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29화 (외전) (229/269)

외전- 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부당거래 (1)

끼이익—.

방문이 열리고 바깥으로 한 소년이 나왔다.

사실 소년이라 부르기엔 조금 애매한 감이 있다. 몸은 이미 다 자랐고, 나이로 봐도 이제는 성인으로 취급되는 나이다. 그러니 청년이라 부르는 편이 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소년에 가깝다.

방에서 나온 소년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듯 조금 비틀거리면서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그러던 중 소년은 어떤 소리를 들었다. 달그락거리는 그릇의 소리, 가스불이 타는 소리가 나고, 또 무언가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난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는 당연히 안다. 요리를 하는 소리다. 시간이 아침이니 분명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정말 있을 수 있는 걸까.

소년은 한껏 눈을 찌푸린 채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왠지 익숙한 모습의 여자를 보고는 말했다.

“엄마?”

소년은 별로 기쁘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왜 여기에 계신 거에요?”

그런 소년의 질문에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오늘은 쉬는 날이잖니.”

소년은 뒷말을 삼켰다. 차마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엄마는 십 년 전에 죽었다. 그런 엄마가 어떻게 여기에 있느냐는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 * *

처음 잠에서 깬 소년은 여느 때처럼 다시 자려 누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대체 여기가 어디지?”

일단 누운 채로 파악해 보면, 여기는 평범한 가정집에 있는, 그런 흔한 방으로 보인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방.

하지만 확실히 평소에 일어나던 방은 아니다. 그러니까, 소년은 남의 방에서 눈을 떴다는 말이다.

뒹굴거리던 소년은, 그걸 깨달은 직후,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몸이 차게 식는 느낌이 들고 식은땀이 쭉 났다.

소년은 일단 황급히 자신의 몸을 뒤졌다. 일단 없어진 물건은 없다. 옷도 어제까지 입고 있었던 모습 그대로고,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들도 죄다 원래 넣어 뒀던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러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황은 좋지 않다. 소년은 손을 떨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온 건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왜 여기에 있는지는 짐작이 간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거 술 때문 같은데.”

꽤 합리적인 추측이다. 아무리 소년이 처음으로 술을 먹어본 초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필름이 끊긴다는 표현이 뭘 뜻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표현은 지금 상황에 너무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 아무래도 처음치고 너무 자신 있었어.”

한번 의식하고 나니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프다. 소년은 일단 양손으로 이마를 세게 꾹 눌렀다. 그 행동에 실제로 두통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마 쪽을 꾹꾹 눌러주고 나니 기분은 좀 나아졌다. 물론 여전히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소년이 떠오르는 선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제는 확실히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처음은 가벼운 시작이었다. 좋은 술이 있으니 내일 성인이 되는 기념으로 한잔 해보지 않겠냐는 아저씨의 권유에, 소년은 반쯤 재미로 응했고, 그게 잘못이었다.

자기 주량을 잘 모르는 소년은 아저씨가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셨고, 일단 몇 번 마시고 나니 자신감이 생긴 소년은 다시 또 호쾌하게 다음 잔을 받았다.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처음 마시는 것 치고는 꽤 잘 마신다면서 술을 계속 따라줬고, 소년은 또 마시고 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고, 눈을 뜨니 지금 이 상황이다.

소년은 혀를 한번 찼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주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소년은 중얼거렸다.

“술이 원수라는 게 이런 말이구나.”

그래도 자신이 기억을 잃은 부분까지는 알겠다. 하지만 자신은 어떻게 남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 걸까. 대체 자신은 어디에 있는 것이고 어쩌다가 여기로 온 걸까.

소년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자기 숨에서 나는 술 냄새를 맡고는 조금 메스꺼운 기분이 되었다. 소년은 헛구역질을 한번 하고는 말했다.

“돌겠네. 진짜.”

숨도 조심해서 쉬어야 하나. 소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나서 뒤집어지는 속을 억지로 꾹 눌러 담았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토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아는 곳이라도 그러고 싶지는 않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 집에서 토하는 것이 어딘지도 모를 남의 집에서 토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소년은 억지로 속을 진정시킨 뒤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막혔다.

어쩌면 자신은 몰래 남의 집에 숨어든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른 뒤 진상을 부려서 어떻게든 밀고 들어왔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갑자기 납치를 당한 걸지도 모른다.

어느 쪽도 비슷하게 현실성이 없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미 현실성이 없다 보니 죄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까지 생각한 소년은 몸을 부르르 한번 떨었다.

“… 무서운데.”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소년은 조금 찝찝한 마음으로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묘한 기분이 되었다.

뭔가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 이게 무슨 기분인지 생각하던 소년은 곧 깨달았다.

이건 익숙함이다.

눈을 떠 보니 자신의 방이 아닌 상황인 것치고 묘하게 진정이 쉽게되던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게 아니다.

이 방은 묘하게 편안하다.

“여기… 왜 이렇게 익숙하지?”

소년은 중얼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낯익은 장소다. 데자뷰에 불과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와 본 적 있는 곳인 건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자신은 이곳을 익숙한 장소처럼 느끼고 있다.

소년은 천천히 생각하다가, 헉 하는 소리를 냈다. 자신이 익숙하게 여길 수 있는, 지금은 자신의 방이 아닌 다른 장소는 단 한 곳뿐이다.

“아니, 그럴리가.”

소년은 고개를 저었지만, 동시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조금씩 든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 생각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끼이익—.

소년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원래대로라면 조금 더 상황을 보고 나갈까 했지만, 한번 그런 생각을 한 이상 더 미룰 수 없었다.

복도를 보자마자,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차라리 이 복도에서 낯선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면, 방금 전까지 느낀 감각을 그저 착각으로 여기고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이 복도를 보니 그게 착각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년은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기억이 난다. 이 복도를 넘어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부엌이 나온다. 이건 굳이 지금 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다. 이미 좋은 냄새와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 앞은 부엌이 맞다.

그렇다면, 거기에 서 있을 사람은 한 명뿐이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부엌을 봤다.

저 뒷모습. 엄마의 뒷모습이다. 소년은 그제야 여기가 어디인지 인정할 수 있었다. 여긴 십 년 전에 살던 자신의 집이다. 죽은 엄마와 함께, 자신은 십 년 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엄마?”

* * *

왜 십 년 전에 죽었던 엄마가 살아 돌아온 것인가.

듣기에 따라 패륜적으로 들릴 수 있을 의문이지만, 이미 표현을 돌려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년의 상태가 멀쩡하지는 않다. 소년의 표정은 이미 멍하니 바보 같은 표정이고 머릿속은 텅 비어서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 없다.

소년이 바보 같은 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처하면 이렇게 되고 말 거다.

그게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도 죽은 사람이 나타나 너무나 태연하게, 마치 단 한 번도 죽었던 적 없다는 것처럼 대답을 한다면 그건 좋고 싫고를 떠나 이미 충분히 당황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결국 소년은 일단은 더 입을 열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미 할 수 있는 건 생각 정도밖에 없다.

눈앞에 있는 건 정말로 엄마인가? 소년이 맨 처음으로 가진 의문이었다. 그리고 대답은 금방 나왔다.

‘맞아. 저건 엄마야.’

저게 가짜일 수는 없다. 아무리 십 년 정도 엄마를 본 적이 없다지만, 이 정도는 기억할 수 있다. 생긴 것도 엄마고, 하는 행동이나 목소리도 기억과 같다. 기억 속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런 게 연기로 가능할 리도 없고.’

백 걸음 정도를 양보해서, 누군가가 성형을 하고 연기를 하는 것까지는 가능하다 쳐도, 과거의 사람의 말투와 목소리까지 똑같이 모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억지로 이 모든 가정을 가능하다 치더라도, 이렇게까지 해서 자신을 속일 이유는 없다. 그건 시간도 비용도 난이도도 높은 짓이다. 그러니 가짜 엄마가 나타나 자신을 속이려 드는 것 아닌가 하는 가설은 진짜 엄마가 되살아나는 것만큼이나 현실성이 없다.

그런 이유로 소년은 눈앞의 여자가 진짜 엄마라는 결론을 내렸다. 소년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으음….”

소년은 결국 다시 한번 생각이 멈춰버리고 말았다. 일종의 모순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눈앞의 엄마가 가짜일 리는 없지만, 진짜일 리도 없다.

그렇기에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엄마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되뇌었다.

“쉬는 날이라고요?”

상황을 잘 모를 때는, 마지막으로 한 말을 되물으면 그럭저럭 대화가 이어지는 법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래. 명절이잖아. 1월 1일. 구정은 아니고 신정이지만.”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는 이왕 쉬는 거, 신정에도 삼일 통째로 쉬면 안 되는 거냐는 둥 하는 불평을 했다.

그 모습이 기억 속의 엄마와 똑같아서, 소년은 무심코 말했다.

“그거 왠지 굉장히 엄마다운 말이네요.”

참, 명절이라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일은 없을 텐데. 소년은 다시 한번 뒷말을 삼켰다.

소년의 말을 들은 엄마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건 무슨 말이니? 세상에 쉬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같이 일하는 사람은 이런 쉬는 날이 귀중하다고.”

“… 그렇겠죠.”

그것만은 동감이다. 태주의 말을 들은 엄마는 거기에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설령 쉬는 날이 아니더라도 이런 날 정도는 집에 있어야 하지 않겠어?”

“이런 날이요?”

소년의 질문에 엄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성인이 되고 첫날이잖아. 좋은 날이야, 그렇지?”

엄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성인이 된 거 축하해. 태주야.”

태주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까지 하던 의심이나 추측 같은 것들이 전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다.

축하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태주가 몇 년 전의 생일에 듣고 싶어 했던 그 말이다. 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에 태주는 이상한 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고마워요, 엄마.”

최소한 지금 당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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