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36화 (236/269)

외전- 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8)

일 년 전의 설날, 갑자기 악마가 나타났다. 빨간 피부에 노란 눈동자. 그리고 세로로 긴 동공과 머리 옆에서부터 나 길게 뻗은 검은 뿔을 가진, 어린아이보다는 조금 크지만 사람보다는 확실히 작은 존재.

대부분의 사람이 보자마자 바로 ‘아, 이건 악마다.’ 하고 떠올릴 수 있을 법한 모습의 악마는 말 그대로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 그다지 크지 않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잘 쉬고 있었는데, 나를 부르는 사람은 참 오랜만이군.”

악마는 기지개를 켜듯 박쥐의 날개와 유사한 붉은 색 살가죽의 날개를 한번 펼쳤다. 그리고는 물었다. 근엄한 표정이다.

“대체 나를 왜 부른 거지?”

하지만 걸레를 손에 든 진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악마를 쳐다볼 뿐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저 책장 청소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왜 갑자기 이런 게 나타난다는 말인가.

“…뭐야? 그 눈은? 나를 왜 불렀냐니까?”

악마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부른 적 없는데.”

진구는 간신히 답했다. 사람이 너무 현실감이 없는 일을 겪으면 그냥 멍해지고 만다. 분명 원래라면 대답하지 않았을 그런 질문에 무심코 대답해 버린 것도 당황해 버렸기 때문이다.

“뭐라고?”

하지만 당황한 것은 악마도 마찬가지다. 악마는 어라 하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물었다.

“…부른 적이 없어?”

“그래.”

진구는 대답한 뒤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정신과에 한 번 가봐야 하나.”

그 소리를 들은 악마는 그래도 그 말은 조금 재미있다고 느꼈는지 킬킬거리며 말했다.

“글쎄, 그건 꽤 추천할 만한 일이야. 악마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백 있다면 구십 정도는 정신이 나가 있거든. 사악할 필요는 없지만, 절박할 필요는 있으니 말이야.”

악마는 그러다가도 웃음을 뚝 그치고는 말했다.

“하지만 나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정신과에 가지를 않기는 바라지. 내가 보이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거든. 왜냐하면, 나는 이미 소환되었으니 말이야.”

진구는 눈을 찌푸렸다. 전혀 믿지 않는 그런 표정이다. 그 표정을 본 악마는 한탄하듯 말했다.

“참, 내가 나의 존재에 대해 설득해야 하다니. 지금까지는 나를 부르고 싶어 안달 난 녀석들 앞에만 나타났으니 이런 부분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전혀 없었는데 말이야.”

악마는 말도 없이 진구의 손을 잡아채고는 자신의 손과 뿔을 직접 만지게 해 줬다.

“자, 나는 정말로 있다. 그 사실은 이제 알겠지?”

축축하고 불쾌하지만, 확실한 촉감이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그런 끈적한 질감. 일그러진 표정을 본 악마는 손을 놔 주며 말했다.

“그래, 불쾌한 건 알아. 나는 악마니까. 하지만 어쩌겠어? 나를 믿지 않는걸. 아차,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그 끈적한 거 불에 잘 타니까 조심해. 담배 같은 거 피우는 사람이라면 화상 입을 거야.”

사려 깊은 듯 말하지만, 그런 말을 할 거라면 손을 잡아채기 전에 했어야 했다. 진구는 눈을 찌푸렸다.

“그건 끊은 지 좀 됐어.”

“글쎄, 보통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다시 손을 대던데.”

악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았다.

“흠, 저것 때문이군.”

“뭐?”

뭘 그렇게 찾는 건지 싶었던 진구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게 뭔데?”

“뭐긴, 날 불러낸 이유 말이야. 아니. 네가 의도한 건 아닌 모양이니 원인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겠군.”

악마는 책 한 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것 때문이야.”

“저것?”

진구는 책장 쪽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저 책?”

“그래. 방금 네 손에 닿은 그 책 말이야. 아무래도 그게 날 부른 것 같아. 저런 게 왜 가정집에 있는 거지?”

“나도 몰라.”

진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살다 보면 가끔씩은 자신이 모르는 물건도 집에서 나오는 법이다.

“모른다고? 하긴, 의도적으로 부른 게 아니라고 했지. 돌겠군. 이런 것부터 설명해야 하다니.”

악마는 그렇게 말한 뒤, 머리를 긁적였다.

“자, 넌 재능이 있다.”

“재능?”

“그래. 다른 사람은 손발을 스스로 잘라내도 나와 만나기 힘들어. 하지만 너는 그냥 저 책에 손이 닿는 것만으로 나를 부를 수 있었지. 그러니, 넌 재능이 있는 거야.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지. 너는 그렇게 사십 넘는 나이에 너는 재능을 하나 찾은 거야. 참 기분 좋지?”

악마는 비꼬듯 말했다.

“뭐, 이게 사람 입장에서도 좋은 재능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꽤 드문 경우인 건 확실해. 그리고 그건 나한테는 꽤 곤란한 일이지.”

“곤란?”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신이 곤란하다니. 악마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네 입장에서도 당황스럽겠지만, 나한테는 더 당황스러운 일이야. 어쨌든 너는 네 집에서 나를 만났지만, 나는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곳에 불려 나온 셈이니까 말이야. 게다가, 돌아가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고.”

악마는 자신이 거래를 하나 하거나, 아니면 사람 하나를 타락시키기 전까지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네가 신경 쓰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 아무나 붙잡고 하나 타락시키고 돌아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지.”

“엄청나게 신경 쓰이는데.”

도의적으로 허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 그렇겠지. 그리고 아무래도 나도 그런 건 별로 내키지 않아. 어중이떠중이와 이야기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거든. 그럼 그렇게 되었으니 좀 기다려보도록 할까.”

“기다린다고?”

“네가 언젠가 나와 거래를 할 때까지 말이야.”

악마는 말했다.

“어쨌든 악마를 부르는 사람들은 뭔가 간절함이 있는 사람들이거든.”

몇 년 정도는 기다려도 상관 없다. 오히려 그 편이 더 짧게 걸릴 수도 있겠다. 악마는 느긋한 태도로 말한 뒤 모습을 감췄다.

“사라진 건가?”

“아니, 모습만 감춘 거거든?”

* * *

몇 달이 지났다.

처음 악마가 나타났을 때는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악마는 꽤 얌전한 녀석이었다. 심지어 꽤 말도 통하는 녀석이다. 그 명성이나 생긴 것과는 다르게 꽤 젠틀한 녀석이다.

눈치가 있는지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자신 홀로 있는 상황에서만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악마는 꽤 편하기도 했다.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는 뜻이니까.

가장 편할 때 나타나서 장난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하는 사이다. 자주 보니 나름대로 정이 드는 것도 같다. 어떤 의미로는 친구 같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다.

그건 진구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거드름을 피우던 악마는, 나중에는 사소하고 간단한 것들도 어느 날은 이런 질문을 해보기도 했다.

“악마가 있다는 건 알겠군. 하지만 천사라는 것도 있나?”

그리고 악마는 본인 역시 심심했던 것인지 이런 질문마저 받아주기도 했다.

“천사라. 있긴 하지. 그런 것의 생리는 나는 잘 모르지만.”

“만난 적은 없나?”

“이런 병신같은 소리를 봤나. 만날 일이 있겠냐?”

악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욕이 좀 섞이기는 했지만, 사람과 크게 다른 느낌은 받지 못할 정도다.

악마 역시 그렇게 말했다.

“내가 사람에 비해 특별히 나쁜 건 아니야. 나쁜 면만 모아놓으면 내가 되는 거지. 그게 무슨 차이인지 알겠어? 극악무도한 일을 한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니라지만, 그렇게 극악무도한 일을 굳이 저지를 필요도 없지. 그건 귀찮은 일이야.”

“그런 일을 하기에 너는 너무 나태하다는 말인가.”

“좋을 대로 생각해. 악마도 종류가 많으니 다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악마는 그렇게 말한 뒤, 역으로 질문했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그닥 사람같지 않아. 불쾌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참 굉장한 녀석이라는 말이지.”

악마는 이건 꽤 진심이라는 듯 말했다.

“남의 자식을 대가 없이 기르는 인간은 종교인을 제외하고는 본 적 없다. 아니, 사실 종교인 역시도 나름의 의무 때문에 맡는 것이지 이유 없이 맡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너는 정말로 그냥 맡은 거야.”

“한가지 착각하고 있군.”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

“남이 아니야.”

“남이 아니라고?”

악마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그럴 리가?”

“뭐, 혈연은 아니지. 하지만, 가족이다. 그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

“흐음, 뭐 그런가.”

악마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았다. 그런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날도, 그런 질문 중 하나였다.

“악마와 사람이 내기를 하는 경우가 왜 그렇게 많은 거지?”

처음으로 그런 질문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상대방이 악마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거래를 하는 걸까.

“그건 우리가 좋은 상품을 마련해서야.”

악마는 말했다.

“사람들은 악마가 달콤하지만 위험한 제안을 한다고 생각하지. 맞는 말이야. 당연하지. 거래라는 건 당연히 그런 법 아니겠어? 서로 원하는 것을 보여줘야 거래 아니겠냐는 말이야. 하지만 그걸 악마의 거래라 하는 말은 그저 우리가 제시하는 게 유난히 달콤하고, 그만한 대가를 요구할 뿐이라 그런 거라고.”

악마는 씩 웃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정확히 말하면 ‘공정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절대로 손해는 보지 않는 거래’야.”

“공정한데 손해를 절대로 안 보면 불공정한 거 아닌가?”

“물론, 공평한 거래는 아닐 수 있지. 내가 만원을 줄 테니 황금 일 킬로그램을 받는 거래는 분명 불공평한 거래지만, 양 측이 정당한 절차를 밟은 데다 상호 동의가 명확한 거래라면 그건 공정한 거래라 할 수 있겠지.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그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겠지만.”

악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대부분은 등가 교환이야. 완벽하게 등가는 아니지만, 최소한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긴 하지. 사람들은 악마라는 것을 아무래도 그런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최소한 공정한 ‘척’은 하는 녀석들 말이야.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지 않나?”

물론 악마 쪽이 받아가는 건 보통 사람의 영혼이지만.

“영혼이라.”

“하지만 억지로 빼앗아 가는 건 아니라고.”

악마는 변명하듯 말했다.

“나름 정당한 거래야.”

“정당하단 말이지.”

“그래. 어쨌든, 주기로 약속한 것을 주지 않는 경우는 없으니까 말이야.”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그러면서도 절차상의 문제는 없는 거래가 곧 악마와의 거래인 셈이다.

“정당하기만 하다면 상관없나?”

그러고 보면, 악마는 분명히 한 번 거래하고 나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 ‘거래’라는 것에 아직도 꽤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수락한 적이 없지만 지금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호기심이 조금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를 돌려보내고 싶은가 본데, 나름 오래 본 사이니 솔직하게 말해주지. 그래.”

악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입으로 말하는 거긴 해도 이건 꽤 좋은 기회야. 그러니 나와의 거래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을 추천하지. 이건 나름대로 꽤 귀한 기회 아니겠어? 금은보화 수준이 아니야. 나는 더 엄청난 것도 가능하다고.”

악마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네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군.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기라도 한가?”

진구의 재미삼아 한 질문에 악마는 간단하게 답했다.

“글쎄, 죽은 사람을 되살아나게 하는 건 어렵겠군.”

역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불가능한 건가 싶어 진구가 고개를 돌리려던 틈을 타, 악마는 말했다.

“그건 단순히 난이도가 어려운 게 아니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면 그 몸은 어디서 구해 오면 되는지, 행정 처리는 어떻게 되는지, 법적인 관계증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죽은 사람 본인의 혼란은 어떻고? 십년 만에 살아난 사람이 과연 십 년 뒤의 세상에 적응하는 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가나?”

“…뭐?”

남자는 되물었다. 뉘앙스가 마치 가능하지만 쓸데없이 어렵다는 말투다.

“말했잖아. ‘어렵다’고. 그러니,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다른 거야. 이쪽도 난이도가 높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차라리 이편이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은 적어. 네가 짊어져야 할 부담도 적지.”

악마는 씩 웃었다.

“차라리 애초부터 죽은 적이 없는 건 어때?”

“그건 좀 궁금하군.”

처음으로, 진구는 진지하게 악마의 제안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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