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대답 (5)
시간이 많이 흘렀다. 두 사람이 ‘동업’을 하는 동안 세월이 많이 지났다.
말투가 바뀌고, 외모가 조금씩 바뀌었다. 찰랑거리는 금발이나, 어두운색의 옷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성격은 점점 닮아간다. 지향하는 목표도 점점 비슷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두 사람은 이미 다른 부부가 보통 함께 하는 기간의 두 배를 넘게 함께 지냈으니까. 딱히 결혼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서로가 부부라 생각하지 않더라도 닮을 수밖에 없게 되는 법이다.
애초에 닮은 점이 있었던 두 사람이기에 더 그랬다.
“이번에도 어려웠네.”
여자는 녹초가 된 채 바닥에 누웠다. 참, 관리도 안 하는 것 같은 머리카락인데 늘 찰랑거리는 걸 보면 꽤 신기하다. 남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자가 물었다.
“이번이 몇 년째지? 거의 백 년 된 것 같은데. 아닌가? 넘었나?”
여자의 질문을 들은 남자는 대충 계산을 해 보고는 말했다.
“올해로 딱 구십구 년이야. 거의 백 년이 맞아.”
“어라, 그래? 역시 내 감은 거의 맞는다니까. 정확하진 않지만.”
여자는 씩 웃고는 말했다.
“뭔가 아쉽네. 일 년 더 채워서 딱 맞추면 좋았을 것 같은데. 딱 백 년, 뭔가 상징적이잖아?”
“별로 아쉽지는 않은데.”
남자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자는 깔깔 웃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짧았으니까. 백 년밖에 안 걸렸으니 예상한 기간보다 훨씬 짧았지. 이렇게 된 김에 조금 더 신중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 어차피 이제는 정말로 코앞이잖아?”
“그건 맞는 말이야.”
일 년 정도, 더 검토하는 건 문제가 없다.
여자가 한 말대로, 여기까지 오는 건 생각보다 빨랐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죽을 뻔했고,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죽는 편이 더 편하겠다 싶은 일을 겪었다. 가끔 일 년에 두 번 정도 그런 일이 있기도 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떠올리기만 해도 싫은 듯, 남자는 무심코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여자는 뒤에서 깔깔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말했잖아? 뒤지게 힘들 거라고.”
“그래, 그러니 속았다고 어디 가서 불평불만도 할 수 없지. 불만이 하나 있다면, 그게 가장 불만이야.”
자신이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니 엄살을 부리기가 조금 그렇다. 남자의 말을 들은 여자는 씩 웃고는 말했다.
“그 불평을 여기서 하고 있잖아. 내가 들어줄 테니까 지금은 거기까지만 해. 중요한 이야기를 하자고 했잖아?”
“그래, 그 이야기부터 하긴 해야지.”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우리 중 한 명만이 특별해진다. 그렇다면 누가 그렇게 되는 것이 옳지?”
전지전능이라는 것은 그 힘의 특징 때문에 혼자만 될 수 있다. 그런 것이 둘 이상이 있다면 자체적인 모순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둘 중 한 사람은 남아야만 한다.
이 사실을 예전이라고 몰랐던 건 아니다. 종종 이야기가 나오면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나중에, 그 때 가서 생각하자.’
그때 기준으로는 이건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일이었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이었기에, 항상 미루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피할 수 없다. 당장 몇 달 안에도 할 수 있는 일이니 미뤄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감개무량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제 와 생각하면 꽤 귀찮은 일이다. 남자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걸 그래도 십 년 전에는 고민을 했어야 했는데.”
옛날에 결론 내리지 못한 일이 미래가 되었다고 갑작스럽게 답이 나오지는 않는 법이다.
“넌 어떻게 생각해?”
“난 여전히 아무렴 어떤가 싶은데.”
여자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뒤 물었다.
“그 이야기 나올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넌 참 별걱정을 다 한단 말이야. 어차피 누가 해도 괜찮은 문제일 텐데.”
목표도 지향점도 같다 보니 어차피 누가 되든 하는 일은 비슷할 거다. 방향성의 차이가 약간 있긴 하겠지만, 목적이 같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동전 던지기도 괜찮은 방법일지도 몰라.”
“그렇긴 하지만 이런 걸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기는 좀 그렇지.”
꽤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결정하기는 그렇다.
“마지막 순간을 운에 의존하는 건 좀 아니다 싶거든.”
“괜찮잖아, 그런 것도.”
여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처음에 약속했잖아? 그런 데 큰 의미는 두지 않고, 누가 이 힘을 가지든 뒤끝 없기로. 우리에게 전지전능은 다른 목적을 위해 필요한 거잖아?”
이제는 이름도 모습도 기억이 나지 않는 나쁜 마법사와는 다르다. 힘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기에 남자도 여자도 둘이 서로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하지. 그래서 이렇게 된 거기도 하고.”
남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차라리 누구 하나가 욕심을 냈다면 다른 한쪽이 양보하는 식으로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었을 텐데. 둘 다 욕심이 없다 보니 오히려 이런 교착상황이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 별수 있나.”
결국은 남자가 대안을 하나 제시했다.
“나눠 갖지.”
사실은 처음부터 하려던 말은 이거였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여자의 눈치를 살폈다.
“뭐? 그걸 나눠 갖자고?”
여자는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가, 그다음에는 미심쩍은 표정이 되었다.
"내가 아직 확인은 안 해봤는데, 그런 게 가능은 해?”
“그래. 가능성은 있어. 네가 나한테 처음 이 힘을 얻자고 이야기했을 때와는 다르게, 거의 확신하고 있는 가능성이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지금 처음으로 하는 거지만, 생각 자체는 꽤 오랫동안 했던 생각이었다.
“몇 번 검토해봤지만, 확실히 가능해. 일 년 정도 있으면 말이야.”
“나도 그때 검토해보고 온 거거든? …그나저나 몇 번 검토해봤다는 말은 미리 생각을 해뒀다는 말이네? 미리 다 결론 내리고 온 거잖아?”
여자의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본 남자는 변명하듯 말했다.
“생각해 봐. 어차피 우리는 지금까지 둘이서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왔고, 이제 거의 다 실현되어가는 단계야. 그렇다면, 굳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버리고 그 모든 걸 가질 필요가 있을까?”
꽤 회심의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해본 말이었지만, 반응이 차갑다.
“그걸 버린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너, 욕심이 난 거야? 아예 얻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반절의 힘이라도 확실히 얻는 게 낫다거나 하는 뭐 그런 생각?”
여자는 눈을 찌푸렸다.
“아니. 지금도 같아. 나는 힘에 대한 욕심은 없어.”
“그럼 굳이 왜 그래야 하는데? 목표가 같은데 둘이서 왜 굳이 그래야 하냐는 말이야. 불확실하게 일 년을 더 쓰면서.”
여자의 표정은 날카롭다. 이런 표정은 거의 이십 년만에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남자는 조금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해봐. 이유가 뭔데? 화 안 낼 테니까 말해봐.”
“솔직히 말하자면. 이유는 별 것 없어.”
“이유가 없다고?”
추궁하는 여자의 눈을 본 남자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정말 없는 건 아니긴 해. 헤어질 때가 다가오니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는 것 정도야.”
“뭐?”
“누가 어떻게 되든 우리는 곧 헤어지게 될 테지. 전지전능한 누군가와 조금 유능하고 오래 산 마법사가 함께할 수는 없을 테니까.”
사실은 그게 조금 싫다고, 남자는 말했다.
여자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마지막까지 둘이 함께 고생하겠다는 말이야? 그냥 한 사람 정도는 쉬게 놔두지.”
“그래. 마지막까지 고생은 둘이 같이하자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에 날 버리거나, 혼자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네가 끌어들였잖아?”
처음 여자가 남자를 끌어들일 때 남자가 했던 생각을, 이제는 반대쪽이 하게 되었다. 한 가지 차이는, 여자 쪽은 말하는 데 필터링이 딱히 없다는 점이다.
“…그거 프로포즈 같은 거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차이는, 남자 쪽도 조금 더 솔직해졌다는 점이다.
“크게 다를 건 없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백 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니까.”
이제 와서 헤어지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마지막 순간 정도는 함께 해도 되는 거 아닐까.
남자의 생각을 들은 여자는 깔깔 웃고는 그러라고 말했다.
“그래, 맘대로 해. 그런데 전지는 누가 갖고 전능은 또 누가 갖지?”
마지막 여자의 질문을 들은 남자는 허를 찔린 듯 당황했다.
“…그건 지금부터 또 생각해야지.”
* * *
원래는 둘로 나눌 필요가 없었던 그 힘을 억지로 둘로 나누는데 일 년이 더 걸렸다. 마지막은 결국 여자가 말한 대로 동전 던지기가 되었지만, 이번에야말로 둘 모두 불만이 없었다.
이제, 남자는 이름이 없다. 여자 역시 마찬가지다. 전지전능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사람이 가질 만한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이름은, 그래서 처음부터 없던 것이 되었다.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그 이전이나 이후가 필요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대로 정말 딱 백 년이 걸렸는데.”
솔직히 날짜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올해로 백 년이 되었다는 건 안다.
“한 세기나 걸려서, 간신히 된 건가. 마지막까지 엄청나게 어려웠네. 괜히 더 어렵게 일한 기분은 있지만.”
곧 전능은 전지를 흘겨보며 말했다.
“자, 네 소원대로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 일하게 될 것 같은데. 소감이 어때?”
“소감이라.”
후련하다면 후련하고, 생각나는 것은 많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일단 머리가 아파. 깨질 것 같은 느낌이야.”
“어라, 나는 아픈 건 잘 모르겠는데. 하긴, 전능과 전지는 다르니까 나타나는 현상이 다른 것도 이상하지는 않을지도?”
전능은 그렇게 말한 뒤 조금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네가 그런 말 할 정도면 장난이 아닌가 봐? 불에 태워도 조금 따끔하다고 하고 마는 사람이 말이야.”
전지는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그건 그래도 견딜 수 있도록 조치를 했던 거 아냐. 그런 거랑 비교하면 안 되지. 이건 그냥 아픈 거야. 하지만 조금은 견디기 힘들 정도네.”
지리멸렬한 설명이지만, 전능은 큰 의심 없이 믿었다.
“그래, 뭐. 일단 자자. 나도 몸이 썩 좋지는 않거든. 나는 아프다기보다 모든 게 다 부자연스러운 느낌인데… 어쨌든 시간은 좀 있으니까 내일은 낫겠지.”
“그래, 자세한 건 내일 이야기하자고. 나는 아무래도 바람을 좀 쐬어야겠어.”
전지는 머리를 짚고는 말했다.
“잠시 나갔다 올게.”
“앗, 잠깐만!”
전능은 자리를 비우려는 전지를 불러세웠다.
“갑자기 왜?”
“지금까지 고생했다고.”
전능은 실없이,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우리는 내일부터, 아니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그건 전지에게 묻는 거야? 아니면 그 전까지의 나한테 묻는 거야?”
“둘 다겠지. 애초에 똑같은 거니 다를 것도 없잖아?”
전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 조금 다른 대답일지도 몰라.”
“다르다고?”
“그래. 대답은, 뭐 돌아오고 나서 하면 될까? 솔직히 지금은 머리가 너무 아프거든.”
조금 딱딱한 표정으로, 전지는 말했다.
“그래, 굳이 오늘같은 날부터 바로 고생할 필요는 없겠지.”
전능은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오라는 말이다.
그러나 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