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5)
사실 태주는 처음부터 남자를 믿고는 있었다.
물론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남자는 참 수상하게 생겼다. 그 사실은 남자 본인조차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유정이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남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엄마도 모르는 유정이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당연히 평범한 사람일 리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태주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남자는 말 그대로 모두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옆 학교 초등학교 교장이 누구인지, 그 학교 교가의 작곡가가 누구인지, 그 작곡가의 부인은 누구인지와 같은 말도 안 되게 지엽적인 정보를 물어봐도 남자는 모두 대답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작곡가가 남몰래 바람 피고 있었다는 정보는 확인할 수 없는 정보이기는 했지만.
그런 검증 불가능한 정보가 한 둘 섞여 있긴 했지만 그런 대답 몇 가지를 제외하더라도 남자는 이미 수십 개의 대답을 했고 그 대답은 한순간도 막힘이 없었다. 이런 전혀 쓸모없는 정보 같은 걸 암기했을 리는 없으니, 남자는 정말로 세상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이게 말이나 되는 건가?”
태주의 말에 남자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하지만, 나는 정말로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니까.”
“그런데 대체 왜 저에 대한 것만 모르는 거에요?”
태주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모르는 지극히 드문 예외적인 것에 하필이면 태주가 포함되어 있다니. 하지만 남자 역시 그건 알 수 없다.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단순한 추측 정도다.
“그야 나도 모르지.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법이야. 어쩌면 이 세상의 일이 아니라서 내가 알 수 없는 건지도 모르지. 네 말대로 말이야. 어쨌든, 이제는 내 말을 확실히 믿을 수 있겠지? 나는 거의 전지해. 최소한 뭐든지 알 수 있다고 자칭할 수 있을 정도로는.”
남자의 말을 들은 태주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못 믿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남자가 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도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정도가 되지 않으면 유정이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말이잖아요.”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그래.”
남자는 태주의 말을 긍정했다.
“내가 보장하지. 그 유정이라는 친구의 흔적은 세상에 이미 없어. 학교를 가 봐도,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 봐도, 기록을 찾아봐도 그 유정의 흔적은 찾을 수 없을 거야. 네가 어디까지 확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태주는 눈을 꿈틀했다. 아직 거기까지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남자의 말에는 무서울 정도의 설득력이 있다. 이미 가족사진이나 학교 졸업앨범에서 유정이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목격했다.
“짐작이 가는 부분은 있는 모양인데. 그럼 설득할 필요가 없으니 이야기가 편하겠는걸. 그런 의미에서 네 표현은 정확해. 그런 사람은 애초부터 있었던 적이 없는 셈이야. 지금 이 세상에 그 유정이라는 사람은 확실히 없다.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를 제외하면 한 사람뿐이고. 내가 아는 한의 일이지만.”
남자는 단언했다. 사실상 뭐든지 알고 있는 사람의 확언이니, 어쩌면 누군가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행복회로조차 돌릴 수 없다.
태주는 이를 꽉 깨물었다. 절망적인 말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남자는 계속해서 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그 애가 어떻게 됐는지, 어디에 있는지 모두 알고 있어. 이 모든 상황을, 처음 같지는 않더라도 돌려놓을 방법도 알고 있지.”
태주는 흠칫 놀랐다.
“뭐라고요?”
“나는 지극히 드문 예외를 빼면 뭐든지 알고 있다고 했잖아. 당연히 그 해결 방법 같은 것도 알고 있지.”
태주의 굳어 있던 표정과는 달리, 남자는 뭘 그리 놀라냐는 듯 미소지었다. 태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곧 이상함을 느꼈다.
“그럼 왜 제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들은 거죠?”
“네가 누군지 궁금해서.”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들어도 모르겠더라.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가 너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 했는데.”
태주는 조금 배신당한 표정이 되었다.
“그 표정은 뭐야? 모르는 게 있으면 당연히 들어야 할 거 아냐.”
“그럼 저는 괜한 이야기만 한 셈이잖아요.”
태주의 말을 들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또 아니야. 네 이야기를 들어서 다행이지. 네가 누군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네가 어떤 것인지는 잘 알 수 있었거든.”
남자는 태주에게 말했다.
“너는 변수야.”
“변수요?”
“그래. 그것도 통제가 불가능한, 어떻게 될지 예측이 완벽하게 불가능한 그런 변수.”
남자는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오늘 안에 이번 일을 끝냈을 거야. 나한테 있어서 이번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당연하잖아? 나는 이번 일이 누가 왜 어떻게 한 일인지 알아. 당연히 해결책도 몇십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지.”
결과는 다 다르지만, 어쨌든 이번 문제를 해결할 여러 방법을 남자는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중에 정답을 고를 수 있어. 보통은 그냥 공리적으로 가장 좋은 결말이 최고의 결말이니까 말이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알지?”
보통은 거기서 더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태주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이번 일에는 하필이면 그 지극히 드문 예외가 있었던 것이다.
“자, 그럼 한 번 물어보겠는데, 나는 원래 내가 생각하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너를 고려해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까?”
남자는 팔짱을 끼고는 물었다.
“내 입장에서는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아.”
남자가 기존에 생각한 방법은 태주를 고려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수십 가지 방법 중에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건 확실하다. 최소한 최악의 방법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이전 결론이 잘못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차라리 태주가 이번 일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차라리 무시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 일에서 태주는 누가 봐도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결정했다.”
남자는 태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 일의 결정은 너에게 맡겨 보려고.”
“저한테 결정하라고요?”
갑자기 그런 말을 들어도 당황스러울 뿐이다. 여전히 태주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모른다.
“물론 그냥 이대로 결정하라는 건 아니야. 지금 결정하라고 하면 그래봐야 찍기에 불과할 테니 말이야. 그런 건 원하는 바가 아니야. 그럴 거면 내가 그냥 하려는 대로 하는 편이 훨씬 낫지.”
남자는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대충 휘갈기고는 쪽지를 건넸다. 태주는 당황한 채 쪽지를 받았다.
“이게 뭔가요.”
“나한테 연락할 방법. 나는 원래 오늘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어. 알기만 한다면 오래 걸릴 일이 아니거든 이건.”
남자는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보도록 하지. 그 쪽지에 써 있는 곳에, 써 있는 시간에 오도록 해. 그리고 네 생각을 말해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말이야.”
그대로 집을 나서려 하는 남자에게 태주는 황급히 물었다.
“왜 굳이 저한테 결정을 맡기는 건가요?”
남자는 웃으면서 답했다.
“말했잖아. 어느 쪽도 마음에 안 드는 것뿐이라고.”
* * *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라….”
남자의 말은 마지막까지 아리송했다. 하지만 의도는 짐작이 간다. 시간을 넉넉하게 줄 테니 어디 한 번 그때까지 정답을 알아서 오라는 말이다. 여전히 왜 자신에게 이런 결정을 맡긴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이건 테스트다. 태주가 남자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던 것처럼, 남자 역시 태주에게 어디 한 번 대답해 보라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번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이틀 안에 알아내서 자신을 찾아와 보라는 그런 테스트.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잘 모르겠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건지.
“… 어려운 문제를 시키는걸.”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주는 것도 당연하다. 이 일이 왜, 어째서 일어난 일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끼어들어 봐야 아무것도 될 리 없다. 최소한 그 자리에 가서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방해만 될 뿐이다.
태주는 손에 쥐고 있는 쪽지를 내려다봤다. 너무 꽉 쥐고 있었는지 종이는 이미 쭈글쭈글하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이런 쪽지를….”
<1월 3일, 저녁 여덟 시에 XX 공원에서.>
내용도 짧다 보니 이제는 잃어버려도 상관없을 종이지만, 그래도 버릴 수는 없다. 태주는 그 종이를 조금 눌러 편 뒤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고는 만지작거렸다. 이틀이면 시간이 넉넉한 건지 적은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적든 많든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 보자.”
태주는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그 남자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남자는 확실히 정보를 많이 흘렸다. 의도라면 힌트를 준 것일 거고, 의도가 아니더라도 노려 볼 만한 빈틈이다.
“가장 먼저, 이 세상에도 유정이는 있었어. 최소한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야.”
남자는 유정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유정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정말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라면 아무리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세상이 다른 세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세상에서도 유정이는 있었어. 그리고 어제부터 갑자기 없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졌다.”
말로 하고 보면 기묘하지만 그렇다. 유정이는 이 세상에 있다가 없어졌다. 정말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어제부터 갑자기 있었던 적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둘째로, 그 일이 일어난 데는 이유가 있어.”
남자는 분명 원인과 결과라 말했다. 누가 왜 어째서 일으킨 일인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분명히 누군가의 의도로 인해 발생했다는 말이다.
물론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다. 반칙에 가까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 검은 남자가 이걸 알고 있으니 태주가 거기까지 알아낼 필요는 없다. 그저 누가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만 알아내면 된다.
“어떤 이유로 유정이가 없어졌고, 왜 없어지게 되었는가.”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이 세상이 원래 세상과 어디가 다른지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결론이 나온다.
“이 세상에서 엄마는 죽은 적이 없어. 그리고 유정이는 있었던 적이 없어. 나는 이 세상이 원래부터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야.”
정말 싫은 결론이지만, 그렇다.
“… 엄마는, 이 세상에서 원래부터 살아있던 게 아니었던 건가?”
그리고 그렇다면 범인이라 할 만한 사람은 하나뿐이다. 아니, 정확히는 두 사람 모두와 연관이 있는 사람은 둘이지만, 하나는 자기 자신이니 제외해야 한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결론이 나오고 말았다.
“그럼 한 사람밖에 남지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