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11)
“너무 조용한걸.”
태주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경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오늘따라 이 조용함이 새삼스럽다. 한참동안 살았던 아저씨의 집이 아니라, 자신이 원래 살던 이 집이라서 그런 건가 싶었던 태주는 이내 이유를 깨달았다.
“아, 그런가.”
지금은 집에 유정이가 없다.
평소에는 혼자 나와서 텔레비전이라도 틀어 놓는 게 습관인 유정이가 존재하지 않으니, 집안이 지나치게 조용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며칠 전까지는 보지도 않으면서 뭐하러 틀어 놓느냐 구박하곤 했는데, 정작 그 소리가 없으니 또 기분이 이상하다.
묘한 씁쓸함이 느껴진 태주는 혀를 한 번 찬 뒤 말했다.
“아니,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다지만 그래도 너무 텐션 떨어지는데.”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다. 지금은 억지로라도 그런 기분을 무시해야만 한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아저씨를 통해 말을 전해 들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아무리 이게 원래 악마가 해준 말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동의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다. 상대방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거래를 하려는 인간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그게 문제야.”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악마에 대해 아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물론 조사가 성과가 없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악마에 대한 자료는 수도 없이 나왔고, 그 전부가 꽤 양질의 정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악마라는 것은 창작물의 인기스타라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문제다. 태주는 피로한 눈을 잠시 감았다.
“악마라는 거, 생각보다 종류가 너무 많아.”
성경책에 나오는 녀석들이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악마들, 게임에 나오는 악마들이나 영화나 만화 속에 나오는 악마들까지. 어떤 것은 순수하게 나쁜 것이고, 어떤 것은 이게 진짜 악마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순박한 녀석들도 있다.
“그러니 조사가 끝이 안 나지.”
그렇게 중얼거린 태주는 이내 결심했다.
“이 이상 악마의 종류를 알아보는 건 의미가 없겠어.”
혹시나 알아보지 않은 악마들 중에 큰 힌트가 될 만한 녀석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에 지금까지 조사를 반복했다. 혹시라도 놓치는 게 있다면, 그리고 그걸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면 분명히 엄청나게 크게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니 그렇기에 포기해야 한다. 조금의 불안 때문에 다른 할 수 있는 일을 내버려 두고 계속 매달리는 건 오히려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확률을 낮추는 일에 불과하다.
이래도 후회할 가능성이 있고 저래도 후회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래도 성공 확률이 높은 쪽에 거는 게 맞다.
태주는 조사를 멈췄다. 그리고 지금까지 악마들에게서 대부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에 주목했다.
“악마는 뭐랄까. 계약을 중요시한다.”
물론 세부적인 부분은 조금씩 다르다. 계약에 한해서는 진실만을 말하는 종류도 있고, 계약에 있어서도 필요하다면 그냥 거짓말을 하는 녀석들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계약이나 약속 같은 것이 아주 중요한 것인 것은 확실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번 맺은 계약은 어기지 않아.”
계약 자체가 속임수거나, 파기되거나 종료된 다음 상대방을 해치는 일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고, 심지어 계약에 써 있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상대방을 농락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에 명시된 내용 자체는 절대로 어기지 않는다. 사기가 몸에 배어 있는 존재라지만 최소한 계약 자체는 꽤 성실하게 이행한다.
“그리고 그게 계약이라면, 아무리 말도 안 되고 불합리한 일이라도, 심지어는 금기이고 불가능한 일이라도 악마들은 해내고 만다.”
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태주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하지만, 이번 경우에도 그랬다는 것은 확실하다. 대체 무슨 수를 써서 세상에서 유정이를 지웠는지, 그리고 엄마를 되살려냈는지 짐작이 전혀 가지 않는다.
“괜히 악마숭배자 같은 것들이 생기는 건 아닌 모양이야.”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저씨도 괜히 속은 건 아닌 셈이다. 악마가 제시할 수 있는 것들은 그만큼 매력적이다. 간접적으로 한번 크게 덴 태주조차 이런 상황에 처한 지금도 악마가 대단하긴 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속지만 않는다면 여전히 꽤 매력적인 거래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하긴, 어떻게든 속여먹으려고 하는 것들이니까 악마가 된 거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 태주는 일단 생각을 전환하기로 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자. 악마가 그렇게 계약을 중요시하고,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마법 같은 존재라면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당연히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 기타 능력을 가지고도 어지간하면 이길 수 없다.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는 그런 괴물 같은 녀석들이다.
“뭐, 그 남자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가능하다 쳐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악마 퇴치법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효과가 있는지도 미지수지만, 효과가 있더라도 곤란하다.
“우리는, 아직 돌려받아야 하는 게 있어.”
태주는 중얼거렸다. 그런 의미에서 악마를 쓰러트리는 방식의 퇴치법은 사용하면 안 된다. 최소한 지금은 그렇다.
“그럼 결국 방법은 하나야.”
악마를 속이는 것. 이쪽도 어렵긴 마찬가지지만, 불가능은 아니다.
“악마와 잘못된 계약을 해서 파멸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만큼 악마를 역으로 속이는 이야기도 많아.”
태주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어릴 때 읽었던 탈무드 비슷한 책들에서 악마를 속여먹는 내용이 자주 나오곤 했고, 파우스트 같은 것도 결국 마지막에 악마가 계약 사기를 당하는 내용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물론, 파우스트 자체는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이런 사기 계약의 달인이라도 당할 때는 당하는 법이라는 말이지.”
결국 이야기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고할 만한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될까?”
태주는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이게 사실상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이런 게 있다.
“악마가 과연 내가 이런 결론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까?”
태주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했다.
“아니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닐 거다. 분명히 그렇다. 악마가 초보가 아닌 이상 이런 거래를 여러 번 경험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수많은 사람들을 이미 봐 왔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지금까지 멀쩡하게 잘만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통하지 않았거나 아예 역으로 해치웠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한 번 속았어. 악마가 저번에 가져간 것보다 더 큰 이득을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야.”
그렇게 되면 큰 거 한 방을 노려야 한다는 말이고, 결과적으로 더 크게 속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 당연히 악마가 눈치챌 확률이 높아지겠지.”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방법은 하나뿐인데, 그 방법의 성공 확률이 너무 낮다.
“어떻게 해서 속이면 되는 거지? 어떻게 하면 악마가 얻은 이득보다 더 큰 이득… 을….”
거기까지 말하던 태주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잠깐, 악마가 이번 일로 얻은 이득이 대체 뭐지?”
악마가 영혼 하나를 챙겼다. 지금까지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게 자연스러울 리가 없다.
대체 이 짓을 해서 악마는 무슨 이득을 얻었나. 그걸 한번 떠올리고 나니 새삼스럽게 상황이 아주 이상해 보이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래, 당연히 유정이를 되찾는 것이 일 순위의 목적이야.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손해를 봤어. 하지만, 악마에게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유정이의 영혼을 회수해 간 데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야.”
악마는 분명 말했다. 최소한 등가처럼 보이는 교환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악마는 유정이의 영혼을 가져가는 대가로 엄마의 영혼을 되돌려놨다. 그리고,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추가적인 작업까지 했다.
“있었던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없었던 것을 있었던 것으로 만들었지. 나나 아저씨를 제외하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게다가 아저씨는 말했다. 악마는 지금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한 밑작업를 하기 위해서 꽤 오랜 기간 자리를 비웠다고.
“물론 그것도 일종의 속임수일지는 모르지. 악마가 엄살피운 것만큼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그 작업은 최소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어려웠을 거야.”
비록 악마가 속임수를 쓰기는 했지만, 그리고 사람을 숫자로만 봐서는 당연히 안 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숫자로 표현하면, 악마가 한 것은 결국 일대일의 교환이다. 어떻게 뜯어봐도 악마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악마는 말했다. 세상에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지만 여기까지만 보면 악마는 분명 손해 보는 장사를 했어.”
둘 다 손해를 봤다. 이건 등가 교환이라기엔 뭔가 이상하다.
물론 만약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은 간단하고 소모가 없는 일이고, 반대로 있던 사람 하나를 없었던 것으로 해서 영혼을 회수하면 큰 이득이라 한다면 악마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야 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악마는 굳이 유정이의 영혼을 가져갔지? 따지고 보면 아저씨의 영혼을 그냥 가져가는 편이 깔끔했을 텐데.”
분명히 그렇다.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가능한 질문을 계속 던졌고, 또 언제든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악마를 불러낼 것이다. 어떻게든 유정이를 되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건 악마에게 있어서 꽤 귀찮은 짓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비유가 적절한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성난 소비자가 계속해서 A/S를 요구하면 요구할수록 그건 판매자 입장에서 손해가 되는 법이다.
“그러니 그냥 영혼 하나를 회수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여러모로 아저씨의 영혼을 가져가는 편이 이득이야.”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악마는 심지어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항의하라는 듯 여지까지 남겼다. 조롱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혹시 네가 어떤 증명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은 언제든지 지금 이 계약을 물러주고 원래대로 돌려놔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계약을 그렇게 중요시하는 악마인데도.
분명 힌트가 거기에 있다. 태주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대체 뭘 노리고 있기에 아저씨가 자신을 계속 불러내는 걸 원하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악마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건 뭘까. 대체 어떤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악마는 그런 짓을 한 걸까.
아저씨와 계속해서 대화하는 데서 악마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만 알아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