. 악마는 물고기가 아니니까.”
남자는 재미있게 웃으면서 말했다.
“… 그걸 설명이라고 하는 거에요?”
태주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악마에 대해서 설명하겠다고 하더니, 하는 말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설명은 저라도 하겠는데요.”
“그래. 그러니까 그다음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
남자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바꿔서는 말했다.
“악마는 물고기가 아니야. 그냥 미끼를 던진다고 물어버리는 그런 멍청이들이 아니지. 뭐, 그런 사례가 아예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 그렇다면, 대체 왜 악마는 평범한 사람에게 속을까? 어떻게 그렇게 흔하게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올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사례가 자주 있겠느냐는 말이야.”
태주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거기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남자는 그 표정을 보고는 씩 웃었다.
“그래. 생각해 본 적 없겠지. 악마와 사람은 그냥 그렇게 속고 속이는 존재라는 정도의 생각 정도만 하고 있었을 거야.”
물론 그 인식은 정확하다고, 남자는 말했다.
“하지만, 악마는 계약에 미친 녀석들인 것 치고는 생각보다 허술한 점이 있어. 악마가 사람을 파멸시키는 이야기가 많이 있는 것만큼이나 많은 이야기에서 악마는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기도 하지.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껏해야 농부나, 아니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이야. 그래도 동네에서는 알아주는 머리 좋은 인간들이었지만 말이야.”
솔로몬 왕 같은 예외적인 천재들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불세출의 천재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냥 평범하게 똑똑하고, 현명한 정도의 사람이라는 말이다. 남자는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약한 것이 지혜로 강한 존재를 물리치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인기인 법이야. 토끼나 여우가 호랑이나 사자, 늑대같은 걸 속이는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
그런 이야기가 업적으로 박제되는 것은 통쾌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가 모두 기록에 남는다면 그것 또한 나쁠 것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악마가 속아 넘어가는 이야기는 그리 적지 않아. 이 쪽은 악마가 별로 없지만, 중동쪽 가면 지역마다 하나씩은 있는 옛날 이야기 수준이기도 해. 아니야. 아무리 영구박제가 되었다 쳐도, 너무 많지. 이상하지 않아?”
사람만 배우고, 악마는 배우지 못하기라도 한다는 말일까? 태주는 처음으로 그 지점에 의문을 가졌다. 확실히, 이전까지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 그럼 일부러 속아 주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에요?”
“아니. 일부러 속지는 않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비슷해. 일부러 속아 주지는 않지만 속더라도 상관 없기 때문에 그런 거야.”
“속더라도 상관이 없다?”
“그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란 뭘까? 악마는 그래. 기본적으로 사람을 속이는 존재고, 타락시키는 존재야. 하지만 왜 그런 짓을 할까?”
대외적으로는, 영혼을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경우에만 악마가 거래를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태주가 이상한 것을 느낀 것처럼 말이다.
“짐작이 가?”
근본적으로 왜 그런 짓을 할까. 태주는 잠시 생각한 끝에 답을 내놓았다.
“그거야 모르죠. 그냥 악마는 나쁜 짓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요.”
태주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생각나는 다른 이유가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뭐, 일단은 그게 정답이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해. 한 번 더 물어보자. 악마는 왜 나쁜 짓을 좋아할까?”
다시 한번 반복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태주는 한 번 더 단순하게 대답했다.
“악마라는 것, 아니면 종족이라 해야 할까요? 어쨌든 악마라는 건 애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져서 그런 걸까요? 나쁜 짓을 좋아하도록 말이에요.”
태주의 대답을 들은 남자는 응? 하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어떻게 알았냐?”
“그냥 찍었는데요. 달리 생각나는 이유도 없고요.”
태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김이 좀 새는걸.”
하지만 말하는 것과 달리 남자는 웃었다.
“뭐, 정확하긴 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악마는 사람이 생각하는 나쁜 짓의 상징 같은 거야. 악마라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 온갖 나쁜 짓의 대표라는 말이지.”
사람이 어떤 것을 악하다고 생각할 때, 악마는 탄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뭐, 그래서 옛날 악마들은 종종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해. 예를 들면 악마가 추종자들에게 고기와 술을 주고 춤과 노래를 즐기게 한다는, 지금 보면 대체 어디가 나쁜 건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악마의 이야기도 나오지.”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이 죄악이던 시절에는, 그런 것도 악마의 소행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이야기도 있어요?”
“꽤 많아. 지금 보면 전혀 악마 같지 않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웃어넘기고 말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면 이해할 수 있겠지.”
악마라는 것은 세상에 악함이, 좀 더 정확히는 사람들이 사악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세상에 악함이 있다면 악마는 언제든 다시 생겨날 수 있다.
“악마를 속였다고? 그 끝에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고?”
검은 옷의 남자는 씩 웃고는 말했다.
“아니야.”
악마가 원하는 것은 당연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원해서 해도 좋고, 원치 않으면서 하면 더 좋다.
“악마가 사람을 타락시킨다는 건, 그러니까 꽤 맞는 말인 거지.”
사람을 속이고, 괴롭히고 불쾌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끝에 자신과 같은 사악한 것으로 변하도록 만드는 것. 혹은, 그런 사악한 행동을 사람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정당화하고 계속 반복하도록 만든다.
“사실은 악마를 속여넘겨서 이득을 취한 인간이 나타나면, 악마 입장에서는 그것도 이미 장기적으로 손해가 아닌 거야. 일종의 번식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악마를 등쳐먹는다. 상대가 악마이기 때문에 그것은 나쁜 것처럼 묘사되지는 않지만, 사실 거짓말을 하거나, 진실을 말하지 않거나, 기타 다른 방식으로 계약을 꼬아 놓고 거기서 이득을 챙기는 것은 당연하게도 나쁜 짓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그게 나쁜 짓이라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정당화하지.”
일종의 간접적인 학습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도 어쩔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한다면.
“사기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어쩔 수 없을 때는 쓸 수밖에 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겠지.”
흡혈귀가 전염병을 옮기는 방식으로 흡혈귀의 수를 늘려나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악마의 방식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사상을 옮기는 것이다.
남자는 물었다.
“자, 그럼 다시 한번 묻지. 속아 넘어간 악마는 손해를 봤나?”
그럴 리 없다. 태주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씩 웃었다.
“앞으로 다른 설명도 많이 하겠지만, 중요한 건 이것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남자는 천천히, 강조하듯 말했다.
“악마는 무조건 손해 보는 계약은 하지 않아.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