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대답 (12)
우리 차례는 끝이다.
일방적인 말이지만, 사실이다.
애초에 전능도 알고 있다. 이미 전지함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아버린 시점에서, 전능이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어쩌면, 전지함을 되살리는 방법 같은 것을 알게 된다면 다시 그런 걸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제 와 그런 방법을 알 수 있을 리도 없다.
게다가, 어느 정도 납득해 버린 것도 있다. 애초에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고 있었던 목표라는 것이 이제 와서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나, 그것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는 사실도 알아버렸으니 그렇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건 불평뿐이다. 전능은 말했다. 툭 던지듯,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너는 나쁜 놈이야.”
귀여운 수준의, 욕설이라 하기도 참 민망한 그런 수준 낮은 비난. 하지만 소장은 아픈 표정을 지었다. 다른 강력한 욕설보다도 저 짧은 한마디가 아프게 박힌다.
자신은 그런 소리를 들어도 충분히 싸다.
“그래. 나는 그런 녀석이야. 배신자고, 겁쟁이에, 이런저런 걸 감안해도 최소한 도망자야. 아무리 그래도 만악의 근원이라 할 정도까지는 아무리 그래도 아니겠지만.”
소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한 건, 나는 너에게 참 나쁜 사람이었다는 거야.”
어쩔 수 없었다. 그 때 도망친 것은 다시 생각해도 옳은 판단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방법이 최선이었고, 다른 방법은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러니 이게 누가 뭐래도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딱 한 사람에게는 나쁜 판단이었다.
소장에게 가장 큰 후회라고 한다면, 그 한 가지다.
“나는 말이야.”
소장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너랑 내가, 신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
마녀가 그렇게 생각했듯, 그리고 아마 전능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처럼 소장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크게 잘못된 판단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전지전능이라는 것은 사람이 가질 수 없는 힘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반으로 쪼개더라도, 여전히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땅히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그 정도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전능이 느낄 기분이나, 자신에게 있는 이 미묘한 감정을 무시하고서라도,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아니었는데. 우리가 조금 더 뛰어나기는 해도, 그래봐야 사람이었던 건데.”
전능한 사람이라도, 전지한 사람이라도 그래봐야 결국은 사람인데. 똑같이 서운함을 느끼고, 화가 나고, 즐거운 것은 즐겁고 슬픈 것은 슬픈, 그런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실을, 소장은 최근에야 알았다. 그것도 남한테 들어서 알았다.
이래서야 전지하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다. 겨우 이런 것도 들어서야 알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너한테는 못 할 짓을 했지. 내 기분이 그래. 세상을 자신들의 발밑에 두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었던 것처럼, 너한테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던 건데.”
소장은 한숨 쉬듯 말했다.
“그걸 알았을 때, 나는 또 도망쳐버리고 싶었어. 하지만 또 그럴 수는 없지. 그건 더 나쁜 짓이잖아?”
“그래서, 도망치지 않겠다?”
“그래.”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나랑 같은 종류의 사람이니까.”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 소리. 전능은, 참지 못하고 피식하고 말았다.
“그렇게 추억 떠올리게 하는 말을 해도 나는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웃으면서, 전능은 말했다.
“네가 한 짓은 너무 일방적이야. 도저히 납득이 안 되거든.”
웃고는 있지만, 그래도 솔직히 짜증 난다.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일방적으로 그만해도 된다는 말이라는 것도, 갑자기 사람들 다 불러놓고 하는 말이 자랑질이라는 것도 화가 난다.
그러나 가장 불쾌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지. 아니, 전지했던 그 녀석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망스럽지만,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원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와, 그리고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는 이해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기에 전능은 말했다.
“나는 이제부터 너를 괴롭힐 거야. 남은 시간 전부를, 너한테 그 서운함을 푸는 데 쓸 거야.”
이해는 하겠으나, 억울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서운했던 일들이 아주 많다. 그 해소를 위해서 너를 적극적으로 괴롭히겠다. 그 당당한 선언에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전능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 소장은 그렇게 말했다.
“너라면 어쩔 수 없지.”
어떤 의미로는 소장이 가장 기대해 온 반응이다. 전능은, 잠시 소장에게서 시선을 뗐다.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전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될 걸 알았던 거겠지. 전능은 다시 한번 소장을 흘겨본 뒤 마녀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는 건가 봐.”
“그런가 봐요.”
마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마녀 역시, 전부 들었으니 안다.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았지만요. 안 된다니 어쩔 수 없겠어요.”
생각보다 간단하게, 마녀는 받아들였다. 전능은 조금은 의외라는 듯 말했다.
“너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렵기는 하죠. 눈앞에서 목표를 놓친 느낌도 들고요.”
마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저 녀석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요. 속았고, 마지막까지 또 속이고, 하긴 했어도 아예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고 느꼈거든요.”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히 반성할 만한 점이 있었다.
“어쩌면 그래요, 저도 너무 선생님한테 의존했던 건지도 몰라요.”
선생님이 없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있었을 거다.
전지함을 찾기 위해서 이것저것 마음에 들지도 않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어쩌면 그냥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뭐, 된통 당했으니 별수 있나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만약에 내가 그만두더라도, 너는 괜찮을 거 같아?”
“글쎄요.”
마녀는 정말로,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했다.
“안 괜찮아도 저놈들한테는 지기 싫네요.”
* * *
다들 예상할 수 있는 결말.
전능 역시도 전능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목표를 이룰 수 없다면 필요 없는 힘일 뿐이다. 그러니, 포기했다. 소장이 그 힘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결단을 내리는 것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리고 그렇다면 더 이상 소장은 사무소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고, 전능은 마녀와 함께 세상을 떠돌 필요가 없다.
“잘 지내요.”
꽤 담백하게, 월이가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 장소에 남은 사무소 사람은 태주와 소장뿐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남는걸. 우리가 너무 서둘렀나?”
전지하지 않은 건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라고, 소장은 투덜거렸다.
“이럴 줄 알면 느긋하게 이야기해도 됐을 텐데.”
소장은 옆에서, 아직도 한창 이야기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는 말했다. 이쪽은 네 사람이고 저쪽은 한 사람이니 저쪽이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정작 저쪽이 훨씬 오래 걸리고 있다.
“글쎄요, 어차피 할 이야기가 많지도 않았잖아요?”
태주의 말을 들은 소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지. 어차피, 평소에 다 염두에 뒀던 말들이고.”
소장은 처음부터 이별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고, 전능 쪽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저쪽은 헤어짐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솔직히 저한테도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인데, 저쪽은 더 하겠죠.”
전능도 빠른 속도로 결단을 내리기는 했지만 빠른 결정이라고 쉬운 결정이었을 리는 없다. 소장은 조금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도 그렇네.”
소장은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뭐 할 말 없어?”
“할 말이라, 그런 건 당연히 있죠.”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소장은 물었다.
“그 표정은 뭐야?”
“그거야 뭐. 아무리 저라도 아쉽다고요. 앞으로 다시 소장을 볼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에요.”
“그래도 너한테는 가장 먼저 알려줬잖아.”
“알려줬다기보다는 저한테는 알려주지 않을 수 없었던 거잖아요. 제가 그때 얼마나 어처구니없었는지 알아요?”
태주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소장을 보면서 말했다.
이전에 소장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태주에게 그 전지한 힘을 넘기면 전지한 힘을 성공적으로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태주는 그 힘을 쓸 수 없을 테니 후환도 없다.
“설마 그런 게 정말로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죠.”
소장은 씩 웃었다.
“사실은 나도 될 줄 몰랐어.”
태주는 이제 와서 뭐 그런 새삼스러운 말을 하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뭐 그렇겠죠. 소장도 모르는 방법이니까 해 볼 가치가 있었던 일이었으니까요, 그거. 좀 급하게 해 본 느낌은 있지만요.”
태주는 잠시,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어차피 아직도 저쪽은 대화 중이니, 이 정도는 괜찮을 거다.
“두 분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나를 걱정하는 거야?”
태주의 질문을 들은 소장은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이제는 태주에게도 버릇이 되어버린 그런 익숙한 동작이지만,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는 포즈일 거다. 그런 기분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기에,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네, 걱정하는 거에요. 그 정도는 해도 되잖아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요.”
“어떻게 되는지라….”
소장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몰라. 확실히 나는 아무것도 몰라.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도 거의 예상이 안 돼. 평소의 나답지는 않지만, 나쁜 기분은 아냐.”
“미리 조금 생각을 해 둔다거나, 그런 것도 안 했어요?”
“일부러 거의 안 해 놨지. 그걸 미리 알아두고 나서 포기하는 건 왠지 반칙 같아서.”
어차피 그런 게 필요하지도 않다. 소장은 자신 있는 말투로 말했다.
“나도 한가닥 하던 사람이거든. 전지 같은 게 없어도. 그러니 걱정하지는 마.”
“그건 그렇겠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소장이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전지해질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태주는 잠시 침묵했다. 딱히 더 할 말은 없다. 정말 우리를 믿을 수 있겠느냐 하는 질문 같은 것도 이제 와 할 필요 없는 질문이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해야 할 말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태주는 살짝 혀를 찼다.
전능이 가까이 왔다.
“이쪽은 끝났어. 그쪽은 끝났어? 끝났으면 내 힘도 거기 그 아이한테 넘길 생각인데.”
만약 여기서 그렇다고 대답하면 끝이다. 태주는 문득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아, 잠시만요. 저 한 가지 질문이 좀 남아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질문. 태주는 소장을 쳐다보고는 물었다. 질문을 들은 소장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하는 질문이라는 게 그런 거야?”
“그렇죠.”
태주 역시 장난스럽게 웃었다.
“어떤 의미로는 가장 적당한 질문 아닐까요?”
“너는 참 안 질리는 녀석이야.”
소장은 웃었다. 태주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