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대답 (11)
전능은 소장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인다. 소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내가 도왔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지만, 아니야. 나는 거의 돕지 않았어.”
“‘거의’라.”
전능은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전능이 뭔가 더 말하기 전, 소장은 미리 선수를 쳐서 말했다.
“그래, 무슨 생각 하고 있을지 알아. ‘역시 네 녀석이 도운 거 아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아마 그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중요한 도움을 줬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최소한 사소한 척하면서 중요한 힌트를 남겼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아니다.
“그런 적이 없었던 건 아니야. 초반에는 가끔 그런 적도 있었지. 하지만, 흡혈귀와 용에 한해서는 그렇지 않아. 나는 정말로 최소한의 힌트만 줬어. 아무리 그래도 불사의 존재라는 건 사기니까. 그게 그런 존재라는 힌트 정도만 줬을 뿐 그 이상의 도움은 주지 않았어.”
“그건….”
아무리 억지를 써도 그런 걸 큰 힌트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상대를 정확히 알려줬을 뿐, 그 잡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능이 주춤한 사이, 소장은 더 큰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용이 상대일 때는 나는 도움은 커녕 방해만 됐어. 일부러 그랬지.”
제대로 된 힌트를 주지 않은 것을 넘어서 아예 자리를 비웠다. 용이랑 함께 노닥거리는 수준이었다.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있다 보니 그랬지만.
“방해라고?”
“일부러 상대 쪽이랑 내통하면서 노닥거렸다면, 그게 방해가 아니면 뭐겠어? 흡혈귀와 용을 잡은 건 순전히 저 녀석들의 힘이라는 말이야. 나는 정말로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어. 비유도 속임수도 없어. 중요한 걸 사소한 것처럼 전한 게 아니라, 정말로 도움이 안 됐다고.”
전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장을 바라봤다. 소장은 그대로 이어 말했다.
“너는 분명히 그 둘을 내가 해결했을 거라고 생각 했을거야. 그런 걸 이 녀석들이 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겠지. 네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니까.”
전능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그중 가장 강해 보이는 아이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거기 있는 그 애가 한 거야? 그 애라면 약간은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지목받은 월이는 그저 뚱한 눈으로 전능을 쳐다봤다.
“아니.”
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 애도 포함해서 한 일이지만, 네가 말한 의도처럼 저 애가 혼자서 처리한 건 아니야.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제 역할을 했을 뿐이니까. 굳이 가장 중요한 일을 한 게 누구냐고 한다면, 어느 정도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태주 녀석이겠지.”
소장은 조금은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네가 봤을 때는 별로 특별할 거 없는 아이라고 생각할 거야. 네가 보기에는 평범한 정도겠지. 물론 배짱이 좋고 머리가 나름 뛰어나지만 그 이상은 아니야. 어쨌든 조금 이상한 점을 제외하면 그냥 사람이니까. 전능의 힘조차 통하지 않는 능력자라고 말하면 대단해 보이지만, 우회할 구석이 많고 그 자체로는 뭔가 해낼 수 없는 멍청한 힘이야. 그러니 저런 사람의 뭘 믿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
소장은 거의 악담에 가까운 말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특히나 옆에 있는 녀석들과 비교하면 더 그래 보일지도 몰라. 쟤는 확실히 저기에 있는 녀석들 중 가장 약하거든. 일대일로 붙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없을걸?”
태주는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설이 정도는 이길 수 있겠지만, 지네를 생각하면 결국 진짜 최약체는 자신이 맞다. 소장은 그 표정을 슬쩍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저 애가 용을 잡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직접 등에 칼을 박아넣지는 않았다. 치명상을 입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누가 뭐라 해도 태주다.
그 칼은 태주가 없었다면 절대로 등에 박히지 않았을 테니까.
“용을 잡는 계획을 성공시킨 건 다른 사람이 아니야. 거기서 가장 약한 그 녀석이라고.”
이길 수 없는 적을 이겨냈다. 성공할 리 없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결국은 성공시켰다. 아무 힘도 없고, 그저 소장에게도 읽히지 않을 뿐인 저 젊은 남자애 하나를 중심으로 해서. 소장은 그렇게 고개를 돌려서, 모두가 있는 곳을 한번 보고는 다시 마지막으로 전능을 쳐다봤다.
“뭘 믿냐고? 이런 걸 믿지 않으면 뭘 믿어야겠어?”
그 성과를 믿는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도, 계속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 노력을 믿는다.
소장은 활짝 웃었다.
“나는 그래서 도망치는 걸 관뒀어.”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들은 용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니, 기다리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더 이상 절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미래를 바라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았다.
“나는 이제, 기대를 하고 있다는 말이야.”
“기대라고?”
전능은 중얼거리듯 따라 말했다.
“무슨 기대?”
“미래에 대한 기대.”
우리가 개입하지 않으면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은 착각과도 같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아무 개입도 하지 않는데도, 이 애들은 점점 나아지고 있어.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지켜보는데도 걱정보다는 기대가 돼.”
소장은 당당하게 말했다.
“처음 사무소를 만든 건 나였지만, 지금의 사무소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건 내가 아니야. 어떤 개입도 하고 있지 않는데도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봐라, 이것도 꽤나 기대가 되지 않는가.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고, 더 나아지는 모습은 꽤 볼만하지 않은가.
“우리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절망 같은 게 아니었어. 그런 생각 자체가 오만이었던 거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알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이었는데.
“알 수 없는 미래가, 절망이 아니야.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태만이 아니지. 그런 게 없더라도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질 수 있으니까.”
여러 의미로 그렇다. 소장은, 마녀에게 물었다.
“너, 그런 말을 했지? 사람 중에도 사람 같지 않은 것이 많고, 사람이 아닌 것들 중에서도 인간적인 것들이 많다고. 그러니, 전능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에 사람이 아닌 괴담들도 포함해 달라고.”
그건 꽤 좋은 지적이다.
“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아. 너는, 네 가문이랄까, 그 이어져 온 가계 자체가 그런 미지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배척당했으니까.”
하지만, 과연 어떨까.
“그래서, 네가 본 사무소는 어떤 모습이었지?”
소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지. 사람이 아닌 것도 있었고. 너를 속인 건 사람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아닌 쪽도 있었어. 미리 약속한 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둘의 관계가 나빠 보였어?”
도깨비는 자신이 뛰어내린 건물이나 걱정하고 있고, 사람은 친근하게 우리가 무겁지는 않냐는 질문이나 한다.
“네가 바라던 건, 여기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지 않아?”
“그건….”
마녀는 거기까지만 말한 뒤, 입을 열지 못했다.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능도, 그 사실은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밑에 있었던, 용이나 흡혈귀가 보이는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고, 협력하는 그런 모습은 솔직히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능도 그 정도는 인정하기로 했다.
“… 그래. 저기 저 애들을 네가 왜 믿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아직 안 된다. 그 정도로 손쉽게 넘어가 줄 수는 없다.
“네가 만든 그 작은 장소는 그럴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세상 전체로 확대해서 보면?”
거기까지는, 아직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전능은 다시 말했다.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게 그런 작은 세상은 아니었을 텐데?”
전능은 다시 물었다.
“세상에는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 세상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나고 있지. 계속해서 전염병도 발생하고 있고, 누군가는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 나가. 옛날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죽어 나가고 있어. 큰 전쟁이 한번 나면, 수만 명의 사람이 사라져. 더 큰 전쟁이면, 수천만 명이 되지. 그런 게 옳다고 생각해?”
아직, 세상에는 우리가 필요하다. 전능의 그 말을 들은 소장은 간단하게 답했다.
“그리고 옛날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
전능은 숨을 멈췄다.
“그래, 물론 옛날보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해서 그게 더 ‘올바른’ 세상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하지만 네가 생각한 것처럼, 그리고 네 부하 녀석이 생각한 것처럼 세상이 그렇게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분명히,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우리가 살던 시기에, 인권이라는 개념은 없었어. 자유라는 개념도 별로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건 너무나 당연해.”
실질적으로 계급이 없어졌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가 하면 그것도 역시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져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별을 직접 띄워 올려보내. 하늘을 날고, 우주의 시작을 알아냈어. 이제는 우주의 마지막도 예측하고 있지.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를 알아냈고, 그 가장 작은 단위도 또 쪼갤 수 있다는 걸 알아냈어.”
아주 옛날에는, 소장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개념을 이제는 공부 좀 잘하는 고등학생만 되어도 이해할 수 있다.
“교육과 기록이 당연해진 시대야. 꾸준히 나아지고 있어. 그저 우리가 인정하지 못했을 뿐이야. 세상은 우리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돼.”
전능하고, 전지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나아진다.
“우리가 괜히 걱정해서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었다는 말이야.”
소장의 생각은 확고하다. 전능은 차가운 눈으로 다시 물었다.
“그러다 잘못되면? 한 번에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실수가 만들어지면?”
“그래, 분명 그런 일도 일어나겠지. 일어날지도 몰라, 같은 말이 아니야. 일어날 거야 분명.”
하지만 그렇다면 또 답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도 너 같은 녀석이 나타나겠지.”
아주 옛날에, 불로불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던 마법사를 해치운, 아직은 전능이 아니었던 그 시절의 마법사가 또 나타날 거다. 마법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분명 그럴 거다.
“그건 막연한 기대야. 만약 그런 사람이 안 나타난다면?”
“글쎄. 그럴지도 몰라. 특별한 영웅 한 명이 모든 걸 해치우는 시대가 아니니까. 누구 하나가 특별한 영웅이 되기는 좀 어려운 시대지.”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될 거다.
“누구 하나가 영웅이 될 수 없는 시대라는 건, 그런 영웅이 필요 없다는 말이기도 하거든.”
그 말은 소장에게도, 그리고 전능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없어도 세상은 천천히 좋아질 거야. 그러니 이제 우리 차례는 끝이야.”
소장은 아쉽다는 듯, 그러나 또 아쉽기만 하지는 않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없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도 이제는 꽤 기대가 되는 일이야. 그 말을, 나는 전하고 싶었어.”
그게 대답이다.
“이제 내가 모든 것을 알지 않아도 괜찮고, 너도 모든 것을 하려 들지 않아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