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40화 (240/269)

외전- 1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12)

“쉬고 오시죠.”

앉아서 멍하니 있던 진구는 그 말을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

“선배님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도 정상이 아니잖아요. 지금도 말 한마디 걸었다고 깜짝 놀라기도 했고요. 이런 상태로는 솔직히 방해에요, 방해.”

후배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그렇지만 이 결론을 무를 생각은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이 태도를 보니 알겠다.

“…너 혼자 생각한 게 아닌 모양인데.”

후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솔직히 말해서, 오늘 상태가 영 아니잖아요. 본인도 알고 계시죠? 컨디션 최악인 거.”

“…할 말이 없군.”

진구는 혀 씹은 표정을 지었다. 오늘 하루종일 상태가 안 좋았던 건 사실이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멀쩡한 서류를 바닥에 떨어트리거나, 평범하게 사무실을 걸어가다가 사람이랑 부딪히는 일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거래처에게 보내야 할 내용을 후배 메일로 보내거나.

사실 다른 건 그냥 별 것 아닌 일이니 그렇다 쳐도 마지막이 결정적이다. 그나마 업무 관련성이 있는 내부인에게 보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보안사고가 일어난 셈이다. 이래서야 후배 말대로 있으면 방해만 되는 수준이었다는 말이다.

“미안하다.”

“아뇨, 선배가 미안할 건 전혀 없어요.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도 뭐 선배를 욕하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요.”

후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 지금 걱정하고 있는 거에요. 선배가 그러는 모습은 처음 봤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컨디션이 그렇게 안 좋으면 좀 길게 쉬고 오세요. 오늘 포함해서, 그냥 아예 내일이랑 모레까지 푹 쉬시라고요. 그럼 주말까지 끼고 정말로 길게 쉴 수 있을 테니까요.”

진구는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길게 쉬면 안 될 텐데.”

“평소라면 그랬겠죠.“

후배는 말하다 보니 자신이 좀 붙었는지 좀 더 자신있게 말했다.

“그래도 지금 회사 상황이 괜찮아요. 한 일주일 정도는 몇 사람 부족해도 괜찮을 정도로는 그렇죠. 왜냐하면 누군가가 저번 주에 모든 일을 다 끝내버려서 말이에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내일이 없다, 인가.”

진구는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진구는 실제로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자신이 없어지고 나면 진행되던 일에 뭔가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물론 악마는 그렇게 말했다.

‘없어진 사람이 생긴다고 곤란해지는 사람은 없어. 그건 말 그대로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이 된다는 말이거든. 그 사람의 일 같은 건 원래 다른 사람이 하던 일이 되어 있고, 뭐 다 그런 식이야.’

그러니 자신이 회사에서 사라진다 하더라도 특별히 곤란해질 사람은 없다. 악마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진구는 그래도 자신의 일을 끝냈다. 무리하는 것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했다.

결과적으로 자신은 사라지지 않았고 너무 일을 빨리 끝내버린 탓에 자기 부서가 조금 한가해져 버린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했나?”

진구는 혀를 한 번 차고는 말했다.

“네, 그랬죠. 뒤에서 따라가기만 해도 힘들 정도로요. 어쨌든 지금 이렇게 되고 나니까 또 한가해서 좋긴 하네요.”

후배는 그렇게 말하다가, 아차 하고는 덧붙였다.

“어쨌든! 며칠 정도는 선배 없어도 그럭저럭 굴러갈 거에요. 그러니까 좀 쉬시라고요. 아무리 혼자라도 집이 마음 편하시잖아요. 어쨌든, 여기 있으면 계속 일이 신경 쓰이기도 할 거고요.”

진구는 뭐라 한마디 할까 하다가는, 그냥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친구는 자신이 핵심을 찔렀다는 사실을 모를 거다. 그러니,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말하는 사람에게 쏘아붙이듯 말하고 싶지 않다.

진구는 주변을 슥 둘러봤다. 알게 모르게 다들 자신을 보고 있다.

“그래. 그래야겠어.”

이내 진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진구가 회사에 출근한 것은 사명감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 남아있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 간 것도 아니다. 오직 있었던 건 관성뿐이다. 이십 년 가까이해 오던 일이기 때문에, 그저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회사로 향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와서는, 일부러라도 악마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일을 손에 잡았다.

하지만, 그것조차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면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이럴 거면 회사에 뭐하러 온 건지.”

진구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말했다. 이 시간에 회사에서 나갈 만한 사람은 자신뿐이니, 엘리베이터에는 혼자뿐이다.

“아니지, 아니야.”

진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회사에 왜 왔을까 하는 의문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은 왜 그런 짓을 한 걸까. 자신은 왜 악마의 거래를 그렇게나 간단하게 받아들이고 만 것일까.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나.”

이것도 저것도, 결국은 부족할 뿐이다. 진구는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어제도 그랬다. 마지막까지 자신은 결심하지 못했다. 친구와 딸을 저울질해서는, 결국 선택하기를 포기했다.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도망치듯 도망쳐 나와서, 무슨 염치로 자신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일까.

회사 입구 쪽에서 진구는 중얼거렸다.

“내가 사라졌어야 했는데. 대체 왜….”

“글쎄요.”

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답변이 돌아왔다. 그것도 지금 이 장소에서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적 없는 목소리로.

자식처럼 사랑하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았던 그런 사람.

진구는 말했다.

“왜 여기에 있니?”

태주가 눈앞에 있다.

* * *

“왜 여기에 있니?”

아저씨의 말투는 딱딱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을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난 것처럼. 하긴, 아저씨가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회사 위치야 사실 옛날부터 알았지만 자신이 이곳에 와 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왜 여기에 있냐고요? 그야 뭐, 제가 아저씨 회사 앞에 나타날 이유가 다른 게 있겠어요? 당연히 아저씨를 만나러 온 거죠. 타이밍까지 계산한 건 아니지만요.”

원래는 아저씨가 원래 퇴근할 시간이 될 때까지 이 자리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타이밍이 딱 맞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제가 드리고 싶은데요. 왜 이렇게 회사에서 빨리 나온 거에요? 출장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태주의 질문을 들은 아저씨는 눈을 한번 찌푸리고는 말했다.

“아니… 쫓겨났다.”

“…? 해고라도 당한 거에요?”

태주는 당황해 말했다.

“하루아침에요?”

“아니, 그냥 그 상태로 회사에 있어 봐야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을 들었거든. 강제로 조퇴처리 당했다.”

“난 또. 세상이 뒤집히더니 아저씨 같은 사람이 회사에서 잘리는 일도 일어나는구나 했네요.”

아저씨의 말을 들은 태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조퇴라, 하긴 뭐. 할 만하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태주에게도 일이 있었다면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며칠 쉬었을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오늘 아침에도 그렇게 나가시는 걸 보면 참… 사실 그거야말로 대단한 일이죠.”

아저씨의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건 태주뿐이다. 태주의 눈빛을 본 아저씨는 시선을 피한 뒤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내 이야기는 됐어.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고. 용건이 뭐야?”

“용건이요? 뭐 대단한 게 있겠어요? 아저씨한테 부탁할 말이 있어서죠.”

“부탁?”

아저씨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네 엄마 관련한 거냐?”

태주는 아저씨를 똑바로 쳐다본 채 말했다.

“뭐, 틀리진 않지만 그건 좀 너무 간접적이네요. 악마와 관련한 부탁이에요. 뭐 좀 물어볼 것도 있고요.”

아저씨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어볼 거라고? 할 이야기는 어제 거의 다 한 것 같은데.”

“그건 아저씨 입장에서나 그렇죠. 아저씨는 아저씨가 하고 싶은 말, 아니면 할 수 있는 말만 한 것에 불과해요. 제가 정말로 궁금한 것 같은 건 아직 이야기를 한 게 없다고요.”

물론 아저씨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예를 들어, 왜 유정이가 사라졌는지에 대한 것이나, 그런 짓을 왜 저질렀는가. 듣지 않는 것보다는 당연히 듣는 편이 나았다.

“유정이가 사라진 건 어쨌든 사고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아니, 정확히는 일종의 사기당한 것이나 다름없겠지만요. 어쨌든 아저씨가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 일어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알 수 있었고요.”

하지만 아저씨가 설명한 것은 거기까지다. 사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다.

감정이다.

아저씨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게만 설명하고 넘어갔다.

“아저씨는 애초에 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그런 거래를 했죠? 그건 정상적인 거래가 아닌데 말이에요. 아저씨는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안 했어요. 사실은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일 텐데도 제대로 된 건 전혀 말하지 않았죠.”

“그건 그냥 내가 멍청한 판단을 했을 뿐이야.”

“네, 그래요.”

태주는 딱 잘라 말했다. 어쩌면 냉정하게 보일 수 있을 정도로.

“그건 멍청한 판단이었어요.”

하지만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태주는 간만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생각해 봐요. 아저씨가 그렇게 사라져 버리면, 애초부터 아무도 아저씨가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이겠어요?”

태주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아저씨가 사라지는 것도 저한테는 지금 유정이가 사라진 것만큼이나 똑같이 힘든 일이에요. 그걸 아셨어야 했어요.”

“하지만, 악마의 말대로라면 그것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테지. 그렇다면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변명하듯 말했다.

“네, 그걸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게 저한테는 화가 나는 거에요.”

아저씨는 분명히 말했다. ‘지쳤다’라고. 무엇에 지쳤는지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니 알 것 같다. 아저씨는 분명 사는 것이 피곤한 것이다.

“그거 알아요? 사람이 자기가 아픈 것만 아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자기가 아픈 것만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아저씨는 명백히 후자죠.”

태주는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튼튼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괜찮았어요. 다른 사람이라면 포기하거나, 애초부터 시도도 안 할 일을 하면서도 견딜 수 있었어요.”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몸도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이지만 그 이전에 정신이 강인하다.

항상 올바르고자 한다. 옳은 선택을 하고자 한다. 자신의 감정과 별개로,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한다. 조금 피곤하지만, 가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그쪽이 좀 더 옳은 일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한다.

“힘든 티를 내지도 않고 그런 결정을 내리죠.”

태주는 아저씨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이 둘을 혼자 키우면서도 불만 한번 없었다. 다른 힘든 일이 닥쳐도 그냥 받아들이고, 담담히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러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가족도 그리고 어쩌면 심지어는 본인조차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죠.”

태주는 한숨을 쉬듯 말했다.

“아저씨, 보통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지친’ 정도로는 그런 바보 같은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요.”

극도의 우울감. 일종의 간접적인 방식의 자살. 스스로 사라지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라고 봐야 한다.

“아저씨는 한계였던 거에요. 정신적으로 말이에요.”

문제는 그 와중에도 아저씨는 바뀔 수 없었다.

“지금도 봐요.”

태주는 말했다.

“아저씨는 딸을, 그러니까 유정이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찾고 싶을 거에요. 하지만 그게 도덕적으로 올바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나니까, 아무것도 하지 못했죠.”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도 고민을 하지 않거나, 고민을 하더라도 결국 딸을 되찾는 선택을 할 거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아저씨는 그런 사람이에요. 제가 엮여 있다보니 더 고민이 된 것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 태주는 결정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은 제가 해 볼게요.”

“뭐?”

“유정이를 되찾는 거요. 저는 아저씨처럼 그게 올바른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거든요.”

그렇게 하고 싶으니 한다. 그뿐인 이야기다.

“그리고 안 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가능하다면 엄마도 계속 세상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태주 스스로 생각해도 별로 현실적이지 않은 목표다.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말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아뇨, 가능성은 있을 것 같아요. 위험할지는 모르지만 불가능은 아니에요.”

태주는 말했다. 검은 옷의 남자를 떠올리며 말했다.

“악마 비슷한 것과 만난 건 아저씨만 그런 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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