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6)
시간이 꽤 지났다.
“이틀이라는 시간은 아무래도 좀 짧은 것 같은데.”
태주는 한창 컴퓨터를 뒤적거리다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한 말이다.
“아니, 아니야.”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짓을 하고 있으면 이틀이 아니라 이년이 지나도 시간이 모자랄 거다.
“받아들여야지.”
이 세상에 딱히 다른 점은 없다. 엄마가 살아있고, 유정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전혀 없다.
미국 대통령 이름이 같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이름이 같다. 심지어 평소에 자주 가던 사이트의 도메인 주소도 같고, 우연히 어제 봤던 기사 역시 그대로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기자의 이름까지도 같다. 애초에 버스 노선이나 비용도 같으니 짐작할 수 있었던 사실이지만.
“엄마가 살아있고, 유정이가 사라져 있다는 걸 제외하면 전혀 다른 점이 없어. 그냥 그렇게 생각해야 해.”
혹시 있더라도 무의미한 수준의 작은 변화일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과 태주가 이전까지 경험한 세상의 유일한 차이는 엄마와 유정이의 존재뿐이다.
그리고 태주가 아는 한, 그 두 사람과 모두 관련이 있는 건 자신을 제외하면 단 한 사람뿐이다.
“아저씨….”
하지만 그렇다는 건, 아저씨는 자신의 딸을 희생해서 자신의 엄마를 되돌려 놓는 선택을 했다는 말이다. 태주가 아는 한 아저씨가 그런 선택을 할 리는 없다. 아저씨는 그런 사람이다.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죠?”
태주는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와서 생각해 보면, 진구 아저씨가 관련이 있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여기까지 생각해 낸 다음 돌이켜 보면 당연하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건 꽤 생각해내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진구 아저씨가 태주에게 있어서 아버지나 다름없는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라 의심하기 쉽지 않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가까운 사람이라는 점을 빼고 생각해도 진구 아저씨만큼 의리가 넘치는 사람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진구 아저씨가 자식에게 있어서 최고의 아버지냐 묻는다면 태주는 고민 끝에 아마 아닐 거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저씨는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자신의 자식이 조금 손해보는 것도 감수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덕에 태주가 큰 도움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유정이 역시 그 사실에 불만이 없었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금 잡음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아저씨는 조금 미흡했다.
그 밖에도 태주나 유정이가 서운할 만한 일이라도 아저씨는 종종 하곤 했다. 나중에는 항상 두 사람이 납득할 수 있기는 했지만, 늘 설득의 과정보다 실행이 앞서는 사람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한다면, 아저씨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 친구의 아들과 자신의 딸에게 다르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아저씨는 두 사람에게 가능한 객관적이려 노력했고, 그런 점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아저씨는 그런 사람이다. 종합적으로 생각해도 좋은 사람. 말이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서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그런 아저씨가 유정이가 사라지는 것에 동의했을 리 없어.”
애초에, 이 모든 것이 없더라도 이미 사랑하는 딸에 대한 것이다. 자신의 딸이 없어져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태주가 깊게 생각에 잠긴 틈에 전화가 왔다.
—따르르릉!
“깜짝이야.”
한창 진지한 생각을 하던 도중 울린 소리에 태주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심지어 낯선 번호에서 온 전화다 보니 더 그랬다.
“여보세요?”
황급히 전화를 받은 태주는 상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엄마라는 걸 깨닫고는 다시 한번 당황했다.
“어, 엄마?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왜 그렇게 놀라? 여자친구 만나고 있었어?]
엄마는 아직도 유정이 = 여자친구 후보라는 가설을 버리지 않았는지 장난스럽게 말했다.
[여자친구 만나고 늦게 들어오는 것도 뭐, 이제는 괜찮겠지.]
“그런 거 아니에요. 아직 진구 아저씨 집에 있는 걸요.”
[그래? 아쉽네. 잘하면 얼굴이나 보게 데려오라고 하고 싶었는데. 아닌가? 설마 너, 진구 집에서 연애행각 벌이고 있는 거 아니지?]
장난스러운 말이지만, 소름이 돋는 말이기도 하다.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질린 태주는 씁쓸한 표정으로, 하지만 목소리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를 유지하면서 말했다.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저는 진짜 진구 아저씨 집에 있고, 여자친구가 있다 쳐도 여기서 그럴 리가 없잖아요.”
장난이라는 듯 엄마는 깔깔 웃었다. 그래도 차라리 이렇게 장난스러운 엄마가 보기 좋다.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물었다.
“그런데 지금이 몇 시죠?”
[몇 시긴? 핸드폰 있으니 시간 다 알지 않아? 이미 저녁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거기 시계 없어?]
정말이다. 태주는 시계를 힐끗 보고 놀랐다.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정말.”
[그러게 말이야. 시간 참 빠르지? 여자친구랑 있으면 시간이 참 빠르다니까.]
“아 아니라니까요.”
태주의 항의에도 이미 재미들린 엄마는 그저 웃을 뿐이다.
[어쨌든, 여자친구랑 있는 거 아니면 집에 들어와. 저녁 먹어야지.]
“저녁이요?”
[그래. 안 들어오면 여자친구랑 있는 걸로 알고 있으면 되지? 진구도 오늘은 저녁 같이 먹을 거야.]
엄마의 말을 들은 태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요? 아저씨가 거기에 있다는 말이죠.”
[그래. 어떻게 그렇게 엇갈렸는지 몰라? 걔도 너한테 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던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요? 조금만 기다려요. 곧 출발할게요.”
마침 잘된 일이다. 이쪽에서도 묻고 싶은 게 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쨌든 아저씨가 우리 집에 있다는 말이지. 마침 잘됐네.”
태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아저씨도 유정이에 대해 모른다면, 아저씨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 생각은 전부 틀렸다는 말이 되겠지만, 차라리 그편이 더 나은 건 아닐까. 태주는 그런 생각을 했다.
* * *
“이게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태주는 집 앞에서 중얼거렸다. 집과 집의 거리는 가깝다. 최소한 태주가 마음의 정리를 다 하지 못한 채 도착해 버릴 만큼.
게다가, 집에 가는 길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당연한 일이다. 자기 발로 옛날 집으로 걸어가는 것은 십 년 만에 해 본 일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태주는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는 지금 아저씨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저씨와 만나고 싶은가 하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저씨가 만약 유정이가 사라진 원인이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과연 자신은 아저씨에게 무슨 질문을 해야 하는 걸까.
반대로 아저씨마저 유정이가 사라진 원인을 모른다면, 아니면 아예 유정이의 존재를 잊어버렸다면 자신은 그 앞에서 평범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차라리 후자가 마음이 편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별로 태주에게 있어 긍정적인 전개는 아니다.
“그래도 해야지.”
태주는 눈을 감고는 심호흡했다. 어차피 감정이야 어쨌든 해야만 하는 일이다. 시간은 이틀밖에 없고, 그중 하루는 이미 끝나가는 중이다. 낭비할 시간은 없다.
마음을 다잡은 태주는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다녀왔습니다.”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돌아오자마자 아침에 맡았던 그 냄새가 풍긴다. 아침에 끓여둔 국이 한참을 더 끓었는지 냄새는 더 진해져 있다.
“그러고 보면 저녁 먹으러 오라는 말을 했었지.”
태주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엄마가 나와서는 말했다.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다.
“저녁 다 됐어. 반찬이야 좀 늘었지만 국은 그대로인데, 또 먹어도 괜찮지?”
엄마의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찬 투정할 나이는 아니다.
“네. 당연하죠. 참, 아저씨는 어느 쪽에 있어요?”
“이미 식탁에 앉아있어.”
“그런가요?”
태주는 손을 닦고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는 곧바로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표정을 다듬은 뒤 나왔다. 물론, 손도 닦긴 닦았다.
식탁에 가자 아저씨가 이미 앉아 있다. 어제 본 것과 거의 완벽하게 같은 모습의 아저씨를 본 태주는 말했다.
“잘 지내셨죠? 아저씨.”
“…하루 만에 묻는 거냐.”
아저씨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황당해하는 그런 말투다.
“아휴, 그렇죠 뭐. 하루 만에 엄청나게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은 기분이라서요.”
태주는 적당히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래도 어제는 너무 과음했던 모양이에요. 하루종일 속이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뭐 놓고 간 것도 생겼고요.”
태주는 적당히 웃으며 넘겼다. 일단, 간접적으로 말해 보기로 했다. 아저씨가 이번 유정이의 실종과 관련이 있든 없든 곧바로 본론을 직접 찔러볼 필요는 없다.
“놓고 간 거?”
아저씨는 물었다.
“그런 게 집에 있었나?”
“뭐, 찾지는 못했네요. 당연히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더라고요.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잃어버린 것 같은데요.”
태주는 아저씨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저씨는 여전히 무뚝뚝한 태도지만, 또 뭔가 복잡한 표정이다.
“…찾는 게 있으면 미리 전화를 하지 그랬냐. 미리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
“뭐,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이렇게 못 찾을 줄 알았으면 미리 전화라도 한번 하고 갈 걸 싶긴 했네요. 게다가, 어차피 아저씨도 집에 안 계시던걸요 뭘.”
태주의 말을 들은 아저씨는 흠 하는 소리만 내고는 입을 다물었다. 태주의 대답에 대고 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엄마가 다시 식탁에 앉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
엄마는 자신을 빼놓지 말라는 듯 은근히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야?”
“아뇨,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냥 잃어버린 걸 좀 이야기하고 있었죠.”
태주는 일단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어차피 주제가 주제인지라 엄마와 함께할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 그럼 다른 이야기나 하자.”
엄마는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는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아 맞다, 아무래도 태주한테 여자친구가 생긴 모양이야.”
설마 곧바로 이 주제를 꺼낼 줄은 몰랐던 태주는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이건 지뢰나 다름없는 주제다.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태주의 긴장한 표정이야말로 오히려 의심에 불을 붙였다.
“여자친구?”
아저씨는 그 말에는 조금 흥미가 생긴 듯 물었다. 태주는 극구 부인했다.
“여자친구 아니에요. 절대로요.”
“아니긴, 그러다 연인 되는 건데.”
하지만 엄마는 후후 웃을 뿐이었다.
“연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러운 게 아니라 정말 아니라니까요.”
태주는 정말로 당황해서는 말했다.
“지금 밥 먹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그런 이야기를 밥 먹을 때 아니면 언제 해? 분명히 이름이 뭐라더라? 유정이?”
엄마의 말을 들은 아저씨는 흠칫하더니 말했다.
“유정이?”
아저씨는 충격받은 얼굴로 말했다.
“유정이랑 연애를 한다고?”
“아니라니까요! 최소한 그건 절대 아니라고요.”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했다. 원래 계획과는 반대로 바로 본론에 들어가 버린 셈이 되었지만, 확실하다.
아저씨는 유정이를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