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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218화 (218/269)

21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대답 (3)

그 여자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황당해지지만, 헤어짐은 더 황당했다.

“미안! 내가 찾던 건 네가 아니었나 봐!”

2주 정도 남자를 관찰하던 여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그것도 갑자기.

황당한 표정이 된 남자를 뒤로 한 채, 뭐라 더 말을 붙이기도 전에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별로 할 말은 없다. 언제든 지루해지면 가라고 말했던 건 이쪽이다.

게다가, 그게 아니더라도 몇 달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이 부근의 진료를 2주 만에 끝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여자 덕분이다. 방해나 안 되면 다행이라 생각했었지만, 여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 잘못 걸렸다고 생각한 게 미안할 정도로, 여자는 실력도 좋고 성실했다. 특히 본인이 말을 한 대로 마지막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 대단하다.

그 정도라면 사실 중간에 모습을 보이더라도 뭐라 하지 않았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계속 고집을 부렸다.

‘내가 한다면 하는 거야!’ 하고 중간에 말했을 때는, 어이가 없다 못해 감탄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질 때도 갑자기인가.”

여자가 떠난 뒤로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본인이 없으니 좀 더 솔직하게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있다.

“그렇게 갈 거면 인사 정도는 좀 더 제대로 하고 가도 괜찮지 않았나.”

이제는 조금 서운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감정이 한 달이나 계속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최소한 이별이 그런 식이 아니었다면 이런 이상한 기분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남자는 홀로 아쉬움을 삭혔다. 아마 다음에 만나는 건 어렵겠지. 저번처럼 우연한 만남에 기대할 수밖에 없을 거다.

“어라?”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한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남자는 익숙한 금발을 봤다. 머리카락만 보고 확신을 한다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지만, 저 정도로 찰랑거리는 금발은 귀족들 사이에서도 볼 수 없다. 다른 사람일 리가 없다는 말이다.

“참, 사라질 때 갑자기였던 만큼 나타날 때도 갑자기인가.”

남자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이런 게 인연이라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남자는 홀로 생각했다. 뭘 찾고 있는 건지, 꽤 두리번거리는 모습이다. 저번에 찾으려던 것을 여기서도 찾고 있는 걸까?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만났다. 남자는 바로 손을 들어 인사를 하려다가, 문득 장난기가 들었다.

저번과는 달리 사람이 많은 곳이고, 남자의 옷은 여느 때처럼 어두칙칙한 옷이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이 이쪽을 눈치채지 못한 걸 확인한 남자는 조용히, 여자의 뒤편으로 움직여서는 물었다.

“또 만났군. 두 달 만인가?”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로 남자는 말을 걸었다. 여자는 정말로 깜짝 놀란 듯, 고양이 같은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얼굴을 보고 난 뒤 곧바로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지만.

“뭐야, 너였냐?”

멱살이 잡힌 남자는 순순히 양손을 들고는 말했다.

“…갑자기 뒤에서 말을 건 건 미안하지만 갑자기 사람을 제압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깜짝 놀래킨 쪽이 잘못이지. 나는 생각보다 적이 많다고. 다음에 또 그러면 또 이럴 수밖에 없어.”

“그래, 내 잘못인 건 알겠으니 이만 놔 줘. 계속 잡혀 있어야 할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 그건 미안해.”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손에 힘을 풀었다.

“이것 참, 다음엔 뒤에서 나타나지도 말아야겠네. 이래서 다음에 우연히 만나면 인사조차 어렵겠어.”

남자는 농담조로 말했다. 하지만 여자는 애매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미안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떳떳한 건 또 아닌 그런 표정.

“음, 그거 말인데 이번에 만난 건 우연이 아니야.”

“우연이 아니라고? 처음부터 다 정해져 있었다는 그런 운명론적인 이야기인가?”

“아니, 그런 이야기는 아니야. 처음 만난 건 우연이 맞지만 말이야. 이번에는 네가 갈 만한 장소를 찾아서 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만난 게 마냥 우연은 아니지.”

여자는 말하기 어렵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나를 기다렸다는 말인가?”

“그렇게 되겠네. 그런 것 치고는 놀라서 멱살을 잡았지만 말이야.”

여자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이해가 가지 않아 또 물었다.

“대체 왜?”

“이유야 뭐… 일단은 사과하려고.”

“사과?”

전혀 짐작이 가는 구석이 없다.

“미안할 일이 있었던가? 떠오르는 건 없는데. 지금 내 멱살을 잡은 것만 제외하면.”

남자의 어리둥절한 태도를 본 여자는 어색한 미소로 말했다.

“사실은 너를 의심했거든, 나.”

“의심?”

“그래.”

여자는 볼을 긁적이고는 말했다.

“소문이 있었어. 사람이 감히 얻을 수 없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을 해부하고 다니는 마법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빈민가를 돌아다니면서 의사인 척하면서 실험체를 모은다는 소문도 있었고.”

거기까지 들은 남자는 그제야 그때 그 반응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똑똑히 지켜보겠다는 게 그런 말이었나. 처음엔 나를 의심했던 거였어.”

남자는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래. 돈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진료를 봐 줄 만한 이유가 난 그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났어. 그렇게 해서 없어져도 괜찮은 사람들을 써먹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결과적으로 그건 오판이었지만 말이야. 사람 착각하기 딱 좋게 돌아다녔단 말이지.”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이 보이면 바로 치려고 했는데,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누가 보는 눈이 있어서 그러는 건가 했는데, 2주나 반복하는 동안 전혀 티를 내지 않는 거 보면 내가 착각한 거지 뭐. 따지고 보면 사실 처음부터 인상이 그리 나쁘지는 않기도 했고. 좀 음침해서 헷갈리긴 했지만.”

“검은 옷을 좋아한다고 음침하다는 생각은 좀….”

여자는 남자의 항변을 가볍게 무시했다. 어쨌든 남자는 나쁜 마법사가 아니었으니 여자는 시간 낭비를 한 셈이다.

“이렇게 남한테 티 안 내고 좋은 일만 하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 봤다니까. 그런 건 다 사기꾼이라 생각했는데.”

“뭐, 그저 좋은 일만 하고 다니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건 맞는 말이지. 나도 내 연구를 하고 있긴 하니까. 마냥 선의는 아닌 셈이야.”

“글쎄, 하는 일에 비해 적게 받는 것 같은데? 보통 사람들은 그걸 호구라고 부르고. 내가 보기에도 넌 좋은 사람이야.”

뭐라 부르든, 알 바는 아니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그래서, 그 나쁜 마법사를 찾는 도중이었나 본데, 혹시 찾았나?”

“그래, 찾았어.”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실 이미 족쳐놨지.”

어쩐지 피곤해 보이더니, 이미 끝낸 거였나. 남자는 감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빠르군. 아직 안 끝났으면 도와줄까 했더니.”

“그 표정은 뭐야? 자신이 있으니까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늘 찾는 게 어렵지 해치우는 게 어렵지는 않아.”

말을 들어보니 한두 번 해 보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자주 하는가 본데. 현상금 같은 거라도 걸려 있나? 나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서.”

“현상금? 아니,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누가 그런 소문 따위에 현상금을 걸겠어?”

“결국 얻는 건 없다는 말이군. 그래놓고 나한테 잘도 그런 소리를 하는데.”

남자가 하는 일은 얻을 건 없고 귀찮은 일이라지만, 최소한 위험한 일은 아니다.

“네 쪽이야말로 얻는 것도 없이 그런 일을 하고 다닌 거 아닌가? 네가 나한테 티 안 내고 좋은 일이니 뭐니 할 처지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어.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해야지.”

“그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이 없지. 서로 고생하는군.”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다른 용건은 뭐지?”

겨우 사과 하나만 하기 위해서 이쪽으로 왔을 리가 없으니, 분명 또 다른 용건이 있을 게 확실하다.

“예리한걸?”

“당연한 소리를 하는 걸 가지고 예리하다고 하면 곤란해.”

“그래. 네 생각대로 할 말이 있긴 했어. 그냥 사과만 하려고 널 찾아 돌아다니는 건 아무래도 너무 비효율적이지. 네가 그런 거 이해 못 할 정도로 좀생이로 보이지도 않고.”

여자는 길게 끌지 않고 곧바로 물었다.

“너, 혹시 나랑 동업할 생각 있어?”

“동업이라고?”

의외의 말이다. 잠시 생각하던 남자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사양하도록 하지.”

솔직히 말해서 흥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해야 할 일이 많다.

“어라?”

여자는 눈을 깜빡거리다가는 다시 물었다.

“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야기를 들어는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글쎄. 이야기를 듣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뭘 같이 하자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동업이라는 건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나 할 수 있는 일이야. 너와 일하는 건…. 그래, 솔직히 지난번 만남이 꽤 기분 좋은 일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합리적이야.”

서로 도움이 되는 콤비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지향점이 다르다.

“네가 내 일을 돕거나, 아니면 내가 네 일을 돕거나. 어느 쪽이든 꽤 괜찮은 일이 될 거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어. 하지만 둘 다 하는 건 불가능해. 나는 내 일을 포기할 수가 없어.”

지금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남자의 말을 들은 여자는 살짝 웃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남자는 계속 말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찾아봐. 그게 서로 현명한 선택일 것 같거든.”

용건이 이게 끝이라면 아쉽지만 더 끌 수는 없다. 오히려 길게 끌면 아쉬울 것 같으니, 남자는 곧바로 자리를 뜨려 했다.

“아니, 잠깐만. 내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곧바로 남자의 팔을 잡아챘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깜짝 놀란 남자는 곧바로 손을 빼려 했지만, 안 된다. 생각보다 꽉 잡혀 있다.

악력만으로 붙잡힌 게 아니다. 이건 지금 그 이상의 무언가도 같이 쓰고 있는 거다. 마술이나, 아니면 비슷한 뭔가를.

“강제로 협력하도록 할 생각인가?”

“아아니, 이건 별거 아냐. 이야기나 들어보라고 좀 붙잡은 거지. 그렇게 바로 가버리면 어떻게 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잡은 게 아니라, 그대로 자리를 피할 수 없도록 막기 위한 조치들이 되어 있다.

그저 잡는 것만으로 이런 게 가능할 리 없으니 미리 도망치지 못하도록 준비를 해 놓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이리라.

“일단 한번 들어나 보라니까? 애초에 나도 무조건 하겠다는 건 아니거든?”

변명처럼 하는 말을 들은 남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왔나 본데, 곤란한걸. 그렇게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나는 도망칠 수 있어. 그런 쪽으로는 재능이 있거든, 난.”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네가 실력 없는 돌팔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말이야. 다른 사람들을 볼 때보다 훨씬 오래 봤는걸.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했으면 쉽게 도망갈 수는 없겠지? 최소한 내가 뭘 권유하는지 정도는 듣고 가라고. 일단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그다음에는 붙잡지 않을게. 들어나 보라고, 응?”

이야기나 들어보겠는가, 아니면 굳이 고생해서 도망을 쳐 보겠는가. 결국 할 수 있는 대답은 뻔하다.

“좋아. 일단 들어나 보지. 이렇게까지 해서 하려는 이야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사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기대는 된다. 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자신에게 권유하고자 하는 게 뭘까.

이거, 금방 끝나지는 않겠구나. 남자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정말 절실한가 본데.”

“꽤 절실하지.”

“…나중에 사랑 고백 같은 건 이런 식으로 하지 마. 분명 남자가 도망갈걸?”

농담이지만, 진심이기도 하다. 여자는 뭐 그딴 소리를 하느냐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그런 건 관심 없으니까 됐어. 진지하게 들으라고. 내가 괜히 이렇게까지 하는 게 아니니까.”

“대체 얼마나 큰 건이길래?”

“엄청나게 크지. 세상에서 이것보다 더 대단한 건은 아마 없을걸?”

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을 설득할 때 조금씩 과장하는 건 흔하고 정석적인 방법이지만, 이건 좀 심하다.

“과장이 심한데.”

“과장이 아니야!”

여자는 답답하다는 듯 큰 소리로 말하려다, 다시 목소리를 작게 줄였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구석이라고는 해도 마을 안이다 보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건 진짜로 세상에서 가장 큰 건이야. 잘 들어.”

여자는 잡고 있던 남자의 팔을 쭉 잡아당겨서, 그대로 끌려온 남자의 턱을 붙잡고는 속삭였다.

“나는 이번에, 우리 모두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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