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32화 (232/269)

외전- 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4)

머뭇거리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사람이니 당연히 아저씨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키가 큰, 처음 보는 남자다.

‘누구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차피 피할 길은 없다. 집의 입구는 당연히 하나고, 그 입구 쪽에는 저 남자가 서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싸워 이길 수 있는지 물으면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저 남자는 태주보다 머리 하나가 크다. 그렇다고 태주가 특별히 운동능력이 뛰어난 축에 속하는 것도 아니니, 여러모로 불리하다.

태주가 경계하는 사이, 남자는 여전히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이건 좀 이상한걸. 내가 생각했던 바에 의하면, 여기에 올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했는데. 집주인을 포함해서 말이야.”

남자의 말을 들은 태주는 눈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정말 도둑인가.

“이 집에 귀중품 같은 건 없어요. 현금도 실질적으로는 없고요. 그래봐야 저금통에 들어있는 돈 수준 이상으로는 없을걸요?”

하지만 남자의 반응은 조금 특이했다.

“나도 알아. 내가 그런 걸 모를 리 없잖아?”

태주의 반응을 본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다시 봐도 모르겠군. 착각은 아니야. 하지만, 내가 알 수 없는 사람인 것 치고는 너무 조심성이 없는데. 대체 너는 뭐지?”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이 오히려 태주를 보고는 수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솔직히, 무섭기도 하지만 그 전에 기가 막힌다.

“넌 뭐야? 라니… 지금 그 질문은 누가 생각해도 이쪽이 해야 할 질문인 것 같은데요. 남의 집에 들어온 건 그쪽이잖아요?”

태주는 조금은 당돌하기까지 한 태도로 말했다. 상대방이 최소한 지금 당장 자신을 해칠 의도는 없어 보이기 때문에 한 질문이다. 하지만 새까만 옷의 남자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남의 집이라고?”

“네, 남의 집이요.”

“재미있는 말이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 여기가 내 집은 아니지. 그건 확실해.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가 네 집인 것도 아닐 텐데? 그렇지 않나? 이 집에 사는 건 지금은 한 명뿐일 텐데.”

태주는 순간적으로 생각이 멈췄다. 그 표정을 본 남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는 마치 여기가 네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군.”

남자의 말이 맞다. 이곳이 원래 세상에서는 자신의 집일지는 몰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자신의 집이 아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도 여전히 아저씨와 자신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 집에 살고 있지 않다.

자신은 과연, 지금도 이 집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해도 되는 걸까. 태주가 말문이 막힌 사이, 눈앞의 남자는 역으로 물었다.

“이번엔 내가 묻지. 너는 도둑인가?”

역설적인 질문이다. 방금 전까지 태주가 남자에게 하던 의심을, 이번에는 남자가 태주에게 하고 있다.

“너는 이 집 사람이 아닌데도 이곳에 있었고, 이곳에 머무르는게 익숙한 것처럼 말하고 있어. 마치 이 집을 샅샅이 뒤져 봤다거나, 아니면 사전 조사가 확실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집에 대해서는 훤히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이야. 심지어는 이 집에 무리해서 침입한 흔적도 없는 것 같네. 나처럼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들어온 것 같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남자는 태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날카로운 눈이다.

“그래서, 네가 도둑이 아니라면 뭐지?”

대답 여하에 따라서 태도가 달라질 거라는 듯한, 그런 태도지만 태주는 여전히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도저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다.

“대체 넌 누구지? 왜 여기에 있는 거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낯선 사람이 갑자기 집 안에 들어오더니, 자신을 도둑 취급한다. 누가 봐도 상황이 반대여야 하는 것 아닌가. 잠시 생각하던 태주는 결국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집 사람이에요. 여기 있는 게 당연하죠.”

상대가 뭐라 하든 좋다. 태주는 그렇게 말하기로 정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렇지 않은데.”

남자의 말에도 태주는 재차 말했다. 누가 뭐라 하든, 이건 자신의 진심이다.

“이 세상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누가 뭐래도 전 이 집 사람이기도 해요. 누가 뭐래도 진구 아저씨는 가족이라고요.”

기억이 남아있던 시기부터를 기준으로 한다면, 엄마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다. 아저씨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최소한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이 입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 세상? 이 세상이라고?”

남자는 되물었다.

“네.”

태주는 일부러 더 설명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상대방이 믿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단어를 꽤 민감하게 받아들인 남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남자는 다시 한번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했다.

“너, 딱 한 가지만 묻자.”

남자는 진지한 눈으로 물었다.

“유정이라는 이름, 넌 아냐?”

태주는 즉답했다.

“네. 제 여동생 같은 거에요.”

대화가 필요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같은 생각을 했다.

* * *

집주인은 없지만, 그래도 두 사람 다 개의치 않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꽤 오랜 시간을 대화를 했다. 거의 태주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에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간혹 남자가 질문을 하고, 태주가 그에 대해 보충을 하는 식이었으니 일단은 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태주는 잘 모른다. 눈앞의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수상하기 그지없는 사람이고, 경계의 대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래도 태주는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무슨 상황인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딱히 눈앞의 남자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유일하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 법한 사람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태주의 말을 모두 들은 남자는 재미있는 생각이라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이곳이 다른 세상이라고?”

“네.”

죽었던 엄마가 살아 돌아온 것에 더해서, 유정이는 애초부터 존재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최소한 다른 정보가 더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렇다.

“제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래요.”

“그런가.”

남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다. 남자가 말이 없는 사이, 태주는 말했다.

“하지만, 이게 맞는 생각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태주의 말을 들은 남자는 작게 미소지었다.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지금 당신이 이곳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저는 그냥 포기했을 거에요.”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을 어떤 식으로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태주는 남자에게 약간의 감사마저 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냥 포기할 뻔한 것을 어떻게든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줬기 때문에.

다만, 한가지 궁금한 것은 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처음 봐요. 당신이 유정이와 아는 사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이 세계에서도 그렇고, 원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죠.”

“그래. 그 애는 나를 몰라.”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긍정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유정이를 알고 있는 거죠?”

이해할 수 없다. 태주의 그 말에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당연해. 왜냐하면, 난 네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사람이거든.”

“대단하다고요?”

“그래.”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그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본인이 정말 그런 사람이라는 것에는 전혀 의심이 없는 그런 말투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수상하다.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 착각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든 문제이기 때문이다. 태주는 미심쩍은 표정이 되었다.

“자기 입으로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은 처음 봤는데요.”

태주의 수상한 것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표정을 보고도 남자는 그저 평온하게 말했다.

“그야 그렇겠지. 자기 입으로 이런 소리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사실,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하면 이 정도 표현은 겸손한 수준이지.”

“그게 겸손한 표현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잘못 알고 있는 건가 본데요.”

“너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내 말에 동의할 수 있을걸?”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잠시 뜸을 들였다. 무언가를 재보는 듯한 그런 눈으로 태주를 살핀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 정도라면 말해도 괜찮겠지, 하는 표정으로 보였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일. 아니, 몇 가지 예외는 있으니 모든 일은 아닌가? 어쨌든 그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세상 모든 일을 알 수 있는 사람이야.”

“… 뭐라고요?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처구니가 없어 반박도 못 하는 사이, 남자는 한술 더 떠서 말했다.

“그리고 그 몇 가지 예외조차도 간접적으로는 다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그러니까, 나는 실질적으로 전지하다는 말이야. 비유나, 그런 것이 아니야. 나는 어떤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긴 순간,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태주는 말끝을 흐렸다.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겠지.”

남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정말 그래. 나는 이곳에 비밀번호 같은 걸 입력하지 않고 왔어. 당연히 누군가에게 이런 걸 물어보고 온 것도 아니지.”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물론, 눈 앞의 이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현관의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들어왔다. 하지만 그걸 자신의 전지함의 근거로 드는 건 웃기는 수준의 일 아닌가.

“…겨우 그런 걸로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그런 말은 너무 과장이 심한 것 같은데요.”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째서 이 남자가 유정이를 알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남자는 그걸 알고 있는지 웃었다.

“그래. 비유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야. 나는 정말로 그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세상 모든 걸 알 수 있어. 네가 여동생이라고 주장하는 그 유정이를 알고 있는 것도 그래서지.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을 알아낼 방법이 그것 말고 더 있나?”

남자는 긍정했다.

“궁금하다면 어디 한번 해 봐. 뭐든지 알고 있다는 것만큼 증명하기 쉬운 것도 없으니까.”

남자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너에 대한 것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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