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대답 (8)
“그렇잖아요? 그게 정말로 통화였다고 생각하세요?”
태주는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전화가 왔는지 확인하지 않았어요. 핸드폰을 조작한 건 저뿐이었죠. 생각해 보면 신기하지 않아요? 당신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 줄 알고 그런 좋은 타이밍에 전화를 걸 수 있겠어요?”
전능에 대해서 직접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능이 도착한 바로 그 순간에 전화가 걸렸다.
“그건 그냥 녹음된 소리예요. 다른 소음이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장소에서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나요?”
아니다. 조용한 장소에서 녹음이 된 말일 뿐이다. 적당한 타이밍에, 소리가 울리도록 하고, 적당한 타이밍에 전화를 받은 것처럼 연출했을 뿐이다.
“대단하죠? 저도 이런 게 될 줄은 몰랐다니까요.”
“말도 안 돼.”
전능은 표정이 확 굳었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말도 안 돼. 전화벨 소리를 울리는 것 정도는 네가 할 수 있겠지만, 그 전화 내용은?”
“무슨 질문을 할 줄 알고 있으면 대답도 미리 해 놓을 수 있어요. 무슨 말을 할 타이밍인지, 어떤 걸 말해야 할지 대충 짐작을 하고 있다면 가능하죠.”
말도 안 된다. 다른 속임수가 있을 거다. 전능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어.”
아무리 전능이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은 있다.
“나와 그 녀석의 힘은 완벽하게 같은 종류의 힘이야. 아무리 그 녀석이라도 나에 대해서 직접 알 수는 없을 거 아냐.”
“그렇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화를 미리 녹음하는 게 소장의 능력에 의존했던 거라면 그렇겠죠.”
전능은 눈을 크게 떴다.
“뭐?”
“네, 그건 뭐든지 알아서 할 수 있었던 행동이 아니에요. 소장에게 그런 전지한 힘이 없더라도 할 수 있었던 행동이라는 말이에요.”
뭐든지 알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전능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아서 그랬을 뿐이다.
“말도 안 돼.”
“글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해냈다. 그게 문제다.
“소장이 한 말을 그대로 옮겨 볼까요?”
태주는 말했다.
“‘전능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했어요. 어쩌면 자기 자신보다도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거라고요.”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말할지, 말버릇이 무엇인지나 난처한 질문을 들었을 때의 표정, 숨소리 같은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심지어는 어떤 문장을 말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뭐, 증명하는 데는 성공했네요.”
“그게 말이 돼?”
전능은 허탈하게 말했다. 그 기분은 태주도 완벽하게 동감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아무리 소장이라도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 말을 했었어요.”
하지만 반대로 소장은 되물었다. 그게 왜 안 될 거라 생각하냐고. 태주는 한 번 더, 소장이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겼다.
“‘평생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만 고민하면서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조금의 과장 정도야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 이상 전능에 대해 생각한 건 확실한 사실로 보인다.
“평범한 사람도 평생을 한 가지 일을 하면 경지에 오른다고 하죠. 그 평생이라고 해봐야 보통은 최대 50년 정도예요. 20대부터 70대까지 한 가지 일을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거의 문화재로 취급하죠.”
그 일에 관해서는 그 사람 본인이 살아있는 역사다.
“그런 사람의 ‘평생’조차 우리는 무시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건 어떨까요? 일반적인 사람의 평생이 아니라, 원한다면 언제까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의 평생 말이에요.”
십 년 단위로 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기 단위로 한 가지 일을 반복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게 정말로 불가능한 일일까.
“가끔씩, 소장은 뭔가 하러 나가요. 알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서 나가죠.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대체 뭘 조사씩이나 하려고 매번 나가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당신에 대해 알아보고 다니는 거라면 말이 되죠. 늘 당신을 살폈던 거에요.”
그러니 전능이 그 긴 세월 동안, 붙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었을 리 없다. 이렇게 도망치기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그런 걸까?”
전능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전능은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그래, 그런 게 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면, 그렇다면 더더욱 납득할 수 없다. 전능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렇다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두 안다는 말이네.”
“뭐, 본인 주장은 그렇네요.”
태주의 대답을 들은 전능은 조용히 말했다.
“그럼 나는, 용서할 수 없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 * *
전능이 떠난 직후, 남은 사람들 간의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럴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그저, 한 가지 소리만 울려 퍼졌을 뿐이다.
바스락거리는 발소리. 유리 파편을 밟는 소리다. 누군가 사무소로 들어온 것이다. 소장이다. 아주 태연한 모습으로 소장은 나타나서는 말했다.
“역시 그리로 갈 줄 알았다니까. 그 녀석, 의외로 단순한 면이 있으니까.”
너무 당연하다는 듯 등장했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녀도, 시아도, 심지어는 도깨비도 지금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저 멀리에서 이야기하는 줄 알았던 사람이 어느새 바로 옆에 있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반응하기 쉽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지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소장을 제외하면 설이 뿐이다.
“와, 여기가 이런 꼴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는데요.”
“그래?”
“네.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장면은 상상 자체를 안 해 봤어요.”
설이는 나름대로 옛날 생각이 나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저 여기 왔을 때 생각나네요. 그때도 소장님이 저 데리고 왔잖아요.”
“그랬지.”
설이가 조심조심하며 유리 조각들을 피해 걸으려는 모습을 본 소장은 피식 웃고는 자연스럽게 의자 쪽으로 향했다. 모든 사람들이 지켜볼 수 있는 한가운데쯤에 있는 의자를 고른 소장은 대충 유리를 툭툭 털어내기 시작했다.
“…설마 앉게요?”
설이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소장은 그저 웃을 뿐이다.
“이거 튼튼한 옷이야. 최소한 이 정도 유릿가루는 막아줄 정도로는.”
소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앉았다. 설이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아, 혹시 모르니까 너는 앉지 말고.”
“됐어요, 앉으래도 안 앉을 거니까. 저라면 그 옷 다시는 안 입어요.”
어차피 설이가 할 일은 끝났다. 소장이 시킨 건 이게 다다.
경계를 해제하고, 따라다니면서 그냥 이야기만 잘 하는 것.
“어쨌든 저는 이걸로 할 일 다 한 거죠?”
“그래. 할 일은 다 한 거야. 역할이랄까, 그런 건 좀 남았지만.”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정말로, 적이 눈앞에 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태연한 태도다.
소장은 자연스럽게, 나머지 사람에게도 인사했다.
“자, 반가워. 혹시 질문 있는 사람? 간단한 거라도 좋은데.”
마치 동네에서 만난 친구를 대하듯 하는, 그런 간단하지만 친근한 인사다. 받아주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대할 수 없지만.
아무도 말을 할 수 없다. 시아도, 마녀도. 그저 아직도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오랜만에 불러서 무슨 일을 시키나 했더니.”
그렇기에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도깨비다. 눈치를 볼 능력은 있으나 그럴 생각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꽤 재미없는 일을 시켰어. 지금 이 행동에 무슨 의미들이 있지?”
“오, 얼굴 보자마자 불평이야?”
소장의 장난스러운 말에도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중에 한 번 돕기로 한 게 약속이었으니 돕는 사실 자체에는 불만이 없지만 말이다.”
힘겨루기 같은 것도 아니었고, 재미있는 속임수에 동원이 된 것도 아니다. 뭔가 어중간한 상황만 계속 만들어졌고 도깨비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전혀 재미가 없더군.”
도깨비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깨비 본인에게는 중대한 문제겠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듣기에는 뭐 그딴 질문을 하는가 싶다. 시아도, 마녀도 이 순간만큼은 같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걸 굳이 내가 할 필요 있었나?”
“하하, 나는 네가 재밌는데. 이런 상황에 그런 말이나 하다니.”
소장은 정말로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한 일은, 물론 사소했어. 따지고 보면 너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도 했고.”
아주 잠깐 동안, 그것도 저기 있는 한 사람을 속일 정도면 됐다. 그러니 도깨비가 불만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굳이 자신이 할 필요도 없는 일이 아니었는가, 하는 그런 질문이다.
“하지만 속이는 것이 너일 필요는 없었지만, 우리를 돕는 게 너라는 데는 의미가 있었지.”
소장은 그렇게 말한 뒤, 마녀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는 질문 없어?”
소장의 말을 들은 마녀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되어서는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이야기지.”
소장은 씩 웃었다.
“내가 너에게 뭘 하겠어? 굳이 혼자 남은 너에게 온 이유가 뭘까? 너를 해치는 게 득이 될까? 아니면 실이 될까?”
딱히 득 볼 것은 없다. 손해만 볼 뿐이다. 소장의 그런 말에도 마녀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러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냥 우리 선생님과 만나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닐 테고.”
마녀는 짜증 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럼 나한테 용건이 있겠지. 대체 왜 여기 나타난 거야?”
“너한테 뭘 하러 온 건 아니야. 그런 걸 해야 할 건 내가 아니거든.”
“그럼 대체 뭘 하러 온 건데?”
마녀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네가 배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겠어. 하지만, 여전히 그 이유는 납득은 안 가.”
그것이 정말로 불가능한 것인지, 혹은 거짓말을 하는지부터, 왜 그 이야기를 이제야 하는지, 그리고 왜 선생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야기하려고 하는지까지.
“모르겠어. 알려주지 않는 게 너무 많잖아.”
마녀의 적대적인 태도를 본 전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당장 전부 알려줄 수는 없지만, 몇 가지는 대답할 수 있다.
“일단 한 가지, 내가 도망을 치기 시작한 건 전능에게 절망을 주기 싫어서였어.”
그 말을 들은 마녀는 조금 주춤했다.
“그래.”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영원히 도망칠 생각이었어. 절망을 주느니, 닿지 않을 희망이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거든.”
“그럼 왜 중간에 도망을 그만뒀지?”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전달하는 게 절망이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은 거야.”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주제에 그런 건 몰랐다. 아주 바보 같은 일이지만 그랬다. 소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절망이 아니라고?”
“그래.”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절망 같은 게 아니었어. 그래서 나는 도망치기를 그만둔 거야.”
알 듯 모를듯한 말.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렇겠지. 지금은 그럴거야. 나머지는 직접 전능과 해야 할 이야기거든.”
“그걸 왜 나한테 이야기하는 거야?”
마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왜, 지금 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나타나 이 말을 하는 것인가.
“뭐, 이걸 먼저 말하는 이유는… 너도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서, 일까.”
이쪽에는 이쪽 나름대로의 경험이 쌓였듯, 저쪽에도 그만큼의 경험이 쌓여 있다.
“최소한 너는 우리 애들의 적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뭐?”
소장은 더 이상, 마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장은 도깨비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좀 어려운 일을 부탁하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