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9)
“잠깐, 잠깐만요.”
태주는 잠시 아저씨의 이야기를 끊었다.
“그런 제안을 진지하게 들었다고요?”
태주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헛소리를요? 아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거 보면 마냥 헛소리는 아니었겠지만….”
“그래. 무슨 기분일지 안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무 안일하게 대했다, 바보같이 대했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지.”
하지만, 변명같이 들려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악마의 말이 맞아. 나도 절실했던 거야.”
* * *
“그런 게 가능하다고?”
진구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그럼 그런 건 가능한가? 애초에 십 년 전에 사고가 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바꾼다거나.”
“글쎄다. 그 사고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죽거나 한 사고인 건가?”
악마의 질문에 진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 사람 정도 죽었지. 대형 추돌 사고였거든. 당연히 다친 사람은 더 많고.”
“그럼 다친 사람들은 깎아준다 쳐도 열 사람 분량의 영혼을 받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내 쪽이 손해거든. 장사라는 게 늘 그렇지. 손해 보는 장사를 하기 시작하면, 그냥 장사를 접는 편이 나아. 그건 인간도 동일할 텐데.”
악마의 말을 들은 진구는 실망한 듯 말했다.
“그런가.”
“그래. 이봐,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네가 줄 수 있는 영혼은 잘 해봐야 한 개야. 네가 가지고 있는 거 말이야. 나야 더 받으면 그런 일을 하는 데 거부감이 없지만, 너는 아냐.”
악마는 친절하게 말했다.
“너는 남의 영혼까지 빼앗아서 나한테 줄 만큼 나쁜 짓을 할 수 없어. 나는 알 수 있지. 악마에게도 친근함이나, 이해심이라는 게 없는 건 아냐. 상대방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거래를 시도하는 얼간이가 어디에 있겠어? 악마만큼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존재도 없어. 이건 천사도 못 할걸.”
진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이는군.”
“그래. 그러니 나는 그런 거래는 별로 추천하지는 않아. 최소한 너에게는 말이야. 그래도 하겠다면, 최대 하나 정도 되살리는 선에서 멈추는 걸 추천하지.”
악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꽤 친절한 미소처럼 보인다.
“그 정도만 해도 네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이라고.”
“영혼 하나라.”
악마가 바라는 것이 뭔지, 당연히 눈치챌 수 있다.
“좋아, 한번 재미 삼아 견적이나 내 보도록 하지. 내 영혼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영혼 하나에는 영혼 하나. 너도 짐작하고 물어보는 거 아냐?”
악마 역시 피식 웃었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짐작이 가. 물론 그 사고가 뭔지는 잘 모르겠으니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거기다 상황을 좀 자세히 파악해야 하겠지만… 그래 가능할 것 같아. 이야기를 들어보고 한 명 정도는 죽지 않았던 것으로 해 주지.”
* * *
사고 당시의 이야기를 들은 악마는 눈을 찡그리고는 말했다.
“난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군. 상황은 알겠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뒤에서 들이받은 차 때문에 일어난 사고 아닌가? 그렇다면 아무리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해도 네 잘못이 아닐 텐데.”
“그래. 법적으로는 내 잘못이 아니지. 도의적으로도, 내 잘못은 거의 없을 거야. 대부분의 사람이 피하지 못할 상황에서 나 역시 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조금만 더 조심했다면,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은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그 죄책감이라는 게 난 이해가 안 가. 그런 게 영혼을 포기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냐 말이야.”
“글쎄. 당연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진구는 거기까지만 말했다. 입을 꾹 다문 진구를 본 악마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 다른 이유가 뭔지, 너는 대답하지 않겠지. 꽤 오래 본 사이야. 그 표정을 지으면 네가 더 말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짐작이 간단 말이지. 뭐, 좋아. 그런 이유 같은 건 나한테는 아무래도 좋은 이유지.”
악마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정말 그런 걸로 좋겠나? 그게 정말로 원하는 거야?”
악마 주제에 걱정스럽기까지 해 보이는 말투. 관계가 어쩐지 반대가 되어버린 것 같아 진구는 웃었다.
“내 영혼 하나에 찾아서 돌려주는 영혼 하나. 그걸로 괜찮지 않겠어?”
악마는 더 말리지는 않았다.
“글쎄, 나야 좋지만. 어쨌든, 본인의 동의가 있었으니 상관없지. 본인이 가진 영혼 하나를 이용해서, 십 년 전 사고에서 죽은 사람 하나를 되살린다. 불가능한 건 아니야. 남은 문제는 누구를 되살리느냐에 대한 문제지.”
“글쎄….”
잠시 고민하던 끝에 진구는 말했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충분히 겪어 봤으니, 어머니 쪽이 좀 더 낫지 않겠어?”
“어머니라.”
악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건 네 마음대로 해. 날짜나 정확히 정해 달라고. 그 전까지는 나는 얌전히 있도록 하지. 준비할 게 많거든. 한동안 내 모습 보기 쉽지 않을 거야. 바쁠 예정이거든. 지금 이건 나한테도 꽤 규모 있는 작업이라서.”
그 말대로, 악마는 그날로 모습을 감췄다. 이번엔 말을 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게 정말로 있었던 일인가?’
무심코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악마는 한동안 잠잠했다. 하지만 이건 당연히 있었던 일이다. 악마는 나타났다. 약속한 날짜가 되기 하루 전의 일이다.
“자 준비는 끝났어. 이제, 사소한 부분만 정하면 되지.”
악마는 12월 30일에 나타나 말했다. 자정이 되기 약 한 시간쯤 전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오늘이지?”
12월 30일 자정, 그러니까 31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악마는 물었다.
“왜 하필 오늘이냐고?”
진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실, 천장 정도밖에 안 보이지만.
“원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같이 한 잔 하는게 목표였거든.”
“아하.”
악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이 되고 한 잔 할 수 없어서 오늘인 건가.”
“그래.”
진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오늘 정도는 괜찮겠지.”
미성년자 음주라. 진구는 슬쩍 웃었다. 평소에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에 그런 걸 신경쓰고 싶지는 않다.
“집에서만 마시는 것도 불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도 불법인가?”
진구의 말에 악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나는 인간의 법 같은 건 정확히 몰라. 알아낼 방법이야 많지만 관심이 없지. 하지만, 그것도 나름 사소하지만 ‘나쁜 일’에 속하겠는걸. 그렇다면 그걸 악마가 도와주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악마는 싱긋 웃었다.
“영혼을 가져가기로 한 건 내일이야. 그리고 시간을 정해놓지 않았으니 언제든 가져가도 사실 상관없어.”
진구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거기까지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나쁜 짓을 한다고 하니까 그 정도는 도와주지. 인간의 시간으로, 11시 59분 59초가 되는 순간, 그리고 아직은 00시 00분 00초가 아닌 시간의 사이에 나는 영혼을 가져가도록 하겠어.”
악마는 선심 쓴다는 듯 말했다.
“그건 참.”
감사까지 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배려를 해 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진구는 피식 웃었다.
“나름 고맙군.”
“뭘, 고마운 건 이쪽이지.”
악마는 말했다.
“일단 거래가 끝나면 되돌릴 수 없어. 그건 알지?”
“그래. 알고 있어.”
진구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한 사람은 죽었던 적도 없고, 한 사람은 있었던 적도 없다. 그런 세상이 될 거라고 했지.”
“그래, 정확해.”
악마는 씩 웃고는 말했다.
“그럼, 그때 보지.”
* * *
뭔가 이상하다. 진구는 기묘한 기분이 되었다.
“왜지? 나는 왜 사라지지 않았지?”
열두 시가 되었는데 여전히 자기 자신은 이 세상에 그대로 남아있다.
악마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열두 시가 넘은 뒤, 진구는 오랜만에 죽었던 친구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태주를 자기 집에 돌려놓던 도중의 일이다.
혹시 악마 녀석이 몇 초 정도 더 배려를 해 준 건가 싶은 생각도 해 봤지만, 그래도 이제는 몇 분이 지났다.
악마의 말대로라면 ‘손해 보는’ 장사를 할 리가 없다. 그럼 왜 자신이 남아있는 것인가.
그리고, 악마가 나타났다.
“나는 왜 사라지지 않았지?”
진구는 곧바로 물었다. 그리고 악마 역시 되물었다.
“네가 왜 사라져? 네가 사라질 이유가 있어?”
“분명 네가 말했잖아. 나는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된다고.”
“아니,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네가 ‘가진’ 영혼 하나를 가져가겠다고 말했지. 그렇잖아? 기억 안 나?”
악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안 나지는 않을 텐데.”
“….”
분명 그렇게 말하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은 자기가 가진 영혼 하나뿐일 텐데. 하지만 저 웃음이 불길하다. 진구는 설마 하는 마음이 되어서는 말했다.
“너, 누구의 영혼을 가져갔지?”
“누구긴?”
악마는 말했다.
“네가 열두 시 이후로 누굴 보지 못했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겠어?”
못 본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설마, 그럴 리가. 진구는 눈을 부릅뜨고는 소리쳤다.
“너…!”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진구는 간신히 짜냈다.
“혹시, 유정이를?”
“유정이라.”
악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어. 아쉽게도 말이야.”
진구는 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악마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봐, 미안한 일이지만 이건 공정한 거래였다고. 공정한 거래라는 건, 그런 거잖아? 서로 미리 정한 걸 주고받은 다음, 확인을 한 번 해야지. 하지 않았다면, 그건 본인 책임이고 말이야.”
악마는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불공정 거래가 아니었으니 거래를 무효라고 할 수도 없겠군. 뭐, 불공평할 수 있는 거래였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 애는 아직 어려.”
진구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어리지. 그러니까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악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부모의 그늘에 있는 아이야말로 거래하기에 적당한 대상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악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권리는 부모가 대신 행사할 수 있지.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날짜가 넘어갔다면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했겠지만, 아쉽게도 거래를 한 건 아직 해가 넘어가기 전이라면서 악마는 미소지었다.
“…되돌려줘.”
진구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되돌려달라고?”
악마는 저런, 하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글쎄. 그건 내가 굳이 해 줄 이유가 없는데.”
악마는 낄낄대며 말했다.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어. 진실만을 말했지. 더 자세히 묻지 않은 건 네 쪽이잖아?”
“설명이 불충분한 것도 불성실한 계약이야!”
진구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군.”
악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만약 이게 완벽하게 불공정한 계약이었다는 증명을 해낼 수 있다면, 그래. 좋아.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주지. 처음부터 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야.”
진구는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해 보지. 어떻게든.”
“그래, 열심히 해봐. 너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정도는 들어.”
악마는 지금까지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뭔가를 주었다가 빼앗는 게 그냥 처음부터 안 주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이라는 생각 안 들어?”
진구는 악마의 얼굴을 봤다. 분명 이전과 똑같은 얼굴인데도 지금은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웃음처럼 보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아니, 그냥 해 본 말이야. 나는 나쁜 건 기가 막히게 아는 녀석이니까.”
악마는 양팔을 춤추듯 흐느적거리며 말했다.
“엄마를 잃어버렸던 아이에게, 엄마를 돌려줬다. 참으로 훌륭한 일이지. 너는 다시 그걸 빼앗을 수 있겠어?”
악마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어디 보자, 첫 번째는 네 잘못이 아니었다지만, 두 번째는 네 잘못이 맞는 것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