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38화 (238/269)

외전- 1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10)

거기서 진구는 더 이상 무언가를 말하지 못했다. 악마의 마지막 말은 진구에게 있어서 말 그대로 악마적인 위력이었다.

“내가 없어지고, 내가 하던 일을 내 오랜 친구에게 맡기고 나서 나는 사라진다는 생각은 최악의 결과로 돌아온 거야.”

물론, 속아서 일어난 일이다. 악마는 분명히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사실을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런 관점에서 진구는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취소하고 원래대로 돌려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건 옳은 것일까.

“나는 양자택일을 강요당한 셈이다.”

진구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유정이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히 하고 있다. 그 애는 내 딸이야. 절대 그냥 포기할 수는 없지.”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

자신의 딸을 되찾기 위해서 아들이나 다름없는 아이의 진짜 어머니이자 자신의 친구를 잃어버리는 것 역시 잘못되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건 다 물어봤던 것 같다.”

아저씨는 침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래 자체를 취소하는 쪽이나, 아니면 새롭게 거래를 해서 내 영혼과 유정이의 영혼을 다시 맞교환하는 게 가능하냐는 것을 물어봤다. 그런 건 당연히 다 물어봤지. 하지만 악마는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하거나, 그런 거래는 받아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더 이상 떠오르는 질문이 없어질 때쯤, 악마는 사라졌다. 다시 자신이 혹할만한 거래를 제시한다면 그때는 다시 나타나겠다고, 악마는 말했다.

“그 뒤로, 악마는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아저씨는 그 이상으로는 말하지 않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 같은 태도이기도 했고,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태도 같기도 했다.

아니, 사실상 둘 다겠지. 태주는 말을 툭 뱉었다.

“아저씨.”

태주는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고,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들었는데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속아서 잘못된 계약을 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에 왜 속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태주는 입을 열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에요.”

알고 있다. 지금 이 질문은 분명 아저씨에게 비수처럼 박힐 거다. 이미 아저씨의 눈 밑은 검고, 손은 떨리고 있다. 오늘 처음으로 산 걸로 보이는 담배는 벌써 몇 개비 남아있지 않다.

분명 아저씨는 잠도 자지 않은 채 가능한 모든 것을 찾아봤을 것이다. 딸의 흔적이 남아있을 만한 그런 장소나, 기록 같은 것을 모두 살폈을 것이다. 태주가 찾아봤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양을 뒤져봤을 것이다.

태주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집에 돌아가는 동안, 그리고 지금 일어난 일을 감지하고 찾아온 이상한 남자를 만나서 간신히 사실을 추측할 수 있게 되는 동안 아저씨는 이미 해볼 만한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없었을 거다. 태주 역시 이미 확인이 끝났다. 아무리 찾아도 그런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찾을 수 없었을 거다. 그러니 아마 그 흔적을 찾아보는 행동은 희망을 찾는 작업이라기보다는 그저 확인사살에 가까운 상황이었겠지.

그러니, 태주가 이 질문을 할 필요는 사실 없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에요? 이런 짓을 대체 왜 한 거냐구요.”

그럼에도 태주는 물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제가 엄마를 돌려달라는 말이라도 했나요? 아니면 제가 아저씨한테 원망의 말이라도 뱉었나요? 그런 적은 없었을 텐데요.”

태주의 말을 들은 아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새 담배를 그대로 꺼내 입에 물었다.

아저씨는 물고 나서야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듯 뒤늦게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여전히 손이 덜덜 떨린다.

한 모금, 아저씨는 최대한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뱉으며 말했다.

“글쎄다.”

아저씨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왜 그랬는지.”

아저씨는 말했다. 그 표정은 정말로 알 수 없어 하는 표정처럼 보였다.

“잘은 모르겠어.”

“모르겠다고요?”

“그래. 어떤 것도 이유가 되는 것 같고, 그 어떤 것도 이유가 아닌 것도 같아.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있다.”

아저씨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살짝 콜록거리는 기침을 한 번 했다.

“나는, 지쳐있었던 것 같아.”

지쳐있었다. 간단한 표현이지만, 내포하고 있는 것은 꽤 많다. 악마는 말했다. 악마를 부를 수 있는 건 거의 다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그건 말 그대로 미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포함해서 한 말이겠지만, 그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몰려 있는 사람도 그 ‘정신 나간’ 사람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지치고 피곤한 정도만 되어도, 아니면 조금 들뜨거나 흥분한 상태만 되어도 얼빠진 일을 하는 것은 드물지 않다. 그걸 간과했던 것이다.

아저씨는 씁쓸하게 말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그게 문제였던 거야.”

태주는 눈을 감았다.

여전히 아저씨를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화가 난다거나, 짜증이 난다거나 하는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그저, 뭔가 막연한 불만이 있다. 태주는 곧 깨달았다. 이건, 일종의 서운함이다.

“왜 저희보다 악마에게 더 먼저 그런 말을 한 거에요?”

그렇게 힘들었다면 자신에게, 아니라면 차라리 유정이에게, 아니면 둘 다에게라도 말했다면 같이 해결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그렇게 못 미더웠나요?”

“믿지 못했다는 건 아니야. 너희를 못 믿다니,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동시에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던 거야. 나는 너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아저씨는 후회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태주는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화는 난다. 짜증도 난다. 엄마를 만난 건 좋은 일이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그건 유정이를 잃어버리면서까지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저씨를 잃어버리면서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는 건 저한테도 참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지만, 그래도 말해야겠어요.”

차라리 다행이다. 태주는 그렇게 말했다.

“저는 유정이를 기억해요. 왜 그런지는 몰라요.”

“그런 모양이더구나.”

“네. 그렇죠.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 아저씨가 없어졌더라도 저는 아저씨를 기억했을 거에요.”

어쩌면, 그게 더 최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검은 남자가 나타나지 않고, 엄마와 유정이와 자신만이 남아서 이 세상에 아저씨는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되어버린다면. 태주 혼자만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다시는 그러지 마요.”

태주는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아저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느새, 두 개비째의 담배도 전부 탔다.

“다시 그럴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다시 한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태주는 아저씨가 세 개비째의 담배를 꺼내려는 것을 막았다.

“오늘은 거기까지만 하세요. 나머지는 제가 좀 알아볼게요.”

“알아본다고? 뭐를?”

“악마를요.”

태주는 침착하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솔직하게 말하라고 조금 다그쳐 보기도 하거나.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아직 해볼 만한 것이 남아있다. 포기하거나, 화를 내는 것은 아직 이르다. 그 수상한 남자는 분명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그리고 그중 어떤 방법을 쓸지, 네게 의견이 있다면 어디 한 번 그렇게 해 보겠다고. 그 남자가 정말로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거다.

태주는 말했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요?”

* * *

태주는 생각에 잠겼다.

아저씨에게 호기롭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 정말 태주가 무언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태주가 아는 것은 그 검은 남자가 말해 준 해결할 방법 같은 것은 당연히 있다는 그 한마디 말뿐이다.

애초에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사실이라 해도 그 남자에게 가능한 방법이 태주 자신에게도 할 수 있는 방법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충분해.”

태주는 조용히 말했다.

가야 할 길은 까마득하지만, 그래도 분명 오늘은 성과가 있었다. 하루 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마음이 편해진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몇십 배는 더 불편해졌다. 태주는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낫지.”

다행이다. 최소한 지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고, 어떤 방향으로 알아봐야 할지 감은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분은 여전히 별로지만.”

태주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집 현관을 열었다. 십 년 전 살았던 집이라도 하루 만에 익숙해지는 걸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왜 이렇게 늦게 올라온 거야?”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엄마는 말했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더니.”

“음, 뭐랄까 좀 진지한 이야기를 했거든요.”

태주는 적당히 둘러댔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였어요.”

“진지한 이야기?”

엄마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무슨 진지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할 게 있었나?”

“아아, 뭐 그런 게 있었어요.”

엄마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나저나, 주무시고 계실 줄 알았는데요.”

“뭐, 아들 얼굴은 보고 자려고 그랬지. 이렇게 늦을 줄은 몰랐지만. 날이 추운데 그렇게 밖에 있으면 감기 걸린다?”

엄마의 걱정을 들은 태주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에이, 제가 그래도 감기 걸린 적은 별로 없잖아요.”

“모르는 거야. 그렇게 방심했을 때가 제일 위험한 거라고.”

엄마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심했을 때라….”

태주는 쓴 표정을 지었다. 사실, 웃음이 안 나온다. 다행히 엄마는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너는 내일도 쉰다지만, 너무 늦게 일어나지는 마.”

엄마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그럴게요. 안 그래도 할 일도 있고요.”

문을 닫고 들어가려는 엄마를 본 태주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참.”

“응?”

태주는 한가지, 엄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태주의 질문을 듣고 나서 뭐 그런 것을 묻느냐는 듯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한 그런 즉답이었다.

“역시 그런가요.”

태주는 웃었다. 이번에는 그래도 조금 밝은 미소다.

“그게 맞는 거겠죠?”

“그거 말고 다른 이유가 있겠어?”

엄마도 마주 보고 웃었다.

“진짜로, 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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