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7)
식사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이유라 해 봐야 별 것 없다. 식사하면서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예절을 어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정이랑 연애를 한다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저씨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건장한 덩치의 남자가 딱딱한 표정으로 굳어서는 식탁만 노려보며 식사를 하고 있다면, 그 사람과 얼마나 친하든 그 옆에서 입을 열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다만, 소리가 나지 않았을 뿐 고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태주는 기민하게 눈치를 살폈고, 엄마 역시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니?’
엄마는 눈으로 물었다. 하지만 태주는 어색한 웃음만을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게 있어요.’
하는 느낌의 눈을 본 엄마는 배신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상황은 입이 있어도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식의 눈치만으로 전달할 수 없는 사실도 있는 법이다.
결국 그렇게 세 사람은 그렇게 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도 누가 먼저 일어나지는 않았다. 극한의 눈치싸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눈치싸움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온 것은 엄마다.
“나는 잠깐 차라도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둘이서 이야기하고 있어! 거실로 가서!”
현명한 방법이라고, 태주는 감탄했다. 자신은 모르는 사건이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은 확실하니, 나 다시 오기 전에 알아서 해결해 놓으라는 뜻일 거다.
하지만, 어려운 주문이다.
‘근데 이런 걸 안다고 어떻게 할 수 있나.’
태주는 다시금 조금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기분이 좋지 않고, 상황도 좋지 않고, 계획대로 되는 것도 하나도 없다.
애초에 이 이야기도 원래는 좀 더 조심스럽게 할 생각이었다. 이런 식으로 폭탄을 터트려서 아저씨를 떠 볼 생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태주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지금 이게 오히려 좋은 상황일지도 몰라.’
태주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어차피 아저씨에게 유정이의 기억이 있다면 이 이야기는 좋게 풀어나갈 수 있었을 리 없어.’
딸의 실종, 그것도 그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된 수준이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일 텐데, 아예 찾을 수 없는 지금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기분이 좋아질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태주가 조심스럽게 말을 해 보려던 이유는 애초에 다른 게 아니다. 아저씨조차 유정이를 모르고 있다면, 자신이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저씨가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유정이가 대체 누구냐고 묻는다면 자신은 견딜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태주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떤 뒤 말했다.
“엄마는 저렇게 말했지만, 전 연애 안 해요.”
“뭐?”
“애초에 저는 연애같은 거 해 본 적이 없어요. 아저씨도 알잖아요?”
“그럼 네 엄마가 하는 말은 무슨 소리냐?”
아저씨는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요. 그냥 엄마가 착각한 거에요.”
태주는 말했다.
“유정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가 그 애를 여동생 같은 거라고 말하니까 그렇게 생각한 거죠. 뭐라더라, 본인이 그러다 아버지랑 결혼했다나 뭐라나.“
태주는 뒤에 일부러 덧붙였다.
“하지만 우린 진짜 가족이잖아요? 그런 오빠 동생 하는 사이가 아니라, 진짜 가족이요. 물론, 그 애는 자기가 동생이라고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요.”
그 말을 들은 아저씨는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그래도 무거운 분위기는 조금 풀어졌다.
“그렇구나.”
아저씨는 담백하게 말했다.
“정말 그랬다면 조금 더 곤란할 뻔했다.”
“…조금이요?”
태주는 그 와중에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이 아니겠지.”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인 뒤 인정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것 보니 확실하구나. 너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아는 것도 아니야. 확실히 유정이에 대해 알고 있어.”
아저씨는 차라리 안심한 듯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구나.”
그 표정을 본 태주는 아저씨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만 아저씨가 유정이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한 것이 아니다.
아저씨 역시 자신이 유정이에 대해서 모른다면, 견딜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태주는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나마 다행이에요.”
아저씨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저도 그래요.”
태주는 마찬가지로 말했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제 쪽이 좀 더 물어볼 게 많은 것 같아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조금 있다 이야기하지. 일단, 차가 곧 나올 모양이니까 말이다.”
굳이 지금 이 시간을 망칠 필요는 없다. 그건 두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 * *
“안에서 너무 오래 있었구나. 이렇게 오래 안에 있을 생각은 사실 아니었는데.”
아저씨는 말했다. 이미 열시 가까운 시간이 됐다. 처음 저녁을 먹을 때만 해도 여섯 시쯤이었고, 수상할 정도로 짧았던 식사시간의 길이를 생각하면 대화만 세 시간을 넘게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너무 오래 있었어.”
아저씨는 똑같은 말을 한 번 더 했다. 표정이 씁쓸하다.
그 시간이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시간이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태주도 비슷한 감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죠. 그런 시간이었는걸요.”
태주에게는 십 년 전에 잃어버렸던 엄마와 별 것 아닌 대화를 하는 귀중한 시간이었고, 진구 아저씨에게도 지금 이 시간은 십 년 전에 죽은 친구와 대화를 하는 기적 같은 순간이다.
그러니 이 시간이 소중하지 않을 리 없다. 마음은 급하고,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그 순간을 뿌리칠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래도, 세 시간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요? 우리가 마음만 급하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하나 꺼내더니 익숙한 모습으로 불을 붙였다.
“해결이라… 하긴, 몇 시간 정도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긴 하지.”
아저씨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연기를 크게 빨아들였다. 큰 한숨을 쉬듯, 커다란 연기 덩어리가 빠져나왔다.
처음 보는 모습에 태주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담배는 안 피우시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태주는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원래 피셨나요?”
“틀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지.”
아저씨는 대답했다.
“너희가 태어나기 전에 피웠어. 하지만 어린애 앞에서 담배를 피지 않기로 약속했었으니 말이다.”
너희가 태어난 뒤로는 한 번도 피워 본 적 없다고, 아저씨는 말했다.
“그 후론 오늘이 처음이야.”
아저씨는 하늘을 살짝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하지만 머리가 좀 아프구나.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오랜만에 피워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이십 년을 금연하고 있었으면 그 기간이 좀 아까울 만도 한 것 같은데요.”
태주의 말을 들은 아저씨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금 아깝긴 하지. 그래도 어쨌든 오늘 정도는 한 개비 태울 생각이었다. 너희는 이제 성인이니까. 꽤 의미 있는 한 개비가 될 것 같았거든.”
아저씨는 그렇게 말한 뒤, 굳이 정정했다.
“…아니, 최소한 너는 성인이지.”
너희가 아니라 너. 그 한 단어에 꽤 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낀 태주는 씁쓸하게 말했다.
“그걸 그렇게 굳이 고칠 필요는 없었는데요.”
“아니, 굳이 말해야겠다. 중요한 문제니까.”
아저씨는 눈을 감았다 떴다.
“내가 먼저 한 가지 물어야겠구나. 너는 어떻게 유정이를 기억하고 있지? 분명 세상의 그 누구도 기억할 수 없을 거라 들었는데.”
아저씨는 꽤 중요한 질문이라는 듯 물었다.
“뭘 해서 알고 있는 거냐? 아니면 떠올릴 수 있었던 방법 같은 게 있었던 거냐?”
아저씨는 조금은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태주도 모른다. 자기주장이기는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사람조차도 태주에 대한 것은 알 수 없으니, 아마 평생 알 방법 같은 것은 없지 않을까.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둘 다 아니에요. 그냥 저는 잊어버린 적이 없을 뿐이에요. 왜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태주의 말을 들은 아저씨는 잠시 눈을 떤 뒤 말했다.
“그런가. 그냥 그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야겠구나.”
아저씨는 잠시 말없이 담배를 태웠다. 그 한 개비가 그렇게 아깝다는 듯, 아저씨는 불이 필터에 닿을 때까지 천천히 불을 빨아들였다. 심지어 불이 다 타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대로 물고 있을 정도였다.
태주는 잠자코 기다렸다. 필터를 그대로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진 아저씨는 말했다.
“미안하구나. 생각을 좀 정리하느라.”
“…상관없어요. 그 정도는.”
아저씨만 시간이 오래 필요했던 건 아니다. 태주는 눈을 조금 찌푸렸다.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해야 한다.
“아저씨.”
“왜?”
“뭘 한 거에요?”
태주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아저씨는 망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내가 뭘 했는지는 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짓을 해 버린 건지 잘 모르겠다.”
태주는 차라리 조금 안심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그만큼 불쾌해졌다. 아저씨는 지금, 뭔가 체념한 상태다. 그 표정을 본 아저씨는 그 표정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지?”
“글쎄요. 제가 아는 건 지금 상황 정도밖에는 없어요.”
유정이가 지금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서 엄마는 죽었던 적이 없다는 것. 태주의 말을 들은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알고 있구나.”
“네. 거기까지는요. 그리고 그게 그냥 일어난 일은 아니라는 건 알겠어요. 뭔가 이유가 있는 일이라는 것도요.”
태주는 아저씨를 보고 말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죠?”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는 나도 모르겠다. 분명 이 일은 내가 저지른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저지르기만 한 일도 아니거든.”
황당한 소리다. 아저씨도 태주의 표정을 봤는지 좀 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악마를 만났다.”
태주는 잠자코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아저씨는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놀라지 않는구나.”
“글쎄요, 평소 같으면 놀랐겠지만 지금 상황에 더 놀랄 일이 있겠어요?”
태주의 말을 들은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악마와 거래를 했다.”
“뭐라고요?”
“악마와 거래를 했다.”
아저씨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니, 못 들어서 다시 물어본 게 아니에요.”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대체 뭘 하면 악마와 거래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진구 아저씨는 태주가 아는 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쩌다 악마 같은 것과 거래를 하게 되었는지.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감이 전혀 안 난다.
“들어나 볼까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에요.”
“그래. 숨길 일도 아니니.”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작년에 일어난 일이다. 처음 시작은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