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41화 (241/269)

외전- 1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13)

다음 날 아침, 태주는 집을 나섰다. 얼마나 일찍 집을 나섰느냐 하면,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엄마보다도 일찍 집을 나섰다.

“어머,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 아냐?”

같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별수 없다. 이미 해가 서쪽에서 뜨는 수준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은 일어난 지 오래다.

“한순간도 낭비할 수는 없어.”

그 말 그대로 태주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가는 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카페 문을 한 번씩 열어보고, 한 번에 가게 전체를 살필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면 안쪽을 한번 살펴보고 난 뒤 다시 나선다.

“여기도 아니네.”

태주는 눈을 찌푸린 뒤 다시 카페 문을 닫고 나왔다. 이미 수십 개의 카페를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조금 미안한 감정도 들지만 어쩔 수 없다.

태주는 찾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몇십 번을 더 같은 짓을 반복한 뒤에야, 태주는 찾던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검은 옷의, 지나칠 정도로 수상하게 생긴 남자.

“찾았다.”

태주는 씩 웃었다. 한겨울이라 추운데도, 몸이 덥다. 태주는 그대로 쭉 걸어가 남자의 앞에 앉았다. 이미 꽤 오래 걸은 뒤다 보니 다리가 아프다. 솔직히 말하면, 더 이상은 서 있고 싶지 않다.

“앉아도 괜찮죠?”

“앉고 나서 그런 질문을 하는 거냐.”

남자는 당황한 듯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의자는 앉으라고 있는 거지.”

“다행이네요.”

태주는 바로 겉옷을 벗었다. 솔직히 덥다. 한겨울인데도 땀에 절었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를 어떻게 찾았지?”

“어떻게 찾긴요? 저한테 뭐 다른 방법이 있는 줄 아세요? 그냥 찍은 거죠. 하지만, 생각보다는 빨리 찾아낼 수 있었네요.”

태주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요행이다. 그냥 남자가 있을 법한 장소를 생각해 낸 뒤 계속해서 돌아다녔을 뿐이니까.

하지만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찍었더라도 대단한 일이야. 최소한 돌아다닐 곳의 가짓수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아니면 그걸 모르는 상태로 나를 찍어서 찾았다는 말인데, 그건 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운이지.”

대체 어떻게 그 수많은 장소들 중에서 자신을 찾아낼 수 있었는가. 남자의 질문에 태주는 머리를 한번 긁적이고는 대답했다.

“그냥, 아저씨의 집이나 제 원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태주는 말했다.

“뭐든지 안다는 사람이 굳이 저한테 그런 제안 비스무리한 것을 했다는 건 기본적으로 저에 대해서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절대로 멀리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자는 무표정하게 되물었다.

“너에 대해 호기심이 있는 것과 멀리 가지 않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지?”

“다른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저에 대해서는 모르니까요.”

남자의 입장에서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은 다 예측 가능한 범주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태주는 그렇지 않다. 남자 입장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유일한 변수다. 그걸 눈에 닿는 범위 내에 두고 싶지 않을 리 없다.

“그러니 제가 혹시나 공원에 나타나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저를 다시 찾아낼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있을 만한 곳이라 해 봐야 그 두 집 정도고, 그렇다면 그 두 집 사이에 있는 어딘가겠죠. 이건 확신까지는 없는 추측이었지만요.”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니 그 두 집 사이에 있을 만한 곳을 싹 다 뒤지면서 앞으로 걸었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네요. 덥기도 하고요."

남자는 태주의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질문했다.

“내가 호텔 방 안에 들어가 있다거나 하면 어쩌려고 이렇게 돌아다녔지?”

“아아, 그런 경우요?”

태주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말했다.

“어차피 못 들어갈 장소잖아요?”

만약 그런 곳에 있다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니 고려하지 않는다.

“감수해야죠.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게다가, 최악의 경우라도 시간에 맞게 공원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까요.”

“적당히 배제했다는 말인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납득이 간다는 표정이다.

“뭐, 좋아. 그다음 질문을 좀 해야겠다.”

“하시죠.”

태주는 슬슬 몸이 식은 것을 느끼고는 말했다.

“너, 시간이 넉넉하냐?”

남자는 태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무언가 재 보듯 하는 말이다.

“저녁이 되기 전에, 나를 찾는 데 몇 시간씩 쓸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많아? 어차피 나를 저녁에 만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공들여 나를 찾은 이유가 뭐지?”

“시간이 넉넉하냐고요?”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혀요. 뭔가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제 상황은 반대에요. 저는 시간이 없어서 당신을 찾은 거에요.”

“시간이 없다고?”

“네. 오늘 저녁까지 기다릴 수 없었거든요. 계약 파기라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잖아요? 당신에게 합격을 받아야 하기도 하고요.”

태주가 보기에 남자의 의도는 명백했다.

“이거, 일종의 테스트잖아요? 분명히 말했죠? 네가 원하는 대로 방법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지만 남자는 상황을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굳이 숨기지는 않았지만, 애매한 길이의 제한시간만을 주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그 행동의 의미는 명백하다.

그 짧은 애매한 시간 안에 네가 뭔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을 판단해서 올 수 있을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의견까지 제시할 수 있을까?

그리고 태주는 대답을 마련해 왔다. 그렇다면 더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제가 내린 결론은, 채점을 빨리 받으면 빨리 받을수록 좋아요. 그럼 저녁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거죠. 이 정도까지 했으면, 나름 합격점 아닌가요?”

남자는 잠자코 생각에 잠겼다. 팔짱을 낀 모습 그대로 한참 태주를 쳐다보던 남자는 이내 씩 웃었다. 그리고는 흥미로워하는 말투가 되었다.

“너는, 내가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네?”

태주는 당황해서는 되물었다.

“어디가요?”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네가 여기까지 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어.”

남자가 알 수 없다는 것은 분명 특이하지만, 그래도 그 밖에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일반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정도만 해 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는 일부러 조금 모자라게 준 기간보다도 더 빨리 결론을 냈어. 그리고는 나를 찾아내 눈앞에 나타나기까지 했지.”

이건 오산이지만, 그래도 아주 즐거운 오산이다. 남자는 말했다.

“만약 네가 적이었다면, 아무리 나라도 좀 귀찮았을 수도 있겠어.”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적이요? 그런 게 요즘 세상에 어디 있어요? 거기다가, 제가 당신을 해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전 그래봐야 평범한 사람인데.”

하지만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이건 꽤 진심이야. 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네가 작정하고 날 노렸다면, 나는 당했을지도 몰라. 그런 상상은 별로 해본 적 없는데 말이야”

태주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어, 제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해요?”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 하지만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적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야. 네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씩 웃었다.

“생각해 보라고. 악마랑 거래를 한 사람도 있는 마당에 말이야. 적이 있는 사람이 드물까?”

남자의 말을 듣고 나서도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그래서 전 합격인가요?”

태주는 당돌하게 물었다. 남자는 흐음, 하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일단, 그럴 것 같기는 해.”

하지만 정확한 내용을 들어보기 전까지, 그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그래도 이야기는 마저 들어 봐야지. 자, 그래서 너는 어떤 일을 하고 싶지? 네가 선택한 방법이라는 게, 내가 생각해 본 적 없는 새로운 방법인가?”

진지한 표정이 된 남자를 본 태주는 마찬가지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새로운 방법은 아닐 거에요. 저는 악마를 속일 생각이거든요.”

“악마를 속인다고?”

남자는 눈을 찌푸렸다.

“네. 물론 자세한 건 아직 좀 더 확인을 받아봐야 하겠지만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남자 쪽을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 자체도 조금은 생각해 놨는데, 혹시 도와주시겠어요?”

* * *

태주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단 하나다.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태주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다시 물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려고 하는군. 너, 진심으로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물어본 거야?”

말하는 내용과는 반대로, 남자는 미소까지 지으며 되물었다.

“이런 엄청나게 위험한 짓을?”

남자의 질문을 들은 태주는, 역시 솔직하게 말했다.

“모르죠. 그래서 혹시나 이런 게 가능할지 물어본 거 아니겠어요? 뭐든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방법이 통할지 안 통할지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태주 자신에 대한 것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결론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까. 태주가 기대하는 건 그 정도의 사실이다.

“생각보다 막 나가는 녀석인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물으면 가능은 하다.”

“가능‘은’ 이라고요?”

“그래. 왜냐하면,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실패할 일이거든. 완벽하게 계획을 수행할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을 상상한다면 가능하다는 말은 보통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지.”

남자는 덧붙였다.

“물론 그 방법은 조금 다른 이유긴 하지만 나한테도 불가능해. 아무리 말단의 멍청한 악마라도 나를 알 테니까.”

그러니까 그 짓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사람은 태주뿐이다. 남자는 그런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꽤 괜찮은 계획으로 들려. 결과를 알지 못하는데도 꽤 가능성이 보인단 말이지.”

“다행이네요.”

“그래. 다행이지.”

남자는 하지만 씩 웃고는 말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도와줬을 때 일이지. 지금 그대로 간다면 분명 실패할 거야. 계획 자체는 그럴듯하게 세웠지만 말이야.”

“… 그건 알아요.”

태주는 찌푸린 눈이 되었다.

“왜냐하면, 전 악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거든요. 아니, 조금 찾아보긴 했지만 도움이 되는 수준은 아니죠.”

“그걸 아니까 더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나를 찾았구나. 점점 더 마음에 들긴 하는데.”

남자는 태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 내가 악마를 속일 수 있는 지식을 준다면, 너는 내게 뭘 줄 수 있지?”

“뭘 줄 수 있냐고요?”

태주가 줄 수 있는 것은 솔직히 없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잡동사니나 생필품 같은 것, 거기에 용돈까지 포함하면 그래도 고등학생 갓 졸업한 사람치고는 적지 않게 있는 편이겠지만, 눈앞의 남자가 그런 것을 원할 리는 전혀 없다.

애초에 뭐든지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태주가 마련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마련해서 주더라도 그리 매력적으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뭐, 당연한 소리를 하시네요.”

그러니 태주가 남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하지만 뭐, 그냥 주는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태주는 처음으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한 번쯤 해 보고 싶었던 말 중 하나다.

“그래서,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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