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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228화 (완결) (228/269)

22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대답 (13)

태주는 한가롭게 커피를 내렸다. 손님도 없고, 주문도 없다. 그냥, 마시고 싶어서 내릴 뿐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소장이 그렇게 떠나버리고 난 뒤에도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도깨비와 마녀가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이거나, 그 보영이라는 친구의 등쌀을 못 이겨서 월이가 도망쳐다니거나, 아니면 전 세계에 전화가 오는 불가사의한 사건에 대해 일요일 오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방영하거나 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게 평소와 크게 다른 일이냐 물으면 그렇지는 않다.

누군가에게는 큰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그런 사건은 늘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법이다.

태주는 느긋하게 말했다.

“평화롭네요.”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우유를 많이 넣은 따듯한 커피 한 잔을 시아에게 넘겼다. 아주 느긋한 모습. 시아도 마찬가지로 느긋하게 말했다.

“그래. 평화롭구나.”

“그래서 그런지 실감이 잘 안 나요.”

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소장이 없다는 것이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태주는 시계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평소와 같은, 시간이 느리게 가지도 않고 빨리 가지도 않는 평범한 금요일. 소장이 사라지기 이전이랑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 태주는 물었다.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요?”

“글쎄다.”

시아는 홀짝이고는 말했다.

“나도 실감 같은 건 잘 안 나는군. 아직도 나는 언제 소장이 문을 열고 다시 나타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은 들어.”

시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생각해 보면 소장은 일부러라도 여기 자주 내려오지는 않았지. 슬슬 익숙한 기분이라기보다는, 소장이 없어진 직후에도 평소 같았지. 기분은 조금 달랐지만.”

“그렇죠. 아마, 자신이 사라진 다음에 적응이 쉽도록 하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래. 본인 의도라는 건 나도 알겠어. 하지만, 그건 좀 있군. 차라리 조금은 빈 자리가 크게 느껴졌으면 하는 기분이 약간은 들어.”

있던 사람이 없어졌는데 평소와 별로 다를 것도 없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다.

“빈자리라.”

태주는 말했다.

“특히 자금 관련 일을 할 때는 그 빈 자리가 좀 크게 느껴지죠?”

“그건 무슨 말인지 알겠구나.”

태주의 농담을 들은 시아는 작게 웃었다.

“확실히 소장이 그런 건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을 거야. 가끔 괜히 서류가 많아지면 피곤하기도 하고. 없을 때는 없는데 많을 때는 너무 많고.”

두 사람이 나눠서 하는데도 그렇다. 종종 엄청나게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못 할 정도냐면 그 정도는 아니기도 하고.”

푼돈을 가지고 그만큼 불리는 건 소장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있는 걸 유지하는 정도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소장은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놨다.

“지금 생각하면, 그 극장건물 관련한 처리를 이쪽에서 처리하도록 만든 것도 일종의 연습을 시킨 것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자신이 없어지더라도, 이곳 사람들이 이곳을 그대로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소장은 처음부터 고려했던 게 아닐까. 태주의 그런 추측에 시아는 그럴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정말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우리는 소장 손바닥 안에 있었다는 말이 되겠구나.”

시아는 평온하게 말했다. 화가 난다거나, 경악스럽다거나 하는 기분이 새삼 들지는 않는다.

“뭐, 알아서 벌 받고 있겠지.”

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글쎄요, 과연 벌을 받고 있을까요?”

태주는 그게 조금 의심스럽다. 소장이 웃으면서 부려 먹히는 모습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 진짜 벌이 아닐 것 같기도 한데.”

“벌이든, 벌이라는 이름으로 합의 하에 노닥거리든 그건 알 바 아니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일이야.”

시아는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자일리톨 막대 사탕을 꺼내 들었다.

“우리는 우리 하는 일이나 잘 해야지. 그렇지 않아?”

“맞는 말이네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사탕 쥐는 모습이 훌륭한데요?”

검지와 중지를 이용한, 적당히 두께감 있는 사탕의 막대를 쥐는 방식. 시아는 그 자세 그대로 사탕을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너무 놀리지 마라. 가끔 이런 기분이라도 안 내면 참기 힘드니까. 금연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단 말이야.”

늘 실패하기에 이번에도 큰 기대를 안 해야겠다 싶다가도, 이번만큼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성공할까 싶다.

저게 성공할까 실패할까를 속으로 가늠하는 사이, 시아는 하품을 한 번하고는 말했다.

“뭐, 청승은 이만하자고.”

시아는 얼마 남지 않은 커피를 쭉 들이켰다.

“애들은 언제쯤 올 것 같지?”

“이제 금방 올 거 같은데요.”

태주는 적당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적당한 밀크티를 두 잔 만들기 시작했다. 이름이 적당한 밀크티인 이유는 계량 없이 만들어서다.

“네가 작업에 들어간 걸 보면 삼십 초 안에 오겠군.”

시아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은 태주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설마요. 저는 시계 같은 게 아니라고요.”

하지만 태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이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저도요!”

두 사람이 돌아왔다. 두 사람의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월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야? 왜 그렇게 빤히 보고 있어?”

“아니, 별 건 아니고. 그냥 태주 녀석이 시계 같은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란다.”

시아의 이죽거리는 말투를 들은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이렇게 되고 나서 부정하는 것도 이상하다.

“뭐, 정말로 별거 아니야. 이거나 받아.”

태주는 적당히 화제를 돌리고는 두 잔의 밀크티를 넘겼다. 날이 쌀쌀하니 차갑지는 않게, 하지만 뜨거운 음료수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미지근하게 만든 음료수다.

월이는 컵을 손으로 만져보고는 씩 웃었다.

“와, 딱 좋네.”

“맞춰 놨으니까.”

“훌륭하다!”

어디 사극에서 나올 법한 목소리로, 월이는 말했다. 저게 뭘 패러디한 건지는 몰라도 만족한 모양이니 됐다. 태주는 피식 웃었다.

설이 역시 싱글벙글하며 밀크티를 받고는 물었다.

“그런데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던 건가요?”

설이의 질문을 들은 태주는 음, 하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소장 이야기.”

설이는 뭔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렇네요.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도 된 것 같은데요.”

“그런 진지한 이야기는 아니었어. 잡담 수준이었지.”

설이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그런가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도 슬슬 해야 하지 않아요? 며칠 전에 생각난 건데 말이에요.”

“뭔데?”

“그럼 지금부터는 오빠가 소장인 거에요?”

“…잠깐만.”

태주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다. 오랜만에 질문 한 번에 정신이 아득해져 버린 태주는 중얼거렸다.

“나도 잘 모르겠네. 난 가?”

“너 아니었어?”

월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난 당연히 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 누나 아닐까?”

태주는 미약하게 저항했지만, 시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난 싫은데. 마지막까지 소장이랑 대화하거나, 온갖 중요한 일은 지금까지 다 해놓고 네가 대표가 아니라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겠니?”

태주는 이마를 짚었다. 아무래도 여기 새 소장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정해져 있었던 모양이다. 별수 없다. 태주는 빠르게 인정하기로 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서류 작업할 때 이름도 대부분 자신이 처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게 나였네?”

“너는 묘한 데서 얼빠져 있다니까.”

월이는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태주를 쳐다봤다. 그 말을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들었다. 반박할 말이 없는 게 조금 억울하다. 태주가 조용히 듣고 있는 사이, 설이가 천진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앞으로는 오빠를 소장 오빠라고 불러야 해요?”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마.”

그렇게 불리면 너무 싫을 것 같다. 태주는 황급히 화제 전환할 만한 게 뭐가 있을지 떠올렸다.

미지근한 밀크티 한잔을 남자답게 들이키는 월이를 본 태주는 한 가지 떠오른 게 있었다. 마침 슬슬 말해줘야 하겠다 싶은 것이 하나 있다.

“그런데 너 말이야.”

태주는 월이에게 물었다.

“왜?”

“뭐, 잊어버린 거 없어?”

“뭐를?”

월이는 전혀 떠오르는 게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없어?”

태주의 진지한 표정에 월이는 정말로 짚이는 건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정말 없는데.”

월이는 잠시 끙끙대며 생각하다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상하잖아! 잊어버렸으면 그야 잊어버렸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아니, 그런 걸 잊어버릴 수가 있냐?”

태주는 웃으면서 물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랑,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 중 어느 쪽이 더 맞다고 생각해?”

“…? 글쎄?”

월이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대답했다.

“그거 나랑 상관있는 말이야?”

“그렇지. 안 그러면 너한테 왜 이런 질문을 하겠어?”

“뭐야! 그럼 말해! 나에 대한 건데 왜 너만 알고 있는 거야!”

월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말했다. 태주는 씩 웃었다.

“그게, 너 혼자 질문을 안 했더라고.”

“질문?”

여기까지 말해도, 월이는 전혀 짐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소장한테 질문할 수 있는 권리랄까, 기회랄까 그거 있잖아.”

“응?”

월이는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는 멍하니 말했다.

“…까먹었다.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럴 줄 알았다.”

시아는 작게 말했다. 월이는 천천히 생각하다가는 큰소리로 외쳤다.

“안돼! 내 돈! 복권번호!”

꽤 처절한 목소리라는 게 웃기다. 그럴 거면 당장 그 날 물어보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아까우면 미리 듣지.”

설이는 빨대로 차를 쪼로록 마시면서 말했다. 태주와 거의 비슷한 생각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겠냐고오!”

억울한 듯 말하는 월이에게 태주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그럴 줄 알고 마지막에 그걸 물어봐 뒀는데 말이야.”

“진, 진짜?”

월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뀌어서는 말했다.

“복권번호 물어봐 놨어?”

“정확히는 그런 질문은 아니었지만.”

남은 질문 하나는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소장은 4층에 복권번호를 적어 놓은 쪽지가 있다는 대답을 했다.

“어쨌든 그래. 다른 질문을 할 게 없으니 그런 거라도 적어 뒀다고 하더라고. 자, 너 졸업하고 한번 해 봐.”

“이거 진짜 진짜 번호야? 진짜?”

“그럼 가짜로 진짜겠냐. 잊어버리지 않도록 잘 보관해 놔. 만약 기회를 놓치면 두 번은 없으니까.”

태주의 말에도 월이는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야, 설마 아무리 그래도 이걸 잊어버리겠어?”

잊어버릴 거 같은데. 태주는 내색하지 않고 주변 눈치를 살짝 살폈다. 시아와 설이 표정도 비슷하다.

“잘 기억해. 졸업하고 나서 다른 거 신경 쓴다고 잊어버리면 안 된다?”

“네가 내 엄마냐?”

“걱정해줘도 저런다 또.”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정말로 졸업까지 일 년 남았다. 태주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물었다.

“졸업식 할 때쯤 필요한 거 있어? 그런 게 있으면 미리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어, 글쎄요. 그런데 그걸 벌써 걱정한다고요?”

설이는 당황해서는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슬슬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니까. 특히 설이 너는 더 그렇지. 혹시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미리 준비를 할 필요가 있으니까. 월이는 그래도 짐작이 가지만 너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좀 더 들어보고 싶어서.”

꽤 중요한 주제다.

“대학을 갈 예정이라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갈 생각이라거나. 어느 쪽이든 될 수 있으면 보장하는 게 처음 약속이었으니까. 너도 월이도.”

설이는 조심스럽게 생각에 잠겼다.

“으음, 사실 좀 먼 나라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실제로도 조금 멀기는 하지.”

일 년 뒤의 일이다. 두 사람의 나이를 생각하면 절대 가깝다고는 할 수 없다.

“고민을 좀 해 봐. 음, 대학 쪽은 몰라도 이쪽 일은 누나랑 상담 같은 걸 해 봐도 좋겠네. 나는 솔직히 낙하산이라 도움이 안 될 거야.”

태주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고민 끝에 선택한 거랑, 그냥 선택한 건 전혀 다르거든.”

설이는 어렵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그런 걸까요?”

“천천히 고민해 봐.”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일 년은 짧고도 길거든.”

* * *

조용하다. 세 사람이 다 올라가고 나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왠지 모르게, 지금 손님이 올 것 같다는 그런 생각.

딸랑, 하는 소리가 난다.

언제나처럼 새로운 손님이 왔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을 겪는 손님이 온 걸까. 걱정도 되지만, 기대도 된다.

“어서 오세요.”

태주는 인사했다.

“손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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