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대답 (10)
주변이 조용하다. 아무도 말할 수 없다.
“더는 말하지 마.”
전능이 말했기 때문에 그렇다. 심지어는 같은 편이라 할 수 있는 마녀조차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들어줄 수 없는 말을, 그것도 이제야 하고 있어. 이제 그런 말을 해 봐야 괴로울 뿐이야.”
중간에 타협을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건 그런 종류의 주제다.
“그럴 거라면, 그런 말을 하려고 나타난 거라면 차라리 평생 도망치지 그랬어?”
처음으로 전능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거 알아? 네가 나타났을 때, 나는 기대했어. 너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이렇게 된 다음에는 처음으로 했으니까.”
다시 예전처럼 함께 노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드라마틱하게 바뀔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그렇기에 반가움이 가장 앞섰다. 아쉬움도, 서운함도 있었지만 뒤로 미룰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만나고 나니 실망할 일 뿐이다. 하는 말이나, 상황이나 전부 다.
“나한테 하는 말이 그런 것뿐이야?”
전능이 말하는 동안, 소장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물끄러미 전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을 본 전능은 큰 소리로 말했다.
“말이라도 해 봐!”
전능의 말을 들은 태주는, 입을 열었다. 그다지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마 당장 입을 열 수 있는 건 태주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은 입을 열 수 없다.
“못 해요.”
“뭐?”
전능은, 처음으로 제대로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그야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어요. 당연하죠, 당신이 닥치라고 말했어요.”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잖아요?”
닥치라고 말을 했기에 닥친다. 그러니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저야 처음 보는 일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보니까 알 것 같아요. 당신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조용히 하도록 만드는 뭔가를 해 놨어요. 그럼, 나머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전능이 하는 일이다. 늑대인간이든, 능력 있는 무당이든 뭐든 간에 그런 걸 대처할 수 있을 리 없다.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게 당연하죠. 당신은 꽤 자주 본 광경 같은데요.”
맞는 말이다. 이렇게 주변이 싹 조용해지는 건, 전능이 자주 하는 일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얼마 전에도 여러 사람을 잠시 조용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하지만 안 된다. 지금 그래서는 안 된다. 전능은 태주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전능은 경악해서 말했다.
“너… 아니, 그럴 리 없어.”
전능은 소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에게 내 힘이 통할 리가 없어. 너, 대체 뭘 한 거야?”
이런 게 통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전지한 소장이라고 해도, 전능에 대해서는 능력을 쓰지 않고서만 알아내야 했던 것처럼, 전능이 주변 모두가 조용히 하도록 만들었다고 해도 소장만은 말할 수 있었어야 했다.
입을 열 수 있어야 하는 건 저기 있는 저 아이가 아니라, 소장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장난 그만해, 말해!”
이건 장난이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말이 된다. 상대방에게 이런 식으로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 통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소장은 말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듯, 소장 역시 마찬가지다. 움직이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런 모습.
전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건 장난이나 연기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너는 왜 말할 수 있지?”
전능은, 그 표정 그대로 태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왜 말할 수 있냐고요?”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저도 몰라요. 제가 아는 건 저한테는 그런 종류의 신비한 힘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뿐이죠. 당신이 우리 소장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우리 소장이 당신에 대해서 능력을 이용해서는 알 수 없는 것처럼, 저한테는 그런 영향이 일절 미치지 않아요.”
“그런 게 가능하다고?”
“네.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우리 소장도 알 수 없었으니까, 아마 저도 평생 모르지 않을까요?”
원래는 계속 입을 다물까 했지만, 아무래도 이 정도는 끼어들어야 할 것 같았다.
“원래는 이 사실을 본인 입으로 말하고 싶었을 것 같지만, 이건 저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니까 끼어든 거에요. 아닌가? 이것도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 있었던 건가?”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여기서 말을 할 수 있는 건 저뿐이에요.”
태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 중에는 없어요. 방금 말한 대로, 정말로 저 혼자뿐이라고요.”
“그 말은….”
전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지한 사람에게 당신의 힘은 통하지 않겠지만, 지금 소장에게는 그 힘이 통해요. 그러니까, 소장은 그냥 소장이에요. 최소한 지금은요.”
왜 능력이 먹혔는지, 어려운 설명은 필요 없다. 왜 능력이 통했겠는가. 모두가 이미 알만한 이유다.
“쉽게 말해서, 소장은 이미 전지하지 않아요, 버렸거든요.”
“버렸, 다고?”
전능은 말을 더듬었다.
“네, 버렸죠. 그렇지 않고서는 당신이 한 일에 왜 영향을 받겠어요?”
전능은 고개를 저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말도 안 돼.”
물론 안다. 태주가 하는 말이 사실이고,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전능은 이미 알고는 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그걸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다.
“네가 그 힘을 포기할 수 있을 리 없어.”
전능은 소장의 멱살을 잡았다.
“말해. 너, 뭘 한거야?”
주변 여기저기서, 기침이 나온다. 소장 역시도 작게 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이야, 이거 옛날 생각나네. 내가 너한테 말을 걸었을 때, 기억나? 그때도 이렇게 멱살 잡혔는데.”
방금 전까지, 말문이 막혀 있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능글맞은 목소리다.
전능은 점점 손의 힘을 세게 쥐었다. 거의 목을 조르다시피 하는 상황까지 갔지만, 그래도 소장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헛소리 마. 너 뭐 한 거야?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
“뭘 했느냐고? 그냥 저 애 말대로야. 그냥 나는 전능함을 포기했어. 네가 앞으로도 절대로 그 힘을 가질 수 없도록.”
소장은 웃었다. 본인의 입으로 들으면, 결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능은 쥐고 있던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말도 안 돼. 그걸 포기한다고? 네가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어!”
전능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알아.”
“그래, 그 말대로야.”
소장은 웃었다.
“한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지. 아니, 오 년 전만 해도.”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적극적으로 무언가 할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도망만 쳤을 뿐이다.
“너한테 방금 위세 좋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나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어. 그런 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알잖아?”
전능이 손쉽게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전지 역시 수많은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걸 포기하지 않는 걸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도저히 그냥 손을 놔 버릴 수 없었지. 그래. 나는 네 생각대로 그걸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야.”
잘난 듯 말했지만, 소장도 전능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
“나도 너처럼, 그냥은 포기할 수 없었던 거야. 나는 큰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 정도는 해야 한다 생각한 거지.”
마녀가 전능에게, 전능이 스스로에게 바랐던 것처럼 전지했던 소장 역시도 그 생각을 했다.
“딱 너한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이것저것 하면서 돌아다녔지. 그래, 네가 지금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나한테도 그건 꽤 절망적인 일이었던 거야.”
이런저런 인간들을 만나면서 돌아다녔다. 가끔은 대가를 받고 돕고, 또 반대로 가끔은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도왔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소장도 그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가 생각한 이상적인 세계를 만드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는 해도 될 거라는 그런 생각을 했던 거지. 뭐든지 아니까 오히려 더 욕심이 생기는 거야. 내가 아주 조금만 손을 쓰면 훨씬, 기존의 노력이 무의미할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결과가 나오니까. 아니까 오히려 포기할 수 없었던 거야.”
그렇게 지내던 도중, 소장은 처음으로 모르는 것을 찾았다.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소장은 태주를 봤다. 운명 같은 걸 믿지는 않지만, 운명이 있다면 그 만남은 분명 운명이었을 것이다.
“저 녀석은 뭘까 하는 의문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 전혀 알 수 없었지. 누군지도, 뭘 하는 사람인지도 말이야. 심지어는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그 일부조차 알 수 없었지.”
당시 태주가 겪는 일에 대해서, 소장은 제대로 듣지 않고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물론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파악할 수 있었지. 나는 세상 모든 걸 다 알 수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특이한 사건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높은 확률로 실패해 버릴 것 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건.
하지만 알기만 한다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평소처럼 적당히 손을 써 볼까 하던 찰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직접 이 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처음으로 답을 알 수 없었다. 꽤 흥미로운 주제다. 기대는 크지 않았지만, 한번 지켜볼 만한 가치는 있겠다. 당시에 딱 그런 정도의 판단을 했다.
“나는 지켜보기만 하기로 했어. 그냥 손을 놨던 건 아니지만, 본인에게는 알리지 않았지. 힌트 정도만 주고 지켜본 거야.”
언제 어떻게 잘못되더라도 큰일이 나지는 않도록, 뒤에서 지켜봤다.
“끝까지 해내리라는 기대는 없었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작은 힌트. 그것만으로 태주는 뭔가를 해결해냈다. 혼자서, 아주 힘들게. 하지만 결코 나쁘지는 않게.
“내가 한 것보다 낫다, 고는 말할 수 없지만 크게 나쁠 것도 없는 결말을 만들었어. 다른 결말, 내가 예상하지 못한, 그런 결말 말이야.”
꽤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고, 소장은 말했다. 그게 계속 반복해서 할 수 있는 일일까. 아니면, 재현 불가능한 어떤 단발성 사건인 건가. 소장은 궁금했다.
“그래서 사무소라는 곳을 만들었지. 내가 모르는 결말이, 과연 어떤 식으로 나올까 하는 그런 의문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성과는 예상외로 뛰어났다.
“처음에는 내가 끼어들지 않으면 불안했지. 실수도 조금씩 나오곤 했어. 힌트를 받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었던 일들도 많았고.”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내가 없어도 돼. 확신을 얻었어.”
소장에게는 충분한 이유다. 하지만 전능은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듯 말했다.
“그렇다 해도, 그게 무슨….”
전능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모르는 결말을 만들었다는 그 이유 하나 가지고? 그런 걸로 전지함을 포기했단 말이야? 뭘 믿고? 저 애들이 실패하면?”
“그렇다면 배우는 게 있겠지.”
“그걸로 끝이야? 배우는 게 있다고? 겨우 그걸 믿고, 전지를 포기했다고?”
“그래, 그거면 충분해.”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 알아? 용과 흡혈귀를 처리한 건 내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