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3)
아아, 그래. 그렇지. 그렇게 좋은 일만 일어날 리가 없지.
태주는 웃던 얼굴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는 그렇게나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그 기분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침에 이곳이 자신이 원래 있던 방이 아니었다는 기분이 들었던 그 순간에 느꼈던 것처럼. 아니 그래도 그때는 묘한 기시감 정도에 불과했으니 지금 이건 확실히 그 이상이다.
엄마는 갑자기 왜 그렇게 진지한 표정인지 의문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태주에게 있어서 지금 이 상황은 그저 넘어갈 수 없는 공포의 순간이다. 몇십 분 전 그때보다 더욱더 등골이 서늘한 채로, 태주는 다시 한번 물었다.
“엄마.”
“응?”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정말 유정이를 몰라요?”
“몰라? 네가 말한 적이 있어야지.”
이건 태주가 말해줘서 알아야 하는 이름이 아니다. 말한 적이 없어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만 하는 이름인데, 그걸 너무나 당연하다는 태도로 모른다. 태주는 침묵했다. 그래도 혹시나, 어쩌면 좀 기다려 보면 그 이름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이미 그럴 리 없다는 짐작을 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기대.
하지만, 엄마의 말은 본의 아니게도 그 기대를 산산이 조각내버렸다.
“혹시 탤런트 이름인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엄마는 진지한 고민 끝에 그런 대답을 내놓았다. 이제는 행복회로도 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태주는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눈가가 살짝 떨린다.
‘설마 아니겠지. 걔가 죽었다고?’
이런 건 생각도 못 했다. 그 사고에서 혹시, 진구 아저씨가 죽은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지, 반대로 유정이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해 보지도 못했다.
태주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태주의 그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엄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모르는 걸 충격받을 정도야? 한 일 년 만난 여자친구라도 되는 거야?”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엄마는 수상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꽤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지금 그건 평범한 반응이 아닌데, 뭔가를 숨기는 반응이야. 너 설마 여자친구를 나보다 진구한테 먼저 소개 시켜준거야? 진짜로?”
엄마는 나름대로 꽤 진지한 추론을 했다. 하지만 핀트가 한참 어긋났다. 엄마의 나만 빼고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느냐고 묻는 듯한, 그런 배신당했다는 표정을 본 태주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엄마는 정말로, 유정이를 모른다.
“아니에요. 걔는 정말로 여동생 같은 거에요. 본인이 이 말을 들으면 자기가 이 집에 더 오래 있었으니 누나 같은 거라고 하겠지만, 결국 생일은 제가 빠르니까요.”
그냥 포기할 수는 없다. 태주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정보를 좀 더 추가해서 엄마에게 말해 봤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시도가 될 거다.
하지만 태주의 말을 들은 엄마는 오히려 더 의심하는 눈초리가 되어서는 물었다.
“여동생 같은 사이라고?”
“네, 당연하죠.”
엄마는 확신했다는 듯 말했다.
“그럼 곧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겠네. 내가 그러다가 너희 아빠랑 어떻게 됐는데?”
“… 그걸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긴 한데요.”
태주는 힘겹게 웃고는 말했다.
“하지만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걔랑 연애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안 들어요. 그건 진짜 여동생이나 다름없어요. 가족 같은 사이라고요.”
“그래, 결혼하면 가족이 되겠지.”
엄마는 태주가 부끄러워서 말을 빙빙 돌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반응했다. 이 정도까지 말해도 여전히 엄마는 유정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다. 태주는 결심했다.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엄마.”
“응?”
엄마는 정말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저 혹시나 싶어서 한 가지만 확실하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물어보고 싶은 거?”
“진구 아저씨한테 숨겨진 딸이라던가 뭐 그런 거 없죠?”
“당연하지.”
엄마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왜, 무슨 드라마 같은 거라도 본 거야?”
“아뇨.”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드라마 같은 건 아니고, 꽤 중요한 문제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이렇게 노골적으로 질문을 해도, 전혀 짐작이 가는 것이 없다는 표정이다. 태주는 결심했다.
“저, 조금 있다가 아저씨 집에 다시 가볼게요.”
아무래도 이 세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쉽게 들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챙겨야 할 게 있어요.”
태주는 아쉽지만 빠르게 그릇에 남은 음식들을 비워나갔다. 느긋한 시간을 즐기고 싶지만, 그럴 때가 아니다.
* * *
집 안에서 계속 머무르고 싶다. 이제 와서 몇 시간 정도 더 쉬고 나가는 것이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안 된다. 이건 그만큼 중요한 문제다.
곧바로 버스에 올라탄 태주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한 건, 유정이는 죽은 건 아니라는 거야.’
만약 죽은 거라면, 아저씨의 딸이 죽은 것에 대한 사실을 엄마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분명히 그런 적이 없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니, 유정이는 죽었다 할 수 없다. 그저 엄마가 지금 이쪽에서는 애초부터 죽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는 유정이 역시 처음부터 없었던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어린 나이에 사망한 것. 어느 쪽이 그나마 다행이라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더 끔찍한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태주는 구분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한 가지 생각도 같이 든다. 태주는 눈을 감았다.
‘나는 뭘 하려는 걸까.’
처음에, 유정이의 부재를 확인했을 때, 앞뒤 잴 것 없이 곧바로 움직이기로 결심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내가 오빠니까 그 정도는 확인해야만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움직이면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다. 과연 확인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등가교환이라도 한 것처럼 엄마가 나타나고 유정이가 사라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 태주가 뭔가 개입해서 한 일은 전혀 없다. 원리도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원리를 알아낸다고 해도 그 상황을 재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렇게 이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돌아다니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파악한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 걸까. 의미가 있는 행동인 걸까.
결론은,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금방 나왔다.
‘그래도, 그래도 해야지.’
유정이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오빠다. 아무리 자신이 이세계로 떠나간다 해도, 혹은 하늘이 뒤집힌다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유정이와 잘 지내달라는 것은, 아저씨가 부탁했던 단 하나의 부탁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다. 도움이 안 되더라도 도와주고 싶은 것이 가족 아닌가.
버스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두 집의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다. 그러니 여행도 함께 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거다.
버스에서 내린 태주는 이제는 원래 집보다 익숙해진 집에 가는 길을 빠르게 걸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태주는 아저씨의 집 앞, 그러니까 자신이 어제까지만 해도 살던 집 앞에 섰다.
“후….”
벌써부터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오고 있다. 애초부터 컨디션이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는데, 정신적인 충격으로 억지 각성을 계속해서 하고 있던 것에 불과한 상황이다.
그래도 약한 소리 할 수는 없다. 태주는 마른세수를 한 번 했다. 지금 무리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나.
태주는 불안한 마음으로 기억하던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다행히 문이 열린다.
“다행이네.”
태주는 혼잣말을 했다. 아무리 평행세계니 이세계니 해도 아저씨가 정한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은 모양이다. 잘못하면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할 뻔했다.
여기까지 와서 열리지 않는다면 크게 낭패를 볼 뻔했다. 그것도 그냥 낭패 수준이 아니라, 자괴감에 쓰러지지 않았을까.
혹시 아저씨가 집 안에 있는가 싶어 큰 소리로 불러보고, 아저씨 방문을 열어 봐도 아저씨는 방안에 없다. 하지만, 집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걸 확인한 태주는 망설이지도 않고 자신이 지금까지 머물던 방으로 향했다. 일단은,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 확실히 그렇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별 건 없어.”
자신이 평소에 쓰던 이불 정도는 있지만, 자신의 짐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곳은 말 그대로 손님용 방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모해있다. 이곳에서 자신이 가끔 자고 가는 일은 있지만, 여기서 살아온 것 같지는 않은 딱 그런 정도의 모습.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금 확인하려는 건 내 방이 어떻게 되었는가 같은 것이 아니다. 지금 보려는 건 유정이의 존재다.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것만 찾으면 된다.
이 집의 어디에 뭐가 있는지, 태주가 모를 리 없다. 태주는 어렵지 않게 가족 앨범, 졸업 앨범 같은 것을 찾아냈다.
“뭐야, 이게.”
이 세계에서는 이게 정상이라는 듯, 어디에도 유정이의 모습이 없다. 가족사진에, 졸업 앨범에 자신의 사진은 있다. 그래도 유정이는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모습도 종종 보이는데도, 유정이는 여전히 없다.
말도 안 된다, 고 하기에는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태주는 그 모습을 본 뒤, 그대로 유정이의 방문을 열었다. 평소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화를 바락바락 내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던 그 방이었기에 마지막까지 들어가는 것을 미뤘지만, 지금도 그럴 수는 없다.
“이런 미친.”
문을 연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심하게도 그 방은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손님용 방처럼, 그리고 가끔 자신이 자고 가는 정도로는 남아 있던 자신의 방과는 다르다.
그냥, 이 방에는 아무것도 없다. 창고처럼 쓰는 것조차 아니다. 텅 빈 공간일 뿐이다. 이 정도로 아무것도 없을 줄은 예상치 못했던 태주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섰다.
한 오 분 정도는 넘게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머리가 새하얗게 된 채로.
태주가 정신이 든 것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삐릭삐릭 하는 네 번의 전자음. 비밀번호가 입력되는 소리다.
태주는 당연히, 이곳에 들어온 것이 아저씨일 것이라 생각하고 현관문 방향으로 걸었다.
하지만 들어온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사람이었다.
수상한 검은 옷의 남자.
처음 보는 사람이다. 국적도 알 수 없고 나이도 알 수 없다. 아주 나이가 어리거나 많지 않다는 사실 정도밖에는 알 수가 없다. 체격은 좋은 것도 같지만, 그렇게 좋으냐 물으면 또 잘 모르겠다. 키는 좀 크다.
아저씨와 아는 사이일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아니, 업무상 만나는 사람은 태주가 잘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라 해도 이 집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올 리는 없다.
아니면, 설마 이게 이 세계의 아저씨인가. 태주가 확신하지 못해 우물쭈물하는 사이 상대방이 먼저 물었다.
“넌 뭐야?”
아무래도 아저씨는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