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2)
엄마가 살아 돌아오고,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인데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마주 앉아 대화까지 할 수 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그런 이상한 점들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바라왔던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식탁 위에 있는 건 지금 태주의 상태에 딱 알맞은 북엇국이다.
“맛있네요.”
솔직히 말하면, 태주는 이전까지 이런 해장국을 그리 좋아했던 적은 없었다. 맛있다는 생각도 별로 해 본 적 없다. 하지만 지금 이 북엇국은 확실히 속을 채워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
엄마가 해 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실제로 해장이 필요한 타이밍에 먹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은 둘 다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태주는 말했다.
“해장국을 이래서 먹는 건가 봐요?”
“당연하지.”
태주의 말을 들은 엄마는 자신 있다는 듯 말했다.
“엄마가 잘 하는 요리가 많지는 않지만, 하는 건 잘해.”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영 알 수 없는 말투. 태주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저 하나 먹기에는 충분히 많은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할 줄 아는 음식들 말이에요.”
“나이 먹더니 말이 늘었네. 사회생활 준비하는 거야?”
엄마는 잔잔하게 웃고는 말했다. 감회가 새롭다는 느낌의 표정이다.
“하긴, 네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것도 신기하긴 해. 설마 내가 네 해장국을 끓여주는 날이 올 줄은 몰랐거든.”
태주는 먹던 손을 잠시 멈췄다. 엄마 입장에서는 그냥 평범한 대화의 연장선에 불과하겠지만 태주가 순간적으로 듣기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 그러게요.”
“왜 그래? 속이 안 좋아?”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 짧은 시간을 엄마는 놓치지 않았다. 태주는 작게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니, 아예 아닌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속이 안 좋은 건 아니에요. 그냥 저도 좀 감회가 새로워서요.”
태주의 말을 들은 엄마는 쉽게 납득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도 처음 성인이 된 날은 좀 감성적이 되었던 것도 같네. 너무 오래전이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는 그렇게 말한 뒤,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자식이 성인이 되는 쪽이 내가 성인이 되는 날보다 더 신기하더라.”
“그건 참.”
반박 불가능한 말이다. 태주는 한번 웃고 나서는 다시 생각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이 대화가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잠시 미뤄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지금 상황을 좀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간단한 가설 하나는 이미 나왔다.
‘어쩌면, 지금 상황은 내가 이세계로 간 걸지도 몰라. 아니면, 평행 세계 같은 뭐 그런 거일지도 모르고.’
평소라면 절대로 내리지 않을 결론이지만, 이미 이런 것 정도 말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그러니까 눈앞에 있는 이 엄마는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어.’
지금까지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느낀 점이다. 엄마는 죽은 적이 없거나, 죽었다 살아났다는 기억이 없다.
‘내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를 마치 겪었던 것처럼 하고 있어. 만약 십 년 전에 죽은 엄마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인데.’
만약 십 년 동안 죽었다 살아났다면, 태주가 지금까지 겪어온 일을 알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중학생 때 겪은 일이나 고등학생 때 겪은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완벽하게 같지는 않고, 엄마가 존재하는 세상 버전의 기억이라 해야겠지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죽은 엄마가 살아 돌아온 게 아니다. 지금 이상한 쪽은 태주고, 태주 쪽이 엄마가 죽은 적이 없는 세상으로 넘어왔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오늘은 물론 엄마에게도 특별한 날이지만 그래도 평범한 일상의 연속에 불과한 정도고, 태주가 느끼는 것만큼 지금 상황을 신비한 일로 받아들일 수 없다.
태주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기쁜 일이다. 한때 매일같이 상상하던 일이고, 사실은 지금도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그냥 좋은 일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멈출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저 기쁘기만 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태주가 지금 이곳이 일종의 이세계라는 것을 파악한 다음 가장 먼저 떠올린 의문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돌아온 것이 기쁜 만큼이나 그 부분이 걱정이 된다.
‘그럼, 지금 가족은 어떻게 된 거지?’
평행 세계 이론에 대해 태주는 잘 모른다. 하지만 만약 지금 이곳이 비슷하지만 다른 세상이라면, 그리고 그 세상에서는 비슷한 다른 일이 마땅히 일어난다는 그런 일이 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만약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만약 태주에게 있어서 엄마와 비슷할 정도로 중요한 다른 한 사람이라면.
‘그게 아저씨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태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 * *
태주는 그때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태주의 상태가 여러모로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화만은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한다.
첫 마디는 분명히 이런 거였다.
“너는 아저씨랑 살자.”
대뜸 자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로 와서 한 말이다. 아저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돌려 말하는 걸 잘 하지 못한다.
“… 아저씨랑요?”
갑작스러운 말에 태주는 간신히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방어적인 말투지만, 당시에는 말을 골라서 할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태주는 하루아침에 가족을 모두 잃은, 그리고 그 사실을 한 달 뒤에나 깨어나서 들을 수 있었던 열 살 꼬맹이였기 때문이다.
“왜요? 전 아저씨 아들이 아닌데요.”
정신이 없고 슬픈 와중에도 그렇게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열 살이면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다. 아무리 몸과 마음이 망가진 상태의 어린애라고 해도, 남의 자식을 맡아 키우는 것이 어렵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아저씨도 지금 굉장히 힘들 텐데요.”
게다가 태주만 가족을 잃은 게 아니다. 아저씨 역시 가족을 잃었다. 물론 부모를 잃은 태주에 비교하면 받아들이기 수월하겠지만, 그래도 아저씨 역시 부인을 잃은 남편이다.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어른스러운 척하긴. 넌 그래봐야 애야. 그리고, 애들이 어른 걱정하는 거 아니야.”
아저씨는 씁쓸하게 태주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무리여도 어쩔 수 없지 않겠냐. 나는 네가 시설에 들어가는 꼴은 못 보겠는데.”
“… 시설요?”
“네 친척이라는 사람들이 다 널 받아 줄 형편이 안 된다더라. 아무도 맡지 않으면 결국 시설로 들어가는 모양이야.”
이미 알아보고 온 뒤인지, 아저씨는 대놓고 말했다. 처음 듣는 소리지만, 놀랍지는 않다. 애초에 다른 친척들과 친하지도 않았다.
놀라지도 않는 태주의 모습을 본 아저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러니 우리랑 가자. 네가 좀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아직 열 살 정도밖에 안 돼. 그리고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는 우리랑 지내는 편이 낫지 않겠냐. 네 또래도 있고.”
아저씨는 그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일 텐데도 자신에게 부탁하듯 말했다.
“만약 반대였어도 똑같이 했을 거다. 우린 그런 사이였으니까.”
“반대요?”
“내가 죽고, 네 엄마나, 아니면 아빠가 살았다 해도 말이다.”
아저씨의 태도는 한결같다. 고민도, 결정도 이미 끝마친 것인지 태주의 앞에서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태주도 그리 긴 고민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다른 수가 없었다 해도, 망설임도 불안도 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그 태도 덕분이었을 것이다.
“… 아빠라고는 못 부를 것 같아요.”
“그래, 그러지 마라. 나도 별로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니까.”
아저씨는 태주의 어깨를 툭 짚으며 말했다.
“그냥, 유정이랑만 잘 지내다오. 어린애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거야. 나머지 일은 내가 할 테니.”
그 말과 모습은 어린 태주가 보기에도 꽤 멋있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 * *
친구의 자식을 맡아서 대신 키운다.
말로만 들어도 어려운 일이지만, 진구 아저씨는 그걸 실제로 해버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의 딸인 유정과 남의 아들인 태주를 거의 동등하게 챙겼다.
사소한 차이는 있었고, 아무리 그래도 마음을 쓰는 정도가 다르기는 했다. 크고 작은 차이가 태주와 유정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불만이 있을 정도였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태주에게 모자라게 챙겨준 것은 아니고, 그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아저씨는 최대한 그런 차이를 드러내는 것을 자제했다. 그 태도가 눈에 보이는데도 아저씨를 원망한다면, 그건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 그냥 개자식이다.
그러니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감사하고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 진구 아저씨다.
그런데 그런 진구 아저씨가 죽었다면, 그것도 십 년 전의 사고에서 죽었다면 자신은 어떤 얼굴을 해야 할까.
솔직히 겁이 나서 직접 물어보는 건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미룰 수도 없는 법이다. 태주는 긴장한 채 입을 열었다. 여전히 직접 물어보는 건 아니지만, 원하는 정보를 들을 수 있을 법한 질문을 골랐다.
“그런데 말이에요, 제가 어제 집에서 술을 먹었던가요?”
“뭐?”
엄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게 기억이 안 나?”
“아니 그 뭐냐….”
태주는 변명하듯 말했다.
“제가 필름이 끊긴다는 경험을 처음 해봐서. 제가 집에서 술을 마셨던가 싶어서요. 분명히 다른 데서 먹었던 거 같은데 눈을 떠 보니까 집이더라고요.”
거짓말은 아니다. 의도는 따로 있긴 하지만. 엄마는 별 의심 없이 태주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줬다.
“밖에서 먹었지. 진구네 집에서 먹었잖아, 너.”
엄마의 말을 들은 태주는 남몰래 안심했다. 최소한 진구 아저씨가 죽은 것만은 절대로 아닌 모양이다. 어제까지 같이 술을 마셨다면 죽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다행인 점이 있다.
진구 아저씨는, 이 세상에서도 자신에게 ‘술을 가르칠 수 있는’ 위치의 어른이다. 그렇다면 엄마가 살아있는 지금도 여전히 두 가족의 관계는 돈독하다는 말이다.
안심한 태주는 조금 편안한 태도로 다시 물었다.
“그, 그랬죠? 그럼 제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
“진구가 너 데리고 왔어.”
“아저씨가요? 그건 무슨 말이에요?”
“진짜 전혀 기억 못 하는구나? 하긴 몸을 전혀 못 가누기는 하던데.”
엄마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잠은 그래도 집에서 자야 하지 않겠냐면서 걔가 널 데리고 왔어. 참, 그 정도로 몸을 못 가누면 그냥 자고 오지. 네가 거기서 자고 온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진구 걔는 대체 처음 성인이 된 애한테 뭐를 얼마나 먹인 거야?”
엄마의 불평에 태주는 안심하고는 말했다.
“… 무슨 블루라고 하던데요. 비싼 거라던데. 한 병 다 먹었어요.”
“그건 음, 비싼 거 먹었네.”
엄마는 갑자기 납득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싼 거면 괜찮은 거에요?”
태주의 질문에 엄마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런 건 가끔 과음해도 돼. 그 비싼 걸 그런 때 아니면 언제 그렇게 먹어 보겠니.”
엄마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걸 한 병을 둘이서 다 먹은 거야? 아무리 그래도 양주 한 병을 둘이서 다 마실 정도면 좀 많은데.”
“아뇨, 셋이서 먹었어요. 하긴 뭐, 한 명은 조금만 먹고 바로 잠들긴 했지만요.”
“셋?”
엄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셋이서 먹죠, 그럼 둘이서만 먹어요? 유정이도 저랑 동갑이잖아요.”
태주의 말을 들은 엄마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유정이?”
마치 그런 이름은 처음 듣는다는 것처럼, 엄마는 말했다.
“여자친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